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5화 (35/404)

35.오크랜드로 2

현재 가장 앞서 걷는 사람은 카일이었다.

다음으로 이니엘과 주안, 그리고 보틀러가 줄줄이 붙어 있었다. 피툰은 가장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카일은 눈짓으로 살짝 이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일행 중 가장 가벼운 복장이었는데, 체력이 제일 떨어지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상자를 운반하기 때문이었다.

이니엘이 쉽게 상자를 들 수 있도록 카일이 상자에 가죽끈을 엮어 등 뒤로 맬 수 있게 만들어 줘서 그런지 제법 잘 따라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쉴 곳이 나올 겁니다.”

휴식처가 나온다는 카일의 말에 누구보다 이니엘의 얼굴이 가장 밝아졌다. 이니엘이 메고 있는 상자엔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어 무게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이니엘에게는 그 정도의 무게만으로도 장시간 메고 있기에는 벅찬 탓이었다.

카일의 말대로 쉴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났다.

쓰러진 블루 우드를 후위에 두고 돌과 바위들을 주변에 쌓아 방벽을 만든 장소였다. 이런 휴식처는 요새까지 이동하면서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곳을 휴식처로 정한 가장 큰 이유는 블루 우드가 쓰러지면서 드러난 뿌리 부분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물 때문이었다.

자경단원들은 블루 우드가 쓰러진 이유를 이 물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몸집이 거대한 만큼 두꺼운 블루 우드의 뿌리 중 일부가 지하 수맥을 건드려, 뿌리 일부가 썩어가 쓰러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덕분에 나무뿌리 주변으로 작은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곳을 이번에 자경단원들이 중간 휴식처로 만든 것이다.

“이곳은 체계가 잘 잡혀 있군요. 자경단을 이렇게 운영하는 곳은 처음 봐요”

“저 역시 처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경단에 불과해도 이들의 조직과 체계는 정예병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요. 실력과 능력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대단하군요!”

“보일이란 자가 이곳의 체계를 만들었고, 저 카일이란 소년이 이곳에 여러 요새를 만들어 축차 방어를 생각해 냈다고 합니다.”

“보일이라는 사내가 이곳의 천인장을 맡을 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카일을 의식한 이니엘 영애와 주안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마나 운용이 자유로운 카일에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곤소곤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모두 들은 카일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가방 안에서 육포를 꺼내어 씹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틀러와 피툰 역시 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어 씹기 시작했다.

“아가씨도 드세요.”

시안느가 이니엘에게 다가와 등에 메고 있던 가죽가방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어 주었다.

“난 아직 배고프지 않아요. 저보다는 시안느 경과 단장님이 드셔야지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이니엘이 손사래 치자 기사단장인 주안이 다가와 말했다.

“먼 길을 가야 합니다. 이런 때에는 쉬는 동안 식사를 하셔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입에 맞지 않아도 드셔야 합니다.”

엄격한 주안의 음성에 하는 수 없이 이니엘은 시안느가 건네는 육포를 받아 들었다.

그동안 추격자들을 피하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어, 건량이나 육포로 식사를 대신하곤 했다. 그러나 백작 가문에서 귀하게 자라 고급스런 요리만 먹던 영애인 이니엘에게 딱딱하고 맛이 없는 육포는 곤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동 시 마차를 이용했기에 한두 번 식사를 걸러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직접 걸어야 하니 체력이 떨어진다면 일행에게 짐이 될 터였다.

이니엘은 약간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손안의 육포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 육포는 지금까지 보았던 육포와 전혀 달라 보였다.

이전에 보았던 육포는 돌처럼 딱딱하면서도 소금처럼 짜기만 했다. 그러나 손에 든 육포는 살짝 말랑말랑한 느낌의 육포였다.

입안에 넣고 몇 번 우물거리자 부드러운 육질 사이로 밴 적당한 간과 색다른 향이 올라왔다. 무심코 감탄이 나올 만큼 훌륭한 맛에 이니엘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이게 육포라니….”

