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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4화 (14/404)

14.상급의 검술 2

이른 새벽. 보일과 카일은 마당에 서서 검술을 펼치고 있었다.

보일은 원래 새벽에 일어나 검술수련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번 카일과 연무 도중 두 개의 새로운 검식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카일과 같이 이른 새벽부터 검술을 수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검술은 처음 카일을 가르칠 때보다 안정돼 있었다. 모든 동작들은 매끄럽게 연결되었고 속도 역시 빨라졌다. 상당히 강력한 검술로 탈바꿈한 것이다.

단 두 개의 동작이 추가되었을 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에 비해 카일이 펼치는 검술은 마치 태극권처럼 부드럽고 느리게 펼쳐지고 있었다.

동작이 워낙에 느린 터라 보일이 검식을 3번이나 반복했을 때에도 카일은 여전히 첫 번째 검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보일은 카일이 펼치는 검식에서 미묘한 부분을 발견했다.

“헛!”

유심히 카일의 움직임을 살피던 보일이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치려다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동작으로 인해 미묘하게 어긋나 있던 초식의 연결이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카일의 경우 마나 친화력이 높고 민감해 연결식이 조금이라도 어그러졌다면 분명 검술 연무를 중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작이 이어진다는 건 분명 마나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는 의미였다.

“허허…. 이것이 말로만 들었던 섬광의 눈이란 말인가?”

섬광의 눈!

한순간 밝아졌다가 사라지는 빛처럼 마나 친화력이 높고 뛰어난 아이들이 한순간 무아지경에 빠져 높은 경지를 경험하는 순간을 말했다. 이 순간에 빠진 아이들은 기존의 검식을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검술의 잘못된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보일은 급히 오러를 끌어올렸다. 혹 자신의 실수나 주변에서 들어올 수도 있는 방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카일의 동작 하나하나를 확실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카일은 두 번째 어긋난 검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위화감이 한 번 더 느껴졌다. 보일은 유심히 아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카일은 새로운 동작을 추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과감하게 삭제를 시키며 검술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 그동안 24식 검술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구나.”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이 보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태껏 그는 기존 24식 검식에 검술을 추가할 생각만 했지, 기존의 검술을 없앤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보일이 경지를 올리지 못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었다. 그는 중급검술을 익혔다는 생각에 갇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두고 있던 것이다.

쉬이익- 사악-

검술을 펼치는 카일과 이를 묵묵히 바라보며 서 있는 보일. 두 사람이 서 있는 마당엔 칼바람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보일이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겉으로는 카일이 높은 경지에 일순간 빠져들며 무아지경에 이른 듯 보였지만, 카일은 일부러 무아의 지경에 빠진 듯 연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카일은 검술을 전해줄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몇 번 정도는 우연을 가장해서 2개의 동작을 유도했지만, 그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번에는 아예 완성된 검술 전체를 보여줄 생각으로 섬광의 눈이라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이용한 것이다.

카일이 펼친 것은 어긋난 세 곳의 검식에 세 개의 새로운 동작을 추가해, 자연스러운 연결 동작으로 이어지는 검식이었다. 이윽고 카일이 마지막 검식의 자세를 취했다. 이제 검식이 끝났다고 생각한 보일은 저도 모르게 크게 감탄했다. 일평생 꿈에 그리던 검술이 완성된 것이다. 물론 30식으론 최상급 검술이 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상급 이상의 검술은 완성된 것이 분명했다.

“이럴 수가! 어찌 이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보일로서는 카일의 검식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너무도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는 곧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급히 입을 막았다. 그만큼 새롭게 이어지는 검식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카일은 마지막 검식에서 다시 처음의 검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냈다. 다급히 입을 막던 보일은 또 한 번 감탄했다. 살면서 보일은 마지막 검식에서 다시 처음의 검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검술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첫 초식과 마지막 초식이 이어지는 순간 더 이상 초식을 늘린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 카일이 만들어 낸 검술은 하나이자 무한의 검술이라 할 수 있었다.

“아!”

그때였다. 카일의 검술과 스탭이 이리저리 어그러지더니, 결국은 넘어지고 말았다.

보일의 경탄에 무아지경이 깨져버린 것 같았다.

카일의 경우 이미 검식을 완성했고 이쯤에서 검식을 멈추기 위해 연기를 한 것뿐이지만, 보일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카일의 집중이 깨어지며 한순간 무아지경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착각해 급히 달려왔다.

간혹 무아지경이 깨어지면서 극심한 내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아, 괜찮으냐!”

다급한 음성에 카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보일을 바라보았다.

“제가…왜 쓰러져 있죠? 분명 검식을 펼치고 있었는데….”

“몸은…, 몸은 괜찮은 것이냐!”

보일의 걱정스러운 말에 카일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고개를 저었다.

“몸에는 이상이 없어요.”

보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수고했다! 정말 수고했다. 네가 그동안의 숙원을 풀어주는구나.”

“숙원이라니요? …지금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설마, 방금 펼친 연무 동작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냐?”

