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62화 (62/404)

62.하린의 방패술

“크윽~.”

카일은 급히 오른손을 뻗어 힐튼 남작의 오른손을 부여잡아, 더 이상 칼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오른발을 뻗어 힐튼 남작의 왼쪽 정강이를 걷어찼다. 카일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뻐억-

“크억.”

힐튼 남작은 왼쪽 다리에서 올라오는 극심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카일과 남작의 시선이 마주쳤다. 카일의 얼굴은 어깨로부터 전해져 오는 극심한 통증과 강대한 존재에 맞서고 있단 무력감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남작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놈!”

입술을 깨문 힐튼 남작이 검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그러나 카일의 손에 잡힌 힐튼 남작의 손은 꼼짝하지 않았다. 더는 검을 전진시킬 수 없었다. 그렇다고 검을 아예 회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진퇴양난이었다.

퍼억-

순간 또다시 카일은 오른발로 힐튼 남작의 정강이를 후려갈겼다.

“큭~.”

힐튼 남작은 이번에도 고통에 찬 신음을 겨우 참아내며 카일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놈! 이손 놓지 못해!”

힐튼 남작이 왼손에 든 검집을 들어 카일을 공격하려는 순간, 오히려 카일은 왼손에 있던 검을 놓아 버리고 힐튼 남작의 왼손까지 덥석 잡아 버렸다.

힐튼 남작이 검술이 뛰어나고 힘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해도, 결국 전체적인 힘과 체구 특히 팔과 다리 길이는 카일이 월등히 앞섰다.

게다가 거리까지 가까웠으니 카일이 손을 뻗어 힐튼 남작의 손목을 쥐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퍼어억

카일의 오른발이 또다시 힐튼 남작의 왼쪽 정강이에 내려꽂혔다.

“크악!”

힐튼 남작의 입에서 드디어 비명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더 강하게 남작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퍽, 퍼억-

빠드드득

“크아악~.”

몇 번이나 발길질을 반복했을까.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고통에 찬 힐튼 남작의 비명이 화이트 우드 숲에 메아리쳤다.

뻐억-

카일은 망설임 없이 다시 발을 들어 올렸다. 목표는 힐튼 남작의 왼쪽 정강이뼈였다.

뚜두, 둑

순간 카일은 직감적으로 힐튼 남작의 정강이뼈가 완전히 부서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검과 검집을 손에서 놓은 힐튼 남작은 여전히 카일의 손에 잡혀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카일은 힐튼 남작의 팔을 잡아당겨 더욱더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퍼억-

이번에는 카일의 왼발이 힐튼 남작의 오른쪽 정강이에 작렬했다.

“아악~.”

또다시 힐튼 남작이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지만, 카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작이 움직이지 못하게 더욱 힘을 줬다. 그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또다시 힐튼 남작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빠악

“크아악~. 그만, 그만!”

힐튼 남작이 애원하듯 소리 질렀으나 카일은 기어코 힐튼 남작의 오른쪽 정강이뼈까지 부수어 놓았다.

“크아악~. 내 다리!”

두 다리가 부러져 절망감과 고통 속에 휩싸여 있는 남작을 보던 카일은 남작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는 생각에 손을 놓아 주었다.

“크으윽…. 흑.”

그대로 나동그라진 힐튼 남작은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헉, 허억, 헉… 커억!”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카일은 급격히 숨을 몰아쉬다가, 가슴에 뭉쳐있던 울혈을 토해냈다. 쓰러지듯 주저앉은 카일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생사를 오가는 극도의 긴장감이 지나고 이겼다는 안도감이 들자, 온몸에 힘이 빠짐과 동시에 잊고 있었던 통증이 엄습해왔기 때문이었다.

“카일!”

카일이 바닥에 쓰러지자 이니엘 영애와 시안느가 급히 카일에게 달려왔다.

“어멋!”

“세상에.”

바닥에 쓰러진 카일의 모습은 처참했다.

양쪽 어깨는 물론이요, 가슴과 양 허벅지의 자상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멀리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힐튼 남작은 외견상 이상이 없어 보였기에, 카일의 상태가 더욱더 처참하게만 보였다.

시안느는 서둘러 카일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카일은 어때요?”

이니엘 영애가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빨리 지혈을 해야 해요! 일단 지혈할….”

찌이익-

시안느의 말이 끝나기도 전, 이니엘 영애가 자신의 치맛단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아가씨! 지금 무슨….”

화들짝 놀란 시안느는 상처를 지혈하던 손까지 멈췄다. 하지만 이니엘 영애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감하게 남은 치맛단을 허리까지 뜯어냈다.

“일단 지혈부터… 어서요!”

이니엘 영애가 뜯어낸 치맛단을 시안느에게 내밀며 재촉했다.

그러자 잠시 곤혹스러운 시선으로 영애를 바라보던 시안느는 이내 천을 받아들었다. 이니엘 영애가 건넨 넓은 치맛단을 다시 적당한 크기와 길이로 찢은 시안느는, 피가 흘러나오는 어깨와 허벅지를 동여매 출혈을 막았다. 천을 꼼꼼히 묶은 그녀는 다시 한번 카일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어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카일의 옆으로 불을 옮겨 피워야겠습니다. 피를 많이 흘리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단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요. 우선 아가씨께서 카일을 지켜보며 물을 조금씩 먹여 주세요.”

“알겠어요.”

시안느가 화이트 우드의 수액이 가득 담겨 있는 수통을 이니엘 영애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카일의 옆으로 모닥불을 옮겨 피웠다.

