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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48화 (48/404)

48.공동의 적 2

후안 백작이 던진 다섯 번째 스피어가 절벽 깊숙이 박혀든 순간 페링 남작이 기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가자! 곧장 절벽 위를 점령한다!”

페링 남작이 가장 선두에 서서 달려나가자 기사단이 남작의 뒤를 바짝 따라붙으며 둔덕을 빠르게 내려갔다. 남은 두 개의 스피어를 연달아 던진 후안 백작은 절벽을 향해 일직선으로 뛰다가 십여 미터 남겨두고 공중으로 단번에 뛰어올랐다.

그때였다. 후안 백작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순간 절벽 위에서 빛살처럼 빠른 화살이 정확히 후안 백작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절벽으로 뛰어오르는 순간을 정확히 노린 공격이라 최상급 엑스퍼트인 후안 백작으로서도 피할 수 없었다. 치명적이면서 예측하지 못한 공격이었다.

콰앙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후안 백작이 뒤로 빠르게 퉁겨져 날아갔다.

퍽- 주르륵

그대로 추락해 땅을 구를 뻔한 후안 백작은 바닥에 검을 박아 넣어 겨우 넘어지지 않고 멈춰 섰다. 땅에 파묻힌 검을 따라 바닥에 깊은 고랑이 생기며 길게 밀려난 흔적을 만들었다.

“백작님!”

백작이 뒤쪽으로 튕겨 나가는 장면을 목격한 제국의 기사들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최상급 엑스퍼트가 저렇게 밀려버릴 정도의 공격이라면 기사단원 중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후안 백작이 투창을 던져 힐튼 남작을 물러나게 한 상황이 그대로 후안 백작에게 재현된 것이다.

“비켜라!”

후안 백작이 다가와 부축하려는 페링 남작을 짜증스럽게 밀쳐냈다. 절벽 위 화살이 쏘아진 곳을 노려보는 그의 눈은 분노가 이글거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받은 강력한 공격이었다. 비록 자신을 밀어낼 정도로 강력한 힘과 빠른 스피드를 내포한 화살이지만 대지에서 공격을 받았다면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할 곳도, 달리 충격을 해소할 방안도 없는 공중에서 받은 공격이라 충격은 고스란히 후안 백작이 감당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지금과 같은 공격은 기사단 안에서도 후안 백작을 제외한 누구도 쉽게 받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상급실력자인 페링 남작이라면 화살을 피할 순 있겠으나, 온전히 쳐내기란 쳐내긴 부담스러울 수준이었다. 그만큼 대단한 힘과 속도를 지닌 강력한 화살이었다. 그러니 기사들이 화살을 막아내며 절벽 위로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공격한다.”

* * *

“보셨습니까? 최상급 엑스퍼트가 밀려났습니다.”

쏘아진 화살을 쳐내다가 그대로 추락한 최상급 엑스퍼트 기사를 목격한 일칸이 경악한 얼굴로 절벽 위를 올려보며 소리쳤다.

“호들갑 떨지 말게 나도 보았으니.”

“놀랍지 않습니까! 저들 중에 최상급 엑스퍼트를 밀어낼 강력한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궁수가 존재한다니…. 만약 우리가 먼저 공격을 받았다면….”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일칸이 중얼거렸다.

“놀랄 것 없다. 충격을 해소할 수 없는 공중에서 급작스럽게 날아든 화살을 막아냈기 때문이니.”

“하지만 최상급 엑스퍼트가 저렇게 밀렸단 건 그에 준하는 힘과 스피드를 가진 위력적인 화살이란 것 아닙니까? 저만하면 제국의 기사들도 함부로 덤비지 못할 겁니다.”

“글쎄, 과연 그럴까?”

힐튼 남작이 절벽 위를 바라보며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씀인지?”

“저곳에는 최상급 엑스퍼트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야. 최상급 엑스퍼트 하나만 있었다면 어찌어찌 막아내는 게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 저곳엔 수십 명의 기사까지 있다. 무엇보다 아무리 뛰어난 궁사라도 저런 강력한 화살을 계속해서 날릴 수 없는 노릇이지.”

“그럼….”

“이대로는 제국의 기사들 모두를 막아낼 수 없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네.”

힐튼 남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국의 기사들이 다시 절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시 붉은 피풍의를 휘날리며 절벽 위를 향해 뛰어오르는 기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 *

일행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단 한 발의 화살이지만 카일이 쏜 화살이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두 눈으로 똑똑이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추락한 기사가 최소한 상급이상의 실력자란 사실은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자네…!”

