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71화 (71/404)

71.혈연

“헉헉~.”

바위에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시안느에게 이니엘 영애가 다가와 화이트 우드 수액이 담긴 수통을 건넸다. 만약 이곳에 화이트 우드가 없었다면 며칠 동안 이어지는 격렬한 수련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화이트 우드 수액의 피로 회복력은 우수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뭘요. 시안느 경은 제 호위인걸요. 경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절 더 안전하게 지켜 줄 것 아닌가요. 그럼 다른 호위들처럼 제 곁을 떠나지 않을 거고요. 그러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슬프고 먹먹한 목소리와 달리 이니엘 영애는 애써 밝게 웃고 있었다. 이니엘 영애의 말처럼 영애를 호위하던 기사 중 살아남은 호위는 시안느가 유일했다.

“걱정 마세요. 반드시 아가씨를 안전하게 영지까지 데려갈 겁니다.”

“믿어요. 시안느가 날 무사히 영지로 데려다줄 거라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좀 쉬어야 해요. 제가 보기에도 너무 지쳐 보여요.”

“알겠습니다. 그럼 좀 쉬도록 하지요.”

살며시 미소 지은 시안느가 몸에 힘을 빼고는 천천히 바위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남작의 말대로 조금 전 카일과의 대련을 복기해 볼 요량이었다.

“시안느와 며칠 동안 대련을 해보니 어떠냐?”

시안느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카일이 자리에 앉자 힐튼 남작이 물어왔다.

“누군가와의 대련은 아버지 이후로는 처음입니다. 몇 번 실전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아마도 시안느의 실력이 많이 떨어져 그다지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할 수도 있지.”

“아, 아닙니다. 수련은 확실히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

“아버지 외에는 대련 경험이 없다니. 자경대 안에 제법 많은 엑스퍼트가 있지 않으냐.”

“사실 딱히 대련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 아버지께 배웠으니까요.”

“하긴 같은 검술이라면 상급 엑스퍼트인 보일 대장과의 대련이 더 도움이 되었겠지.”

“그렇습니다. 게다가 익숙한 검이 아닌 스틱으로 대련을 하는 것이라 이번 대련은 저에게도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다만….”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물어보거라.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대답해 주마.”

남작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카일이 물었다.

“사실 시안느 경과 대련을 하면서 좀 이상한 점을 느꼈습니다. 분명 같은 스틱 사용하고 같은 기술을 익혔지만, 저희 두 사람이 구사하는 동작과 기술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혹 제가 스틱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카일과 시안느는 지난 며칠 동안 잠깐의 휴식을 제외하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대련을 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대련이 길어질수록, 시안느와 카일이 구사하는 스틱은 점점 서로 다르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보통 같은 검술이나 체술도 익히는 사람의 감각이나 체구 및 체질 등 여러 이유로 약간의 변형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 변화의 폭은 극히 한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카일과 시안느의 대련을 보면 확연하게 다른 무기술로 보일 정도로 크게 달라져 있었다.

그렇다고 남작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카일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혹 남작이 자신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하하하! 그것이 이상하더냐?”

“당연하지요. 약간의 차이가 보이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두 사람 다 틀린 것도, 그렇다고 두 사람 다 맞는 것도 아니다.”

“네? 정확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일단 두 사람 모두 기존의 스틱 방어술과는 크게 달라졌지만, 잘못된 방향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힐튼 남작 역시 카일과 시안느의 대련을 보며 크게 놀라고 있었다. 기존의 스틱 방어술이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만 바뀐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래. 시안느 역시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변형되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너 때문이겠지.”

“저 때문이라니요.”

남작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카일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놀랄 것 없다. 앞서 말하지 않았느냐. 결코 잘못된 방향이 아니다. 카일 너는 체구가 크고 팔과 다리가 길다. 덕분에 손과 팔목 그리고 팔 전체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스틱의 반경이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넓을 수밖에 없다.”

직접 스틱을 든 힐튼 남작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선천적으로 큰 신체 때문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이군요?”

“그것만이라면 다르게 변화했다고 말할 수 없겠지. 스틱 방어술은 오히려 체구가 클수록 불리하다. 스틱의 회전반경이 커지면 공격적인 측면에서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반대의 상황은 오히려 불리하다.”

“반대의 상황이라면 공격이 아닌 방어할 때를 말씀하시는군요.”

“그렇다. 빠르게 회전하는 스틱과 상대의 무기가 충돌하는 순간, 스틱으로부터 전해지는 충격이 고스란히 손목에 가해지지. 때문에 스틱의 회전반경을 좁혀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스틱의 역할은 방어이니 말이다.”

카일은 힐튼 남작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남작을 바라보았다.

“분명 팔목으로 충격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그다지 무리가 온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제 초급 엑스퍼트인 시안느는 카일보다 경지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스틱에 담긴 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카일은 시안느의 스틱에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렇겠지! 바로 그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강인한 육체와 타고난 힘으로 손목에 가해지는 충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넌 대련에서 스틱의 회전반경을 키울 수 있던 것이다. 그러면서 공격 부분에 치중하게 된 것이지.”

