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02화 (102/404)

102. 코퍼 용병대3

“용병 길드는 어째서 이런 일을 막지 않는 겁니까?”

“처음 말했듯 용병 길드는 용병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네.”

“그럼 용병이 되려는 자들 역시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쯧, 다시 말하지만 용병 길드는 용병이 되려는 자가 아닌, 용병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네. 용병이 되길 희망하는 사람과 이미 용병 길드에 소속된 자들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용병 길드에서도 처음에는 이런 폐단을 막아보려 했었네. 하지만 갑자기 거대 용병대와 용병 가문에서 제동을 걸기 시작했네. 용병이 되려면 어느 정도 능력이 있어야 하며, 능력이 없는 사람을 함부로 받아들여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명목이었지.”

틀린 게 없는 것처럼 들리는 코퍼의 말에 시안느와 이니엘 영애는 암묵적인 동조를 표했다. 괴롭힘으로 불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소리군요.”

그러나 카일은 가당찮다는 양 코웃음을 쳤다.

“용병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는 해도, 실력이 떨어지는 하급용병들의 희생이 줄어드니 좋은 것 아닌가요?”

이해할 수 없었는지, 시안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낯으로 물어왔다.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해도, 오러를 다루는 용병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용병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대부분 먹고 살길이 없어 푼돈을 주고 어설프게 검술을 배웠거나, 군에 징집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용병이나 해볼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초보자들과 오러를 다루는 용병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시험이라고 했으니, 적당히 자질만 확인할 것 같은데….”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용병들이 아무런 이득도 생기지 않는 일에 힘과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있을까요?”

카일의 눈빛은 자신의 말이 옳다는 걸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하, 과연 똑똑하군. 정확하네! 일단 용병이 되려는 자를 시험하고 통과시켰다면, 시험을 진행한 용병이 그와 함께 직접 길드로 가줘야만 통과 사실을 인정해 주지. 아무리 마음씨가 좋은 용병이라도 이런 귀찮고 골드도 생기지 않는 일에 나서겠는가.”

짐작도 못 했던 진실에 시안느가 나직하게 탄식했다.

“세상에나….”

“용병 가문이나 대형 용병대에서 이런 규칙을 만든 까닭이 있는 것 같군요.”

“물론이지. 이들의 가장 큰 목적은 용병에 지원하는 이들을 끌어들여 일정한 수입을 거두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거라네.”

“어떻게 세력을 늘린단 말입니까?”

“자네는 모르겠지만, 용병 가문이나 용병대에서 배출한 용병들은 소속력과 결집력이 대단하지. 이곳에 소속된 용병의 숫자야 고작 백여 명에 불과하지만, 일단 동원령이 떨어지면 그들 가문이나 용병대에서 배출한 수백의 용병들이 모여든다네.”

무력은 곧 힘을 뜻한다.

비록 정식 기사단의 무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수백의 용병대는 일반 정예 병사들보다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어 무시 못 할 전력이었다.

“용병이 되려는 자들 입장에서도 당장 위험을 피할 수도 있고, 용병 가문이나 대형 용병단이라는 뒷배도 생기니 나쁘지 않겠군요.”

“하지만 이 때문에 용병들 사이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지. 남부지역이야 대형 용병단이나 가문이 없어 큰 분쟁은 없지만, 남부만 벗어나도 큰 싸움이 빈번히 일어나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심각하게 충고하던 코퍼가 카일의 얼굴을 남몰래 관찰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카일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자,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럼 비터라는 용병이 용병시험이란 명목으로 절 노리고 있다는 말이군요.”

“자네 옆에는 눈에 띄는 두 명의 미녀가 항시 붙어있다네. 그뿐인가? 알게 모르게 상단에서도 자네 일행에 대한 편의를 봐주려 노력하고 있지. 거친 용병들 사이에 시기심이 생길 수밖에는 없지 않겠나.”

실소 섞인 코퍼의 음성에 카일은 대화를 나누는 두 여인을 눈에 담았다. 서로 다른 매력의 두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예뻐 보여, 카일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반짝이는 여인들 앞에서 사내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들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카일이라는 작은 벽이 있지만 용병시험이라는 빌미로 방벽을 걷어낸다면, 두 여인에게 다가설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용병들 사이에도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네. 용병시험도 이 중 하나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중요한 규칙이라, 이는 나도 막을 수 없네. 물론 자네가 이대로 용병시험을 포기하고 용병 가문에 소속되거나 용병대 들어가는 방법도 있을 거라네. 하지만 아마 자넨 그러지 않겠지.”

코퍼는 자신이 추측하던 걸 말했다. 카일은 이미 보일에게 상당한 검술을 전수 받았을 것이다. 이대로 용병대나 용병 가문에 들어간다는 것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검술을 헌납하는 꼴이었다. 귀족 가문의 기사가 되는 것보다 못한 길이었다.

“그럼 결국 이번 대결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군요.”

“다만 회피할 방법이 하나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먼저 용병시험을 요청하거나….”

“제가 용병이 되기를 포기하는 거군요.”

“바로 그렇네.”

