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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65화 (65/404)

65.치료

카일은 일단 상처 부위를 압박했던 천을 풀어낸 후 천천히 입고 있던 레더 아머를 벗었다. 그러자 단단하고 아름다운 상체 근육이 드러났다.

그러나 상반신에는 단순히 잘 짜인 근육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상처들이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혹독한 실전을 치렀는지 보여주는 흔적들이었다.

다행히 힐튼 남작에게 베인 가슴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기에 출혈은 어느 정도 멈춰 있었다.

그러나 관통당했던 어깨에서는 아직도 적지 않은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다른 곳은 그리 심하지 않지만 어깨의 상처는 빨리 지혈을 해야 해요.”

“가죽 가방 안쪽에 작은 철합이 있습니다. 안에 상처에 바르는 약이 있습니다.”

카일의 말에 시안느가 가방 안에서 작은 철합을 꺼내 열었다. 안에는 검고 끈적한 약이 들어 있었다.

“약도 가지고 다녔군요.”

“외곽 순찰을 돌면 몬스터와 마주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비상약을 항상 가지고 다니지요.”

이리저리 내용물을 살펴보던 시안느에게 카일이 말했다.

“이게 그 약인가요?”

“피를 멈추고 상처를 낫게 해줍니다. 그걸 퍼서 관통당한 등에 발라주십시오.”

“알겠어요.”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자 알싸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원래는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실과 바늘로 봉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당장 실과 바늘을 구할 수도 없었고, 이곳에서 불을 피울 수는 더더욱 없었다.

“마을에 치료사가 있나요?”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던 시안느가 카일에게 물었다.

“마을에 치료사는 없습니다. 헌데 그런 건 왜….”

“약을 항상 챙겨 다닌다고 했잖아요. 마을에 치료사가 없으면 약을 쉽게 구할 수가 없을 텐데…. 상인들이 팔고 있는 약들은 포션 보다는 못하지만, 상당히 비싼 물건이거든요.”

시안느의 지레짐작에 카일이 나직이 웃으며 대꾸했다.

“이 약은 제가 만든 겁니다. 몇 가지 허브와 약재를 섞어 만든 것이지요.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카일의 말에 어깨를 가로지른 상처를 치료하고 있던 시안느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럼 당신이 치료사란 말인가요?”

“치료사까지는 아닙니다. 몇 가지 병이나 상처에 좋은 약초를 섞어 약을 만든 것뿐입니다. 다행히 제법 효과가 있는 것 같아 가지고 다니지요.”

“몇 가지나…. 세상에, 치료사에 대해 너무 모르는군요.”

“치료사라면 약을 만들어 병을 낫게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까?”

카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카일로서는 치료사를 본 적이 없어 정확히 어떻게 병을 치료하는지도 몰랐다.

“치료사라고 모든 병을 치료하지는 않아요. 자신만이 잘 아는 한두 가지의 병에 대한 치료법과 그에 대한 약을 몇 가지 만들 줄만 알아도, 영지에서는 치료사로 대우를 해줘요. 물론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할 줄 알고 약재나 치료법을 다양하게 알고 있다면, 그만큼 더 큰 대우를 해주겠죠.”

“보통 귀족들은 포션을 쓰거나 사제에게 치료를 받지 않나요? 굳이 치료사를 우대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카일이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천으로 상처를 묶어 주고 있는 시안느에게 물었다. 카일은 아직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이런 이야기에는 호기심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포션이나 사제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영지에는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영지민이 있네. 그들이 모두 병들거나 상처를 입을 때마다 비싼 포션을 살 수 있을 것 같나?”

힐튼 남작이 시안느 대신 카일에게 대답해 주었다.

“그건… 아니군요.”

“그러니 영지에서 치료사들을 그만큼 귀하게 생각하고 대우를 해주는 것이지. 그나저나 인제 그만 옷을 입는 것이 어떤가? 그만하면 상처는 어느 정도 치료를 한 것 같은데.”

힐튼 남작이 카일의 상처를 이리저리 살펴주는 시안느의 모습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흠…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안느 경.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시안느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잠든 이니엘 영애의 옆으로 다가가 누웠다.

용케 바위와 바위 사이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의 작은 공간을 찾은 덕분에 추위 걱정은 크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카일은 서둘러 레더 아머를 주섬주섬 입고서 잘 공간을 찾았다.

아직 해가 뜨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있었기에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상처도 치료했고 한숨 돌린 것 같으니 말해 보게 방금 내가 본 것이 뭔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잔인한 몬스터는 본 적이 없네.”

힐튼 남작은 웨어 울프들이 잔인하게 도륙당하던 장면이 떠올랐는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며 물었다.

“놈들의 정확한 정체는 저도 아직 잘 모릅니다. 물 밖으로 나온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다만 물속이나 이끼층 아래에서 거대한 낫을 이용해 사냥한단 건 확실합니다. 특히 진동에 아주 민감한 것 같았습니다.”

“녀석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보면 상당한 크기의 몬스터 같은데… 이제 어쩔 생각인가?”

“일단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한동안 머물며 휴식을 취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요.”

