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73화 (73/404)

73.하늘 탑

“후작가에도 제법 많은 와이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와이번을 타고 나는 것쯤은….”

“허허…. 하긴 와이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이제 너도 와이번과 맹약을 맺은 만큼 와이번에 대해 알아두도록 하거라!”

“아… 알겠습니다.”

“와이번이 총 4개의 종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중 화이트 와이번이 아직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 같으니 제외하고,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종은 뭔지 알고 있느냐?”

“골드 와이번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번 후작가에서 보내온 와이번들 역시 골드 와이번입니다.”

“그렇다. 골드 와이번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와이번이다. 하지만 골드 와이번의 단점이 뭔지 아느냐?”

힐튼 남작의 말에 그동안 강렬한 눈빛으로 카일을 바라보고 있던 이니엘이 남작을 보며 대꾸했다.

“와이번 중에 가장 체구가 작은 종이죠. 힘도 약해서 태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와이번 나이트 한 명이 유일해요. 스피어를 많이 가지고 탈 수도 없지요. 대신 속도가 빨라서 정찰이나 기습전에 유리하다고 알고 있어요.”

“영애께서 제법 많이 알고 있구려!”

“화이트 와이번의 알을 운송하기 전 와이번에 대해 알아보았거든요.”

“영애의 말처럼 골드 와이번은 기수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은 태우기 어렵다. 레드 와이번을 타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아예 불가능하다. 레드 와이번은 왕실에서 대부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물론 서부나 중부의 귀족들 중 일부가 맹약을 맺고 있지만, 그들 역시 각 파벌에서 최대한 감춰두고 있다.”

그제야 카일은 왜 지금까지 남작이 와이번을 단 한 번도 타보지 못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레드 와이번은 최대 2~3명 정도의 사람이 탈 수 있다고 들었어요. 때문에 레드 와이번은 기수를 제외한 2명이 추가로 와이번에 올라 공격에 가담할 수 있다 하더군요. 스피어도 수십 개를 가질 수 있느니, 하늘에서는 레드 와이번을 당할 자가 없어요. 물론 이제는 달라지겠죠.”

이니엘이 다시 카일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힐끔 바라본 남작이 카일에게 말했다.

“염려 말거라! 난 더 이상 너에게 마파린 후작가를 모시라 강요할 생각이 없구나.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거라.”

“감사합니다. 남작님. 다시 창공을 날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하하! 고맙구나.”

이니엘 영애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남작이 먼저 카일을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살라는 말을 한 상황에서, 이니엘 영애가 백작가로 카일을 끌어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남작을 노려보던 이니엘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다가, 이내 눈을 뜨고는 카일을 바라보았다.

“저 역시 약속을 했으니 이번 일은 비밀로 하죠. 대신 저도 남작님처럼 와이번을 태워주세요.”

“그 정도야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카일의 말에 이니엘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남작이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이니엘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밝게 웃을 뿐이었다.

‘시카니스, 저곳에 내려줘.’

카일이 가리킨 곳은 거대 산양이 살고 있는 바위산이었다. 이대로 하늘을 날아 샤론 마을로 갈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이 블랙 와이번과 맹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야!’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아마도 두 가지 일로 세상이 떠들썩해질 터였다. 카일을 영입하려는 자와 반대로 카일을 죽여 블랙 와이번을 차지하려는 자들로 말이다.

물론 카일 역시 언제까지 이 사실이 감춰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최대한 비밀을 감추고 대비할 시간은 필요했다.

“여긴 거대 산양이 있는 곳이네요.”

“그렇습니다.”

“헌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와이번의 등에서 내려선 이니엘이 주변을 살펴보며 물었다.

“와이번이 하늘을 날고 있으니 모두 어딘가로 숨어들어 갔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카일 오랫동안 아공간석 안에 있어 먹을 것이 필요하다. 잠시 사냥을 다녀오겠다.

‘죄송하지만 이곳에 있는 거대 산양은 사냥하지 말아 주세요. 이들이 없으면 이곳으로 지나가는 오크들을 막을 수가 없어요.’

-걱정하지 말아라! 이곳에 오면서 들소무리를 보았다.

‘고마워요.’

카일의 말이 끝나자 시카니스가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쳤다.

펄럭-

시카니스가 천천히 날갯짓을 하자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돌풍이 바위산을 뒤덮었다.

“벌써 떠나는 건가요?”

“오랫동안 아공간석 안에 있어 사냥을 가는 겁니다.”

“하긴 배가 고플 만도 하겠네요.”

이니엘이 뒤를 돌아 블랙 와이번을 돌아보더니 손을 흔들며 말했다.

“또 보자!”

* * *

낡은 로브를 입은 중년의 사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앞에 있는 원뿔 형태의 커다란 구조물은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을 지켜온 듯, 여기저기 낡고 부서져 있었다.

“휴~. 이제 이곳과도 안녕인가? 그럼 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중년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처음 이 낡은 구조물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을 때에는 상당히 절망했었다.

어린 나이에 마법사로서 재능을 인정받아 왕립 마탑에 들어갈 때만 해도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기뻤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왕립 마탑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행복하고 기쁜 일들만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그때는 정말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는데….”

왕립 마탑은 마법사들이 만든 마탑과 달리 왕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마탑으로, 마법사 역시 뿌리 깊은 권위의식이 가득한 귀족들이었다. 결국 평민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었다.

이들이 재능 있는 평민들을 마탑으로 끌어들인 것은 그저 똑똑한 심부름꾼이 필요해서였다.

