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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30화 (30/404)

30.약간 도움

카일에게 다가온 한샘이 스프가 가득 들어 있는 나무 그릇을 내밀었다.

“듣긴 했어요. 저녁에 몇 번 소란스럽던데요?”

“녀석, 알고 있었느냐?”

“곧 잠잠해져 그냥 일어나지 않았어요. 제가 간다고 할 일도 없을 것 같고….”

“그렇긴 한데 제법 많이 쳐들어왔다. 300마리가 조금 안 되는 것 같구나.”

“예? 300마리면….”

카일이 놀란 얼굴로 한샘을 바라보았다.

비록 자경단원이 200명 정도 있긴 해도 300마리의 몬스터가 야밤에 습격을 해왔다면, 큰 피해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카일은 그것도 모르고 한가하게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 공격한 놈들은 2~30마리의 소규모 무리라 쉽게 제압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나무 위에 30명을 더 올려보냈더니 늦은 저녁에 대규모로 쳐들어 왔지 뭐냐. 다행히 나무 위에 올려놓은 자경단원 덕분에 먼저 녀석들을 발견해 쉽게 막아 낼 수 있었지.”

한샘의 말에 쓰러진 나무 위를 바라보자 약 100여명의 자경단원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다행이군요.”

“그래. 의외로 저렇게 얽혀 있는 나뭇가지가 방어에 도움이 되더구나. 일단 저곳을 좀 살려 봐야겠어.”

나무가 쓰러지면서 나무둥치가 앞쪽으로 튀어나와 접근하는 오크를 미리 관측하고 여러 방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마치 성벽의 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방어에 도움을 준 것이다.

“저곳 말고도 입구와 바위 절벽에 단원들을 배치하면 삼면에서 공격할 수 있겠는데요!”

“그래. 실재로도 그렇게 막았다.”

“나무 둥치가 너무 앞으로 돌출된 것 같은데, 그건 어쩌시려구요?”

“지금 보니 그렇구나. 이번엔 입구 쪽만 노리고 공격했지만, 목책이 너무 길어져도 방어선이 너무 늘어져 병력이 부족할 수 있으니….”

“그럼 10여 미터만 잘라내서 입구 쪽 목책을 보강하시죠.”

“좋은 생각이다.”

카일은 한샘에게 말한 대로 나무를 다시 10여 미터 정도를 잘라내기 위해 다시 종일 도끼질을 해야 했다.

나무가 쓰러지기 전엔 나무의 중량이 있어 절반만 잘라도 나무가 쓰러졌지만, 누워 있는 나무는 결국 도끼로 전부를 잘라내야 해 시간이 배 이상 걸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전보다 오러의 조절이 더 섬세해져 앞서 나무를 자를 때 보다 수월해졌단 거였다.

카일이 나무와 씨름하는 동안 자경단원과 한샘은 나무의 잔가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름이 6미터가 넘는 나무의 가지가 일반적일 리 없었다.

대부분의 나뭇가지들은 웬만한 나무 한 그루의 굵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이용해 자경단을 위한 건물과 시설을 만들기 위해, 한샘과 자경단원들은 낑낑거리며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일은 나무 둥치를 잘라내는 작업을 완료했다.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잘라낸 나무는 자경단원들이 힘을 모아 굴릴 정도로 컸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굴러간 나무는 벌어져 있던 틈을 막았다. 남은 공간은 작은 수레가 지날 정도의 출입구를 다는 게 고작일 정도로 협소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군요.”

“그거야 안쪽만 그렇지 바깥쪽 가지는 손도 대지 못했다. 일단 바깥쪽 가지 일부는 제거해 오크들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막고, 남은 가지들은 날카롭게 깎아 오크의 접근을 막을 거야. 참, 자네도 오크 가죽을 가져가야지.”

“전 전투에도 참여하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나무를 쓰러트려 방벽을 만들어 준 건 네가 했지 않느냐! 너에게 가죽이 돌아간다고 불평할 사람들은 없다.”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상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한샘은 카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쳐갔다.

이번에 있었던 대규모 오크 침입은 별 피해 없이 수백 마리의 오크를 잡은 일종의 부가 수입과 마찬가지였다. 만일 카일의 도움으로 자이언트 블루 우드를 쓰러트리지 않았다면 자경단으로서도 상당한 피해를 보았을 터라, 카일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가죽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 *

카일이 요새에 머문 지 보름 정도가 지났다. 방벽 바깥쪽 가지는 제거됐고 쉽게 나무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나무를 파낸 계단이 만들어졌다. 훌륭한 방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중간에 몇 번 더 오크들이 침입이 있었지만, 충분히 안정적으로 방어가 이루어졌다. 제법 많은 오크들이 잡혀 카일도 넉넉하게 가죽을 받아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도 기존 요새를 보강하고 넓히는 작업이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카일이 마을에 돌아왔을 때에도 보일의 얼굴은 한동안 보기는 어려웠다.

소식을 들은 다핸 남작이 요새 건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 추가로 병력과 기사단은 물론이고 행정관까지 나와 보일로서도 정신이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자경단의 상주 규모와 인원, 그리고 위치가 변경된 것도 영주의 과감한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일 때문에 한동안 정찰 활동은 접어야 했다.

이미 수백의 자경대와 병사들이 숲에 나가 있고 필론과 매튜 역시 요새 확장과 건립을 위해 나가 있어 굳이 정찰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카일은 일단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한 후 자경단 건물로 향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이 행정관과 기사단장이 있는 마을회관에 가 있을 시간이라 자경단 건물에 있는 사람이야 몇 명 되지 않을 터였다.

“어! 넌 카일 아니야?”

“안녕하세요!”

