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89화 (89/404)

89.도그 파이트1

시카니스가 나무를 움켜쥐었다. 크게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았는데, 시카니스의 발톱은 마치 치즈를 손으로 움켜쥔 것처럼 나무속을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세상에… 블랙 와이번이라니….”

멀린은 눈앞에 나타난 블랙 와이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어라 웅얼거리고 있는 멀린의 음성은 너무 작아,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진 알 수 없었다.

“놈을 잡아야 합니다.”

카일이 멀린의 팔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블랙 와이번….”

“가야 합니다.”

카일이 멀린을 잡아끌어 시카니스 위로 올렸다.

“아아… 내가 말로만 듣던 블랙 와이번의 등에 올라타다니.”

멀린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블랙 와이번의 비늘을 쓸어 넘겼다.

푸르륵-

그 손길을 따라 검은 비늘이 파도처럼 파르르 일어났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때 카일의 머릿속으로 시카니스가 말을 걸어왔다.

‘이 인간 이상하다. 꼭 태워야 하나?’

‘날 따르겠다는 사람인데 이곳에 놓아두고 갈 수는 없어. …좀 이상해 보여도 고서클 마법사야.’

‘꼭 데려가야 한다는 말이군. 그럼 내 비늘은 만지지 못하게 해 달라.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으음, 노력해 보지….’

대화를 끝낸 후 카일은 사카니스의 비늘을 연신 만지작거리고 있는 멀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허리에 가죽 벨트를 묶은 후 안장 달린 고리에 걸었다.

“이 가죽끈을 꽉 잡아야 합니다. 고속기동하면 자칫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신신당부한 카일은 멀린에게 끈을 쥐여주었다.

‘가자, 시카니스. 놈을 잡아야 한다.’

‘쉽게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지!’

거대한 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이윽고 하늘로 떠오른 시카니스는 창공을 향해 치솟았다.

골드 와이번 에일럿이 그랬던 것처럼 빠른 바람을 타기 위함이었다.

휘이잉-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곧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세찬 바람이 밀려왔다.

‘속도를 더 높일 순 없나?’

‘고도를 높인다면 가능하다. 이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면 더 빠르게 날아갈 수 있다. 하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해지고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카일 넌 중급 엑스퍼트라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저 인간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카니스의 말에 카일이 시선을 돌려 멀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멀린은 거칠고 차가운 바람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이 보였다. 추워서 떨기는커녕, 멀쩡한 상태로 넓고 광활한 숲을 구경까지 하고 있었다.

“괜찮은 겁니까?”

바람을 등지며 겨우 눈을 뜬 카일이 멀린에게 소리높여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멀린은 아차 하는 기색으로 서둘러 안장 위로 손을 올렸다.

“바람의 막.”

짧은 영창이 끝나자 갑골문자 형태의 특이한 글자가 푸른빛과 함께 안장에 각인되었다.

“어?”

그 즉시 등 뒤로 부딪혀오던 광풍이 사라지고 가벼운 미풍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어떻습니까. 이젠 조금 괜찮으십니까?”

멀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각인 마법입니다. 제가 가장 잘하는 마법이지요. 안장에 바람을 상징하는 윈드와 회전을 뜻하는 스핀의 룬을 더해 바람의 막을 만들었습니다. 바람을 완전하게 막을 수는 없지만, 아무리 거친 바람이라도 안장 위에서는 미풍으로 느껴질 겁니다.”

“이런 마법이 있다니 놀랍군요.”

카일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구름을 보며 말했다. 저속으로 비행을 할 때에는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이렇게 고속으로 비행할 때는 바람과 압력이 강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암흑 속에 갇힌 채 오로지 와이번과의 교감을 통해서만 비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왕립 마탑에서는 왕실에 소속된 와이번 나이트들의 안장에 마법을 인첸트 합니다. 보통 5서클 마법사들이 동원되지요. 이때 인첸트 되는 건 주로 3서클의 실드 마법입니다. 다만 이런 고속 기동에서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멀린은 안장을 이리저리 관찰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확인해 보니 이 안장에도 제법 신경을 써 마법을 인첸트 해 놓았더군요. 마법의 형태나 모양을 보니, 아마도 제국에 있는 빛의 마탑에 소속된 고위급 마법사가 직접 그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드 마법의 위력을 높였을 뿐이라, 방금 말했듯 이런 고속 기동에는 그리 유용하지 않습니다.”