“이 위험한 습지에서 말인가!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힐튼 남작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웨어 울프 무리를 학살한, 정체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습지 몬스터가 있는 곳에서 머물겠다는 카일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웨어 울프들은 집요한 사냥꾼들입니다. 비록 웨어 울프들이 큰 피해를 입고 물러갔지만, 언제 다시 전처럼 습지를 넘어 공격해 오려 할지 모릅니다.”

“허나 언제 습지 몬스터가 이곳에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니 서둘러 습지를 빠져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아직 습지 몬스터가 육지로 올라온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이곳으로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대로 습지를 무사히 벗어난다 해도 웨어 울프들을 피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건….”

힐튼 남작은 별달리 새로운 의견을 내지 못했다. 비록 습지의 몬스터가 위험하기는 하지만, 결국 웨어 울프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습지의 몬스터 덕분이었다.

“다리를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카일이 힐튼 남작의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지금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기라도 하겠단 소린가?”

힐튼 남작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병을 주고 이제는 약까지 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제게 치료받는 것이 싫으시면 이대로 계셔도 됩니다. 다만… 나중에 치료하게 되면 그때는 뼈가 단단히 굳어 영영 걸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싫다고 했나.”

카일의 말에 힐튼 남작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지금 자존심을 세우다가는 평생 불구로 살 수도 있으니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카일은 힐튼 남작의 말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그의 발을 살펴보았다. 뼈가 부러져서 발목이 크게 부어 있었다.

“잠시만 계십시오.”

카일은 곧게 자란 화이트 우드 가지를 무릎 높이 정도로 잘랐다. 껍질을 벗기자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일단 뼈를 원래대로 맞춰야 합니다. 제법 통증이 심할 겁니다. 나무토막이라도 물고 계시지요.”

“괜찮네. 이 정도 통증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네.”

힐튼 남작이 자신 있게 말하며 카일이 건넨 나무토막을 거절했다.

“그렇습니까? 흠… 뼈가 부러졌을 때 보다 더 통증이 심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카일의 말에 힐튼 남작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뼈가 부러지는 순간,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한동안 고원이 떠나갈 정도로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커험… 그렇다면 뭐….”

힐튼 남작이 카일의 눈길을 피하며 나무토막을 집어 들었다.

“시작하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게….”

카일이 남작의 왼쪽 발목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뭐… 뭔가?”

“남작님은 시안느 경과 무슨 사이입니까?”

“무슨 사이라니… 크아악~!”

뿌드득-

카일의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한 힐튼 남작이 막 반박하려는 순간 카일의 손이 빠르게 남작의 비틀어진 다리뼈를 원래대로 맞춰놓았다.

그리고는 벗겨 놓은 화이트 우드를 다리 양쪽에 부목으로 댄 후 나무껍질을 이용해 단단히 고정시켰다.

“크으윽… 이게 무슨 짓인가? 갑자기 뼈를 맞추면 어떻게 하냔 말이야.”

힐튼 남작이 억지로 통증을 참으며 카일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통증이 전보다 덜했지 않습니까?”

“그야….”

“그럼 이제는 정말 아프실 겁니다. 나무토막을 입에 무는 것이 좋을 듯하군요.”

카일이 단단히 주의를 준 후 잔뜩 굳은 얼굴로 남작의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그럼 시작하기 전에 혹 시안느 경이 따님입니까?”

“뭐라! …크아악!”

뿌드드득-

생각지도 못한 카일의 물음에 힐튼 남작이 당황한 듯 버벅거리는 순간, 또다시 극심한 통증이 다리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졌다.

카일은 오른쪽 다리에도 마찬가지로 부목을 대고 나무껍질로 단단히 묶었다.

“자네 정말…!”

힐튼 남작은 마치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 같은 카일을 보며 화를 내야 할지 치료를 해줘 고맙다고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 이제 다 되었습니다. 돌아가서 포션을 쓰거나 사제를 찾아가 치료를 받으면 될 겁니다.”

“자네는 내 복수가 두렵지 않나?”

힐튼 남작이 카일을 무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거의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을 살려 주고, 치료까지 해준 카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남작님을 웨어 울프에게 던져 줄 생각도 했었지요. 그랬다면 늪지로 들어오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을 했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결국 나 때문에 늪지로 들어왔다는 말이군.”

힐튼 남작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카일에게 있어 부상을 당한 자신을 업고 웨어 울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습지로 피하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아닙니다. 저 때문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웨어 울프를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저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을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좀 더 현명하게 생각했다면 다른 선택지가 있지 않았을까 하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처음 남작님을 오크 떼로부터 구한 건, 사실 순수한 의지로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왜 구해 준 것인가?”

“남작님을 따라 마을로 향하는 오크 떼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만 웨어 울프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작님과 합류하게 된 것뿐입니다. 처음부터 남작님을 구할 생각 따위는 없었죠.”

“그런 일이 있었군! 허허, 어쩐지 갑자기 자네가 나타났을 때 내심 놀라기도 했지.”

힐튼 남작은 이제야 그때 카일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웨어 울프를 끌어들이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웨어 울프들이 저렇게 뒤를 쫓는 것도 저 때문일 겁니다.”

“웨어 울프들이 자네를 쫓고 있다는 말인가?”

“여기 있는 모두를 쫓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중에서도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힌 절 반드시 죽이려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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