보일의 말에 카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억지로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카일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자 보일이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다! 억지로 기억할 필요가 없다. 이 아비가 모두 기억하고 있으니, 지금은 무조건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일이 카일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 섬광에 눈을 경험하고 깨어날 경우 간혹 한순간 높은 경지를 경험한 후 온전히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말은 보일 역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큰일은 아니었다. 무의식중으로나마 지금의 경험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어, 이후 벽을 돌파하는데 남들보다도 쉽고 빠르게 돌파할 수 있게 된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안에서 쉬고 있거라.”

“예.”

카일을 벽난로 앞 의자에 앉힌 보일은 두툼한 담요를 덮어준 후, 급히 마당으로 행했다. 카일이 펼친 검술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언제 잊을지 몰라 몸으로 확실하게 익히고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휴~.”

마당의 중앙에서 검을 세우고 보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금 전 카일이 펼친 검술의 동작과 느낌을 가만히 떠올렸다. 동작뿐만 아니라 호흡과 스텝 하나까지 떠올리며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아악-

신중한 몸놀림으로 시작된 검무는 순식간에 30식을 지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다시 시작된 검식은 앞서 펼친 검식보다 조금 더 느리게 펼쳐졌다.

보일이 펼치고 있는 검식은 앞서 펼친 카일의 검식과는 전혀 다른 검술처럼 빠르고 강맹한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네 번째 검식이 이어지며 어느새 동작의 불완전함과 어색함은 자취를 감추고 카일의 것처럼 정교하고 부드러운 검술로 바뀌었다.

태극권에서 발취한 초식을 응용하면서 검식의 전체적인 흐름도 바뀌게 된 것이다.

“이건 검술임과 동시에 대단히 뛰어난 마나 연공법이다.”

검술을 펼칠수록 몸 안에 새롭게 정립되는 마나 로드와 해일처럼 몰려드는 마나의 양에 보일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검술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검술의 끝과 처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몸 안으로 새롭게 정립된 서른 곳의 마나 포인트(혈)을 지나 하나로 이어지는 마나 로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단 한 번 검식을 보고 완벽하게 익히다니 정말 대단해!”

마당 위에서 검술에 집중하고 있는 보일을 본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보일은 카일이 펼친 검식을 24식 검술을 기반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검식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건 사실과 조금 달랐다. 근본적으로 카일의 검식은 태극권의 동작과 호흡을 접목시킨 것이라, 사실상 태극권을 검식으로 변형했다 보는 것이 옳았다.

이렇게 변형된 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던 건 태극권을 처음 배울 때 8개의 초식에서 시작해, 16식 24식 32식 42식 75식 82식을 배운 다음 마지막으로 108식을 배웠을 정도로 오랫동안 단계별로 차근차근 배워 왔기 때문도 있지만, 카일이 선천적으로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높다는 이유도 있었다.

* * *

검술이 완성되자 보일은 한동안 자경대에도 나가지 않고 매일같이 검술을 수련하는데 전념했다. 당장 보일이 자경단에 가지 않아도 탄탄한 체계를 기반으로 하여 움직이고 있어, 대규모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현재 자경단의 총 병력은 대략 250명까지 늘어나 있었다. 매일 같이 20명씩 12개 조가 3교대로 마을 주변을 정찰하거나 경계를 서고 있었다. 보일을 포함한 가장 실력이 뛰어난 10명의 자경 대원은 위험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선두에 서는 지원조의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에게 검술이나 창, 활 같은 것들을 미리 가르치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보일이 집에서 검술훈련에 매진하고 있는데 마을 자경단원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자경단에서도 손꼽히게 실력이 좋은 그는, 보일이 제자같이 여겨 가문의 검술 원류인 12식 검식을 알려준 특별한 단원이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검에 본격적으로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는 소드 유저 경지에 오른 20대의 청년이기도 했다.

“헉헉…. 마스터!”

“매튜! 무슨 일이냐? 혹 자경단에 일이 생긴 것이냐?”

보일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그게 아니라, 지금 마을로 영주님이 오고 계세요!”

“영주님이?!”

“그렇습니다. 서둘러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영주께서 오셨다면 마땅히 마중을 해야겠지. 잠시만 기다리거라. 갑주를 입고 나오마.”

화급히 집 안으로 들어간 보일은 가죽으로 만든 레더 아머를 입고 나왔다.

그의 갑옷은 얇은 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반코트와 같이 보였다. 독특한 건 그 위로 무기류 즉, 단검이나 활과 화살집을 걸 수 있는 고리가 달려 있는 가죽조끼를 걸쳐 입는 방식이란 점이었다.

용병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가죽 갑옷의 심장 부근에 합금판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

급소 부위에만 합금을 덧대는 용병들의 레더 아머와 달리 기사들의 것은 형태부터가 달랐다.

용병보다는 긴 롱코트 형상의 가죽갑옷에 목과 어께 그리고 가슴과 팔, 허벅지와 다리 등에 합금을 덧대고 여기에 가문이나 기사단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이나 장식들을 새겨 넣었다.

또한 종자들의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가문의 상징적인 문양이 들어간 이 금속장식을 관리하고 광을 내어 닦는 일이었다.

많은 합금이 들어가는 만큼 방어력도 오르고 가격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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