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3화 (13/404)

13.상급의 검술 1

“네. 먼저 들어가세요. 마당 정리는 제가 할게요.”

“알겠다. 너도 대충 정리만 하고 들어가거라.”

집으로 들어가는 보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일은 바닥에 떨어진 가검을 한쪽에 세워두고, 흐트러진 마당을 정리했다. 그 후 눈을 감고 조금 전 있었던 대련을 복기해 보았다.

군에서 배운 크라브 마가를 이용해 보일을 공격했던 게 얼추 먹혀들었으니, 실전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그나저나 아버지의 24식 검식을 보완해야 할 텐데 어쩌지….”

현재 카일이 알고 있는 무예는 크라브 마가와 조선세법, 그리고 진식태극권 108식과 보일에게 배운 24식의 검술이었다.

여기서 크라브 마가는 형식 없이 대련 위주로 익히는 무술이었다. 조선세법 역시 실전에는 도움이 되지만, 마나를 축적할 수 있는 연무 동작이 존재하지 않아 마나 연공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태극권에서 검식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인데….”

태극권의 경우 따로 태극검이 있을 정도로 검술로 바꾸어 펼칠 수 있고 마나 연공법으로써 효과도 탁월했다. 실전에서 바로 사용하기엔 문제가 있긴 했지만, 망치질을 통해 깨달은 부분을 검술에 일부 적용하는 건 가능해 보였다.

* * *

최근 보일은 카일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경지를 조금 더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재능이 뛰어난 카일이라면 분명 자신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자신의 경지를 한층 더 끌어올려 지금의 검술을 상급 검술로 발전시켜 카일에게 전수해 줘야겠다 생각한 것이다.

카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매일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녘에 일어나 검술 수련에 매진하는 보일을 보며, 진정으로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던 것이다. 그 모습에 감명한 카일은 보일의 24식 검식을 발전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버지께 태극권을 전해 줄 수는 없으니 검술에 연계 초식을 추가할 수밖에….”

말은 쉬워 보이지만 새롭게 검식을 추가해 발전시킨다는 건 어렵고도 지난한 일이었다. 마치 아무런 이정표도 없는, 앞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평야에서 길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카일의 경우는 달랐다. 이미 태극권이라는 확실한 이정표와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 단지 돌아가는 길 하나를 추가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쉬익-

잠을 청하려던 보일은 마당으로 나와 검을 휘둘렀다.

“이게 아니야. 오늘 분명 뭔가가 달랐어!”

쉬익-

다시 처음부터 24식의 검식이 이어졌다. 벌써 몇 달째 이어진 카일과의 대련에서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지만, 정확히 무엇이 달라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이렇게 한밤중에 검을 들게 된 것이다.

“미묘해! 어딘가 달라진 것이 분명한데 어디가 달라진 것인지 알 수가 없군.”

목검을 든 보일은 눈을 감고 오늘의 대련을 복기해 보았다. 카일의 동작 하나 검의 각도 하나까지 자세하게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검술과 비교하고 또 비교해 나갔다.

“역시. 오늘도 나오셨군.”

카일은 보일이 마당으로 나와 검술을 연마할 때마다 다락방 창을 통해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도 대련 중 24식의 검식 중 일부를 조금씩 수정을 했다. 대련 중 검식을 미묘하게 수정하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그동안 24식 검술과 태극권의 동작을 비교하여, 두 무술이 자극하는 혈과 이어지는 동작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나름의 연구가 끝난 뒤, 카일은 24식 검술의 연무 동작에 결과를 적용했다. 수정된 검식은 대련을 통해 보일에게 조금씩 조금씩 전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아버지. 6개의 검식을 전수해 드릴 테니까요.”

검술에서 변화된 점이 무엇인지 찾고 있는 보일을 내려다보며 카일이 말했다. 보일이 고심하는 동안 카일은 태극권과 24식 검술을 수련할 생각이었다. 상급 검술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30식의 초식이 연계되어야, 원활하게 마나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카일은 24식의 검술을 30식으로 늘려줄 심산이었다.

* * *

쉭-

카일의 검이 허공을 날카롭게 지나갔다. 검식은 다시 이어지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아니야! 이래서는 안 돼!”

