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0화 (10/404)

10.마법무구

“이것은 마법 스크롤과 마법 장갑이다.”

“예에? 그럼 이게 마법 무구란 말인가요?”

카일이 놀란 얼굴로 보일을 보다가 다시 장갑과 양피지를 바라봤다. 보일은 먼저 스크롤을 들어 올렸다.

“이건 3서클의 파이어 볼이 인첸트 된 스크롤이다. 우연히 참전한 전투에서 이 드워프가 만든 활로 마법사를 저격해서 얻은 물건이지. 지금 당장 판다고 해도 금화 20개는 족히 받을 수 있단다. 하지만 시중에서 3서클 이상의 마법 물품을 얻는 것 자체가 어려워 만약을 대비해 보관하고 있었단다. 그리고 이 장갑 역시 활을 이용해 얻은 물건이다. 한번 끼워 보거라.”

보일은 장갑을 카일에게 내밀었다. 카일이 장갑을 손에 끼우자 장갑에서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스스로 카일의 손에 딱 맞게 변했다.

“이럴 수가….”

깜짝 놀란 카일이 손에 끼워진 장갑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가죽처럼 보였지만, 손등과 팔목 그리고 손가락 마디와 손바닥은 딱딱한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이건 가죽으로 만든 것이 아니군요?”

“그래. 원래 마법 물품은 가죽으로 만들 수 없지. 다만 이 장갑처럼 가죽 안쪽에 작은 금속편을 넣는다면 불가능한 게 아니다. 보기엔 허름해도 3가지 마법이 인첸트 되어있다. 이 정도 물건은 고위귀족들이나 사용할 정도로 값비싼 물건이란다.”

“3가지 마법이나 걸려있다니!”

“이 장갑에는 복원 마법과 착용자의 손에 맞추어 주는 인식마법, 그리고 가장 핵심이 되는 파워 업 마법이 각인되어 있다.”

카일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놀라운 마법 무구가 자신의 손에 끼워져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마법 장갑과 비슷한 물품은 용병들이나 기사들도 사용한단다. 이런 장갑의 형태 이거나 검과 같은 무구에 인첸트 되어있기도 하지. 물론 성능은 훨씬 떨어지지만.”

사고 이후, 충격이 컸는지 카일은 아이답게 굴지 않아 보일을 안타깝게 했었다. 그러니 장갑을 바라보고 눈을 반짝이며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카일의 아이 같은 모습이 기껍게 다가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 이 마법 장갑과는 많이 다른가요?”

“물론이다. 기사들이나 용병들이 사용하는 마법 장갑이나 물품은 보통 1가지에서 많아야 2가지 정도의 마법이 인첸트 되는 것이 보통이란다. 대부분 사용자의 힘에 3분의 1 정도 힘을 보태는 게 고작이고, 사용시간도 10분 정도가 한계란다. 무엇보다 단순한 파워업 마법만 각인된 마법 물품만 해도 가격은 금화 30개를 줘야 구할 정도로 고가품이지.”

“그럼 이건….”

카일은 마법 장갑을 내려다보았다. 이 물건의 성능과 값어치가 어느 정도일까 헤아려 보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보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마법 장갑은 겉보기에는 일반 파워업 장갑과 비슷해 보일 게다. 하지만 사용자의 힘을 두 배 이상 증폭시켜주고 사용시간도 1시간 이상이니, 고위 마법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골드가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고가품이지. 장갑의 팔목에 보면 둥근 물체가 느껴질 것이다.”

보일의 말에 카일이 팔목을 이리저리 만져보자 역시 둥근 원통형의 금속물체가 느껴졌다.

“그곳이 바로 마나석이 들어 있는 곳이지. 이곳이 공격 받아 손상되면 마법 물품의 효능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단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보일이 진지하게 말했다. 카일 긴장한 얼굴로 보일의 말을 들었다.

“카일아. 이 아비도 용병이긴 하나, 용병은 누구도 완벽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 비록 그가 몇 년을 같이해온 동료라고 해도 언제 뒤통수를 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용병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 골드를 벌고 또한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단호하게 배신을 선택하지. 그들이 동료나 친구라 해도 말이야. 그래서 항상 비장의 수단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 마법 장갑을 소중히 보관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장갑을 이용하면 우린 태생적으로 타고난 힘을 숨길 수도, 때로는 비장의 한수로 쓸 수도 있다.”

