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90화 (90/404)

90.도그 파이트2

차르륵-

엄지손가락보다 가는 사슬이 안장에서 풀려나왔다. 그 끝에는 날이 굽은 커다란 사이드(scythe:대낫) 한 자루가 달려 있었다.

사슬이 달린 사이드는 국경지대를 정찰하는 와이번 나이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기 중 하나였다.

보통 국경지대에서는 2~3마리의 와이번이 편대를 이루어 정찰을 했다. 이때 적 와이번을 발견, 생포할 경우 여럿이 이 사슬 낫을 던져 와이번을 억압하거나, 공중에서 초근접 전투가 벌어졌을 때 쓰곤 했다.

철컥

사내는 사슬의 남은 한쪽 끝을 안장과 연결된 걸쇠에 걸었다.

빠른 기동으로 인해 가해질 강한 압력에, 손에서 사슬이 빠져나갈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걸 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내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사이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머릿속으로 에일럿의 목소리가 울렸다.

‘상대는 블랙 와이번이다. 처음 상대해보는 녀석이지만, 덩치만 보아도 레드 와이번보다 강할 게 분명해 보인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아마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힘들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근접전밖에는 방법이 없다. 저 녀석은 시카니스를 얻은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근접전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을 거야. 기수만 잡을 수 있다면 이 전투, 의외로 쉽게 끝날 수도 있다. 절대 거리를 주어선 안 된다. 거리가 벌어지는 순간 이 싸움은 필패다.’

‘알겠다. 최대한 접근해 보겠다.’

에일럿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시카니스의 측면으로 돌아 하늘로 솟구쳤다.

* * *

“허억.”

카일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옆으로 날아오른 골드 와이번에서 빛살 같은 속도로 무엇인가가 날아와 머리 위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시카니스의 날개가 시야를 가리는 순간을 절묘하게 노린 공격이었다.

차르르륵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울리는 거친 마찰음에 카일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들었다.그의 눈으로 근접 선회를 하며 사슬을 회수하는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끼에엑~.”

시카니스가 유연하게 동체를 비틀어 에일럿을 공격했다. 날개를 활짝 펼친 시카니스는 에일럿의 진로를 막고 거대한 발톱을 뻗었다.

마치 집채만 한 독수리가 공중에서 작은 새를 낚아채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피해!”

사내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에일럿의 목을 끌어안고 바짝 몸을 숙였다.

사내의 외침을 놓치지 않은 에일럿이 날개를 접어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쉬웅-

아슬아슬하게 시카니스의 발톱이 사내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날개를 접은 에일럿이 추락할 듯 빙글빙글 돌면서 오크 랜드 평원을 향해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강한 압력이 전해지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푸화아악

떨어지던 에일럿은 추락하기 직전, 가까스로 날개를 활짝 펼쳐 평원을 스치며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괜찮나?’

머릿속으로 에일럿의 목소리가 울리자 사내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괜… 찮다. 넌 어때?’

‘다친 곳은 없다. 그나저나 쉽지 않을 것 같다. 기수와의 호흡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저 검은 녀석의 능력 자체는 나보다 월등하다. 가까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겠다.’

에일럿의 말에 사내가 미간을 좁히고 카일 쪽을 노려보았다.

“…역시 블랙 와이번이란 말인가?”

블랙 와이번이 예고도 없이 몸을 비틀어 에일럿을 공격한 탓에,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카일과 마법사가 겨우 자세를 추스르고 있는 모습이 사내의 눈에 들어왔다.

만약 능숙한 와이번 나이트였다면 조금 전 상황을 절대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가자! 어차피 도주는 불가능하다.”

‘알겠다.’

에일럿이 다시 시카니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한편 카일은 안장에서 떨어져 가죽끈 하나에만 의지해 공중에 매달려 있던 멀린을 끌어 올려 안장에 앉혔다. 만일 허리 벨트에 연결된 가죽끈이 없었더라면, 멀린은 그대로 추락해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허억, 헉, 헉. 감사합니다. 카일 님.”

멀린이 가죽끈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내쉬며 카일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괜찮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이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멀린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카일은 그가 무리해 대답했다는 걸 눈치챘지만, 이대로 저들을 내버려 두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샤론 마을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가만히 좌시할 일이 때문이었다.

차르륵- 차륵

멀린을 바라보고 있던 카일의 귓가로 낯익은 소리가 전해져 왔다.

“젠장, 숙여!”

멀린이 잡고 있는 가죽끈을 잡아당긴 카일은 거칠게 소리쳤다.

멀린이 카일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멀린의 머리 위로 커다란 사슬 낫이 스쳐 갔다.

후웅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파도처럼 출렁이던 사슬이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사이드가 반원을 그리며 카일에게 날아왔다.

에일럿이 공중에서 급제동하여 생겨난 원심력을 이용한 절묘하고 빠른 공격이었다.

카일은 들고 있던 스피어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황급히 공격을 막았다.

강한 압력과 묵직한 무게감에 밀려 몸이 휘청거렸지만, 카일은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사이드를 막아 낼 수 있었다.

지상에서 사내와 겨루어 보았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대한 일격이었다.

그대로 튕겨 나간 사이드가 공중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사내가 사슬을 당기자 사이드는 카일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조심!”

