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77화 (77/404)

77.마법사 멀린3

흑마법을 이용한 각인 마법을 기반으로 한 마법진 위에, 백마법진을 이용한 하늘 탑을 세웠다는 사실이었다.

순수한 흑마법인 각인 마법진을 이용해 진을 가동한 후, 그 위에 백마법진을 사용한 보호 마법진으로 대기 중의 마나를 공급하는 마나 집적진을 설치해, 마법진을 유지하는 특이한 마법진이었다. 어찌 본다면 흑과 백이 결합한 회색 마법진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게 의미하는 건 흑마법인 각인 마법진 위에 보조 마법인 백마법진을 결합한 새로운 마법진이란 뜻이었다.

결국 겉으로 드러난 하늘 탑의 마법진을 아무리 연구한다고 해도, 하늘 탑 아래에 묻혀 강력한 보호 마법진으로 보호되고 있는 각인 마법진을 복원하지 못한다면, 절대 하늘 탑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멀린은 하늘 탑의 관리자로서 묻혀있던 각인 마법진을 연구하고 복원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마법인 회색 각인 마법을 창안해 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멀린은 지금 4서클이 아닌 5서클의 경지에 진입해 있었다.

사실 4서클 마법사는 고위 마법사라 할 수는 없었다. 본격적인 고서클 마법은 5서클 마법이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서클 마법이 고위 마법의 범주에 포함된 이유는 바로 5서클 마법을 본격적으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4서클부터는 기존의 마법보다 한 차원 높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5서클 마법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보조적인 수단인 마나석을 이용해 고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단계가 바로 4서클 마법사부터였으므로 4서클 마법사를 고위 마법사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 * *

멀린이 잠시 지난 일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마차가 서서히 멈춰 섰다.

야영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마차가 완전히 멈추자 용병들과 상단 일꾼들이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라! 곧 날이 어두워진다. 어두워지기 전 방책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 마차가 삐뚤어져 틈이 벌어졌잖아, 자다가 몬스터에게 죽고 싶나!”

상단 경호를 맡은 용병 단장인 코퍼가 지형에 따라 이리저리 수레를 배치하며 방책을 만들었다.

아일론 상단은 변방의 영지와 마을을 돌며 몬스터의 가죽이나 부산물을 매입해, 곡식이나 생필품 그리고 몬스터 사냥에 필요한 각종 장비 등을 판매하는 중소 상단이었다. 때문에 야외에서 야영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그만큼 수레를 이용해 방책을 만드는 일은 익숙할 뿐 아니라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용병들이나 상단 일꾼들 하나하나가 코퍼의 지시에 따라 세심하게 작업에 열중했다.

“어떻습니까? 모두들 열심이지 않습니까?”

바쁘게 움직이는 용병들과 일꾼을 바라보고 있던 멀린의 옆으로 지부장인 토일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아! 나오셨습니까?”

멀린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토일도 머리를 숙였다.

“가시는 동안 불편한 것은 없으십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신경을 써주신 덕분에 충분히 편안하게 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샤론 마을까지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이유로 가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샤론 마을은 오랫동안 상단과 거래해 온 마을이라, 제법 친분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일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 작은 도움이나마 드릴 수 있을 겁니다.”

토일이 멀린을 향해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멀린에 대한 조사는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였다. 상단에게 받은 정보를 통해 토일은 그가 중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토일은 멀린을 영입하려는 대형 상단들과 귀족들 대부분이 남부 하늘 탑에서 중부로 가는 길목에서 그를 찾으며 기다리고 있단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멀린이 뜬금없이 샤론 마을로 향하게 되면서, 아일론 상단은 뜻하지 않게 가장 먼저 그를 끌어들일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상단이 넘긴 정보엔 마법사 멀린이 어째서 중부가 아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부, 그것도 가장 오지라 할 수 있는 다핸 남작령의 샤론 마을로 향하는지 적혀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토일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죄송하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그래도 간단하게나마 말하자면 제가 따로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 가게 되었다 할 수 있겠군요.”

토일이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괜한 질문으로 부담을 드린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토일은 혹여 멀린의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폈지만,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바삐 움직이는 용병들과 일꾼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러고 있으니 쉽게 말을 붙이기 힘들군….’

토일이 난감한 얼굴로 멀린을 힐끔거렸다.

토일은 멀린과 친분을 쌓기 위해 계속 말을 이어가려 했으나 번번이 짧은 대답과 무관심에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휴~. 휴식을 취하시는데 제가 너무 방해를 한 것 같군요. 그만 쉬시지요.”

토일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십시오.”

“예?”

“…무슨 말씀인지?”

“제게 하실 말씀이 있어 오신 것 아닙니까.”

토일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제가 누군지 알고 계신 듯합니다만…. 아니었습니까?”

“그건….”

멀린의 말에 토일의 말문은 딱 막히고 말았다. 원래 토일의 계획은 샤론 마을로 향하는 동안 최대한 친분을 쌓는 것이었다.

그리고 샤론 마을에서 멀린에게 도움을 준 뒤 영입을 제안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멀린이 먼저 말을 꺼내 버리면서 토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아일론 상단은 그리 큰 규모의 상단도 아니었고 보유한 평민 마법사도 없었다.

때문에 멀린에게 대형 상단처럼 큰 재물을 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중소영주들처럼 신분을 상승시켜줄 수도 없었다.

그저 최대한 친분을 쌓아 진심을 보여주는 수밖에는 없었다.

토일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멀린의 앞에 섰다.