다행히 밤새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바짝 마른 이탄을 잔뜩 가져다 놓은 덕에, 불을 옮겨 피우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다.

한참을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던 시안느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뒤 카일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카일은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상태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니엘 영애가 수액으로 적신 천으로 핏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카일의 얼굴과 손등을 꼼꼼히 닦아 이전처럼 참혹해 보이지는 않았다.

“카일은 괜찮을까요?”

한동안 카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시안느의 귓가로 이니엘 영애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안느는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애써 침착히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가씨. 카일은 강한 사람이니 분명 무사히 깨어날 겁니다.”

“그래요. 분명 카일은 무사히 깨어날 거에요.”

이니엘 영애가 애써 밝게 미소 지어 보였다.

“크으윽~.”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다가 기절했는지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힐튼 남작의 입에서 짧은 신음성이 들려왔다.

“아가씨는 잠시만 카일을 지켜보고 계세요.”

“설마 남작에게 가려는 건가요? 비록 양다리가 부러졌다고 해도 남작에게 다가가는 것은 위험해요.”

“저도 잘 알아요. 스스로 위험을 자초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러니, 안심하세요.”

시안느가 이니엘 영애의 손을 잡아 다독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힐튼 남작에게 다가갔다.

멀리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남작의 모습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다.

고통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양쪽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여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이 얼마나 거대할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안느는 동요하지 않고 남작의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을 발로 차 떨어트린 후 자신의 검을 뽑아 힐튼 남작에게 겨누었다.

“크으윽….”

앓는 소리와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내뱉던 남작이 머리를 들었다. 땀과 눈물로 얼룩진 채 망연자실해 있는 그의 얼굴과 시안느의 무표정한 얼굴이 마주쳤다.

“죽여라.”

힐튼 남작이 이를 꽉 깨물곤 말했다.

“…내 지금까지 살아오며 오늘만큼 비참한 적이 없었다. 더는 모욕을 주지 말고 깨끗하게 죽여다오. 부탁이다.”

힐튼 남작의 목소리에선 삶에 대한 어떠한 의욕도 보이지 않았다.

17살의 카일에게 처참하게 두 다리가 부러지는 순간, 북부 최강의 기사라는 그의 명예는 땅에 떨어져 내렸다.

그에게는 최상급 엑스퍼트에 대한 열망과 꿈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이곳에는 다리가 부러진 늙은 노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힐튼 남작을 동정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시안느가 다시금 싸늘하게 낯빛을 굳히더니 힐튼 남작에게 차갑게 물었다.

“당신, 어떻게 하린의 방패술을 알고 있는 거죠?”

시안느의 갑작스런 물음에 동요를 숨기지 못한 힐튼 남작의 어깨가 떨려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하린의 방패술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힐튼 남작은 애써 시치미를 뗐으나, 그의 목소리가 급격히 떨리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모르는 척하지 마시죠. 당신이 검집으로 구현했던 동작들, 그건 틀림없이 용병 하린의 방패술이었어요.”

시안느가 고함을 치며 몰아붙이자, 무언가를 떠올리듯 잠시 눈을 감았다 뜬 힐튼 남작은 조용히 대꾸했다.

“하린의 방패술이라…. 그래, 한때는 그렇게 불린 적도 있었지. …허나 정확히는 방패술이 아니라 짧은 스틱을 이용한 근접방어술이다.”

“그게 무슨….”

힐튼 남작에게 겨누고 있던 시안느의 칼끝이 흔들렸다. 하린의 방패술에 대해 그동안 수없이 들었지만, 스틱을 이용한 방어술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도 보았겠지. 방패가 아니라 검집으로 구현함으로 인해, 더 안정적이면서도 복잡한 변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당신, 용병 하린과는 어떤 관계죠.”

시안느가 떨리는 목소리로 힐튼 남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도대체 누구지? 누군데 하린의 방패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냐?”

힐튼 남작은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오히려 시안느를 쏘아보며 되물었다.

“그는… 그는 제 아버지예요. 제가 열 살이 될 무렵 급하게 집을 떠난 이후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뭐라! 하린이 너의 아비란 말이냐!”

경악한 힐튼 남작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시안느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렇구나. 지금 보니 확실히 하린과 닮은 구석이 남아 있어…. 설마 하린에게 가족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힐튼 남작의 얼굴에 어렴풋이 미소가 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시안느와 쓰러진 카일, 그를 간호하는 이니엘 영애를 순서대로 훑어보더니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던 힐튼 남작이 번쩍 눈을 뜨더니 무섭게 시안느를 쏘아보며 말했다.

“하린. 예전에 그렇게 불렸던 용병이 있었지. 허나 이미 오래전 죽은 놈이다.”

“설마 당신이…!”

“그래, 오래전 내 손으로 그놈을 죽였다. 그러니 어서 날 죽여라.”

시안느의 얼굴이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그런, 그럴 수가…. 아버지가….”

충격을 받은 듯 시안느는 비틀거렸다. 급히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쓰러지는 걸 면한 시안느는 검을 들어 힐튼 남작을 겨누었다.

“왜! 왜 아버지를 죽인 거죠! 그런 줄도 모르고 말없이 떠난 아버지를 우리가 얼마나 원망했는데.”

힐튼 남작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지만, 그는 그저 말없이 한동안 시안느를 바라볼 뿐이었다.

“절대 용서 못 해!”

검을 들고 있는 시안느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 어서 날 죽여, 아비의 복수를 해라.”

초연한 태도로 시안느를 바라보던 힐튼 남작은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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