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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20화 (20/404)

20.전 죽일 생각인데

무표정한 쟝과 조셉이 마지막 말을 건넸다.

제아무리 자경대의 1 천인 대장이더라도 쟝과 조셉이 영주로부터 기사서임을 받는 순간 자유민인 보일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분이 되는 것이다.

쟝과 조셉이 기사 작위를 받은 상황에서 보일이 이들을 공격한다면 더 이상 영지에 남아 있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다. 영주의 입장에서도 충성을 맹세한 기사가 공격을 받았다면 가만히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섬기는 기사가 같은 기사도 아닌 용병에게 공격을 받고도 가만히 두고만 본다면, 영주로서의 명예와 체면이 실추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후 누구도 남작가의 기사가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목적이 이것이었느냐. 감히 내 검술을 영주에게 가져다 바치겠단 게 네놈들의 목적이냔 말이다!”

분노를 감추지 못한 보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면 되겠구나!”

서로를 바라보던 쟝과 조셉이 한쪽에 서 있는 카일을 바라보았다.

“마스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이는 저희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다른 녀석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부디 기사가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조셉과 쟝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지만, 보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경직된 쟝과 조셉의 기색에서 불길함을 느낀 보일이 말했다.

“매튜는 어디 있느냐.”

“매튜의 조원들은 잠시 가둬두었습니다.”

조셉의 말에 보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밖에서 몇 명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마스터! 비록 마스터가 중급 엑스퍼트라고 해도 저희 모두를 상대하기는 힘들 겁니다. 무엇보다… 마스터에게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 있지 않습니까?”

카일을 슬쩍 바라본 조셉이 경고하듯 말했다. 도발성이 짙은 말에도 보일은 묵묵히 서 있다가 입술을 뗐다.

그러나 이는 조셉과 쟝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무래도 저들이 이렇게 당당하게 나서는 것을 보니까, 기사단장이 와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절 인질로 잡으려 할 것 같네요.”

“하하.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면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느냐?”

“간단하죠. 여기 조셉과 쟝 그리고 밖에 와있는 몇 명만 처리해도 기사단장은 조용히 물러갈 겁니다. 다만 아버지께서 실력을 조금 내보여야 할 것 같네요.”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카일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보일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비의 일을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하는구나.”

“설마 어린 저보고 처리하라는 말인가요? 아버지, 저 아직 15살이에요!”

보일은 카일의 말을 무시하듯 피식 웃고는 조셉과 쟝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군! 나도 카일과 같은 생각이다.”

보일의 말에 조셉과 쟝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빛이 어렸다.

“마…마스터! 저희가 기사가 되면 영주님께서 큰 상을 내리실 겁니다. 이렇게 해서 굳이 영주님과 척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조셉이 급히 말했다. 그러나 대답은 보일이 아니라 카일에게서 나왔다.

“영주님이 원하는 건 우리 가문의 검술이다. 상을 받을 거라면 굳이 너희 배신자들과 나누어 받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영주에게 17식의 검식만 알려줘도 큰 상을 받을 것 같은데? 아니 차라리 영주님에게 찾아가 기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당장 아버지에게 부 기사단장 직위를 내리실걸? 안 그런가요? 아버지? 기사단장은 그래도 어려워 보이니 빼고요.”

“흥! 그깟 남작가의 기사단장, 줘도 안 한다. 기사가 될 것 같았으면 벌써 백작가를 찾았을 거다. 이런 작은 영지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보일의 음성에 카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러네요.”

상황이 예상과 달리 흘러가자, 쟝과 조셉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막말로 보일이 당장 조셉과 쟝을 죽인다고 해도, 영주의 기사가 아닌 이상 보일을 처벌하지는 않을 것이다.

쟝과 조셉이 아직 영주가 인정한 기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보일을 설득하고 안 되면 카일을 인질로 잡아 검술만 빼 오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이었다. 기사 작위와 큰 상이 주어질 거란 약속만 받았을 뿐이었다.

감언이설에 넘어간 그들은 계획을 세웠다. 초급 엑스퍼트인 쟝과 조셉이 보일을 막고 있는 사이에 나머지가 카일을 잡는다는 계획이었다.

