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53화 (53/404)

53.세번재 가능성

“…어찌 그 같은 생각을 한 것인가?”

아이젠 공작의 말에 데너리스가 와이번의 알을 이리저리 살피며 답했다.

“단순한 가짜라 치기엔 너무 정교합니다. 게다가 무엇을 재료로 만들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알 수 없는 재료로 이런 걸 만드는 작업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데너리스의 말에 아이젠 공작의 눈이 저절로 상자 안 와이번의 알로 향했다. 백색의 은은한 광택을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공작이 무심코 긍정했다.

“과연 그렇군.”

공작은 제국에서 황제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을 가진 귀족파의 수장이었다. 그만큼 귀중하고 값진 물건들을 다양하게 보아 왔다. 그러한 공작의 눈을 속여넘길 만큼 정교한 가짜 알을 별다른 이유 없이 만들었을 리가 없었다. 누군가 짜 놓은 판에 자신이 놀아난 건지도 모른단 가능성에, 공작은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불쾌감을 애써 눌렀다.

“마지막은 뭔가?”

“마지막은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세력이나 인물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모두를 속이고 와이번의 알을 바꿔치기했을 경우입니다. 가장 가능성이 낮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가능성이 낮은 이유가 있나?”

“바로 이 와이번의 알 자체가 그 이유입니다. 알 수 없는 재질의 정교한 가짜 와이번 알을 만들어, 누구도 알지 못하게 진짜와 바꿔치기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능성이 높겠습니까?”

“허나 누군가 진정 마음먹고 알을 바꿔치기한 걸 수도 있지 않은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네.”

아이젠 공작이 데러니스의 말을 반박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반드시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 가짜이거나 이미 죽은 상태의 알이어야 했다.

하지만 세 번째는 조금 달랐다. 이 가설은 결국 살아있는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 진짜로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었다. 공작으로서는 가짜 와이번의 알 때문에 아들과 블랙 와이번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만약 세 번째 가설이 사실이라면 화이트 와이번의 알은 진짜로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공작은 다시 한번 와이번의 알을 노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분명 중간에 알을 바꿀 기회가 있었을 겁니다. 허나 간과해선 안 될 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마파린 후작가의 기사단이 오크 랜드까지 추적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와이번의 알이 진짜라면 결국 맹약석 역시 진짜였다는 말입니다.”

“음….”

데너리스의 말에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와이번의 알이 진짜라면 결국 그린넨 일행에게서 탈취한 맹약석 역시 진짜였을 것이다. 그 맹약석을 이용해 추적했다는 건 와이번의 알 역시 영애와 함께 오크 랜드에 있었다는 말과 같았다. 만일 와이번의 알이 바꿔치기 당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면, 마파린 후작의 기사단은 그린넨 영애가 아니라 탈취당한 와이번의 알을 추적했어야 이치에 맞았다.

“무엇보다 가짜 와이번의 알을 만들려면 적어도 한 번 이상 제작자가 실제 와이번의 알을 확인해야 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가짜 와이번 알을 만들고 바꿔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린넨 영애 일행은 북부 토샤 영지에서부터 계속 추적을 당했다. 그런 만큼 와이번의 알을 누군가 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설령 보았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정교하고 완벽한 알을 제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까?

“허나 그럼에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무언가를 눈치챈 아이젠 공작이 데너리스에게 물었다. 데너리스는 계속 세 번째 가설이 말도 안 된다고 하고 있었으나, 분명 희박한 가능성임에도 말을 꺼낸 이유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제가 듣기로 와이번의 알은 오크 랜드 안에서 확보했다고 하던데요.”

“그렇네. 덕분에 황실기사단이 오크 랜드를 가로질러 가야만 했지만….”

“제가 이상하게 생각한 건 바로 그 점입니다. 와이번의 알이 가짜였다면, 마파린 후작가의 기사단은 어떻게 그 넓은 오크 랜드에서 정확히 와이번의 알을 추적할 수 있을까요? 오크 랜드에는 검은 여우들이 없으니 보틀러란 자가 마파린 후작가를 유인한 것도 아닐 텐데요?”

의아한 점을 늘어놓는 데너리스의 목소리에, 내내 어두침침하던 아이젠 공작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다면 와이번의 알이 진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백작가에서 가짜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바뀌었는지 알 순 없습니다. 이는 이제부터 알아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제가 첫 번째로 제기한 문제가 걸리기에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진짜 크로노스 왕국이 벌인 일이라면 검은 여우를 동원해 이번 일을 조사하는 순간, 크로노스 왕국에 덜미가 잡힐 수 있다는 말이군.”

“바로 그겁니다. 어쩌면 지금도 왕국에서는 검은 여우들이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여 가장 첫 번째로 말씀을 드린 겁니다.”

아이젠 공작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그 모습에 데너리스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더는 마법사인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만약 그동안의 친분이 아니었다면, 아니 정확히는 눈앞에 놓여 있는 가짜 와이번의 알이 아니었다면 이번 일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정체 모를 재료로 만들어진 와이번의 알에 흥미가 돋아 몇 가지 생각을 이야기해준 것뿐이었다.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인 데너리스가 제국의 일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마탑은, 그중에서도 4대 마탑은 어느 한 국가를 지원하지 않는 중립적 단체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빛의 마탑이 제국에 위치해 있어 제국에 많은 마법 물품을 팔거나 도움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젠 공작 역시 잘 알고 있었고, 물러나는 데너리스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골똘히 생각해본 아이젠 공작은 이 가짜 와이번의 알을 데너리스에게 양도하는 것이 앞으로의 도움을 위해서라도 더 나으리라고 판단을 내렸다.

“이 와이번의 알은 자네에게 넘겨주겠네. 허나….”

