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9화 (29/404)

29.자이언트 블루우드

보일은 언제나 정찰을 나갈 때면 따로 화살을 챙기는 대신, 이렇게 가져온 화살촉과 숲에서 주워온 깃털로 필요할 때마다 화살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소총을 실험하려 절벽 위까지 올라왔지만 카일은 휴식을 취하며 습관처럼 앉아 화살을 만들기 시작했다.

화살을 대략 십여 대 정도 만들었을 땐 주변에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상태였다.

“으아악~.”

장시간 앉아있다 보니 잔뜩 굳어진 몸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풀어낸 카일은 천막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행히 이곳은 절벽 위라 몬스터 걱정 없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난 카일은 육포로 아침을 때우고는 소총을 들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두꺼운 털가죽 위에 엎드린 뒤 가죽가방을 거치대 삼아 소총을 내려놓은 후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른 아침이면 오크들이 나와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오크를 상대로 시험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간대라 할 수 있었다.

이 주변의 오크들은 대부분 떠돌이 오크들로 수년이면 수십 수백 마리로 늘어나 무리를 형성하기에, 보이는 녀석들은 족족 잡아 되도록 수를 줄여 놓아야 했다.

숨을 죽인 카일은 주변을 살펴봤다. 그때 멀리 십여 마리의 오크들이 반대쪽 협곡 위를 향해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협곡의 전체 폭은 대략 1킬로미터 정도지만, 카일이 보기엔 오크와 대략 2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카일은 천천히 볼트를 후퇴시킨 후 만들어 놓은 탄환을 약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카일이 만든 소총은 탄창이 없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단발식 볼트 액션이었다.

“일단 한 발….”

카일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깊게 심호흡한 카일은 이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퍽

탄환은 순식간에 날아가 조준했던 오크를 스쳐 좌측 나무의 측면을 뚫고 지나갔다.

“취익!”

“췩!”

“공격이다, 취익.”

놀란 오크들이 재빨리 무기를 꼬나 들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빠르게 날아온 것 같은데 그게 눈에 보이지 않아 어떤 공격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 오크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사이 카일은 총에 만들어 놓은 가늠쇠를 조정하고는 다시 약실에 탄환을 밀어넣었다.

보통 총을 쏘면 총열과 약실에 화약 잔여물과 그을음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카일이 만든 소총은 마치 탄환을 발사하지 않은 것처럼 약실과 총열이 무척이나 깨끗했다. 평범한 소총과 달리 화약을 쓰지 않고 마법 스크롤로 탄환을 감아 발사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마법이 편리하기는 하구나.”

카일이 감탄하며 만들어 놓은 총탄을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탄환은 고작 2발.

새롭게 장전을 마친 카일은 여전히 한자리에 뭉쳐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오크들을 조준했다.

목표는 큰 덩치에 유일하게 반 토막 난 녹슨 검을 들고 있는 오크였다.

적어도 작은 무리의 우두머리쯤은 되어 보였다.

카일은 다시 숨 참으며 방아쇠 위에 손을 얹었다.

탕!

-퍼억

멀리서 대장 오크가 녹색의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언젠가 사막에서 겪었던 전투가 떠올라, 카일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우두머리가 죽어서인지, 갑작스럽게 날아온 탄환 때문인지. 우왕좌왕하던 오크들은 곧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한 발 남았어!”

카일은 재빨리 볼트를 후퇴시켜 탄환을 장전했다.

탕!

또다시 총성이 울렸다. 급히 도주하던 오크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다른 오크들은 그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 쏜 탄환은 대략 200미터 정도에 있던 오크를 정확히 맞췄다. 하지만 정확한 사거리는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쏴보면 알 것도 같았는데, 아쉽지만 더 이상 탄환이 남지 않아 사격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다음엔 스크롤을 많이 준비해야겠군.”

카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슬슬 출발해야 약속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막을 정리하고 만들어 놓은 화살들은 가죽가방 측면에 달린 화살집에 넣고는 절벽을 내려와 빠르게 달려갔다.

하지만 카일은 요새를 절반쯤 남겨두고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어, 넌 카일 아니냐!”

자신의 이름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제법 커다란 바위 위에서 하얀 머리가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 중년의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한샘 아저씨!”

카일은 손을 흔들며 한샘이 서 있는 바위 중간을 박찬 뒤 능숙하게 올라섰다.

