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64화 (64/404)

64.습지의 학살자

“아우우우~.”

커다란 하울링 소리가 고원을 울리자, 주변으로 퍼져있던 웨어 울프들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일제히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우우~.”

“우우우~.”

하울링이 공명하며 공기를 뒤흔들었다. 곧 거대한 체구의 웨어 울프 주변으로 푸른 불꽃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가 스물다섯 쌍이 넘어서자 일제히 울음이 그쳤다.

첨벙

가장 먼저 웨어 울프들을 불러 모은, 거대한 체구의 웨어 울프가 물웅덩이 안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와 밀려오는 불길 속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치이익-

우두머리 웨어 울프가 잦아든 불길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뒤이어 나머지 웨어 울프들도 하나둘 웅덩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우두머리 웨어 울프와 똑같이 불타오르는 들판에 몸을 던져 넣었다.

치익- 치이익

오십여 마리의 거대한 웨어 울프들이 반복해서 불을 끄기 시작하자, 고원을 태우던 불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 * *

초목이 빽빽하게 들어선 화이트 우드 숲속은 바닥은 물론, 바위와 나무둥치까지 질척하고 미끄러운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고원 위에 이렇게 넓고 음습한 습지가 존재하고 있을 줄이야.”

음침한 숲속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힐튼 남작이 주변을 둘러보곤 인상을 찡그렸다.

“보기에는 음습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장소 덕분에 샤론 마을이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습지로 인해 마을이 존재한다니?”

“여긴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넓은 곳입니다. 그만큼 엄청난 물을 간직한 곳이죠.”

“이곳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곳 습지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샤론 마을을 지나 영지까지 내려갈 정도입니다.”

“물웅덩이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에 그렇게 많은 물이 있단 말인가요?”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이니엘 영애가 카일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이곳은 습지의 초입일 뿐입니다. 진짜 습지는 조금 더 가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

한동안 빽빽하게 자라고 있던 화이트 우드 군락지를 벗어나는 순간, 눈앞에 거대한 늪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바로 이탄으로 이루어진 습지입니다.”

“세상에, 대단해요. 고원 위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이니엘 영애가 습지를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습지는 여러 개의 커다란 웅덩이들로 나누어져 있고 그 중앙에는 섬처럼 커다란 화이트 우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밤하늘 위로 반짝이는 무수한 별빛들이 그대로 물웅덩이 위에 비쳐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얼핏 보기엔 습지가 여러 개로 나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위를 이끼가 두껍게 덮고 있어 생기는 착시입니다.”

“땅이 아니란 소리군요.”

“겉에 나와 있는 이끼들이 말라, 그냥 땅처럼 보일 뿐입니다. 직접 밟아 보면 땅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열심히 카일의 설명을 듣던 이니엘 영애는 앞으로 나와 습지 안으로 한발을 내밀었다.

굴렁-

“진짜네요! 엄청 푹신해요.”

이니엘 영애가 발을 내딛는 순간, 꼭 평범한 땅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바닥이 울렁거렸다.

“이곳은 습지의 초입이라 괜찮지만, 중앙으로 갈수록 이끼층이 얇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최대한 제가 밟은 곳 위주로 따라오셔야 안전합니다.”

“알겠어요.”

이니엘 영애가 신이 난 아이처럼 좋아하며 대꾸했지만 카일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카일은 허리에서 검을 검집 채 뽑아 천천히 습지 안으로 향했다.

이끼층을 밟을 때마다 바닥이 출렁이며 물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다행히 습지의 중앙으로 향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말해보게. 이곳에 뭐가 있나?”

경계의 기색을 늦추지 않고 습지의 중앙으로 향하는 카일에게 힐튼 남작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씀인지….”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네의 발걸음이 더 조심스러워졌지 않은가. 무엇보다 지금 자네의 몸은 너무 경직되고 긴장되어 있어. 분명 이 습지에 있는 무엇인가가 자네를 긴장하게 했겠지! 내 말이 틀렸는가?”

