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8화 (28/404)

28.전진요새

필론이 먹은 스프에는 약간의 고구마가 들어가 있었다. 물론 부르기를 고구마라 부를 뿐이지, 외형은 딱히 고구마와 닮아 있진 않았다.

이것을 발견한 것은 우연히 만난 오크들이 이것을 먹기 위해 땅을 파는 모습을 보고 발견한 것이다. 고구마와는 달리 나무뿌리에서 자라고 고구마와 감자를 섞어 놓은 맛이지만, 단맛은 오히려 고구마보다도 더 많이 나서 제법 자주 먹고 있었다.

주로 하는 조리 방식도 고구마와는 사뭇 달랐다. 보통 찌거나 구워 먹는 고구마와 달리, 이건 얇게 잘라 말린 뒤 가루를 내어 곡물가루와 섞어 스프로 만들어 먹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솥에 들어있던 스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카일은 솥에 다시 물을 부어 넣고, 말린 작은 나무토막 같은 걸 넣어 끓인 다음 잔에 담아 필론에게 내밀었다.

“먹어보세요.”

찻잔을 받아든 필론은 뜨거운 김을 후후 불면서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그윽한 향과 고소하면서도 쌉쌀한 맛이 입안으로 은은하게 퍼졌다.

“응? 이건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이건 레빗이 먹는 땅속 버섯이에요.”

“설마 이게 튀렛이라고!”

화들짝 놀란 필론이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튀렛이란 버섯은 레빗이 먹는 땅속 버섯으로 특이한 맛과 향으로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다.

튀렛이 값비싼 이유엔 맛도 맛이었지만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도 한몫했다. 레빗을 이용해 튀렛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으나, 레빗은 스피드가 빨라 잡기도 어렵고 훈련을 시킬 수도 없었다. 결국 튀렛을 구하는 방법은 레빗이 찾아낸 튀렛을 기습해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발견했어요.”

“그래도 이 비싼 걸….”

누가 뺏을 것도 아닌데 필론은 잔을 꼭 움켜쥐더니 다시 찻물을 조심스럽게 마셨다.

“그… 폴론 일행은… 어때요?”

카일이 머뭇거리며 한 질문에 필론이 고개를 푹 숙였다.

폴론 일행이 보일과 카일을 공격하고 매튜와 자신을 가둔 건 사실이나, 십여 년을 형제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팔을 잃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냥 좋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필론은 검사에게 검을 쓰는 팔을 잃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 썩 좋지만은 않다. 검사가 검을 잡는 팔을 잃었으니…. 지금은 폐인이 다된 것 같구나.”

필론이 어물어물 대답하자 카일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제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나요?”

카일의 말에 필론은 고개를 저었다.

팔을 잃은 그들이 안타깝긴 해도 보일을 배신하고 먼저 공격하려 했던 사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들도 널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검사가 팔을 잃었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할 뿐이지.”

“아마 그들도 이곳으로 오게 될 거예요.”

갑작스런 카일의 말에 필론이 움찔 몸을 떨었다.

“여기서 3일 거리에 최전방 요새를 만들 거예요”

“거긴 예전에 정찰하던 장소잖아…?”

여기서 3일의 뒤의 거리라면 매튜와 필론을 포함해서 9명이 3개 조원으로 나뉘어 정찰하며 휴식을 취하던 장소였다.

“그들을 그곳에 보내겠다는 말이냐!”

필론의 목소리가 차갑게 굳었다.

“쟝과 조셉은 물론이고 필론 일행들도 처벌을 피할 수는 없어요. 영주님께서 처벌을 아버지에게 일임 하셨지만 벌을 주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예요. 이건 천인 대장을 상대로 한 반기니까요. 이걸 원칙대로 처벌한다면 어찌 될지는 필론 형도 알 거예요.”

단호한 카일의 말에 필론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명목상 보일은 천인 대장에 임명된 영주의 가신이었다. 직급이 없는, 그냥 자경단일 때와는 사정이 전혀 달라진 것이다.