그렇다고 마법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들은 데리고 온 아이들에게 적절한 심부름을 시키고 그 대가로 하급마법을 가르쳤다.

물론 그 심부름이라는 것이 마법 실험대상이 되는 것이지만, 어찌 되었든 노력만 한다면 어느 정도 마법을 익힐 수 있었다.

이렇게 10세 전후에 들어온 아이들은 30대 전후에 하급마법을 익혀 마탑을 떠나게 됐다.

30대가 넘은 마법사들은 대부분의 하급마법을 익힌 상태라, 더 이상 마법을 가르쳐 주며 심부름꾼으로 부리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중급이상의 마법은 평민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에, 나이를 먹은 평민들은 자연스레 탑을 나왔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예외가 허락되는 곳이 있었다.

바로 남부에 자리 잡은 하늘 탑이었다. 이곳의 관리자에게는 중급이상의 마법이 허락되고 30대 이후에도 왕립 마탑에 소속되어 살아갈 수 있었다.

원래 하늘 탑은 고위귀족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선망의 장소지만, 단 한 곳 남부의 하늘 탑은 누구도 가지 않으려 하는 유배지 같은 곳이었다.

“나에겐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곳이었지….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이곳도 안녕이구나.”

남부의 하늘 탑은 다른 곳과는 달리 세상과는 거의 단절된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다른 하늘 탑처럼 대귀족들의 지원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가지 않으려 하자 결국 평민에게까지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심지어 하늘 탑을 가동하려면 중급이상의 마법사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평민에게 허락되지 않은 4서클 이상의 중급마법이 허락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평민 마법사들 역시 하늘 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비록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천대받고 무시당하는 하급 마법사라도 세상에 나서는 순간, 그들은 존경과 경애의 대상이 되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하늘 탑에 가게 된다면 여전히 왕립 마탑에 소속된 하급 마법사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하늘 탑으로 가 중급마법을 익힌다고 해도, 언제 하늘 탑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도 기피 요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중년의 사내는 이 하늘 탑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듯, 하늘 탑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 품 안에서 낡디 낡은 작은 서첩을 꺼내어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한 권의 중급 마법서를 얻기 위해 무려 십 년 동안이나 허름한 외진 하늘 탑에서 세월을 보냈지만, 이 일도 이제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이곳에서의 생활은 정말 평온했는데….”

다른 평민 마법사는 어떨지 몰라도 중년의 사내는 이곳이 좋았다. 남들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었고 혹독한 마법실험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부족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원하는 마법실험도 할 수 있었고, 풍족하진 않으나 꾸준한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내에게는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완벽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얼마 전 폐쇄가 결정 났다. 이곳에 있는 하늘 탑이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다고 결론이 난 것이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이곳을 유지한다는 것은 낭비지! 이 낙후된 남부 영지에 와이번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중년의 사내가 하늘 탑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하늘 탑의 용도는 바로 하늘 위를 나는 마법 생물 즉, 와이번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대공 감시탑이었다.

적국 와이번 나이트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세워진 이 하늘 탑은 동서남북에 세워져 있었다. 네 개의 하늘 탑 중, 동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의 하늘 탑은 인접한 왕국들이 있어, 각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덕분에 주변 귀족들부터 끊임없는 지원을 받아 풍족한 생활을 영위했다.

하지만 남부의 경우 인접한 왕국이 없고 몬스터의 천국인 오크 랜드와 낙후된 영지들뿐이라 와이번이 존재할 리가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마지막 일은 해야겠지.”

중년의 마법사 멀린은 하늘 탑 아래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늘 탑 안에는 족히 2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수정과 더불어 작은 수정구 두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작은 수정구로 다가간 멀린은 천천히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정구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곧 거대한 수정 역시 부드러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내 일은 모두 끝이 났으니 이제 돌아가 짐이나 싸야겠군.”

뿌듯한 미소를 지은 멀린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거대한 수정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응? 무슨 소리지?”

멀린이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수정 역시 여전히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보군.”

멀린이 다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지잉-

또다시 울리는 낮은 진동.

지이잉

이번에는 멀린도 확실하게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징- 징-

“이럴 수가 이게 왜?”

멀린은 급격히 진동하기 시작한 수정구에 손을 올려 마력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거대한 수정 위로 무수한 격자 모양이 떠올랐다. 그 위로 붉은 점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곳은 오크 랜드가 있는 통곡의 협곡 근처잖아?”

두 눈을 크게 뜬 멀린이 수정을 살피며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왜 수정의 진동이 멈췄다가 또다시 빠르게 진동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강대한 마력을 가진 와이번이 하늘 탑의 탐지거리 밖과 안을 교묘하게 걸쳐 날아다니고 있었다. 침입은 아닌 것 같았다. 만일 침략이 목적이었다면 아무것도 없는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왕국과 귀족이 있는 동, 서, 북으로 향했을 터였다.

“하필 하늘 탑이 폐쇄되기 하루 전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멀린은 진동과 멈춤을 반복하는 수정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칙적으로는 하늘 탑에서 미확인 와이번이 발견되면 왕립 마탑에 알려야 하는 것이 의무였다. 하지만 이미 폐쇄가 결정이 나 탑을 떠나야 하는 멀린은 갑자기 나타난 와이번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진리를 탐구하는 마법사에게 운명이나 끌림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멀린은 이끌림을 따라 몸을 맡기기로 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잖아.”

씩 웃은 멀린이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만약을 대비해 이곳에 남겨진 마지막 기록은 지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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