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3화 (33/404)

33.와이번 나이트

“좋다. 이 일은 너에게 맡기마!”

“그게 무슨 말이죠? 우린 지금 당신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시안느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영애인 이니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저희와 함께 백작가로 가는 건 어떤가요.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물론, 원한다면 아버지께 말씀드려 기사 작위까지 받게 해드릴 수 있어요.”

회유하기 위해 영애는 기사 작위라는 단어를 꺼냈으나 보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 이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기사 작위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보일의 단호한 말에 이니엘을 포함한 모든 일행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저보다는 카일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보일이 뒤로 돌아서려 하자 카일이 그를 붙잡았다.

“한 가지 도와주실 일이 있어요.”

“뭐냐?”

“자경단의 연락망이 필요해요.”

“아! …마파린 후작가의 기사단 역시 추적해 왔겠군.”

“예! 이쪽으로 왔다면 분명히 정식으로 남작가에 도움을 청할 거예요. 이 작은 남작령에 기사단을 숨겨 들어올 수는 없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무장한 병력을 무작정 영지로 진입시키기도 부담이 될 겁니다.”

“미리 필론을 영주성에 보내놓겠다. 아마도 정식으로 남작가에 들어갔다면, 분명 하루 정도 남작가에 머물 테니까.”

급하다고 해도 정식으로 귀족가에 들어가게 된다면 하루 정도 머무는 것이 예의였다.

“부탁드려요.”

보일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밖으로 나가자 카일이 보일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자, 계속할까요?”

일행들은 폭풍처럼 진행되는 일 처리를 따라가기도 급급했으나, 우선 카일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물끄러미 카일을 관찰하던 이니엘은 목에 걸려있던 황금빛 열쇠를 풀어 탁자에 놓여있던 상자에 끼워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허….”

카일의 입에서 허탈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상자 안에 대단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자 안에는 커다란 알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설마 이 알 때문에 쫓기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카일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순백색의 알은 도자기같이 매끈한 표면에 크기는 카일이 전생에 보았던 타조 알보다도 세배는 커 보였다. 하지만 이 점을 제외한다면 특별한 보물처럼 보이는 부분은 없었다. 그저 연약한 영애가 어떻게 지금까지 저 무거운 알을 가지고 다녔는지 신기할 노릇이었다.

“그래요. 이 알 때문에 모든 일이 일어났죠.”

“이게 도대체 무슨 알이길래….”

카일이 상자 안으로 손을 뻗어 알을 만지려 하자 기사단장인 주안이 급히 카일의 앞을 막아섰다.

“이 알은 아무나 만지면 안 된다.”

“무슨 뜻이죠?”

카일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으나 기사단장은 비키지 않았다. 팽팽한 대치상황은 의외로 카일이 순순히 물러나며 깨졌다. 카일이 자리에 돌아가 앉자 이니엘은 상자를 닫고 황금열쇠를 빼내 다시 목에 걸었다.

“혹시 와이번을 아시나요?”

“와…이번이라면?!”

뜻밖의 존재가 거론되자 카일이 몸을 경직시켰다.

와이번은 최상, 최강의 몬스터로 알려져 공포의 대상이었다. 미지의 생물이었던 와이번에 관련된 사실이 밝혀진 건 약 300년 전으로 한 던전에서 자료가 발견되면서부터였다.

그 자료에 적힌 것은 바로 와이번이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전설로만 남은 드래곤이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들어 낸 마법 생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맹약을 통해 와이번을 길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설마 이 알이 와이번의 알이란 말입니까?”

“그래요. 이 알이 바로 와이번의 알이에요.”

이니엘의 말이 사실이라면 추격이 이루어진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맹약을 통해 와이번을 길들일 수 있게 되면서 제국이나 왕국은 물론이고 대귀족들 역시 와이번을 보유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음…. 허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차라리 와이번 나이트로 알을 이송하면 안전하게 영지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와이번 나이트 또는 천공의 나이트라 불리는 이들은 소드 마스터를 제외한 최강의 기사들로, 와이번과 맹약을 통해 탄생한 기사들이었다.

이후 기사들만이 아니라 용병들 중에서도 와이번과 맹약을 통해 와이번을 보유한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간에서는 기사 작위가 없는 용병들을 천공의 라이더 또는 와이번 라이더라 불렀다.

“처음에는 우리도 와이번 나이트를 통해 알을 운송하려 했어요. 하지만 와이번이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육로를 통해 비밀리에 영지로 복귀 중이었어요.”

“와이번이 직접 알의 운송을 거부했다는 말인가요? 설마 와이번과 대화가 가능하단 말인가요?”

“그래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맹약자와는 대화가 가능해요.”

카일은 이니엘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흥미롭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마파린 후작가에서 추격을 시작했다면 분명 와이번 나이트들도 나서지 않았나요? 그랬다면 도주가 쉽지 않았을 텐데.”

와이번 나이트는 하늘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추적을 하므로 이니엘 일행도 쉽게 추적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휴~ 각 가문은 와이번을 쉽게 드러내지 않아요. 특히 귀족일수록 와이번 기사들의 전력을 더더욱 감추고 있지요.”

“전력을 감추기 위해 와이번 기사들을 숨긴단 말인가요?”

“그것도 그렇고…. 정확히는 마파린 후작가가 이번 일이 다른 가문에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에요.”

“흠….”

