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도그 파이트3
자신의 몸집에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골드 와이번을 잡지 못해 맹약자인 카일이 연이어 공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상처까지 입었다. 블랙 와이번 시카니스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것은 물론, 이대로 골드 와이번을 잡지 못하면 또다시 맹약자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든 것이다.
시카니스가 속도를 높여 급강하하는 에일럿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한 것엔 이런 까닭이 있었다.
“으아악.”
어떠한 언질도 없이 시카니스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자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멀린은 공중에 매달려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시카니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개까지 접어 하강에 박차를 더했다.
“키에엑~.”
순간 아래쪽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아래로 떨어지던 에일럿이 다시 하늘로 솟구치려는 순간, 가속을 붙여 떨어져 내린 시카니스가 무지막지한 발톱으로 골드 와이번 에일럿의 양어깨를 짓눌러 버렸기 때문이었다.
에일럿은 시카니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좀 더 웅크려 떨어지는 속도를 높였다.
푸화악
한참 동안 아래로 추락하던 에일럿이 날개 활짝 펼쳤다. 겨우 속도를 줄여 대지에 부딪히는 것을 막아낸 에일럿은 땅을 한차례 튕겨 점프하듯 하늘로 뛰어올랐다.
스악-
순간 에일럿이 있던 자리로 스카니스의 발톱이 내려꽂혔다.
목표를 잃은 발톱은 바닥을 파고들었다. 평원에 위압적인 흔적을 남긴 시카니스는 금빛의 와이번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휴~.”
시카니스의 공격에 에일럿이 쫓기게 되면서 카일은 간신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방심하지 마라. 놈은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카일의 머릿속으로 시카니스의 경고가 강하게 울렸다.
도망갈 줄 알았던 골드 와이번은 상승했다 하강했다를 반복하며 시카니스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도주보다는 공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카일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골드 와이번을 주시했다.
현재 카일은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롭고 생소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전투나 대결이 평면, 즉 지상에서 이루어진 2차원적인 전투였다면 공중전은 전후좌우는 물론이고, 아래와 위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3차원적인 전투였다. 어디에서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생소한 환경에서 펼치는 싸움이다 보니, 카일은 계속해서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차르르륵
귓가로 거친 쇳소리가 들려오자 카일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카각
카일이 있던 자리로 사슬이 스쳐 지나가며 불똥이 튀어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공중전이 처음인 카일을 더욱 애먹이는 건 사내의 사슬 공격이었다.
사내와 골드 와이번은 완벽하게 한 호흡으로 움직이며 10m에 이르는 사슬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시카니스와 카일은 맹약을 맺은 기간도 얼마 되지 않았고, 실제 비행을 하며 호흡을 맞춰 본 것도 고작 몇 번에 불과했다.
시카니스 또한 이런 전투를 경험한 일이 없었다.
빛의 마탑에서 제공한 마법 스피어까지 장착한 블랙 와이번을 이런 개싸움에 동원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평범한 와이번보다 상대적으로 큰 동체와 단단한 비늘, 그리고 압도적인 힘과 지구력으로 많은 무장을 실어 적을 제압하는 것이 블랙 와이번의 가치였다.
더군다나 시카니스는 항상 3마리 이상의 골드 와이번과 편대를 이루며 호위를 받아왔기에, 이처럼 초 근접전이 벌어질 일도 없었다.
때문에 시카니스의 안장에 꽂혀있는 스피어들 역시 모두 관통력이 뛰어나고, 장거리 타격이 가능한 빛의 마법 계열의 마법 스피어였던 것이다.
쫓겨 다니면서도 시카니스의 주변을 맴도는 에일럿과, 끊임없이 휘둘러지는 사슬을 피하는 카일의 전투는 동이 터오는 새벽녘이 될 때까지 장시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카일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시카니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에일럿과 중급 엑스퍼트에 오르면서 높아진 반사 신경 덕분이었다.
* * *
“허억,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던 사내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머리 위로 사슬을 돌렸다.
위잉 윙 위이잉
지금까지는 근접전으로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내가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무려 10m에 이르는 사슬을 다룬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슬의 공격과 회수는 와이번의 움직임을 통해 이뤄졌다.
즉 와이번의 진행 방향만 제대로 예측할 수 있다면, 사슬의 공격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단 뜻이었다. 특히 경험이 많은 와이번 나이트나 라이더라면 더욱 그러할 터였다.
물론 사슬의 진행 방향을 안다 해도,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사슬을 완전히 막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적어도 지금의 카일처럼 고전을 거듭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 역시 상당한 난전을 치르고 있었다. 공격을 위해 사슬을 던지고 회수할 때마다 상당한 체력을 소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블랙 와이번의 크기가 골드 와이번에 두 배가 넘을 정도로 컸던 터라, 골드 와이번으로서는 블랙 와이번보다 더 신속하게 움직여야만 공격을 피할 수가 있었다.
결국 시카니스보다 덩치가 현저히 작은 골드 와이번 에일럿의 체력이 더 빠르게 소모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괜찮나?’
에일럿의 음성이 머릿속으로 울렸다.
의사를 머리로만 전달하는 것이라 에일럿이 얼마나 지쳐있는지는 직접적으로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내는 전투시간이 길어질수록 에일럿이 탈진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수 시간 동안 시카니스의 공격을 피한 에일럿의 아름다운 황금빛 동체는, 떨어져 나간 비늘들과 상처들로 처참히 얼룩져 있었다.
