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마법과 기계학1
그 아래 단계로는 하급기사나 용병들이 사용하는 실용적인 마법 무구와 일회성 스크롤이 있었다.
물론 이 물건들도 상위 아티팩트에 비해 떨어진다뿐이지 질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나름의 멋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카일이 만든 소총은 쇠붙이에 기름을 먹인 뒤 검게 태워, 광택을 없앤 거무스름한 형태였다. 아티팩트 제작에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멀린이 보기에, 카일이 만든 총은 마법 무구는커녕 무기로서도 가치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어 보였다. 멀린이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자, 이를 눈치챈 카일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장식도 없어 볼품없지만, 꽤 위력적인 무기랍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마법이 1서클 익스플로젼이 인첸트 된 신호용 스크롤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맞췄다는 양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멀린의 얼굴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서클 마법이면 오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합니다. 이런 것보다는 차라리 제가 적당한 마법 무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마침 가지고 있는 하급 마나석이 있으니, 쓸만한 무구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필요하시다면 지금 허리에 차고 계신 검에 공격 마법이나 강화 마법을 인첸트 시켜 드리겠습니다.”
멀린의 은근한 권유에 카일은 총을 조립하며 차분히 설명했다.
“총이란 물건을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크는 물론 기사도 죽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총열과 개머리판을 조립한 뒤, 카일은 만족스러운 것처럼 입가를 끌어올렸다.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1서클 마법으로 기사를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방금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1서클 마법으로는 오크 가죽도 뚫지 못할 거라고요.”
멀린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저었다.
마법으로 엑스퍼트 기사를 죽이려면 최소 3서클 이상의 마법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 역시 기사가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가정했을 때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카일은 그러한 마법적인 지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보여 드릴까요?”
“정말 1서클의 마법으로 기사를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하늘에 떠 있는 와이번 나이트를 어떻게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마!”
멀린은 카일의 손에 들려 있는 총을 보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마법사인 멀린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만약 카일 님의 말대로 총이란 물건이 기사를 죽일 정도로 대단하다면, 만들고 계신 총에 익스플로젼 마법을 각인시켜 드리겠습니다. 하급 마나석을 사용하면 스크롤 없이도 1서클 마법을 하루에 수십 번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흐음… 스크롤이 필요 없는 마법 총이라니, 좋습니다. 그럼 저에게 바라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럼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이라면…?”
“자세한 사항은 지금 말고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혹 들어주시기 어렵다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카일이 흔쾌히 머리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이번 내기는 이긴 거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카일은 멀린의 부탁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제가 사용하는 총으로 보여드려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목적은 1서클 마법으로 기사나 오크를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카일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가죽 주머니에 싸여 있는 소총을 꺼내어 왔다.
“흠? 만들고 계시는 총과는 다르군요. 뭐랄까, 조금 더 섬세하다고나 할까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사실 이번 총은 급하게 만들어, 단순한 외형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정교함과는 거리가 있지요.”
카일이 가죽 주머니를 어깨에 둘러멨다.
“여기서는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숲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카일 님의 이야기가 맞다면 마법을 새롭게 재해석한 새로운 마법이니, 마법사로서 당연히 따라야지요.”
“좋습니다. 그럼 가시죠.”
카일이 앞장서자 멀린이 경쾌한 몸놀림으로 뒤를 쫓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카일의 당당한 모습에 마법사로서의 궁금증이 강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만약 카일이 정말 1서클 마법으로 기사를 죽일 수 있는 마법 무구를 만들었다면, 마법 학계가 발칵 뒤집히게 될 터였다.
* * *
목책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마을에서 멀어지자 카일은 곧장 시카니스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 맴돌았다.
‘한동안 부르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쩐 일이냐?’
의아함을 품고 있는 시카니스의 음성이 카일의 머릿속에 울렸다.
‘일이 있어서…. 쉬는 데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괜찮다. 오크 랜드에서 들소 한 마리 잡아먹고 절벽 위에서 적당히 쉬고 있던 참이었다.’
카일은 시카니스를 아공간석이 아닌 오크 랜드 평원에 풀어 놓았다. 자유롭게 사냥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시카니스는 처음 카일과 맹약을 맺은 절벽 위에 작은 둥지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사냥을 할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둥지에서 잠을 자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잠깐 하늘을 날고 싶은데 괜찮을까?’
‘너와 함께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시카니스가 날개 한쪽을 아래로 펼쳐 등 위로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카일과 멀린은 조심스럽게 날개를 밟고 시카니스의 동체 위에 올라섰다.
‘저 녀석도 데려갈 생각인가?’
시카니스가 멀리 자이언트 블루 우드 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를 말하는 거지?’
카일이 시카니스가 응시하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카일은 시카니스가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지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는… 123호?’
‘마법으로 몸을 감추지 않아 쉽게 감지했다.’
카일이 나무 위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멀린이 고개를 돌려 카일이 보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따라 왔군요.”
“따라오다니요?”