기사단장이 인근에서 지켜보다가 쟝과 조셉이 위험에 처하면 도와준다고 했기에, 과감하게 보일을 찾아올 수 있던 것이다.

창-

결국 쟝과 조셉은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쟝과 조셉이 보일에게 달려들었다. 보일은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쾅!

두 사람은 보일이 가볍게 휘두른 검격을 막았지만 오히려 달려오던 것보다 더 빠르게 문을 산산이 부수며 밖으로 튕겨 나갔다.

“크윽~. 젠장!”

“컥~. 이렇게 강하다니.”

갓 초급 엑스퍼트에 오른 쟝과 조셉은 검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번 일에 나선 것 역시 비록 보일을 이길 수는 없지만, 버티는 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보일이 장난 같이 휘두른 검 격에 이렇게 쉽게 튕겨 나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와! 대단한데요. 단번에 두 사람을 날려 버리다니!”

부서진 문의 잔해를 피해 걸어 나온 카일이 만면에 미소를 짓고는 보일을 돌아보며 말했다.

“흠. 설마 폴론까지 올 줄은 몰랐구나!”

카일을 따라 문밖으로 나온 보일이 쓰러져 있는 쟝과 조셉의 옆에 다가가 경계하듯 서 있는 폴론을 보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폴론은 매튜의 조원이었으나, 상황을 보아하니 매튜를 배신하고 조셉과 쟝에게 붙은 것 같았다.

“그래도 두 명은 건진 것 같네요. 축하드려요.”

장난스러운 카일의 말에 보일이 고개를 저었다.

“이게 축하할 일이냐! 수십 년을 가르쳐온 제자 녀석들이 마스터를 배신했는데!”

“그래도 믿을 수 있는 두 명은 찾았잖아요. 두 명을 강하게 키우면 되겠죠.”

“음… 그렇기는 하지. 일단 이들부터 처리해 볼까? 나머지는 너의 몫이다. 할 수 있겠지?”

미처 카일이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보일은 태연하게 성큼성큼 쟝과 조셉에게 다가갔다.

“카일을 사로잡아!”

쟝이 소리치며 조셉과 같이 달려들었다. 그와 함께 5명의 사내들이 카일에게 뛰어들었다.

* * *

“단장님! 지금 나서서 제압하는 것이 어떨까요?”

로브를 깊이 눌러쓴 사내가 말했다. 옆에 있던 단장이라 불리던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되도록 나서지 않는 것이 좋아. 저 정도면 카일이란 아이는 쉽게 제압할 거다. 우리는 적당한 때 저 카일이란 아이만 데리고 가면 된다. 그럼 보일 저 친구도 순순히 항복할 테지.”

“하지만 보일 대장이 반감을 가지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 카일이란 아이를 적당히 구슬려 우리 아이들과 맺어 준다면, 저 친구도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마 손녀분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금 영주님은 영애님을 생각하고 계시는데, 고작 내 손녀가 문제겠는가! 보일 저 친구가 보통 고집이 아니라 이런 극약처방을 내리는 것이지, 저 친구를 버릴 생각은 전혀 없어.”

기사단장의 말에 수행기사가 화들짝 놀랐다.

“자넨 하나만 알고 다른 것은 생각지 않는군. 보일이 익힌 검술은 보통 검술이 아니야! 내가 알기론 원래 보일에게 배운 아이들이 익힌 검술은 12식의 검술이지. 헌데 작년에 돌연 5개의 검식을 추가로 가르치기 시작했네. 이게 뜻하는 바를 자네는 알겠는가?”

기사단장의 말에 수행기사는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서… 설마! 상급… 검술.”

“그래. 단순히 경지를 넘어 상급 엑스퍼트에 오른 거라면, 따로 아이들에게 검술을 추가로 가르칠 필요가 없네. 그런데 추가로 검술을 가르쳤다는 것은 기존에 익히던 검술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이후 갑자기 네 명의 소드 엑스퍼트가 탄생했으니 말이야.”