이니엘의 말은 일견 타당했으나 카일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카일은 짙은 의문이 서린 얼굴로 상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전력을 감추기 위해 와이번 나이트들을 감춰두고 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중요한 일에 와이번 나이트를 동원하지 않는다는 게 카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파린 후작가와 그린넨 백작가의 사이가 나쁜 걸 고려하더라도, 와이번 알 하나 때문에 영지전을 감수하면서까지 북부의 반대편인 남부의 오지마을까지 추적한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영애가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카일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 이니엘과 주안이 슬쩍 눈빛을 교환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도리가 없었으나 밝히지 않은 사실에 관련된 것임은 분명했다. 몇 초간의 눈빛 교환이 끝나고 이니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혹 와이번의 종류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요?”

“와이번에게도 종류가 있나요?”

“정확하게 4종류의 와이번이 존재하고 있어요. 골드, 블랙, 레드, 화이트 이렇게 와이번이 가지는 네 종류의 색깔로 구분을 하고 있지요. 이들 와이번은 색깔만큼이나 각각의 특징이 다르죠. 다만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진 와이번은 골드와 레드 두 종류가 전부에요. 제국에 블랙 와이번과 맹약을 맺은 자가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정확히는 알 수가 없어요.”

이니엘이 가만히 상자를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자 안에 있는 와이번은 달라요! 지금까지 알려진 골드나 레드 와이번이 아닌 저 광활한 북부 설원에서 서식한다고 알려진 설원의 학살자,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죠.”

내내 대화에 끼어들지 않던 보틀러가 대뜸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원의 학살자는 아직까지 정확히 본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전설의 와이번입니다. 정말 이 알이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란 말입니까?”

지금까지 보틀러는 이 추격전을 그저 와이번의 알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여기고 있었지,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만약 이 알이 화이트 와이번의 것이라면 마파린 후작가는 절대 추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수가. 설원 학살자의 알이라니….”

보틀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여간 충격을 받은게 아닌 모양이었다.

화이트 와이번이 설원의 학살자로 알려진 것은 오래전 북부 설원에 서식하는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아이스 트롤 무리가 학살당한 일을 누군가 목격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곤 뚜렷한 증거가 없어 그저 전설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 지금이라고 딱히 변한 것은 없어서, 지금껏 화이트 와이번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미지의 종이었다.

“이 알은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 분명해요. 바로 이 알을 발견한 곳에서 화이트 와이번의 사체를 발견했죠. 안타깝게도 눈사태 때문에 와이번의 사체는 얻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시안느가 이니엘 영애를 대신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토샤 자작가는 이니엘 영애의 외가였다. 북부 설원과 맞닿아 있는 영지로, 대규모의 광산을 운영하며 대단히 부유한 영지 중 하나였다. 와이번의 사체도 광산을 탐색하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헌데 와이번의 알에 손을 대면 왜 안 되나요?”

“일종의 불문율이다.”

카일의 물음에 답한 것은 보틀러였다. 한동안 넋을 빼놓고 있던 그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였다.

“성체 와이번과는 맹약을 맺지만 와이번의 알의 경우는 다르다고 전해지고 있다.”

보틀러는 비교적 자세하게 와이번의 알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와이번의 알과는 당장 맹약을 맺을 수가 없지만, 대신 알의 파장과 비슷한 자가 꾸준히 마나를 공급해주면 부화된 와이번은 자신에게 마나를 공급해준 자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오직 그 사람과 맹약을 맺는다.”

“와이번의 알에서 파장이 흘러나온단 말인가요?”

“그래. 와이번의 알에서 흘러나오는 파장을 통해 어미는 자신의 알을 구분하고 먼 곳에서도 찾을 수 있지. 와이번의 알에 마나를 공급해주는 것 역시 어미 와이번을 대신해 기사들이 마나를 공급해주며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지!”

“신기하군요. 그럼 알에서 부화한 와이번은 다른 자와는 맹약을 맺지 않는 건가요?”

“물론 아니다. 맹약자가 죽으면 다른 맹약자를 찾는다. …아무튼 그래서 맹약을 맺을 자가 아닌 사람이 함부로 와이번의 알을 만지지 못하게 한다. 만약에라도 와이번과 같은 파장을 가진 자가 알을 만졌다가는, 와이번과 맹약을 맺을 수 있는 또 다른 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이번 알의 주인이 아닌 이상 함부로 알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하지만 와이번 알과 비슷한 파장을 가진 기사를 구하기가 쉬울까요? 그런 자를 찾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카일의 말에 보틀러가 고개를 끄덕이며 품 안에서 손가락 두 마디 굵기의 수정을 꺼내어 카일에게 내밀었다. 조그마한 수정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제법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 것 같으냐?”

“그냥 수정이 아닌가요?”

“이것은 바로 무속성의 아공간석이라고 한다. 와이번과 맹약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지!”

“아공간석요?”

“그래! 본래 와이번의 주 먹이는 몬스터들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꾸준히 맹약자의 마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거대한 덩치의 와이번을 항시 데리고 다닐 수도 없으니, 바로 이 아공간석에 넣어놓고 다니는 거란다.”

처음 듣는 지식들에 카일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보틀러의 아공간석을 관찰했다.

“그런데 아공간석에도 속성이 있나요?”

“물론이다. 아공간석은 와이번이 아공간 속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골드는 토파즈, 레드는 루비, 블랙은 오닉스, 화이트는 다이아본드가 기본이지. 이처럼 와이번의 색과 같은 보석을 이용해 아공간석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렇게 무속성의 수정으로도 아공간석을 만들 수 있다.”

“그 말인즉슨 지금 보틀러 아저씨가 들고 있는 게 무속성 아공간석이란 소리군요?”

“카일, 용병이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것과 와이번 라이더가 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보느냐!”

“그야….”

카일은 단박에 보틀러가 던진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다. 답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는 뛰어난 검술과 재능이 있어도 어려운 일이지만, 천운으로 와이번과 맹약을 맺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와이번 라이더는 와이번과 맹약을 맺기만 한다면 누구나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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