“놀랄 것 없습니다. 공중에 뛰어오르는 순간을 노린 덕분이니.”

카일은 담담하게 다음 화살을 뽑아 들어 시위에 걸었다. 카일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체공 상태에서 화살을 맞은 것도 있지만 카일이 화살의 강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약간의 오러를 담았기에, 화살이 궁력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어 후안 백작을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전 저 자가 절벽 위로 올라오는 것을 막아보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다른 자들을 합심해 막아주셔야 합니다.”

“일겠네. 우리가 최대한 저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보겠네.”

카일은 지금 절벽 위로 올라오려는 실력자를 저지하는 것만으로도 전력을 기울여야 하기에 다른 기사들은 신경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

주안이 카일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지요.”

“내가 부탁할 말이라네.”

격려의 눈빛을 주고받은 뒤 주안은 주먹만 한 돌을 들어 올렸다. 잠시 제국 기사들의 공격이 주춤했을 때 오러를 이용해 절벽 귀퉁이를 잘라 가져 온 돌이었다. 기사가 검이 아니라 돌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시안느 역시 과감하게 검을 버리고 돌을 주워들었다.

“저도 돕겠어요.”

언제 나왔는지 숨어 있던 절벽 틈에서 나온 이니엘 영애가 자신의 주먹만 한 돌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가씨! 이러시지 않아도 저들은 저희가 막아낼 거예요.”

시안느의 만류에 이니엘은 차분히 반박했다.

“지금은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필요하지 않나요.”

“하지만….”

“이번 일은 와이번 알을 고집한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예요. 그러니 저도 도울 수 있게 해주세요.”

이니엘 영애의 말에 시안느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주안 기사단장에게 도움의 눈짓을 보낼 때였다.

“놈들이 몰려옵니다.”

카일이 급히 주안 단장을 향해 소리치며 화살을 날려 보냈다.

피잉- 꽝

화살은 목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목표물은 당연히 절벽을 오르려 하는 후안 백작이었다. 그때 반대쪽에서 페링 남작이 나타났다.

“이런!”

페링 남작 역시 상급실력자인 만큼 도약력이 대단했다. 카일은 재빨리 페링 남작을 향해 화살을 날려 보냈다.

페링 남작과 후안 백작이 절벽의 양쪽에서 달려들자 자연스럽게 카일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둘 중 하나라도 절벽을 오르는 순간 그대로 전멸이기 때문이었다.

백작과 남작이 좌우에서 카일을 견제하는 사이, 절벽에 다다른 기사들은 절벽에 단단히 박힌 창대를 잡고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단장님!”

화살을 날리고 있던 카일이 주안을 급히 불렀다. 이니엘 영애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던 시안느와 주안이 동시에 몸을 돌렸다.

“모두 돌을 던져라!”

주안이 이니엘 영애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절벽을 오르는 기사들을 향해 바위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주안의 허락이 떨어지자 시안느도 더는 영애를 막지 못하고 절벽으로 다가가 커다란 바위를 던지기 시작했다.

* * *

“으악~.”

거대한 바위에 얻어맞은 기사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절벽에 익숙하지 않은 기사라도 엑스퍼트에 오른 만큼 대단한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었다. 바위를 얻어맞고 아래로 추락하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은 정신을 잃지 않고 재빨리 중심을 잡으며 절벽에 박힌 창대를 잡아 몸을 멈춰 새웠다. 그리고는 다시 절벽을 기어올랐다.

쉬익 퍽

시안느가 던진 바위에 어깨를 맞고 떨어지던 기사가 절묘하게 몸을 틀어 다시 절벽에 박힌 창대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다시 절벽에 달라붙어 오르기 시작했다.

꽝-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붉은 투창 한 자루가 기사의 가슴에 이어 바위까지 깊숙이 파고들며 절벽을 붉게 물들였다.

“커허억.”

기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가슴에 박힌 붉은 스피어를 두 손으로 틀어쥐었다.

마치 창대를 뽑으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듯 보였지만 이내 절벽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어트렸다.

후안 백작이 일칸을 향해 던진 스피어를, 힐튼 남작이 되돌려 준 것이다. 축 늘어진 기사에게서 점점이 떨어지는 핏방울이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힐튼 남작이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공격해라!”