아직까지 하늘 위를 날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에 비해 사내는 체력이 저하된 것 말고는 생채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에일럿이 필사적으로 사내를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난 괜찮다.’
‘다행이군.’
에일럿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서 맹약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난 이제 버틸 힘이 부족하다. 이번에 다시 한번 접근전을 벌이게 되면 더 이상 놈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니 지상과 가까워지는 순간 바닥으로 뛰어내려 몸을 피해라.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나 혼자 비겁하게 도망을 치란 말이냐!”
에일럿의 말에 분을 못 이긴 사내가 고함을 질렀다.
‘현명하게 판단해라. 여기서 모두 살아남는 방법은 없다. 난 어차피 저들을 피할 수 없지만 넌 다르다.’
“그럴 수 없다.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널 두고 가는 일은 없어!”
‘멍청한 생각이다.’
“에일럿, 기사도 아닌 날 선택했을 때부터 너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
사내는 안장에 달린 가죽끈을 더욱 단단하게 틀어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근접해 마지막 승부를 보겠다.”
‘좋다. 부디 살아남아 다시 보길 바라마.’
에일럿의 말에 사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가 사라졌다.
“가자!”
* * *
“후우우.”
카일이 탁한 숨을 토해냈다.
수십 차례 이어진 접전은 카일의 완벽한 패배라 할 수 있었다.
처음 단 한 번을 제외하고 카일은 한 차례도 공격다운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사슬을 피하기에 급급할 따름이었다.
만일 시카니스가 몸으로 사슬 공격 일부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카일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탓에 골드 와이번에게 치명타를 가할 기회를 번번이 놓쳤지만, 시카니스는 골드 와이번 죽이기보다는 맹약자인 카일을 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심지어 사슬 공격은 시카니스의 비늘이나 가죽뿐만 아니라, 와이번의 몸체 중 가장 약하다 할 수 있는 날개조차 뚫지 못했다. 때문에 시카니스는 카일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과감하게 날개를 펼쳐 사슬을 막을 수 있었다.
‘이젠 날아오는 사슬이 눈에 보일 정도로 현저하게 약해진 것 같다.’
‘내 생각도 같다. 골드 녀석의 역시 반응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지구력이 떨어지는 골드 와이번들을 생각해보면 꽤 오래 버티긴 했지만, 이젠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진실과 조금 달랐다. 실제로 골드 와이번과 사내가 많이 지친 것도 있지만, 파상적인 공격이 수차례 이어지면서 카일과 시카니스가 빠르게 공중전에 적응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최고의 훈련은 실전이라는 격언이 그대로 실행되는 순간이었다.
‘온다.’
시카니스가 말하기 무섭게 에일럿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날개를 접으며 떨어져 내렸다.
“키에엑.”
괴성을 지르며 떨어져 내리는 에일럿의 모습은 마치 몸 전체를 무기 삼아 시카니스를 공격하는 거대한 화살과 같아 보였다.
그러나 시카니스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떨어져 내리는 에일럿에게 마주 날아갔다.
두 와이번이 부딪히려는 조마조마한 순간, 시카니스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에일럿의 한쪽 날개와 목을 틀어쥐었다.
“크아악~.”
에일럿의 공격엔 자체적인 힘뿐 아니라 가속력까지 더해져 있었으나, 시카니스는 지금까지의 고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볍게 에일럿을 제압해버렸다.
기동력을 앞세워 회피하던 전과 달리, 이번에는 힘과 힘의 대결이라 단번에 억압해 버린 것이다.
“흐아압!”
그때였다.
에일럿의 머리를 밟고 높이 뛰어오른 사내가 온 힘을 다해 들고 있던 사이드를 던졌다.
“헉.”
사내는 이번에 모든 것을 건 것처럼 사이드를 던진 것으로 끝내지 않고, 남은 한 손에 들고 있던 강화 스피어를 카일을 향해 찔렀다.
“죽어라!”
사내의 스피어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의 오러가 피어올랐다.
아무리 카일이라도 기습적으로 날아온 공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의 막.”
예상치 못한 상황에 굳어버린 카일을 대신해 멀린이 황급히 ‘바람의 막’을 시전했다.
고기동으로 움직임을 거듭하는 와이번의 위에서는 아무리 고서클의 마법사라도 안정적인 캐스팅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멀린은 그동안의 전투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안장에 각인시킨 마법은 달랐다. 이미 마법이 각인된 상태라 캐스팅의 과정이 사라져 버렸기에, 보다 쉽게 마법을 발현할 수 있었다.
“허억.”
안장 주변으로 강력한 바람의 방벽이 형성되자, 처음 날려 보낸 사이드가 그대로 휘말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카일의 지척에서 벌어진,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사내는 세찬 바람에 황급히 눈을 감았다.
꽈앙-
오러에 휘감긴 스피어가 바람의 막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 카일은 허리에서 환도를 뽑아 그대로 스피어를 쳐냈다. 동시에 카일은 떨어져 내리는 사내의 목을 틀어쥐었다.
턱
“크윽.”
사내가 카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사내의 숨통을 틀어쥔 카일의 손은 더욱더 사내의 목을 압박해 왔다.
“커, 커허억….”
한참을 발버둥 치던 사내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더니 이윽고 축 늘어졌다.
쿠웅
때를 같이해 시카니스에게 잡힌 에일럿의 동체가 평원에 추락했다.
“끼에엑.”
골드 와이번 에일럿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절망으로 얼룩진 에일럿의 눈은 카일의 손에 붙잡혀 있는 사내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