아이젠 공작의 표정엔 일말의 불안과 불신이 남아 있었다. 혹시 데너리스가 다른 마음을 품고 진짜 알을 가짜라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의 불안을 알아챈 데너리스가 재빨리 말했다.

“이 와이번의 알에는 어떠한 생명 반응이 없다는 것을 마나의 이름으로 확언합니다.”

데너리스의 말이 끝나는 순간 주변으로 모여든 마나가 데너리스 주변에 어리다 사라졌다.

일명 언령 마법의 일종인 참마법으로, 언어에 마나가 깃들어 거짓을 이야기하는 순간 심장에 만들어 놓은 고리가 파괴되어 다시는 마법을 배우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마법이었다.

이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지금까지의 대화 속에 절대 거짓이 없었다는, 정확히는 눈앞에 놓인 화이트 와이번 알이 가짜이거나 죽은 알이란 사실을 데너리스의 맹세로서 확인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마법은 강력한 강제성을 띤 만큼 타인에게 사용할 수는 없고 본인이 스스로에게만 사용할 수 있었다. 아이젠 공작의 표정이 스르르 풀어졌다.

“무리한 부탁일 수 있었는데, 들어주어 고맙네!”

“어찌 그런 말씀을…. 비록 생명이 깃들지 않았지만 이렇게 귀한 것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언제라도 공작 각하께서 부르시면 달려오겠습니다,”

이만하면 가짜 와이번의 알 값으로는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며 데너리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말이라도 고맙군.”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데너리스는 와이번의 알이든 상자를 들고 조용히 공작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집무실의 문이 닫히자 아이젠 공작이 티론드에게 물었다.

“자네는 데너리스의 세 번째 말을 어찌 생각하나?”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보틀러를 봤을 때 그는 본인이 지닌 것이 진짜 와이번의 알이라 굳게 믿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와이번의 알을 바꿔치기했거나, 처음부터 진짜와 가짜를 함께 보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이제는 텅 비어버린 협탁을 바라보던 아이젠 공작이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만약 와이번의 알을 누군가 제3의 인물이 바꾸었다면 그게 언제라고 생각이 되나?”

“그린넨 백작가의 영애 일행이 십여 일 이상 머물렀던 샤론 마을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검은 여우들의 보고에 의하면 마파린 후작이 힐튼 남작을 남부로 내려보낸 덕분에 십여 일정도 추적을 멈추고 일대를 포위하고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장 적기이기는 하군”

“이때 말고 다른 틈은 없어 보입니다. 그 당시 마파린 후작가가 가짜 와이번 알을 탈취했다면, 맹약석을 가지고 있었던 힐튼 남작이 위험을 무릅쓰고 오크 랜드로 진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진짜 알은 오크 랜드로 진입을 했다는 소리군.”

“예. 그리고 거듭 강조하지만 와이번의 알은 진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티론드는 머리를 깊게 조아렸다. 그가 보기에 분명 보틀러는 상자 속의 알을 진짜라 굳게 믿고 있었다. 이미 복귀가 예정되어 있고 이번 일로 큰 상을 받게 되리라 확신한 보틀러가 거짓을 보고할 이유도 없었다.

“좋다. 이번 일에 관여한 그린넨 백작가와 마파린 후작가를 집중적으로 감시해 보도록.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접근하진 말고. 검은 여우들이 노출되어서는 안 되니 밀이야. 이상 징후가 보이면 행동에 옮기는 대신 그때그때 보고만 하라 전하게.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의논할 것이니.”

“알겠습니다.”

티론드는 머릿속으로 전달 사항을 정리하며 뒷걸음질 쳤다. 티론드가 집무실 문을 열고 가려는 데, 아이젠 공작이 손을 들어 그를 멈추게 했다.

“아, 깜빡했군. 그 샤론 마을이란 곳도 조사를 해보게. 특히 이번 일에 관여한 자들을 집중적으로 말이야!”

“알겠습니다.”

티론드가 고개를 숙이며 급히 물러났다. 아무도 없는 집무실에 홀로 남은 아이젠 공작은 분노한 얼굴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 진짜라면,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

그는 이번 일로 이미 많은 것을 잃은 상황이었다. 여기서 화이트 와이번의 알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 * *

이른 아침, 이니엘 영애를 데리고 절벽을 내려왔을 때에는 수십 구의 시신들이 모두 사리진 뒤였다.

“어떻게 된 일이죠? 시신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놀란 시안느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밤사이 오크들이 다녀갔을 겁니다. 아마도 주변에 다시 오크들이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제국의 기사들이 주변의 오크 부락을 모두 몰살시켰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곳을 오크 랜드입니다. 제국의 기사들이 오크 랜드를 돌파하며 죽인 오크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제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죽은 오크들이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주변의 오크들이 이곳으로 더욱더 많이 몰려들었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죠. 서부 영지로 가려면 오크들을 상대해야 하잖아요.”

뜻밖의 말을 들은 사람처럼 카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부 영지로 계속 가실 생각입니까?”

“그건….”

카일의 물음에 순간 당황한 시안느가 이니엘 영애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그저 아직도 서부 영지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던 것이다. 정작 서부로 가려 했던 이유인 와이번 알이 탈취당했다는 사실도, 그래서 이제 더는 오크 랜드를 통해 왕국의 서부로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그렇군요. 더 이상 저희에게는 와이번의 알이 없군요.”

이니엘이 씁쓸하게 웃으며 많은 일이 벌어졌던 절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다시 샤론 마을로 길을 잡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이니엘의 말에 카일이 앞장을 섰다. 가장 선두에 카일이 중간에 이니엘 영애가 마지막으로 시안느가 자리를 잡았다. 이제 시안느는 이니엘 영애를 업고 달리지 않았다. 지금은 급할 것 없이 안전하게만 마을로 돌아가면 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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