5미터가 넘는 바위를 카일이 단 2번의 도약으로 올라서자 한샘이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녀석, 안 본 사이에 실력이 대단해졌구나!”

“하하. 그동안 수련을 열심히 했지요! 헌데 어쩐 일이세요. 이곳까지?”

“어쩐 일이긴. 이게 다 너 때문이지 않냐.”

한샘이 투덜거리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뒤를 가리켰다. 카일은 그제야 바위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200여 명의 자경단원들이 나와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세상에, 벌써 시작한 거예요?”

“어제 도착했다. 영주님께서 자금과 식량까지 지원하셨다.”

“그렇군요. 그럼 이곳에 요새를 지을 건가요? 원랜 여기보단 조금 더 아래쪽 아니었나요?”

“그곳은 지형은 유리한데 머물 수 있는 인원이 너무 적어 여기로 정했다. 저기 있는 바위와 이곳을 목책으로 연결해서, 이곳을 100여 명 정도 머물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거다.”

한샘이 말한 대로만 한다면 길이만 30미터가 넘는 목책이 만들어질 터였다. 그럼 안쪽으로 제법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꽤 큰 공간이 생길 것 같기는 한데…. 이걸 만들려면 목책을 세울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그럼 오크들이 몰려올 수도 있을 텐데.”

“우리도 그걸 걱정했는데, 자경단에서 데려온 놈 중 하나가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아이디어요?”

“그래. 저 녀석을 자르기로 했다.”

한샘이 손으로 멀리 보이는 거대한 나무를 가리켰다.

“저건…!”

눈을 동그랗게 뜬 카일이 한샘과 나무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래. 자이언트 블루 우드, 저걸 쓰러트려서 방벽으로 써먹을 거다.”

자이언트 블루 우드라고 불리는 저 나무는 거대한 고목들이 즐비한 이곳에서도 가장 위압적인 나무로, 직경만 대략 5~6미터가 넘고 높이는 80미터를 훌쩍 넘는 거대한 나무였다.

더군다나 블루 우드는 단단하기로 이름난 나무이기도 했다.

“방벽으론 블루 우드가 가장 좋다. 더군다나 직경이 6미터 정도 되니 적당하지. 여기서 대략 40미터 정도 떨어져 있지만, 잘만 쓰러트리면 일을 확실히 줄일 수 있다.”

“그렇긴 하지만 저 녀석을 쓰러트리는 게 더 큰 일이에요! 잘못 쓰러트리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목책을 세운다고 몇 날 며칠이고 소란을 피우면 오크들이 떼로 몰려올 거다. 그럴 바에는 나무 하나 쓰러트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렇긴 하지만….”

카일과 보일이 원래 만들려고 했던 요새들은 지형적으로 높고 험한 곳에 지어 소수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많은 인원이 상주하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그렇다면 목책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바로 그 목책을 설치하려는 동안 무수한 오크와 몬스터의 침입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이 바로 자이언트 블루 우드를 쓰러트려 양쪽 바위 사이에 방벽을 만들겠다는 발상이었다.

“좋아요! 그럼 저도 도울게요.”

“넌 지금 정찰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아니냐, 힘들 테니 괜찮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렇다면야….”

한샘의 허락이 떨어지자 일단 가까운 요새로 자경단 한 명을 보내 이곳에 잔류하겠다는 소식을 전하기로 하고는, 멀리 보이는 자이언트 블루 우드를 향해 다가갔다.

나무 주변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내들이 커다란 도끼로 나무를 두들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무엔 그저 작은 흠집만이 생길 뿐이었다.

“저도 도끼 하나 주세요.”

주변에 있던 자경 단원 중 한 명이 카일을 알아보고는 도끼를 건넸다.

“얼마나 단단한지 아무리 도끼질을 해도 고작 흠집 정도만 남는다.”

“흠… 그래요?”

카일이 유심히 나무를 살펴보고 있자, 나이를 지긋이 먹은 노인이 다가왔다.

“잘 봐라! 이쪽을 따라 먼저 도끼질을 해야 해! 그래야 나무가 저쪽 바위절벽 사이를 정확히 막을 수 있다. 조금만 틀어져도 나무가 다른 곳으로 쓰러질 수 있어. 명심하게나!”

노인이 손짓한 곳엔 제법 흠집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여러 명이 달라붙어 도끼를 휘둘렀는데, 나무는 절반은커녕 삼 분의 일도 잘리지 않은 상태였다. 카일은 자이언트 블루 우드의 단단함을 새삼 깨달았다.