“휴~ 실은 이미 부 단주님께서 멀린 님의 정체를 알아보셨습니다.”

“절 영입하실 생각입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린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4서클의 각인 마법이면 고급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우리 아일론 상단은 가공하지 않은 부산물들을 일차적으로 수집해, 대형 상단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법사님을 영입하게 되면 일차적인 수집뿐만이 아니라, 2차 가공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용병 길드와 계약을 통해 용병 라이더들에게 공급할 스피어를 제작할 생각입니다.”

“마법 무구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3서클의 단발성 인첸트 마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각인 마법을 이용한 무구를 생산하려 합니다.”

각인 마법과 3서클 인첸트 마법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단발성과 지속성의 차이였다.

각인 마법은 수 분 동안 마법을 사용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3서클의 인첸트 마법은 단 한 번 마법이 발현되고 사라져 버리는 단발성을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의 스크롤이 바로 3서클 인첸트 마법이었다.

물론 5서클 인첸트 마법은 지속성뿐 아니라 유지시간이나 위력 면에서도 4서클의 각인 마법보다 월등히 강했지만, 그만큼 제작이 힘들뿐더러 다양하고 값비싼 재료가 들어갔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아티팩트의 가격은 어마어마했다.

“흠…. 그럼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멀린의 물음에 토일은 마른침을 삼킨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아일론 상단은 대형 상단이 아니다 보니 그리 많은 것을 보장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일단 마법 무구를 각인할 작업실과 기거하실 집, 그리고 매달 100골드를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마법 무구를 판매할 때마다 판매금의 2할을 드리겠습니다.”

토일이 슬그머니 멀린의 눈치를 살폈다.

토일이 제시한 금액은 보통 대형 상단들이 3서클 평민 마법사를 영입할 때 제시하는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돈이었으나, 4서클 각인마법사를 영입하기에는 애매하게 부족했다.

다만 마법 무구의 판매금액 2할이라면 대형 상단도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큰 양보를 한 것이었다.

마법 무구가 비싼 이유에는 고위마법사뿐만 아니라 그만큼 귀한 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아일론 상단이 2할의 비용을 멀린에게 준다면 상단으로 들어오는 순수익은 2할도 안 되었다.

이것도 부산물을 수집하는 아일론 상단의 특성 때문에 저렴한 재료를 수급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샤론 마을까지 가려면 며칠은 더 가야 하니, 천천히 생각하시지요.”

토일이 생각에 잠긴 듯한 멀린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천천히 숙고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멀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토일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박한 대우에 단번에 거절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생각대로 샤론 마을까지 함께 가면서 차근차근 친분을 쌓아가야겠어!’

토일은 자리에 앉아 고민에 빠진 듯 눈을 감고 있는 멀린을 보며 반드시 상단으로 영입하겠다고 다짐했다.

‘매달 백 골드와 마법 무구를 판매한 금액의 2할을 준 다라….’

멀린은 토일이 제시한 금액에 속으로 대단히 놀라는 중이었다.

산속 오지에서 살긴 했어도 멀린은 금전 감각이 없는 편이 아니었다.

가끔이지만 산을 타고 마을로 내려간 적도 있었고, 매달 식량과 부식을 가져오는 상단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봤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이런저런 사소한 잡담을 들어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는 세상에 대한 지식들이 작게나마 들어있었다.

특히 주 대화 상대가 바로 하늘 탑을 찾아온 상인이다 보니, 상행이나 골드에 관한 이야기가 주된 대화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토일이 제시한 금액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은 멀린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 * *

땅- 따앙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꺼내 모루에 올려 힘껏 망치질을 하자 서서히 쇳덩이의 모양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치이익-

커다란 물통 안으로 달궈진 쇳덩이를 집어넣자 대장간 안이 자욱한 수증기로 가득 찼다.

“이제 끝난 거야?”

그때 대장간 한쪽에서 작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휴….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그럼 오늘도 시카니스를 타지 못하는 거야?”

이니엘 영애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카일이 마을로 돌아온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이니엘은 영지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직 시안느가 남작에게 배울 게 남았다는 이유였으나, 실은 블랙 와이번 시카니스를 조금 더 타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자리 잡고 있는 탓이었다.

힐튼 남작이야 아직 부러진 다리가 온전하지 못한 상태라 여전히 마을, 정확히는 카일의 집에 남아 치료를 받아야 하기에 이니엘 영애가 돌아가기 전까지 시안느의 검술을 손봐주고 있었다.

스틱 방어술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부터는 방패술과 플랜스 가문의 검술을 함께 펼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중이었다.

힐튼 남작은 검술로는 왕국 안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였다. 동부 그린넨 백작 가문에서는 힐튼 남작보다 높은 경지의 강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있다고 해도 시안느를 위해 검술을 교정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안느로서는 힐튼 남작으로부터 확실하게 검술과 방패술을 교정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때문에 시안느는 혹독하게 자신을 독려하며 검술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니엘 영애도 덩달아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마을이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백작가의 귀족 영애가 호위도 없이 마을을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영애가 외부로 나가는 순간, 유일한 호위기사인 시안느가 반드시 따라붙어야만 했다.

가뜩이나 힘든 수련으로 밤이 되면 지쳐 쓰러지는 시안느를 데라고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집안에서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외출을 아예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카일이 시카니스를 타기 위해 외출을 할 때면 이니엘도 함께 밖으로 나가 시카니스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카일이 외출을 하지 않고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자, 이니엘 역시 카일을 따라 대장간 안에서만 머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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