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5화 (15/404)

15.천인대장 보일 1

“연락병이 먼저 온 것이냐?”

“예. 영주님께서 기사 두 분과 함께 오고 계신답니다.”

매튜의 말에 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혹시 안 좋은 일인가요?”

카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일을 바라보았다.

“걱정 말거라. 얼마 전 자경단 문제로 영주님께 보고를 드린 일이 있다. 샤론 마을의 자경단은 다른 마을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숫자란다. 인근 마을의 자경단들도 우리에게 훈련을 받고 있으니, 혹 영주님께서 오해를 하실까 싶어 미리 말씀드린 거란다.”

“하지만 마을이 커진 뒤 몬스터들이 공격해오는 규모도 커진 바람에, 지금 보유한 자경단의 숫자도 적다고 하셨잖아요?”

“원래 자경단의 숫자는 암묵적으로 백 명 내외란다. 그러나 지금 우리 마을의 자경단 숫자는 거의 배에 달하지. 또 인근 자경단에서 일부 훈련받는 인원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많아지고. 이런 건 미리 보고하지 않으면 앞서 말했듯 영주님께서 오해할 수도 있단다.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미리미리 허락을 받는 게 나중을 위해서라도 좋다. 이런 일은 문제를 삼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문제가 될 수밖에는 없으니까.”

일리 있는 말에 카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통제되지 않은 군사들이 대규모로 모여 있단 건, 영지 내 그만한 불안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니 영주로서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일단 갔다 오마. 아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매튜와 함께 보일은 서둘러 나갔다. 아직 14살에 불과한 카일은 자경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샤론 마을에선 대게 16세 이전에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16세가 되면 자경단에 입단해 성인으로서 대우를 받게 되어 있었다. 마을의 주 수입원이 몬스터 부산물이다 보니 10여 년 전부터 생겨난 관습이었다.

물론 기초적인 훈련은 10살만 되어도 받게 되어있지만, 카일은 자경 대장인 보일에게 직접 검술과 훈련을 받고 있어 자경대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 * *

보일이 집에 돌아온 것은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집의 문을 밀어젖히는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버지. 혹 자경단의 일이 잘 안 풀렸나요?”

카일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보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영주님은 마을에 자경단의 숫자를 500명까지 늘릴 수 있는 파격적인 조처를 해 주셨다. 이만한 마을에 오백의 자경단을 꾸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만큼 자율권을 인정받은 셈이니 잘된 일이라 할 수 있다.”

“예에? 자경단을 오백 명이나 둘 수 있다는 말인가요?”

영주의 조치는 생각보다도 더 파격적이었다. 샤론 마을이 남작령의 가장 외곽에 있긴 하지만, 5백의 자경단은 영주에게 있어 상당히 부담스러운 병력이란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나를 기사급의 직책인 천인 대장에 임명하고, 인근 10개 마을의 자경단을 통할하는 총대장의 자리를 내리셨다.”

“그럼…?”

“아! 그렇다고 기사 작위를 받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영지 자경단을 총괄할 뿐이지. 작위 대신 이곳 마을에서 나오는 세금 5할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주셨다.”

“그럼 설마 마을을 장원가로 인정해 주셨다는 건가요?”

“하하. 너무 앞서가진 말거라. 난 그저 1천 명의 자경단을 통할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것에 불과해.”

“그래도 결국 영지에 없는 1천 자경단을 이끌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마을 세수의 5할이나 준단 건 사실상 아버지를 영지에 묶어 두려는 거잖아요!”

보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일이 자경대의 문제를 보고했을 때, 영주는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직접 마을로 찾아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보일을 기사급인 천인 대장으로 임명했다. 그를 자신 휘하의 사람이라 공표한 것이다. 더군다나 직접 마을로 찾아와 임명한 것이니 보일로선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물론 영주님이 날 붙잡아 두기 위해 천인장으로 임명한 것은 알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번 일은 내가 영주님께 자경단을 늘리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으며 치른 대가인 셈인데, 어찌 영주님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느냐!”

명목상 이번 일의 발단은 분명 보일이 먼저 제기한 일이니, 그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할 수 있었다. 결국 보일로서는 영주의 천인 대장 임명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을에 기사를 배치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잖아요.”

카일의 말이 옳았다. 보일이 원했던 것 역시 기사 하나를 마을에 배치하고 그가 자경단의 지휘를 맡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충성한 기사가 아니라 용병인 보일에게 지휘권을 일임했단 부분에서, 영주의 이번 명령은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영지에 생겨난 무력의 지위를 외인에게 맡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자경단을 훌륭하게 이끈 보일이 천인장을 맡는 게 영주가 생각한 최선일 지도 몰랐다.