“이래서는 언제 나무를 쓰러트릴지 모르겠군요!”

카일은 고개를 흔들며 도끼에 오러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도낏자루에서부터 날까지 희미하게 백색의 오러가 맺히기 시작했다.

“오러…!”

카일의 옆에서 도끼질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작업을 멈추고 카일을 바라보았다. 카일은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고 있는 힘껏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도끼질이 한 번에 끝날 것 같지 않아, 카일은 최대한 오러의 양을 조절했다. 한번 도끼질을 할 때마다 도끼가 나무에 수십 센티씩 파고들었다.

카일로서도 이렇게 세밀하게 오러를 조절해보는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러를 가늘게 조절한다고 했지만, 도끼질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30분을 넘기긴 어려웠다.

물론 초급 소드 엑스퍼트가 이렇게 무기를 휘두르며 지속적으로 오러를 30분간 유지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카일의 마나가 거의 중급에 다다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0분이 흐르고 오러를 모두 소진한 카일이 물러나자, 다시 자경단원들이 달라붙어 도끼질을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카일은 한 시간가량 지나 마나가 모이자 다시 도끼질을 시작했다.

이러기를 수십 번, 카일은 자연스럽게 오러의 조절이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오전부터 시작한 도끼질은 횃불이 밝혀지는 늦은 저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대부분의 자경단원들은 주변 경계에 들어갔고 카일만이 남아 나무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처음 도낏자루 전체를 감싸던 오러는 도끼날 부분에만 언뜻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오러의 조절이 능숙하면서도 섬세해진 것이다. 그러자 지속 시간 역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텅 -텅

기계적인 도끼질이 계속됐다. 나무 주변 둥치에 앉아 있던 노인의 얼굴도 긴장으로 굳어졌다.

이제 나무 둥치가 절반 이상 잘려나간 상황이라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뿌드득-

갑자기 나무의 밑동 쪽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울렸다. 화급히 노인이 소리쳤다.

“어서 뒤쪽으로 피해라!”

“넘어간다!”

끼이익-

나무가 넘어가려 하자 너도나도 나무 뒤쪽으로 달려나갔다.

워낙 가지가 넓고 큰 나무라 넘어지는 반경 역시 대단히 넓어 앞쪽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쁘드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던 나무는 서서히 앞으로 기울다가 급격하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콰앙!

수십 그루의 작은 나무와 가지들을 부러트리며 목표했던 곳보다 앞쪽으로 비켜서 떨어졌지만, 덕택에 안쪽으로 더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으니 나쁜 건 아니었다.

“휴~. 위험했네요.”

카일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하자 옆에 서 있던 한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일단 방벽은 마련되었으니 다행이구나. 일단 마무리 작업은 하고 쉬도록 하자.”

“그렇기는 하죠!”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샘이 자경단원들을 모아 지시를 내렸다.

“저쪽부터 작업을 시작해라!”

한샘의 지시에 자경단원들이 한쪽에 쌓아 놓은 나무 기둥들을 재빨리 들고 와 바위와 쓰러진 나무 사이 남은 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틈이 그리 넓지 않아 끝부분을 메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남은 곳은 넓이도 대략 10여 미터는 되는 곳이라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이곳에 방진을 친다!”

한샘은 쓰러진 거대 통나무와 바위 사이에 숙영지를 만들고 쉬기로 했다.

쓰러진 나무와 커다란 바위가 좌우를 막아주므로 정면만 방어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우선 한샘은 30여 명을 쓰러진 나무 위로 올렸다. 그런 다음 경계조 몇 명을 추려 바위 위쪽에서 경계를 취하게 하고는 남은 인원은 휴식과 취침을 할 수 있게 했다.

종일 도끼질을 한 카일도 잔뜩 지친 채로 바위 옆에 자리를 잡고 취침을 했다.

늦은 밤 귓가에 고함과 오크의 괴성이 간간이 들렸지만 너무나 피로했던 카일은 무시하고 잠을 청했다.

이미 지형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상황이라 지금 인원으로 수십 마리의 오크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귓가에 두세 번 더 고함과 오크 특유의 괴성이 들었지만, 곧 잠잠해졌다.

새벽녘 자리에서 일어난 카일이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일어난 자경단원들이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일어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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