힐튼 남작이 말했지만 카일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자네가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알고 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힐튼 남작의 설득에도 카일은 아무 말 없이 습지 중앙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힐튼 남작의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습지를 살피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는 게 옳으리라.

* * *

‘어떤가요?’

-아직까지는 괜찮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무사히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시카니스의 말에 카일은 낮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물 밑에 있는 놈들은 나로서도 찾기 힘드니까.

‘물 밖에 있는 녀석들의 위치만이라도 알 수 있어 다행입니다. 시카니스가 아니었다면 습지를 지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놈들은 물의 작은 파장만으로도 사냥감이 등장했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그럼 곧장 사냥을 시작하겠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아쉽군! 내가 온전한 상태였다면 이곳을 벗어나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인데….

‘그건 시카니스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제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맹약자를 죽인 바람에 심령에 타격을 받은 거니까요.’

-그래도 위급한 상황이 온다면 나를 불러라. 너희 셋 정도는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시카니스가 위험한 것이 아닌가요? 심령에 타격을 입어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잖아요.’

-물론 심령에 타격을 입었지만 움직일 수는 있다. 다만 이번에 아공간석을 벗어난다면 반년 이상은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또다시 맹약자를 잃을 수는 없다. 그때는 반년이 아니라 한동안은 세상에 나가지 못할 것이다.

‘알겠어요. 정말 위험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 부를게요.’

시카니스와 카일의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어디선가 섬뜩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우우~.”

“이런!”

카일이 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카일이 본 것은 숲속에서 수십 마리의 웨어 울프들이 하나둘 화이트 우드 숲을 빠져나오는 광경이었다.

못해도 4~50마리는 넘어 보였고 그 중심에는 다른 웨어 울프보다 월등히 큰 체구의 검은 웨어 울프가 중심에 서 카일과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르르.”

우두머리 웨어 울프는 카일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으나, 정작 습지 위로는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며 망설이고만 있었다.

“웨어 울프가….”

웨어 울프가 습지로 다가오는 모습에 새파랗게 질렸던 이니엘 영애와 시안느는, 갑자기 습지 앞에서 걸음을 멈춘 웨어 울프들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일단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따라오십시오.”

카일은 습지로 웨어 울프들이 들어오지 않자 다시 몸을 돌려 신중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뒤에 웨어 울프들이 있어요. 조금 더 서두르면 안 되나요?”

일부러 카일의 발뒤꿈치만 응시하던 이니엘 영애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면서 이야기 드렸지만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습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겁니다. 그때는 이끼층 때문에 구해드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카일의 말에 이니엘 영애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한동안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가던 카일을 급히 힐튼 남작이 불렀다.

“웨어 울프들이 움직였네!”

-놈들이 움직였다.

힐튼 남작과 시카니스의 음성이 겹쳤다. 고막과 머릿속을 울리는 두 개의 목소리에 카일이 걸음을 멈추곤 뒤를 돌아보았다.

카일의 시선에 걸린 것은 습지 위로 하나 둘 올라온 웨어 울프들이 카일의 일행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빨리 가야 합니다. 곧 놈들에게 잡힐 겁니다.”

뒤에서 따라오던 시안느가 카일을 재촉했다. 입술을 꽉 깨문 카일이 곧장 가죽끈으로 남작이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묶은 다음, 긴장한 얼굴로 바닥을 보며 말했다.

“모두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왜 그러나?”

어리둥절한 힐튼 남작의 물음에도 카일은 대답 없이 바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카일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크르르.”

거리는 순식간에 좁아졌다. 웨어 울프들이 일제히 가장 뒤에서 있는 시안느를 덮쳤다.

“안돼!”

카일의 등에 업혀 있던 힐튼 남작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는 카일의 등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이미 카일이 가죽끈으로 단단히 묶어놓아 움직일 수 없었다.