기사단장은 보일이 아직까지는 상급 엑스퍼트에 오른 게 아니라, 새로운 상급 검술을 만들어 냈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보일의 경지가 상급에 가까운 중급 소드 엑스퍼트였고 그의 검식이 중급과 상급의 중간에 놓여 있었으니, 모종의 깨달음이나 이유로 검식을 추가해 상급 검술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 것이다.

“허면 차라리 정식으로 저 카일이란 아이와 혼담을 넣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그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문제는 보일이 아직 용병이라는데 있네. 혼담이라도 넣어보려면 기사 작위라도 있어야지! 아무리 명목상이지만 귀족가에서 평민에게 혼담을 넣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기사 단장은 말끝을 흐렸으나 수행기사는 그 의미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보통 혼인을 통해 뛰어난 용병을 가문에 들이려 할 때는 상대가 최소한 기사의 작위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나마 귀족가로서 체면이라도 차릴 수 있었다. 때문에 혼인을 제안하기 전 미리 작위를 내린 다음 혼담을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보일이 천인장이라는 직위를 받았지만 정식으론 아직 자경대의 대장일뿐이었다. 기사 작위를 받지 않으니 당장 혼담을 넣을 수도 없고, 혼인을 한다 해도 선선히 검술을 내어놓을지도 미지수였다.

스스로 기사 작위를 받는다면 굳이 혼담을 넣을 필요도 없으나, 이번 경우는 보일의 분노를 잠재우려는 방안으로 카일을 남작 영애나 기사단장의 손녀와 혼인시키려고 한 것이다.

기사단장과 수행기사의 대화가 이어지려 할 때, 5명의 사내들이 카일을 포위했다.

대부분 카일보다 10살 이상 많은 형들이라 할 수 있었다.

“카일! 어렵게 가지 말고 순순히 항복 하거라!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앞에 나서 목소리를 높인 자는 나이가 가장 많은 폴론이란 사내였다.

“음… 아버지가 싸우고 있는데, 아들이 바로 항복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 자! 형님들 빨리 끝내지요.”

카일이 손을 들어 까닥거리자 폴론의 옆에 있던 덩치 큰 사내가 나섰다.

“흥! 조그만 녀석이 버릇이 없구나! 폴론 형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아. 조장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할 수 없지. 다치지 않게 제압해!”

폴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내들이 허리에서 검집째 들고는 카일에게 다가왔다.

“이런! 전 죽일 생각인데… 검집으로 되겠어요?”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사내들을 보며 카일이 말했다.

카일은 검으로 사람을 죽여 본 적은 없으나, 1년 가까이 오크를 비롯한 몬스터 수백 마리를 죽여 본 경험이 있었다.

카일은 흉흉한 기색을 뿜는 다섯 명을 상대로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과감하게 가장 앞장서 나오는 덩치 큰 사내, 캐프에게 달려들었다. 캐프의 검집이 순간 위로 솟구치더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카일이 몸을 반 바퀴 회전하면서 캐프의 품을 스치듯이 빠져나왔다. 그러자 붉은 핏방울이 사방으로 번져 나가며 눈 깜빡할 새에 캐프의 허리와 가슴, 어깨로 이어지는 상흔이 생겨났다. 길게 갈라진 상처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커억~.”

고작 어린애라 방심하고 있던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사내들이 주춤 물러나며 소리쳤다.

“이 자식 캐프를….”

“이건…!”

당황한 사내들이 허둥지둥하는 사이에도 캐프의 가슴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전 당신들을 죽일 거예요.”

“이 잔인한 녀석! 저 녀석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캐프다.”

“그렇죠. 오래전부터 알아 왔고 아버지에게 검술까지 배웠던 캐프는, 자신을 위해 아버지를 배신하고 저를 인질로 잡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검술을 빼앗으려 했죠. 검술을 빼앗으면 다음은요? 아버지와 절 죽일지 살릴지 어떻게 알겠어요.”

냉정한 카일의 말에 남은 사내들이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점점 상황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충고할게요. 마스터를 공격하고 그 아들을 인질로 잡으려 한 사람들을, 영주는 얼마나 믿고 기사로 임명할까요? 그것참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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