카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아! 오크 랜드에서 돌아온 뒤 곧바로 작업실로 들어가셨으니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저 사람, 지금까지 줄곧 집주변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예?”
“보일 님과 힐튼 남작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경계하셨지만, 마법으로 몸을 숨기지도 않고 적대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아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두고 계십니다.”
“그렇습니까?”
멀린의 말에 대꾸한 카일은 뺨을 긁적였다.
‘나중에 따로 만나봐야겠군.’
언젠가 제대로 123호와 대화를 나눠 보자 결론을 내린 카일은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아오른 시카니스는 빠르게 오크 랜드 평원으로 향했다.
철컥
카일은 가죽 주머니에서 꺼낸 소총에 만들어 놓은 탄환을 장전했다.
“흠, 특이하군요. 이렇게 스크롤을 말아놓고 사용할 이유가 있습니까?”
“탄환을 발사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신지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멀린이 되물었다.
“마법을 이용해 탄환을 발사하는 것이죠.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기대하라는 것처럼 웃은 카일이 멀린에게 대꾸했다.
‘시카니스 낮게 날아 줘!’
카일의 말이 끝난 즉시, 시카니스가 날개를 접고 아래로 떨어져 내려 평원을 따라 비행하기 시작했다.
“마침 적당한 녀석이 있군요.”
카일은 대뜸 하늘 위에 나타난 블랙 와이번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오크 수십 마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거리에서 오크를 잡겠다는 말입니까? 마법의 최대 발현 거리는 200m 이내입니다. 그 이상을 날아가면 마법은 소멸됩니다.”
카일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총을 조준했다.
탕-
퍼억
폭음과 함께 날아간 총탄이 달리는 오크 옆을 스치며 바닥에 박혔다.
“이건….”
“이런 빗나갔군요.”
카일은 볼트를 후퇴시켜 새로운 탄환을 장전하더니, 곧장 도망치고 있는 오크를 향해 발사했다.
타앙!
퍽
두 번째 탄환은 빗나가지 않았다. 적중한 탄환은 오크의 머리를 터트렸다. 선명한 녹색의 피가 비산하더니, 오크의 시체가 바닥에 처박혔다.
“이럴 수가.”
멀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오크의 시체와 카일의 손에 들려 있는 소총을 번갈아 쳐다봤다.
카일의 손에 들려 있는 아티팩트는 하늘을 날아가는 와이번 위에서, 도주하는 오크의 머리통을 정확히 맞춰 죽일 정도로 관통력이 대단했다.
무엇보다 멀린이 믿을 수 없던 건 3~400m 정도를 날아가는 마법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멀린 자신이 평생 믿고 있던 상식을 뒤엎는 일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마법의 상식을 깨트려버리는 일입니다. 아무리 고위 마법이라도, 마법이 발현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인 200m를 초과할 수는 없습니다. 헌데 어떻게 고작 1서클의 마법이 3~400m를 날아가 오크를 죽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휩싸인 멀린이 소리쳤다. 카일이 만든 총에서는 분명 1서클의 익스플로젼 마법만 발현이 되었다. 발현된 마나의 양, 폭발력까지 모두 고려해 보았을 때 사용된 스크롤은 1서클 익스플로젼 마법이 인첸트 된 마법 스크롤이 맞았다.
심지어 저급한 마법 재료 사용으로 다소 폭발력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광분한 멀린이 당장이라도 카일에게 달려들 것 같이 몸을 디밀었다.
“일단 내기는 제가 이긴 겁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카일 님이 이기셨습니다. 그러니 가르쳐 주십시오. 어떻게 마법의 발현 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리신 겁니까? 어떻게 고작 1서클 마법으로 먼 거리의 오크를 죽인 겁니까?”
“하늘 위에서 장시간 이야기할 내용은 아닌 것 같으니, 일단 내려가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그때서야 시카니스의 등에 매달려 있단 사실을 인식한 멀린이 카일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카일 님. 너무 놀라운 일이라….”
“괜찮습니다.”
멀린의 사과를 받아든 카일이 시카니스에게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을 부탁했다.
시카니스는 다른 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날아 둘을 처음 태웠던 곳에 내려 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저….”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시카니스를 바라보고 있던 카일에게 멀린이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휴~. 이제 물어보십시오.”
카일이 못 말리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마법사란 족속들이 원래 그렇습니다.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가도, 마법에 관련된 일이라면 궁금증을 참지 못합니다.”
“괜찮습니다.”
카일은 괜찮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일단 마법의 발현 거리를 어떻게 늘리신 겁니까?”
“늘리지 않았습니다.”
“예?”
“발현 거리는 같습니다. 다만 마법의 힘을 이용한 것뿐이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멀린의 말에 카일이 바닥에서 돌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허리에 차고 있건 검을 검집째 꺼냈다.
“이 검이 마법입니다. 그리고 손에 들려 있는 돌이 탄환이죠.”
타악-
카일이 들고 있던 돌을 검집으로 쳐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