멀린이 카일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이런.”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카일이 공격을 피하고자 애를 썼지만, 완전히 피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매직 미사일!”

그때였다.

한발의 마법 화살이 떠올라 사이드를 강타했다.

꽈광

작은 폭음과 함께 사이드는 튕겨 나갔다.

“카일 님!”

멀린이 급히 카일을 불렀다.

“괜찮습니다.”

카일은 멀린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이며 긴장한 얼굴로 공중을 배회하고 있을 골드 와이번을 찾았다.

지금까지 카일이 사내의 사슬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면, 반대로 골드 와이번 에일럿은 시카니스에게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중이었다.

뛰어난 기동성과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를 이용해 시카니스의 공격을 어찌어찌 피하곤 있지만, 몸체 여기저기에는 짧은 시간 사이에 시카니스에게 당한 공격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사내가 사용하는 거대 사이드가 달려있는 사슬의 길이는 무려 10m가 넘었다.

아무리 엑스퍼트 초급이라고 해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에일럿의 순간적인 정지와 선회를 통해 사슬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것이다.

결국 와이번과 기수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슬 공격이 이루어질 때마다에일럿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골드 와이번의 최대 장점인 짧은 거리에서의 폭발적인 스피드를 잃게 된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이때에도 에일럿은 짓쳐 드는 시카니스의 공격에 번번이 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저 비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언제 큰 위험이 닥칠지 몰랐다.

“음….”

사내가 군데군데 비늘이 떨어진 에일럿의 몸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신경 쓸 것 없다. 보기에만 심해 보일 뿐,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다.’

에일럿이 사내를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말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만든 기회였는데….”

사내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마법사만 없었다면 분명 카일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호기였기 때문이었다.

카일에게 날린 마지막 공격은 에일럿이 부상을 감수하며 감행한 회심의 일격이었다.

물론 멀린의 마법이 한 박자 빠르게 사이드에 작렬한 덕분에, 에일럿도 계획이 실패하는 순간 시카니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늘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작은 상처들까지는 어찌하지 못했다.

‘다시 가자.’

사내의 말에 에일럿이 빙글빙글 돌며 솟구쳐 올랐다.

맹렬한 추격이 이어질 것 같았으나, 에일럿은 곡예를 하듯 부드럽게 몸을 뒤집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쉬익-

미처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에일럿이 몸을 뒤집어 시카니스를 스쳐 지나가자, 사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카일에게 사이드를 던져 넣었다.

“위험!”

멀린의 외침에 카일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꺾었다.

후우웅

눈앞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드의 번뜩이는 날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카일은 입술을 깨물고 꺾었던 허리를 튕겨 손에 쥐고 있던 스피어를 골드 와이번에게 날리려 했다. 그러나 사이드와 연결된 사슬이, 코앞으로 물결치는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때문에 카일은 또 한 번 몸을 뒤틀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어 사슬을 완전히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카일은 그대로 어깨를 강타당했다.

“크윽.”

가늘게만 보였던 쇠사슬의 위력은 대단했다. 타격을 당한 순간, 마치 거대한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한가하게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뒤, 뒤를… 조심하십시오.”

카일이 사슬에 얻어맞는 걸 목도한 마법을 캐스팅하던 멀린이 경고했다. 상체를 젖히던 카일과 부딪히는 바람에 캐스팅하려던 마법이 해제되어, 되돌아오는 사이드를 막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반사적으로 멀린을 밀어낸 카일은 앞으로 쓰러졌다.

“크윽~.”

그리고 화끈한 통증이 날갯죽지에서 느껴졌다.

등 뒤를 스쳐친 사이드에 레더 아머가 길게 갈라졌다. 카일의 등 뒤로 붉은 핏물이 튀었다.

“카일 님!”

멀린이 허겁지겁 카일에게 다가섰다.

“스쳤을 뿐입니다.”

카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일어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골드 와이번을 응시했다.

카일이 상처를 입은 만큼 골드 와이번의 상태도 온전해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꼬리 주변으로 난 세 가닥의 깊숙한 상처는 제법 심각해 보였다.

“힐.”

푸른빛이 카일의 몸 주변을 감싸 안았다.

“마법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통증을 완화 시켜주고, 피부를 봉합해 출혈을 멈추는 것에 불과합니다. 신전에서 만든 포션을 섭취해야 더 빨리 나을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절 구하기 위해 상처를 입으셨으니 오히려 제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멀린이 씁쓸한 낯빛으로 말했다. 바로 얼마 전, 자신은 가신이 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5서클의 마법사라면 어딜 가더라도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는 고서클 마법사이니, 카일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 덩어리 같은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아닙니다. 멀린 님은 지금도 충분히 큰 도움을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일이 손을 들어 멀린의 말을 막았다.

“지금은 대화보다 전투에 집중할 때입니다.”

“휴~ 알겠습니다.”

카일의 말에 멀린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시카니스의 옆으로 골드 와이번이 스쳐 지나갔다.

부상으로 기동력이 떨어져 시카니스에게 따라 잡힐 것 같자, 날개를 넓게 펼쳐 바람을 이용해 뒤로 밀려나며 공격을 피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대로 날개를 접더니 아래로 뚝 떨어졌다.

“끼아악~.”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시카니스가 괴성을 지르며 골드 와이번을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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