물론 정석대로 기사 한 명을 이곳에 상주시키면 되지만, 다핸 남작의 기사라고는 고작 10명 정도에 불과했다. 기사단장도 중급 엑스퍼트로 보일과 실력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이런 점들을 미뤄 추측해 봤을 때, 다핸 남작은 이번 기회에 보일을 확실하게 잡아두기 위해 단호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 * *

“혹 보일이 천인장을 거부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아직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마을을 떠나 떠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기사단장인 켈토의 말에 다핸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핸 남작은 오랫동안 보일을 휘하에 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비록 용병이기는 하지만 중급 엑스퍼트 기사는 주변의 중, 소형 남작령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전력이었다. 지금 다핸 남작의 곁에 있는 노 기사 켈토만 해도 쉬이 찾기 어려운 인재였다. 고작해야 멀리 떨어져 있는 아키슨 자작령에 2명의 중급 엑스퍼트가 존재할 따름이었다.

“보일이 내 휘하에 들어온 것과 같으니 이제야 안심이 되는군.”

“소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켈토. 불민하여 후계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보일이 영지의 가신이 되었으니, 조금이나마 소신의 죄가 감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일 뿐입니다.”

고개를 숙인 켈토가 말했다. 중급 엑스퍼트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켈토가 익힌 검술은 하급과 중급 사이에 걸쳐있는 검술이었다. 만일 켈토가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중급에 오르기 힘들었다.

켈토는 그동안 영지의 마을을 돌며 후계를 키워보려 했지만, 지금까지 중급에 오른 기사를 키우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 말 말게! 이번에 보일을 잡아둘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네의 공이 아니겠나. 고작 5할의 세수와 천인장이란 직위로 중급 엑스퍼트를 붙잡아 두었으니, 이만한 공이 또 어디에 있겠나.”

다핸 남작이 캘토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마을이 고작 15개인 다핸 남작령에서 샤론 마을처럼 중급이상의 마을은 고작 5개 정도 되었다. 이 중 1개는 기사단장에게 내려져, 세수의 20할을 기사단장이 걷어가고 있었다.

“보일은 정말 기사가 될 생각이 없다고 하던가?”

“그렇습니다. 아직은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음…. 기사로 서임을 받는다 해도, 마을에 남아 있게 해주겠다고 해보지 않았나?”

“기사는 영주에게 충성하는 자입니다. 영주의 명이 있다면 원치 않아도 영주의 명에 따라야 하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결국 캘토 경의 제안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군.”

다핸 남작은 이번 일을 핑계 삼아 보일을 정식 기사로 임명하길 원했다. 하지만 보일이 이를 거부하고 마을을 떠날 걸 우려해, 기사단장인 켈토가 제안한 천인장에 임명한 것이다.

“송구합니다. 소신이 보일 경을 압도했다면….”

캘토는 기사로서의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 자였다. 그런 그가 보일과의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단 의미는 보일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단 소리였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캘토가 이 정도로 말했다는 것은, 사실상 패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말이었다.

“그런 말은 넣어두게나. 자네가 우리 가문의 일원이 되었기에, 다른 영지에서 감히 우리 영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네. 아키슨 자작령의 두 기사단장 역시 자네에게는 한 수 접어주고 있지 않은가!”

“그 두 사람이야 중급에 든 지 오래되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보일은 이미 완숙한 단계를 넘었으니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겠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다핸 남작이 고개를 돌려 샤론 마을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보일이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영주로서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제안을 거절한 보일이 당장 영지를 떠난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기사단장인 켈토가 나설 수도 있지만 비슷한 실력으로 싸우다가는 기사단장이 죽거나, 보일이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한 사람이 죽는다 해도 남은 한 명 또한 무사하지 못할 거란 사실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다핸 남작령은 두 명의 중급 엑스퍼트 급 실력자를 모두 잃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크 랜드와 인접한 영지를 가진 다핸 남작은 몬스터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보일이 온 뒤부턴 몬스터는 피해를 입히는 존재가 아닌 부산물을 떨어트리는 수입원이 되었다. 중급영지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세수징수권 5할만으로 중급 엑스퍼트 실력자를 영지에 붙잡아 둔 것만으로도 만족할만한 성과라 할 수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자금 하나 들이지 않고 천여 명에 가까운 병력으로 오크 랜드의 침입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니, 영주로서는 더없이 훌륭한 한 수였다.

“헌데 보일 말일세, 조금 달라진 것 같아 보였네. 요즘 자경단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자네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다핸 남작이 갑작스럽게 샤론 마을을 찾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보일이 갑작스럽게 문밖출입을 삼가고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영지에 중급이상의 실력자가 있다 보니 영주로서는 꾸준히 보일의 근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잘 모르는 이가 보기엔 별일이 아닌 것 같지만, 이는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보일이 자경대로 나오지 않고 집안만 있었던 적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 아내인 카론이 죽었을 때와 카일이 크게 다쳤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같이 자경대로 나오던 사람이 두문불출한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바뀐 것은 사실인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몸 밖으로 조금씩 드러나던 강맹한 오러의 기운도 차분히 가라앉은 것이… 아마도 검술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확실히 이전에 보던 그 보일이 아니었어. 정말 그가 상급의 경지를 밟은 것일까?”

“확신하기는 어렵겠지만 보일의 자질과 능력이라면 불가능하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검술 역시 일반적인 용병검술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조금 거친 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분명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기사 가문 검술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만한 체계의 검술을 오래전부터 발전시켜 왔다면 상급의 검술로 발전시켰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