일칸이 이끄는 마파린 후작가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절벽을 오르는 제국의 기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힐튼 남작이 절벽을 오르는 제국 기사들의 숫자가 절반을 넘자 과감하게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죽여라!”

힐튼 남작은 자신을 찔러오는 기사의 검을 허리를 살짝 비틀어 피하며 짧게 검을 휘둘러 빠져나갔다. 그러자 힐튼 남작을 공격한 기사의 허벅지가 쩍 갈라지며 피를 뿜어냈다.

“크아악!”

비명과 함께 물러난 기사의 측면으로 힐튼 남작의 뒤를 따라 달려오던 마파린 후작의 기사가 순식간에 다가와 그대로 검을 휘둘러 목을 쳤다.

“커억~.”

목이 떨어져 나가며 제국 기사의 피가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참혹한 장면에도 마파린 후작가의 기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힐튼 남작의 뒤를 바짝 뒤쫓으며 달려나갔다.

힐튼 남작은 마치 스스로 창날이 된 것처럼 거침없이 돌파하며 제국 기사들의 진형을 무너트렸다. 그 뒤를 따르던 후작가의 기사들은 힐튼 남작을 막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부상을 당한 제국 기사들의 목에 사정없이 검을 휘둘러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페링!”

막 카일의 화살을 쳐낸 후안 백작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페링 남작을 불렀다. 그러자 후안 백작의 뜻을 알아차린 페링 남작이 절벽을 박찬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뒤로 날아가다, 몸을 뒤집어 막 제국 기사를 베어낸 힐튼 남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놈! 죽어라!”

푸른 오러를 잔뜩 불어넣은 오러 소드가 힐튼 남작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미 페링 남작이 절벽을 박차는 순간 공격을 대비하고 있던 힐튼 남작의 검신도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검술로만 제국 기사를 상대해도 무리가 없었으나, 페링 남작의 오러 소드는 단순히 검술만으로 받아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콰앙

오러를 잔뜩 머금은 검이 서로 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푸른 오러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두 사람의 주변으로 몰려 있던 기사들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음….”

페링 남작은 자신의 검격을 막아낸 사내를 노려봤다. 단 한 차례의 격돌이었으나 알 수 있었다. 놈의 실력이 자신보다 윗줄이라는 것을.

“난 마파린 후작가의 힐튼 남작이다. 신분을 밝혀라!”

눈을 가늘게 뜬 힐튼 남작이 한동안 상대를 노려보다가 불현듯 검을 사선으로 내리며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난 카데인 황실 근위 제5 기사단의 부단장 페링 남작이다.”

“카데인 황실근위대가 이곳은 어쩐 일인가?”

“하하! 이곳 오크 랜드는 누구의 땅도 아니다. 허니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곳 아닌가?”

페링 남작의 어투엔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힐튼 남작의 표정이 불쾌함에 일그러졌다.

페링 남작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이곳 오크 랜드는 주인이 없는 땅이었다. 먼저 차지하는 자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땅이지만 반대로 누구도 가지려 하지 않는 땅이기도 했다. 이 땅을 가지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곳 오크 랜드가 주인이 없는 땅이라 해도, 너희가 먼저 우릴 공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부인할 생각은 없다.”

“설마 전쟁을 바라는 것인가!”

“하하, 전쟁? 굳이 전쟁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너희 모두 여기서 죽을 텐데?”

페링 남작이 기습적으로 힐튼 남작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힐튼 남작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며 찔러오는 검격을 걷어냈다.

페링 남작의 검이 힐튼 남작의 검과 부딪히는 순간 페링 남작의 검이 한 바퀴 크게 회전하며 힐튼 남작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예상치 못한 궤적에서 나온 변칙적인 검격이었다. 깜짝 놀란 힐튼 남작이 급히 두 걸음을 물러나며 뒤로 쓰러질 듯 허리를 접었다.

하지만 힐튼 남작 역시 최상급에 근접한 기사!

허리를 접는 동시에 검을 급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떨어져 내리는 페링 남작의 검을 쳐냈다.

꽝-

이어 쓰러지려는 몸을 회전시켜 검신으로 바닥을 가볍게 튕겨낸 힐튼 남작은 페링 남작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이를 짐작했다는 듯 페링 남작은 힐튼 남작과 검이 부딪치면서 일어난 충격을 이용해 그대로 뒤로 날아가 바닥에 착지했다.

“…검술이 대단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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