“지금 사용한 각인 마법은 뭔가요?”

“일전에 작은 돌풍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돌풍의 외부는 강력한 바람이 휘몰아치지만, 안쪽은 잔잔한 바람이 일더군요. 이를 응용해 보았습니다. 바람을 막는 게 아니라, 회전력을 이용해 위로 날려버리는 것이죠.”

“골드 와이번을 추적하려면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고도를 높여야 합니다. 그럼 공기는 물론 기온도 급격하게 떨어질 겁니다. 혹 이 마법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카일의 물음에 멀린이 안타깝다는 것처럼 입매를 늘어트렸다.

“바람의 막은 강풍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희박한 공기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추위는 완전히 막을 수 없습니다. 저 혼자라면 마법으로 어떻게 버틸 수는 있지만….”

“추위는 상관없습니다. 그럼 속도를 더 올리겠습니다.”

멀린에게 마법을 펼치도록 한 뒤 카일은 시카니스를 불렀다.

‘속도를 더 높여줘!’

‘알겠다.’

시카니스가 위를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하자 기온은 가파르게 낮아졌다. 카일은 몸속 오러를 회전시켜 몸 안으로 침투해 오는 한기를 밀어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속도가 높아지자, 바람의 막 안쪽으로 공기가 빠르게 유입되어 숨쉬기에 불편함이 없단 점이었다.

멀린이 펼친 바람의 막은 와이번 나이트나 라이더에게는 최고의 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추위를 극복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웬만큼 여유를 찾은 카일은 멀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멀린은 눈을 감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멀린의 몸 주변으로 희미한 막이 형성되어 추위를 막고 있었다.

‘찾았다. 아래쪽에 있다.’

그때 머릿속으로 사카니스의 음성이 들려 왔다. 밤하늘 위는 온통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구름 한 점 없는 밝은 달빛으로 인해, 오크 랜드의 넓은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달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골드 와이번의 동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 * *

‘놈이 쫓아왔다.’

거센 바람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사내는 무심코 고개를 들려다 돌풍의 압력에 다시 머리를 수그렸다.

‘속도가 굉장하다. 이 상태라면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젠장.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날 수 있지?’

‘고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빠르게 날 수 있다. 하지만 와이번이 아닌 인간은 저 높이에서 견디기 힘들다.’

‘저들은 쫓아오고 있지 않나?’

‘맹약자의 경지가 높기 때문에 가능하다. 저 정도 높이면 적어도 중급 엑스퍼트 이상이다.’

사내의 얼굴이 야차와 같이 일그러졌다. 카일과 직접 검을 나눠 보았기에, 사내 역시 카일의 실력이 자신보다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젠장.”

사내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상황을 모면할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블랙 와이번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다른 방법은?’

‘이곳은 평원이다. 피할만한 곳이 없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면 싸울 수밖에 없겠군. 속도를 줄여 아래로 내려간다. 이렇게 된 이상 기동성으로 상대하자.’

‘알겠다.’

에일럿은 가파르게 활강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할 시카니스가 아니었다.

‘놈이 하강을 시작했다. 정면 대결을 할 생각인 것 같다.’

‘좋아! 대결을 원한다면 받아줘야지.’

‘알아둬라. 기동성은 골드 와이번이 나보다 뛰어나다.’

‘이미 알고 있다.’

‘그럼 첫 전투, 승리를 기원하지.’

‘잘 부탁한다, 시카니스.’

시카니스 역시 하강을 시작했다. 카일은 안장에 꽂혀있는 스피어를 꺼내어 들었다. 원래 시카니스의 안장에 꽂혀있던 스피어들이었다.

블랙 와이번은 골드 와이번에 비해 크고 육중한 만큼, 수십 자루의 스피어가 안장에 꽂혀있었다.