쉴 새 없이 입술을 우물거리며 이니엘이 중얼거렸다. 옆에서 육포를 씹고 있는 시안느와 주안의 반응 역시 이니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육포를 씹는 보틀러와 피툰의 모습에서도 결코 억지로 먹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영애와 기사들만 먹는 특별한 육포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이제 그만 출발하도록 하죠.”

카일은 일행이 어느 정도 배를 채운 것 같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일행을 보며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되도록 육포는 아껴 드세요. 한 번에 다 먹어 버리면 나중에 힘들어지니까요.”

그러면서 이제 막 시안느에게 새로운 육포를 건네받은 이니엘을 쳐다보았다.

벌써 커다란 육포만 세 개째 먹고 있기 때문이었다.

용병 출신인 보틀러와 피툰은 물론이고 기사단장인 주안과 시안느 역시 경험이 있기에 식량을 적당히 아껴 먹을 테지만, 이니엘은 육포에 맛이 들어서인지 계속 육포를 먹고 있어 이를 지적한 것이다.

카일의 지적에 이니엘이 흠칫 어깨를 떨자 시안느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제 몫이라도 드릴 테니까요.”

“음… 그렇다면, 더 이상 간섭하지 않도록 하지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카일은 몸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지름길로 갈 겁니다. 길이 좁고 가파르니까 조심해서 천천히 따라오세요.”

카일은 길이 보이지 않는 경사지를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평지를 걸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험난한 지름길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처음부터 가파른 경사지가 아니라 완만하게 오르는 길목이었다는 점과 블루 우드로 인해 잡목과 풀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점점 산 위로 올라갈수록 거대한 블루 우드의 수는 줄어들고 작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교 대상이 블루 우드라 그런 것이지 따로 때어놓고 보면 그 나무들 역시 크기가 그리 작지 않은 축에 속했다.

우거진 나무와 잡목들이 늘어나고 길은 점점 더 험난해 졌지만, 카일은 능숙하게 길을 찾아 전진하며 종종 머리를 돌려 뒤쪽의 하늘을 확인하고는 했다.

“정말 거침없네요. 이런 곳에서 길을 찾아가다니.”

나무가 우거져 길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주변을 유심히 살피던 이니엘이, 옆에서 걷던 기사단장 주안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정찰을 했다고 하니 이런 지형에 익숙할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도저히 길이 보이지가 않는걸요.”

이니엘의 말에 주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때 뒤에서 따라오던 보틀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을 보세요. 이 길은 아마도 동물들이 지나다니는 길인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작은 길이 나 있습니다.”

보틀러의 말대로 희미하게 작은 길이 이어진 흔적이 보였다.

“정말 그렇군요!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길이 있어요.”

이니엘이 놀란 얼굴로 길을 살펴보았다.

아마도 작은 동물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작은 동물의 길이기 때문인지 중간중간 길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카일은 귀신같이 작은 길을 찾아 걸어갔다.

한참을 걷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몬스터나 오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동물들 역시 발견하기 어려워서 여기가 정말 오크 랜드로 가는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시안느가 카일에게로 다가왔다.

“정말 여기가 오크 랜드가 맞나요? 지금까지 오크는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여긴 오크 랜드가 아니라 그곳으로 가는 길일 뿐이에요.”

“아니….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오크나 몬스터가 없으면 좋은 것 아닌가요? 괜히 몬스터를 상대해서 좋을 것 없죠.”

“그건… 그렇지만 이상하잖아요! 하루 종일 걸었지만, 오크는커녕 동물 하나 본 게 없으니까요.”

시안느의 말에 카일이 피식 웃으며 앞쪽에 있는 작은 언덕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언덕을 넘으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호기심을 돋우는 카일의 말에 사안느를 비롯한 일행들은 서둘러 언덕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언덕을 넘어서야 비로소 카일이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언덕을 넘자 나타난 것은 병풍처럼 이어지는 거대한 수직 절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이 존재하는 이 장소는 몬스터의 활동 자체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여긴 막다른 곳이잖아요!”