“아버지도 배신을 당한 적이 있나요?”

카일의 물음에 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몇 년을 함께 일한 동료에게도 배신을 당해 보았다. 정말 등을 맡길 수 있다 믿었던 친구라, 내가 가진 천부적인 힘과 실력까지 모두 알려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때문에 정말 완벽한 함정으로 날 몰아넣었지! 당시 그 친구가 알지 못했던 건 바로 이 마법 장갑뿐이었다. 난 이 장갑과 활을 이용해 날 추적한 동료를 비롯해 B급 용병 5명을 모두 죽일 수 있었다.”

보일은 카일이 끼고 있던 장갑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동료가 배신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그 당시 보일이 적 귀족과 기사를 처치하고 챙긴 상당한 양의 보석과 장비를 탐낸 것이다.

당시 보석은 물론이고 앞서 보여준 마법 스크롤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스크롤은 써보지도 못할 정도로 갑작스런 기습이라 보일 스스로도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이 장비들이면 몬스터 퇴치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왜 사용하지 않고 상자에 넣어 감춰 둔 건가요?”

마법에 문외한인 카일이 보기에도 이 상자에 넣어둔 장비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마법 물품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보일은 이 장비들을 사용하지 않고 상자에 넣어두기만 했다. 자경 대원을 이끄는 그가 전투에 도움이 될 물건을 숨겨 놓고 있었다니, 무척 이상한 사실이었다.

“물론 이 장비들은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분란을 만드는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카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왜 분란이 된다는 것이죠?”

“난 용병일 당시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녔고, 너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가족도 남아 있지 않아 부담 없이 이들 무기를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너도 보았듯이 이 무구들은 기사들도 쉽게 마련할 수 없는 고가의 장비들이다. 활이야 상관없지만, 스크롤과 마법 장갑은 단순히 돈이 많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만약 이들 장비를 마을에서 공공연히 사용했다면 벌써 소문이 나도 났겠지!”

“아! 설마 영주님이….”

뜻밖의 말에 카일이 깜짝 놀란 얼굴로 보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영주님은 그래도 좋은 영주라 알려져 있잖아요. 마을 사람들도 영주님만 한 분이 없다고 하고요.”

“카일. 귀족들은 누구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이곳 영주가 좋은 영주로 소문이 났어도 이런 장비를 본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아니 영주는 믿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휘하의 기사들은, 그들은 믿을 수 있을까? 그들이 아니더라도 떠돌이 용병 시절과 달리 마을에 정착해서 가족까지 있는 나에게 이런 장비가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용병들이나 강도단이 마을에 쳐들어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결국 보일의 말속에서는 혼자서는 충분히 무구를 지킬 수 있지만, 카일이나 마을 사람들을 모두 지키기는 불가능하다고. 아무리 마을의 자경단이 강력하다고는 해도 이만한 마법 무구를 탐낼 정도면 적어도 기사급 이상의 실력자들이 올 것이 뻔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이것들은 이제 나에게 큰 필요가 없다. 다만 너에게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열심히 수련 하 거라 시간이 지나면 모두 너에게 줄 테니.”

“감사해요. 아버지. 열심히 수련할게요.”

“하하! 그래, 그래야지! 잠깐 마당으로 나가자. 이런 고급 스크롤은 당장 사용하지 못해도, 마을에서 신호용이나 몬스터를 대비해서 사용하는 스크롤이 있단다.”

카일과 함께 마당으로 나온 보일은 품에서 양피지를 한 장 꺼내었다. 척 봐도 아까 봤던 것과 달리 크기가 작았다.

“아까 보던 스크롤보다 등급이 훨씬 낮은 것이다. 보통 고 서클의 마법 스크롤을 일정한 방향으로 날리기 위해서는, 마법을 날릴 위치로 스크롤을 향하게 한 다음 찢어야 한다. 하지만 이 스크롤은 그렇지가 않다. 찢어지는 즉시 폭발하지. 인첸트 된 것은 1서클의 익스프로젼 이지만, 손안에서 터지면 손가락이 날아갈 수도 있단다.”