카일은 안장에서 일어나 스피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내려가던 속력에 더해 골드 와이번 자체를 단번에 꿰뚫을 생각이었다. 와이번의 동체가 강력하다고는 해도, 높은 고도에서 내려꽂히는 고합금 스피어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위이잉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귓가에 울리는 이명이 거세졌다. 이윽고 골드 와이번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지금!’

카일은 골드 와이번이 날아가는 속도에 맞춰 스피어 안으로 오러를 한계까지 밀어 넣었다. 폭발적으로 밀려드는 오러에, 스피어에선 작은 진동과 함께 백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웅- 웅 우우웅-

카일은 밤하늘 어둠을 뚫고 발광하는 스피어를 골드 와이번을 향해 힘껏 던졌다.

위잉-

카일의 손을 떠나는 순간 스피어는 빛의 광선처럼 잔상을 남기며 목표물을 향해 쏘아졌다.

“젠장, 멈춰!”

무시무시한 기류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스피어를 발견한 사내는 급히 에일럿을 멈춰 세웠다.

“키에엑.”

사내의 고함과 함께 골드 와이번이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세워 화급히 멈춰 섰다.

후우욱-

빛의 광선이 아슬아슬하게 에일럿을 스치고 대지에 박혀 들었다.

꽈앙-!

짧은 폭음과 함께 대지 위로 떨어진 스피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스피어가 떨어진 중심에 작은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고합금 스피어에 빛의 마법이 인첸트 된 섬광은 극단적인 빠름을 통해 관통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마법 아티팩트였다. 때문에 작은 흔적만을 남기고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간 것이다.

“휘유~ 대단하군요. 역시 빛의 마탑입니다. 빠르기는 빛의 마탑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멀린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던 실드를 해제했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바닥을 보던 그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빛의 마탑이라니요?”

“스피어 말입니다. 카일 님께서 방금 사용한 스피어를 만든 곳이 바로 빛의 마탑 입니다. 모르셨습니까?”

“이전 주인이 사용하던 무구들입니다. 어디서 만든 마법 무구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러고 보니 안장에도 빛의 마탑에서 사용한 마법이 남은 걸 보니, 이전 주인이 아무래도 그곳과 관계가 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이라니요?”

“빛의 마탑에서 만든 무구들을 살펴보고 싶습니다만.”

“안될 것도 없지요. 일단은 골드 와이번을 잡은 후 이야기하시죠.”

흔쾌히 떨어진 허락에 환하게 미소지은 멀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끼에엑.”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샌가 골드 와이번이 시카니스 바로 뒤로 따라붙어 있었다.

선회 능력이 빠르고 민첩해 어느새 뒤를 잡힌 모양이었다.

쉬익-

한 자루의 스피어가 카일을 향해 날아왔다.

블랙 와이번 시카니스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수인 카일을 직접 공격한 것이다.

사내가 가진 스피어로는 어차피 와이번의 비늘을 뚫을 게 불가능했다.

사내는 골드 와이번의 오너이기는 했지만, 값비싼 고서클 마법이 인첸트 된 스피어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고작해야 강화마법이 인첸트 된 스피어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카일이 사용한 섬광의 스피어 역시 근접전일 경우 와이번의 비늘을 뚫을 수는 있지만 죽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충분한 거리와 가속력이 실려야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여 사내는 근접 전투가 그나마 카일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블랙 와이번에 고서클 마법이 인첸트 된 스피어가 있다고 해도, 와이번과 맹약을 맺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결국 공중전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애송이일 뿐이다. 도그 파이트(근접전투)로 놈을 잡겠다.’

‘상대는 블랙 와이번이다.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방심하지 않는다.’

사내는 적어도 공중전에서만큼은 블랙 와이번을 능가할 자신이 있었다. 공중전은 와이번과 기수의 호흡이 상당히 중요했고, 경험의 차이는 이럴 때 빛을 발하기 마련이었다.

‘선회해서 놈의 좌측을 공격한다.’

‘알겠다. 꽉 잡아라!’

시카니스의 뒤를 쫓고 있던 에일럿이 몸을 비틀어 아래로 급강하기 시작했다.

‘놈이 사라졌다.’

골드 와이번이 대뜸 하강을 하자 카일이 아래를 향해 쭉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측면으로 선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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