영주의 가신을 향한 무력행동은 사실상 영주에 대한 반역이나 마찬가지로, 결국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잘못이었다.

필론과 매튜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이들이 기사단장과 영주의 의중을 알고 그들의 제안에 따라 감행한 건 맞으나 영주나 기사단장이 이를 인정할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정식 명령서도 없었다.

만약 그런 사실이 있다고 밝히는 순간 보일과 카일이 영지를 떠나야 할 터였다. 그건 영주가 결코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이 방법만이 유일하게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일이예요.”

“하지만 그들만 그곳에 있다면 죽으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쟝과 조셉은 소드 엑스퍼트들이에요. 그 두 사람이면 힘들기는 하지만 충분히 요새를 방어할 수 있을 겁니다.”

카일의 말에 필론 역시 반박할 수는 없었다.

위험부담은 있지만 분명 두 사람이면 충분히 방어는 가능한 곳일 테니까.

“일단 5명을 선동해서 일을 만든 만큼 두 사람이 그들을 책임져야지요.”

“그렇기는 하다만…. 휴~ 모르겠구나! 대장님과 너도 그들을 위한 결정이란 걸 알고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사실 좀 위험한 곳이지만 그래도 몇 달만 잘 버티면 방법이 있을 거예요.”

“응? 설마 몇 달 뒤에 그들을 풀어 줄 거란 말이냐?”

“아니요. 풀어줄 게 아니라 이번에 몬스터의 방어 전략을 바꿨어요.”

“전략을 바꾸다니?”

필론이 궁금하다는 듯이 카일 옆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카일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타고 있는 장작을 하나 꺼내어 바닥에 대략적인 협곡의 형태를 그렸다.

그리고는 샤론 마을을 시작으로 몇 곳에 표시를 남겼다. 필론은 바로 표식의 위치를 알아보았다.

“여긴 정찰하면서 머물던 곳이잖아!”

“맞아요. 여긴 지형적으로 방어가 유리한 점도 있고, 오크들이 샤론 마을을 향해 대규모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위치에요. 이곳에 이제부터 이곳처럼 병사들이 상주할 거예요.”

“이곳에 병사들이 상주한다고? 하지만 이곳이 지형적으로 좋은 위치이긴 해도 그렇게 많은 병력이 머물기는 어려울 텐데.”

“맞아요! 그래서 이곳과 마찬가지로 병력을 상시 순환시킬 예정이에요.”

“병력을 순환시킨다니?”

“이쪽엔 상주병력을 20명 정도로 두고 요새의 거리를 하루거리로 한정해서 병력을 상주시키려고요. 그러면서 이곳 요새에서 다음 요새로, 그다음 요새로 이틀씩 밀어내면서 방어를 하게 하는 거죠.”

“그럼 네 군데 요새로 80명을 운영하게 되는 거야?”

“아니요! 이동 중인 병력까지 고려해야 하고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는 병력까지 염두에 둬야죠. 일단 각 요새로 이동 중인 병력과 경계를 서는 인원,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인원까지 생각하면 대부분의 자경단원이 투입될 거예요. 그리고 요새들도 서로 하루 정도 거리에 있으니 지원도 오기 쉬울 거예요”

“흠, 생각을 많이 한 것 같구나! 헌데 혹 각개격파 당하진 않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이곳 지형을 보세요. 남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길이 외길이니, 절벽 위에서 이곳을 지나는 오크만 상대해도 수백의 오크를 상대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다른 곳도 이곳 못지않게 지형이 험한 곳이라 각개격파의 위험은 줄어들 거고요. 일단 여기서 숫자를 충분히 줄여주고 시간만 끌어줘도 샤론 마을에서는 충분한 대비가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카일의 말에 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들은 호전적이라 이들 요새를 반드시 점령하고 지나가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루 이틀만 버텨줘도 영주 성에서의 지원까지 기대할 수 있었다.

“좋은 방법인 것 같은데…. 그럼 쟝과 조셉 그리고 폴론 일행도 어느 정도 위험부담이 줄어들 테니까.”