보일은 스크롤 양 끝부분을 각각 가죽 줄로 묶은 후, 한쪽 끝을 나무 밑동에 묶어두고 한쪽 끝을 손에 쥐었다.

“보통 이렇게 양쪽 끝을 나무나 바위에 묶어둔다. 사람이나 동물이 줄에 걸려 찢어지면 마법이 발현되지. 이렇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 보일이 남은 한쪽 끝이 묶여있는 줄을 잡아당겼다. 폭음과 함께 불꽃이 발현되었다. 스크롤이 놓여 있던 자리에 남은 건 아이 주먹 하나 정도의 흔적이었다.

“이건…!”

카일이 놀란 얼굴로 바닥에 생긴 흔적을 바라보았다.

“많이 놀랐느냐? 이게 바로 1서클의 익스플로젼 마법이다. 마법사가 사용하면 좀 더 위력이 클 수도 있지만, 이 마법은 방향성이 없어 마법사들도 사용하지 않는다. 손안에서 터지면 손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대신 이렇게 마법 스크롤로 만들어 사용하지.”

“그럼 이런 것도 마나석에 인첸트해서 사용할 수 있나요?”

“물론 사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단다. 이 마법 스크롤도 결국은 마법진을 이용하는 것은 똑같으니까. 실제로 영주 성이나 제법 규모가 있는 영지의 경우, 하급 마나석에 1서클인 라이트를 인첸트시켜서 사용하기도 한단다.”

상세한 설명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부터 카일의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만 늦은 저녁 방에서 홀로 하는 태극권의 수련은 5번에서 3번으로 줄였다.

무리를 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고 판단 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5번을 하는 것에 장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쳐 쓰러질 정도로 힘든 만큼 마나의 양이 제법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체력을 다해 5번을 한다면 보일에게 배우는 검술수련에 지장을 줄 것이 뻔해, 차라리 횟수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보일에게 배우는 여러 가지 수련과 임기응변 그리고 용병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것 또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 * *

요즘 들어 카일은 마을에서 제일 외곽에 위치한 대장간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이 대장간은 3대를 이어 내려오는 오래된 대장간으로 자경대에서 사용하는 무기류와 보호구 대부분을 이곳에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그곳의 주인인 대장장이 타론은, 보일이 마을에 들어온 것을 가장 환영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타론이 샤론 마을에서 대를 이어 대장간을 운영한 건 바로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흙 속에 철 성분이 많아, 철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노천광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곳 노천광산엔 큰 단점이 존재했다. 채굴이 용이하나 광맥이 그리 크지 않고 몬스터의 위협까지 있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영주인 다핸 남작으로서는 개발하는 자체가 손해라서 버려둔 노천광산이었다. 타론의 조부가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양이라 이곳에 자리 잡고 노천광산에서 얻은 철로 대장간을 운영해오고 있었다.

문제는 몬스터를 피해 흙을 파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타론의 조부는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냥꾼들을 이용했다. 그들이 흙을 퍼오면 이를 사들이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 방안으로 저렴하게 질 좋은 철을 얻는 게 가능해졌지만, 그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보일이 마을에 오고 자경단의 수가 늘어났다. 이제는 자경단이 외부에 순찰을 나갈 때마다 넉넉하게 흙을 퍼 와 많은 철을 얻을 수 있었다. 보답으로 타론은 자경단의 무기를 만들어 주거나 보수해주고 있었다. 딱히 돈을 받는 건 아니었으나 수입은 이전보다 배로 늘어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타론 아저씨.”

“오, 카일이구나! 요즘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더니…. 혹시 아직 몸이 안 좋은 게냐?”

본래 카일을 마을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그런데 사고 이후로 집 밖으로 통 나오질 않으니 타론이 걱정할 만도 했다.

물론 새벽같이 일어나 목책을 따라 마을을 돌고 있지만, 워낙 일찍 일어나 달리기 때문에 자경대나 마을 사람 몇 명을 마주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카일이 사고 이후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카일은 몸뚱이가 10살이기는 해도 정신은 이미 성인이었다. 다 큰 어른이 마을 아이들과 어울릴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요즘은 아버지에게 검술을 제대로 배우고 있어서요. 열심히 배워서, 다음에는 제 손으로 오크를 막을 거예요!”

카일이 주먹을 들어 보이자 타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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