문 앞에 두 명의 건장한 사내 중 하나가 카일을 발견하곤 아는 체했다.

카일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언젠가 본 적이 있긴 했으나 말을 나눈 기억은 없었다. 이름도 모르겠어 카일은 모호한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안에 들어가 봐도 되나요?”

“응… 글쎄?”

“안되나요?”

카일의 말에 두 사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들어가 봐. 우리가 여길 지키는 건 어디까지나 저들이 도주하는 것을 막으려는 거지, 찾아오는 사람을 막으려는 건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카일이 문을 밀자 낡은 경첩에서 끼익하는 음산한 소리가 울렸다. 안에는 5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듣던 것과는 달리 사내들의 얼굴과 눈빛 어디에도 폐인과 같은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거 듣던 것과는 다른걸요?”

“필론이 다녀갔으니까!”

맑은 눈빛을 한 폴론이 대꾸했다. 카일은 시큰둥하게 머리를 까딱였다.

“어쩐지. 그래 보이네요.”

“헌데 어쩐 일이냐.”

“뭐, 저야 상관없지만 아버지가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요. 쟝과 조셉 때문에 생긴 일인데 정작 팔을 잃은 건 당신들이니까요.”

“우린 쟝과 조셉을 원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해서 한 일이니까. 물론 너 역시 원망하지 않아.”

“그래도 제가 한 일도 있으니 약간 도움을 주려고 왔어요.”

“도움? 무슨 말이지?”

카일은 말없이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의 오른손을 허리 뒤로 돌려 뒷짐을 졌다. 그리고 왼손은 검을 쥐었다.

보통 발검을 할 때 왼쪽에 검을 차고 오른손으로 검을 뽑는 것이 검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검을 뽑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카일은 왼쪽에 있는 검신을 왼손으로 잡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검 역시 역수로 잡고는 천천히 뽑아 앞으로 한발 나가며 정면을 향해 찔렀다. 그리고 다시 검을 거두고 왼발을 뒤로 빼며 역수로 검을 잡고 천천히 납검했다.

쉬익- 철컥

카일은 묵묵히 검을 뽑았다가 납검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자세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런데 동작이 연속될수록 점점 발검의 속도가 달라졌다. 이제 발검에서 시작된 찌르기는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빨라졌고, 마지막에선 은빛 호선만이 보일 뿐이었다.

쉬이익- 철컥

대략 십여 번 정도 시범을 보인 카일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폴론 일행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 발검술의 핵심은 단순히 검을 뽑는 팔과 손목의 힘만 중요한 게 아니란 점에 있어요.”

카일의 말에 폴론이 미간을 좁혔다.

“무슨 말이지? 난 아직까지 그렇게 빠른 검술은 본 적이 없다! 그만한 속도를 내려면 팔은 물론 손목과 어깨에 이르기까지 강한 힘이 필요한 게 아닌가?”

“물론 발검술은 빠름을 목적으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하체에 있어요. 이 발검술은 몸을 왼쪽으로 비스듬히 틀며 같은 쪽 발을 뒤로 물리고, 동시에 허리를 앞으로 숙이면서 검을 뽑아야 해요. 그리고 검을 뽑은 즉시 물러났던 왼발을 앞으로 내면서 검을 찌르는 게 핵심이죠. 이러기 위해선 받쳐주는 오른발과 나아가고 물러서는 왼발, 특히 허리에서부터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마지막 엄지발가락이 검에 걸리는 모든 압력을 견뎌줘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만큼 충분히 단련되어야 명확하고 정교한 검술을 펼칠 수가 있다는 걸 명심해요!”

장황한 카일의 설명이 끝나자 폴론 일행은 각자의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부상이 낫지 않아 당장 몸을 움직일 순 없어도 방금 전 카일의 움직임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깊게 가라앉은 그들의 눈빛을 살피던 카일은 조용히 밖으로 나가려 했다.

“고맙다.”

등 뒤에서 폴론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지만 카일은 모르는 척 걸음을 옮겼다.

* * *

대부분의 요새가 완성된 건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후였다. 요새가 완공되어 간다는 소식에 쟝과 조셉을 비롯한 폴론 일행은 이틀 전 최전방 요새로 향했다.

카일이 단독정찰 활동을 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나면서 마을에서 카일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워졌다.

보통 2~3일 동안 하던 정찰 기간을 7일에서 10일로 늘렸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필론 메튜 카일이 번갈아 가면서 정찰을 진행했지만, 요새 3개가 완성되고 각 요새를 보일이 관리하게 되면서, 덩달아 메튜와 필론도 적지 않은 일을 맡은 탓이었다.

영주 성에서 파견된 기사들이 돌아가고 일부 관리가 남긴 했어도 이들이 직접 자경단을 통솔하기는 힘들었기에 결국 필론과 메튜가 요새 관리에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찰 대부분은 카일의 몫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카일이 벌어들이는 수익도 상당히 많아지긴 했다. 카일뿐 아니라 요새가 생기면서 자경단원들이 벌어들이는 골드도 더 늘어났다.

요새가 생기면서 주변 오크 무리의 공격이 잦아지고 덩달아 떠돌이 오크들의 공격도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피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나 이것 역시 감당해야 했다. 그만큼 충원되는 자경단의 규모 역시 커졌을 뿐만 아니라 샤론 마을의 규모도 점차 늘어나고 이주하는 주민들도 많아졌다.

오크와 몬스터 부산물의 공급이 늘어나자 이와 관련된 일거리들 역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자경단의 대부분이 최전방 요새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샤론 마을이 이들의 휴식과 쉼터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 자경 단원들은 많은 골드를 가지고 있고 씀씀이도 커, 샤론 마을의 규모는 급격히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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