힐튼 남작의 발버둥에도 꿈쩍 않고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던 카일은, 번쩍 머리를 들곤 시안느와 이니엘의 손을 덥석 잡은 후 외쳤다.

“뛰어!”

두 사람은 얼결에 카일을 따라 몸을 날렸다.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갑자기 거대한 낫이 튀어나오더니, 달려오던 웨어 울프의 가슴을 가른 후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크아아~.”

“캐앵.”

카일의 손에 잡혀 앞만 보고 달리는 시안느와 이니엘 영애는 뒤쪽의 상황을 명확하게 보지 못하고 웨어 울프들의 처절한 비명만 들었다. 하지만 힐튼 남작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서 올라온 거대한 낫을 분명히 보았기에 카일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그건 뭐였나!”

“나중에 말하겠습니다. 지금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카일은 힐튼 남작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습지를 가로질러 달려나갔다.

스각

“캥.”

푸우욱

카일이 달리는 와중에도 뒤에서는 수많은 웨어 울프들이 바닥에서 올라온 낫에 찍히거나 베이며 죽어가고 있었다.

“아우우우~.”

그때였다.

습지를 달리던 웨어 울프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화이트 우드 숲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집단사냥에 뛰어난 웨어 울프들이라고 해도 보이지 않는 물속과 이끼층에 가려져 있는 상대를 공격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웨어 울프들의 도주도 쉽지만은 않았다. 이미 습지 주변으로 웨어 울프를 사냥하기 위해 몰려든 몬스터들이 기습적으로 튀어나와 도주하는 웨어 울프들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웨어 울프들이 몰이 사냥에 뛰어난 사냥꾼이라면 습지에 나타난 몬스터는 물속에 숨어 기습하는 매복 사냥에 능숙한 사냥꾼이었다.

결국 50여 마리의 웨어 울프 중 살아서 습지를 빠져나간 웨어 울프는 30마리가 채 되지 않았다.

“다들 잠깐 멈춰요!”

한참을 달려가던 카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카일의 손끝이 지목하고 있는 곳은 화이트 우드 군락지였다.

“저곳으로….”

카일은 나무가 빽빽한 군락지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화이트 우드가 자라고 있어, 이끼층으로 된 습지와 달리 흙으로 다져진 작은 섬 같은 곳이었다.

“허억, 헉, 헉.”

카일이 고개를 숙인 채 거친 숨을 내쉬며 섬을 한차례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힐튼 남작이 동의하자 카일은 느릿느릿 섬 안쪽으로 향했다. 이니엘 영애나 시안느는 너무 지쳐 있을 뿐 아니라, 아직도 습지에서 느꼈던 공포감이 남아 있어 대답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다행히 화이트 우드가 섬 외곽을 빙 둘러 마치 방벽처럼 자라고 있어, 섬 안을 가려주고 있었다. 섬 안쪽에는 단단한 바위들이 널려 있었다. 또한 습지보다 지대가 높고 이끼가 자라지 않아 꽤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여기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카일의 말에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가장 먼저 이니엘 영애와 시안느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진맥진한 둘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카일 역시 등에 업혀 있던 힐튼 남작을 바위에 기대어 앉을 수 있게 내려놓은 후에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아무리 카일이라도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힐튼 남작을 업고 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시안느와 이니엘 영애까지 챙겨야 했으니 체력은 배로 소모되었을 터였다.

“괜찮나요?”

카일이 바위에 기대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있을 때, 시안느가 카일에게 다가와 물었다.

“좀 지치긴 했지만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안심하라는 것처럼 카일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시안느는 걱정의 기색을 지우지 못하며, 카일의 곁으로 다가와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지혈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시안느가 카일의 어깨를 보며 말했다. 카일의 어깨에서는 아직도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는 제가 해도 됩니다.”

“재주는 없지만 그래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시안느는 카일의 말을 듣지도 않고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이니엘 영애의 남은 치맛단을 꺼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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