입을 벌린 채로 두리번거리던 시안느가 카일을 향해 소리쳤다.

“보기엔 수직 절벽으로만 이뤄진 것 같아도, 절벽 사이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좀 험하게 보여도 이 길로 가는 것이 추적을 따돌리기에 좋을 겁니다. 이곳으로 가면 3~4일 안에 오크 랜드 입구 쪽에 도착할 수 있어요.”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카일의 시야 사이로 저 멀리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협곡이 잡혔다.

샤론 마을에서 협곡을 따라 오크 랜드인 통곡의 협곡으로 가려면 대략 7일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 절벽은 오크 랜드 입구까지 거의 직선 방향으로 이어져 있어 통곡의 협곡까지 3일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변수로 일행 중 체력이 떨어지는 이니엘 영애가 있어 어쩌면 하루에서 이틀 정도 더 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추격자들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는 이곳이 가장 빠른 길이란 점이었다.

절벽의 위용에 질린 일행은 선두에 선 카일을 따라 주춤주춤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절벽에 가까워진 그들은 카일이 말한 길을 알아챌 수 있었다.

멀리서는 도저히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수직 절벽으로만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서자 절벽과 절벽 사이, 크고 작은 바위들이 켜켜이 쌓여 생긴 바위틈 사이로 한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의 작은 공간이 있었다.

가죽가방을 뒤적거린 카일은 얇은 가죽을 여러 번 꼬아 만든 밧줄을 이용해서 일행의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절벽으로 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 * *

샤론 마을에 일단의 기사들이 다가온 것은 카일 일행이 절벽으로 들어섰을 즈음이었다.

기사들의 최선두에는 켈토 기사단장과 그를 수행하는 볼란,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사단 20여 명이 서 있었다.

그러나 남작령에서 기사단이 출발할 때쯤 자경단에서도 기사단의 출발 소식을 접한 상태라, 이미 보일이 마을 입구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기사단장인 켈토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보일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거, 보일 대장이 미리 나와 계셨군.”

“어서 오십시오. 단장님.”

“하하! 이거 오랜만이군, 내 오늘은 그대 집에서 술 한잔 얻어먹어야겠네. 지난번에 보내준 술은 이미 동이 났지 뭔가.”

켈토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저번에 벌어졌던 사건 이후 기사단장 켈토는 보일과의 사이를 풀기 위해 꾸준히 마을에 들려 친분을 쌓아왔다. 덕분에 이제는 보일과 술을 나누어 마시거나 보내어 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방금 켈토가 말한 술 역시 저번에 보일이 보내어준 술이었다. 맛이 훌륭해 아껴 마시고 있던 참인데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으로 인해 모두 동이 나고 만 것이다.

“이런, 큰일이군요. 저도 아껴먹는 술인데….”

보일이 짐짓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사실 카일이 빚는 술은 영주 성에서도 꽤 유명해져 있었다. 몇 년 전 방문한 남작과 기사에게 나누어준 뒤 술맛을 잊지 못한 남작이 팔아달라고 하면서 기사단에서도 유명해진 술이었다.

매달 카일이 빚는 술은 이젠 사람 키만 한 옹기 한 단지를 생산할 정도로 늘어났다. 이중 절반 정도는 남작가에 판매했고, 나머지는 자경단에 나머지를 카일과 보일이 마시거나 아니면 절벽 한쪽에 보관해 두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항상 남작가에서 원하는 수량의 술을 공급할 수 없어 남작가에서는 제법 귀한 대접을 받는 술이었다.

물론 카일도 혼자서 커다란 옹기 항아리를 채울 정도의 증류주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남작가에서도 술의 양을 늘려 달라고 억지를 부릴 수도 없어 특별한 날만 사용하는 고급술로 인정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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