카일이 감았던 눈을 뜨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벌써 이년이 넘었으나 실패의 반복이었다.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고민에 빠진 카일이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카일은 보일이 알려준 24식 검술과 조선세법을 접목할 방법을 고민해 왔었다.

그러나 두 검술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발전해온 검식인 만큼 체계와 방식이 전혀 달랐다.

24식 용병검술은 증조부 때부터 대를 이어오며 발전한 실전 검술로, 몬스터의 질긴 가죽을 뚫을 수 있는 찌르기 위주의 검식과 함께 베기보다는 메이스처럼 검을 휘둘러 대상을 타격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었다. 반대로 조선세법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온 검술로, 검 자체의 강도와 날카로움을 극대화한 베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특히 예도의 특성상 발검과 납검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특징이 양극단을 달리는 두 검술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할 수 있었다.

“24식 검술에 예도을 접목하면 검술 자체가 예도의 특성을 따라가 버리고, 반대로 예도를 24식 검식과 접목시키면 사실상 24식 검술의 체계 자체가 무너져 버리니….”

카일이 바라는 것은 두 검술이 합일을 이루어 조금 더 강력한 검술로 나아가는 것이지, 지금처럼 하나의 검술의 특징이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었다. 둘 다 살리지 못하면 검술을 접목하려는 의미가 없었다. 고민에 빠진 카일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 * *

2년 동안 카일이 시도한 것은 두 가지였다. 24 검식을 변형시키려는 노력과 6개의 연계 검식 중, 보일이 두 개의 검식을 익힐 수 있게 유도하는 것. 전자는 진전이 더뎠지만, 후자는 결과물이 확실했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카일 덕에 보일은 마나 연공법과 검술에 커다란 진전을 이룬 상태였다.

“카일아. 이리 앉아 보거라.”

“오늘은 대련하지 않는 건가요?”

보일은 항상 자경대에서 돌아온 뒤 격렬하게 하던 대련도 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카일을 불렀다.

“오늘은 너에게 증조부님에 대해 알려주려 한다. 너도 이제 우리의 가문에 대해 알 때가 된 것 같으니 말이다.”

“…가문에 대해서 말인가요?”

근엄한 목소리에 절로 긴장이 솟구쳤다. 카일이 마른침을 삼키며 보일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 보일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 긴장할 것 없다. 가문의 비밀스러운 비화가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아… 네.”

실망스러워 보이는 카일의 모습에 보일이 웃으며 말했다.

“가문의 비밀이 없다고 하니 실망스러우냐?”

“그냥… 가문의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하길래,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리 대단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비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일단 들어 보거라.”

“네! 경청하겠습니다.”

카일이 단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자, 보일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증조부께서는 카데인 제국 남부 영지소속 기사의 종자였단다.”

“종자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증조부가 검술에 자질을 보이자, 상인이셨던 고조부께서 영주 성의 기사에게 막대한 골드를 헌납하고 종자로 만들었단다.”

“증조부님의 자질이 대단히 뛰어났었나 보군요.”

“너와 내가 지금과 같은 신체를 불려 받은 것은 모두 증조부님의 덕이라 할 수 있단다. 증조부님은 큰 체구에 나무를 단번에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힘을 자랑했지.”

“마치 지금의 아버지와 같았나 보군요.”

“하하. 너의 할아버지께서도 가끔 그리 말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상인이라면 평민이라기보다는 자유민에 가까웠을 텐데, 굳이 증조부님을 기사로 키울 필요가 있었을까요?”

“재물과 자유민이라는 신분이 있다고 하여도 결국은 귀족에게는 미치지 못한단다. 귀족에게 무시를 받는 것은 자유민이든 평민이든 그리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평민보다 자유민이 더 고달플지도 모르지. 평민은 한 영지에 소속되어 있지만 자유민은 이곳저곳 떠돌며 살 수 있는 존재들이라 더 많은 차별이나 배척을 받기도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귀족 가와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하급이라도 귀족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무시와 차별을 피할 수 있는 길이란다.”

“그렇군요.”