“여기에 폴론 일행도 정신만 차려준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팔을 잃은 검사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남은 팔이 있잖아요! 아버지의 검술이 양손 검술도 아니고 검잡는 손이 오른손, 왼손이 따로 있나요.”

“그건….”

“오른손으로 스프를 먹다가 오른손이 없어졌다고 스프도 못 먹나요? 당연히 왼손으로 스프를 먹고 음식을 먹지 않나요. 그런데 어째서 검을 잡는 손이 사라졌다고 검을 잡지 못한다는 말인가요?”

그 말을 들은 필론이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필론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카일은 먹은 식기와 주변을 정리하고는 모닥불 주변에 놓아둔 주먹만 한 돌을 꺼내어 작은 가죽 자루에 담아 천막 안에 넣어 놨다. 그때 생각에서 깨어난 필론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슬슬 눈웃음을 짓는 모양새가 어째 음흉해 보였다.

“저기… 나 여기서 자면 안 될까? 저 통나무집보다는 여기가 좋은 것 같은데….”

카일은 단칼에 대꾸했다.

“저, 여자 좋아합니다.”

“야, 나도 여자 좋아하거든!”

카일의 장난 섞인 말에 필론이 크게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자경단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카일!”

필론이 카일을 돌아보며 소리쳤지만 이미 카일은 천막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조용히 하고 들어와서 잠이나 자요!”

“어… 으응!”

이러나저러나 결국 필론은 목적하던 대로 천막 안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이른 아침을 차려 먹은 카일은 자경단들과 필론의 배웅을 받으며 숲으로 향했다.

* * *

카일은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일반적인 정찰과는 거리가 있는 행동이었다.

“일단 좀 먼 곳까지 가야겠어.”

카일의 목적지는 이곳에서 3일 거리의 절벽으로 나중에 쟝과 조셉 일행이 머물게 될 곳이었다. 이곳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오크 랜드와 통하는 협곡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이곳을 목표로 잡은 이유는 넓은 곳을 한눈에 볼 수 있단 점과 더불어 가죽 주머니에 들어있는 소총도 시험할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비록 여기서 3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지만 이는 정찰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갈 때의 말이고, 뛰어간다면 이틀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였다.

물론 카일은 마나를 이용해 달리고 있었으므로 뛰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속도였다.

특히 카일의 경우 다리, 정확히는 발바닥에서 시작되는 마나 포인트가 열린 터라 일반적인 소드 엑스퍼트가 마나를 사용해서 달리는 것보다 3분의 1 정도 더 빨랐다.

다리 근육을 사용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의 마나 포인트(용천혈)을 이용해 대지를 통해 직접적으로 마나를 흡수하고 다시 밀어내면서 다른 이들보다 빨리 달릴 수 있던 것이다.

카일은 절벽에 도착하자 준비해온 밧줄에 매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묶고는 천천히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절벽은 대략 10여 미터의 높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일이 올라선 곳은 평평하면서도 바위틈 사이로 작은 잡목들이 우거진 곳이었다.

카일은 허리에 묶어 놓은 밧줄을 안쪽 우거진 잡목 뭉치에 묶어두고 밧줄을 잡아당겨 가죽 주머니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천막을 치고는 가지고 온 소총을 꺼내어 다시 한번 점검을 한 다음 늦은 저녁으로 육포를 씹어 먹었다.

천막을 친 공간은 절벽에서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때문에 딱히 위장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시야도 넓어 주변을 살펴보기 적당했다.

다만 주변에 물이 없어 식수를 구할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절벽에 올라오기 전에 충분히 물을 챙겨와, 2~3일은 충분히 머물 수 있었다.

카일은 잘라놓은 잡목으로 조그마한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단도를 꺼내어 잘라놓은 잡목을 다듬기 시작했다.

이 주변에 자라는 잡목은 라스피라는 나무였다. 이 나무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 번째는 손가락 굵기를 유지하며 1~2미터 정도로 자란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무척 질겨서 화살을 만들 때 제격이라는 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