코퍼는 지금까지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결국 자신이 먼저 다른 용병들보다 앞서 시험을 맡아 다른 용병, 즉 비터를 막아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도 아무 이유 없이 카일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 눈치챈 카일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제게 이런 제안을 해주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네.”

코퍼가 카일을 똑바로 응시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얼마 전 샤론 마을에서 들었네. 자네의 부친인 보일 대장이, 오크 랜드에서 커다란 운석을 주워 검 세 자루를 만들었다고 하더군.”

코퍼는 시선을 카일의 허리춤으로 옮겼다.

“제 검을 원하십니까?”

“자네에겐 두 개의 검이 있지 않나? 검 하나로 이번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네만.”

코퍼가 은근하게 말했다. 카일은 이제 17살이었다.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이 가지고 있는 마나 연공법이 없는 이상,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해도 소드 유저 최하급을 벗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실과 희망은 언제나 다른 법이었고, 코퍼는 이 점을 알지 못했다.

“제가 지금 당장은 용병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 뒤, 나중에 길드에서 시험을 치르려 해도 되지 않습니까?”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네. 용병시험을 제안받았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시험을 회피하는 건 불가능하지. 자네가 용병이 되길 포기한다고 말하는 즉시, 비터는 용병 길드에 이 사실을 밝혀 자네가 다시는 용병 되지 못하게 만들 거야.”

어쩌면 코퍼 자신이 직접 용병 길드에 이 사실을 알릴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코퍼의 기색은 노골적이었다.

“제가 만약 대장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거절한다 해도 난 자네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을 거라네. 또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고.”

코퍼가 덤덤하게 말했지만, 사실 코퍼 용병대는 카일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카일은 아일론 상단의 주 거래대상인, 샤론 마을 자경 대장 보일의 아들이었다. 더군다나 보일은 샤론 마을에서 생산되는 몬스터 부산물거래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딱히 보일이 아니더라도, 카일은 사교계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도자기와 옹기라는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만약 코퍼가 카일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아일론 상단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일론 상단이 중소 상단이긴 해도 남부 상계에서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런 만큼 카일이 위해를 당해 아이론 상단이 피해를 입는다면, 코퍼 용병단은 앞으로 남부에서 활동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코퍼 용병대원들 대부분이 남부 일대에 모여 사는 이상 남쪽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다.

때문에 코퍼는 지금 간접적으로나마 카일을 압박해 검을 받아내려는 것이다.

운석으로 만든 검은 워낙 희귀해 높은 가격에 거래될 뿐 아니라, 고합금 미스랄 검과 비슷한 강도를 가졌다. 그리고 높은 마나 전도율을 가지고 있어 가치가 상당했다.

“으음… 제게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유를 오래 줄 수는 없네. 알다시피 개인 용병들을 통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고민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카일을 보던 코퍼가 이미 검을 받아낸 듯 으스대며 앞으로 사라졌다.

“카일의 실력이면 코퍼라는 용병대장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잖아요.”

뒤에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잔뜩 화가 난 이니엘 영애가 코퍼의 등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코퍼는 B급 용병으로 이제 갓 엑스퍼트에 오른 용병이었다. 용병으로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나이에 B급 용병에 오른 셈이었다. 그러나 이미 완숙한 중급 엑스퍼트인 카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코퍼를 상대할 수 있었다.

“코퍼 대장이 제 검에 욕심을 부리고 있긴 해도, 제법 신용이 좋은 용병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아일론 상단과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에둘러서 압박만 주고 있으니, 괜히 문제를 일으켜 상단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상단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요.”

카일의 말에 시안느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양 물어왔다.

“그럼 바로 거절하는 게 좋을 텐데, 굳이 시간을 달라고 한 이유가 있나요?”

“일단 여유를 달라고 했으니, 코퍼 대장은 제가 고민하다가 승낙할 거라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며칠간은 개인 용병들이 도발하지 않게 열심히 막아 줄 겁니다.”

“저 사람을 방패막이로 사용할 심산이군요.”

“일단 며칠만이라도 시간을 끌다가, 용병시험에 응하면 되겠지요. 제가 시험에서 이긴다면 함부로 도발하지 않을 겁니다. 그땐 자작령에 있는 용병 길드까지는 하루 이틀이면 도착할 시점이니, 다른 암수를 쓰긴 힘들 겁니다.”

결국 이번 싸움은 자작령의 용병 길드로 가는 동안, 용병시험을 얼마나 늦추는가가 관건인 셈이었다. 일단 용병 등록이 완료된다면, 카일은 곧바로 거리낌 없이 용병 검투를 신청해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할 생각이었다.

기사가 결투를 통해 상대와의 분쟁을 해결하듯, 용병들도 용병 검투로 상대방과의 은원이나 분쟁을 해결했다. 하지만 용병 검투는 기사들의 결투나 대전과는 달랐다. 이들의 싸움은 정정당당한 대결이라기보다, 온갖 편법이나 암수를 동원해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형식이었다. 물론 생사를 걸고 검투를 벌이긴 했으나, 꼭 목숨으로 승부를 내진 않았다. 용병은 골드에 검을 팔지만, 마찬가지로 골드 때문에 목숨을 걸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은 용병 검투를 비겁하고 저열한 싸움이라 폄하했지만, 용병 검투야 말로 용병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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