보일의 설명에 카일은 이곳이 신분적인 차별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럼 고조부님과 조부님이 카데인 제국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어째서 이곳 크로노스 왕국에 있는 건가요?”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단다. 당시 조부께서 모시던 기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귀족이란 우월의식이 가득했던 자였다. 그래서인지 천부적인 신력과 자질을 가진 증조부를 질투한 나머지 없애려 들었다. 증조부님의 검술 실력이 빠르게 늘어나 기사의 실력을 위협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지…. 아무튼 모시던 주인에게 철저한 배신을 당하자 고조부님께서는 가산을 정리해 당시 제국의 적대국인 크로노스 왕국으로 넘어왔단다. 하지만 워낙 집요한 추적 덕분에 왕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 많던 가산은 하나도 남지 않았단다. 그때 증조부께서 처음으로 용병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셨단다.”

“그럼… 가문의 복수를….”

배신을 당한 상태에서 가산까지 탕진하고 이곳 크로노스 왕국으로 도주해온 만큼, 고조부든 증조부든 그 기사에게 큰 복수심이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하하! 복수라니! 증조부님과 고조부님은 전혀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기사가 끝까지 우리를 쫓아온 것은 바로 증조부님이 기사의 배신을 알아채고 역으로 그 기사의 마나 검술을 훔쳐 온 탓이란다.”

“네에?”

보일의 말대로라면 배신을 먼저 한 것은 기사이지만, 소중한 마나 검술을 빼앗겼으니 오히려 손해는 기사가 입은 것이다.

카일이 황당한 얼굴로 보일을 바라봤다. 당황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표정이 재미있는지, 보일이 다시 한 번 크게 웃으며 카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내가 가문에 대하여 얘기하려 했던 건 바로 우리 가문의 검술 원류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 가문의 검술은 당시 기사가 가지고 있던 상권의 12식 마나 검술에서 출발했단다.”

“나머지 검식은 그럼….”

“네 짐작이 맞다. 용병으로 떠돌던 증조부와 조부께서 이곳저곳에서 용병검술을 배우고 연구한 뒤, 짜깁기해 9식의 검술을 추가했지. 더불어 내가 용병 생활을 하며 또다시 3식을 더했다. 지금의 24식의 검술은 이렇게 탄생한 거란다.”

보통 용병들이 20식 이상의 마나 연무 검술을 익히는 건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용병들은 시중에서 구리동전 몇 개면 얻을 수 있는 3~4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진 조잡한 검술을 익혔다. 개중 수십 개의 은화나 금화를 주고 구할 수 있는 10식 이하의 기초적인 마나 연무 검술을 익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극히 드문 경우였다.

그런 만큼 12식의 마나 검술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헌데 어째서 오늘 이런 말을 해주시는 거예요?”

“이번에 아비가 너와 대련을 통해 2개의 검식을 새롭게 만들었단다. 이를 알려주기 전, 가문의 검술에 대한 원류를 알려주기 위해 말한 거란다.”

2개의 검식이 추가되면서 그동안 막혀 있던 경지를 뛰어넘었으니, 보일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어려서 힘만 믿고 검술을 등한시한 것에 대해 보일은 늘 조부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대에서 와서 총 5개의 검식이 추가됐다는 사실과 함께, 조금 더 높은 검술을 카일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유명한 기사 가문의 최상급 연무 검술(마나 연공술)이 50식 이내고 중급 기사 가문의 연무 검술이 25식 이상인 걸 생각해보면, 보일의 용병검술은 이미 중급 기사 가문의 연무 검술을 넘어서고 있는 셈이었다.

보통 중급 기사 가문의 검술은 중급 엑스퍼트에서 최대 상급 엑스퍼트까지 이를 수 있는 검술이었다. 이 정도 고급 검술을 지닌 가문은 왕국에서도 2백여 곳이 넘지 않았다.

보일은 24식 검식만으로도 중급의 끝자락에 와있을 정도로 검술에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 상급 검술은 최대 상급 엑스퍼트에서 최상급 엑스퍼트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검술을 뜻하고 있었다. 이후 마스터에 도달할 수 있는 검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뒤부터는 연무 검술의 검식을 아무리 늘리더라도 벽을 깨는 건 불가능했다. 순수하게 깨달음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다만 연공 검술에 초식을 더할수록 조금 더 빠르게 마나를 늘리는 건 가능했다.

즉 보일의 용병검술이 30식 이상 늘어난다면, 상급의 경지 이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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