남작은 직접 스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처음 짧게 휘둘러지던 스틱의 범위는 점차 넓어졌다. 스틱은 서서히 방어술이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공격적이면서도 강력한 힘이 내포되기 시작했다. 기존 스틱 방어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무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로소 카일은 남작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과 대련이나 검을 나눠본 사람은 보일이나 힐튼 남작뿐이라, 카일 자신이 얼마나 강인한 힘과 육체를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흠….”

별안간 동작을 멈춘 힐튼 남작은 손에 들려 있던 단봉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분명 카일과 비슷한 속도와 힘으로 스틱을 휘둘렀으나, 카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스틱술이 펼쳐진 것이다.

“다행이군요. 사실 제가 잘못된 방향을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도의 기색이 역력한 카일의 음성에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남작은 머리를 흔들어 마음에 남아 있던 상념을 털어냈다. 어차피 남작은 스틱 방어술을 오래전 포기했다. 스틱술이 어떻게 변하든 미련을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나도 처음에는 혹 잘못된 방향으로 변형이 된 것은 아닌가 고민했지만, 대련을 지켜보며 생각해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더구나.”

“그럼 시안느 경은 어떻게 바뀐 것입니까?”

“카일 네가 공격적으로 변했다면 시안느는 더욱더 방어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왜 그런지 알겠느냐?”

“그 역시… 저 때문입니까?”

“그렇다. 시안느는 너처럼 스틱과 스틱이 충돌하는 순간의 강한 충격과 반발력을 단번에 막아낼 수 없다. 너와는 달리 작은 체구와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지금까지 시안느가 어떻게 너의 공격을 막아낸 것 같으냐?”

힐튼 남작의 물음에 카일이 잠시 눈을 감고 지난 대련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시안느 경은 스틱을 짧은 반경으로 여러 번 회전을 시켜 중첩 방어를 했습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중첩! 스틱을 단순히 짧게 회전시키는 것만으로는 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자,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대안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중첩 방어도 문제가 있다.”

“문제라면…. 그렇군요. 극단적인 체력소모. 스틱을 짧은 시간에 더 빠르고 더 많이 회전시키려면 체력과 오러가 그만큼 더 빠르게 소모할 수밖에는 없군요.”

“정확하다. 시안느가 저렇게 지친 이유도 바로 체력소모가 크기 때문이지.”

“이제야 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스틱을 구사하게 된 것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너와는 달리 시안느는 조금 더 정교하게 기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 상대로 너만한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피로를 빠르게 회복시켜줄 화이트 우드가 있으니, 시안느에게는 최고의 수련 장소가 될 것이다.”

남작의 말을 곱씹던 카일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남작의 흔쾌히 허락하자 머뭇거리던 카일이 입을 뗐다.

“일전에 말씀하시길 슈안이란 분이 남작님을 속여 검술 일부를 훔쳐 가셨다고 하셨지요.”

잠시 얼굴을 굳힌 남작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지. 분명 플랜스 가문의 검술이나 마나 연공법에는 우리 가문의 검술이나 연공법이 섞여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도 시안느 경이 남작님의 손녀라….”

“진짜 손녀가 아닐 수도 있는데, 어째서 손녀라 믿고 있냐는 말이냐?”

“죄송합니다만… 그렇습니다.”

“허허. 넌 정말 궁금한 것은 물어보고 확인을 해야만 하는 모양이구나.”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뭐 숨길 일도 아니니 가르쳐 주마! 시안느는 분명한 내 손녀가 맞다.”

확신에 찬 남작의 모습에 카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느냐? 내가 확신을 하는 모습이 이상하느냐?”

“솔직히 그렇습니다. 슈안이란 분은 분명 남작님을 속이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속일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속일 수 없는 것이라면….”

“그래 속일 수 없는 것! 바로 피다.”

“혹시 혈육을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남작이 카일의 손에 끼워진 마일론 가문의 인장 반지를 가리켰다.

“설마 인장 반지가!”

“인장 반지에는 가문의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마법이 각인되어 있다. 혈연관계를 확인하고 싶은 두 대상이 서로 인장 반지에 피를 떨어트리면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미 플랜스 가문의 검술에 우리 마일론 가문의 검술이 섞여 들어간 것을 보고, 시안느와 인장 반지를 통해 혈육임을 확인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주제넘게 시안느 경을 의심한 것 같습니다.”

“아니다. 인장 반지를 손에 낀 이상 가문의 일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시안느가 나와 혈연이 아니었다면 어찌 플랜스 가문의 일을 용납할 수 있겠느냐? 비록 슈안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린과 슈안을 생각해 덮어두기로 한 것이다.”

“다행이군요. 만약 남작님께서 플랜스 가문에 책임을 물으려 하셨다면 시안느 경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겁니다.”

“어렵게 만난 손녀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는 일이지.”

-카일. 화이트 우드 숲에서 일단의 움직임이 있다. 아마도 웨어 울프들이 섬으로 건너오려는 것 같다.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시카니스의 음성에 카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느냐?”

“잠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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