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8화 (8/404)

08.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대단한 명문 귀족가나 기사 가문의 경우, 검술 말고도 따로 뛰어난 마나 연공법이 있다고 한다. 만약 연공법이 조금이라도 유출되었다면 반드시 찾아내 회수하려 할 만큼 중요히 여기지. 하지만 그런 비전의 동작과 호흡을 알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비밀을 지키려 해도 수련 도중에 유출이 되지 않을까요?”

“하하. 귀족 가문의 경계가 허술하겠느냐? 대부분의 가문은 지하에 연무장을 만들어 수련하니 쉽게 유출될 수가 없단다.”

곰곰이 생각하던 카일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물어보는 것이 수련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귀족이 아닌 용병들의 검술은 누구나 훔쳐 배울 수 있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가 전투에서 검술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펼치겠느냐? 전투 중 몇 가지 동작만 본다고 하여 검술을 훔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동작만을 익히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세요?”

“그래. 동작에서부터 호흡과 연공법의 흐름까지 모두 알아야 하니 단순히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 훔쳐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번에 배울 검식 역시 절대 허투루 익혀서는 안 된다. 동작 하나, 호흡 하나까지 정확하게 익혀야 해. 그리고 남에게 절대 알려서도 안 된단다.”

보일의 얼굴에 엄하고도 단호한 빛이 어렸다. 누군가에겐 용병의 검술에 불과할지라도 그는 가문의 검술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 기색을 읽은 카일은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좋다. 그럼 시작해 볼까?”

보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에게서 호기심과 더불어 배우려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검술의 전수가 시작됐다. 보일은 동작은 물론이요, 호흡까지 주의 깊게 가르쳤다. 호흡과 동작이 일치하지 않으면 절대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카일이 검식을 모두 배운 뒤에는 검식의 흐름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보일이 말하는 검술의 흐름은 각 검식의 속도와 관련이 깊었다. 이 말인즉슨 검을 찌르는 속도와 회수하는 속도의 차이가 하나의 검식 안에서도 달랐다. 당연히 호흡을 하는 방식도 달랐다. 보일의 말처럼 단순히 본다는 것만으로는 훔쳐 배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헉, 헉.”

고작 24개의 검식이라 은연중에 만만히 여기고 있던 카일은 제대로 된 훈련이 시작되자, 단 하나의 검식을 익히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뛰어난 신체와 체력에도 불구하고 종일 익힌 것은 고작 하나의 검식이었다. 카일이 얼굴이 침울하게 변했다. 온종일 수련을 했지만, 고작 하나의 검식을 익혔을 뿐이라는 생각에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우울한 기색을 읽은 보일이 카일을 달랬다.

“그리 실망할 것 없다. 마나 검술을 익히는 것이 그리 쉬울 줄 알았느냐? 이 아비도 두 달이 지나서야 검식을 완벽하게 익혔다.”

“아버지께서도 두 달이나 걸렸단 말인가요?”

깜짝 놀란 카일이 물었다. 보일은 이미 상급 엑스퍼트를 눈앞에 둔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런 보일도 24개의 검식을 처음 배울 때에는 두 달이나 걸렸다니. 그 말은 검술을 익히기가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요 녀석. 아비가 두 달이나 걸렸다는 말에 바로 얼굴이 풀리는구나.”

“헤헤. 두고 보세요. 제가 반드시 한 달 만에 검식을 모두 익히고 말겠어요!”

“그래, 어디 아비보다 더 빨리 익혀 보거라. 하하하!”

보일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나 사실 보일이 말하지 않은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가 검술을 배우는 데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당시 자신의 힘만 믿고 검술을 등한시하며 제대로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보자면 그런 상황에서도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니, 보일의 검술에 대한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 * *

쉬지 않고 수련에 매진하길 몇 날 며칠. 카일은 보일과 약속한 대로 검술을 배운지 정확히 한 달이 되는 날 동작과 호흡을 정확히 일치시키는 완벽한 검술을 펼칠 수 있었다.

검술과 호흡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날, 몸 안에서 미세한 기운이 일정한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이렇게 쉽게 마나를 느끼게 될 거라고는 카일은 생각지 못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카일에게 보일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어떠냐! 기운이 느껴지느냐?”

“이게 마나인가요?”

카일의 말에 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이 온 세상에 퍼져 있는 마나라는 기운이다. 우리처럼 검을 쓰는 사람들은 마나를 정제해, 몸 안에 오러의 형태로 축적하지. 이를 검에 주입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럼 마법사는 다르단 말씀인가요? 마법사도 마나를 사용하는 것은 같다고 들었어요.”

카일의 물음에 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물론 보일 역시 마법사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아 대략적인 설명뿐이었다.

“마법사에 대해 잘 알고 있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대기 중의 마나를 심장에 만들어놓은 고리 즉 서클로 끌어들인다. 마나가 서클을 통과하면 이를 증폭시켜 마법을 발현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단다. 다만 마법사는 심장에 서클을 만들고 발현시키기 위해 수많은 수식을 익힌다. 그리고 이를 한순간에 풀어낼 수 있는 뛰어난 머리와 함께 마나에 대한 특출 난 친화력도 지니고 있어야 하지.”

“그만큼 특별한 자들이 마법을 배운다면 분명 위력도 대단하겠군요.”

카일의 말에 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마법은 고 서클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위력을 발휘해 낸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수십, 어쩌면 수백을 단 한 순간에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단다.”

“마법사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카일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단번에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겁을 먹을 것은 없다. 위력이 큰 마법일수록 캐스팅을 할 때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마법사들은 대부분 수많은 학문과 수식을 익히는데 몰두해야 하기에 체력이 형편없단다.”

“그럼 마법을 캐스팅하기 전에 공격을 하면 되겠군요.”

“네 말이 옳다. 마법사에게 빠르게 다가가 근접전을 벌인다면 승산은 분명 검사에게 있다. 단! 가디언을 데리고 다니는 마법사의 경우는 예외라 할 수 있지!”

“가디언이라면…?”

“마법사는 근접전에서는 일개 병사들의 기습에도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단다. 물론 마법사마다 나름의 대비책을 만들어놓기도 하지만 그만큼 근접전에서는 취약하다는 말이지! 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용병들 중 검술이 뛰어난 자들을 곁에 두고 가디언으로 활용하는 거지.”

짐작해 봤을 때 가디언은 일종의 경호원과도 같은 존재인 모양이었다.

“가디언이 마법사를 보호하는 동안 마법을 발현할 수도 있겠군요.”

“그러니 가디언을 고용한 마법사는 조심해야 한단다. 특히 실력이 뛰어난 가디언을 데리고 있는 자들은 더더욱. 허나 고 서클의 마법사는 아마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어째서요?”

“고 서클의 마법사는 대부분 마탑에 소속되어 있고,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또한 용병을 제외한 워 메이지는 이미 대부분이 사라진 존재들이다.”

“워 메이지라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전투에서 다수의 병력을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다! 하지만 그만큼 전쟁에서 가장 먼저 죽여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지. 자연스레 마법사들 중 워 메이지가 되려는 마법사들도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마법진이 발달 되면서 이를 이용한 마법 무구가 워 메이지들을 대신하고 있단다.”

“그럼 마법 무구가 워 메이지를 대신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말인가요?”

“그렇지는 않다. 검사들의 능력을 더 향상해 준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마법은 힘을 증강 시켜 주거나 스피드를 올려주기도 하지. 때로는 먼 곳의 사물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마법 무구라는 건 검사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는 물건이군요.”

“하하!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대단히 비싼 물건이란다. 쉽게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지. 용병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구란다.”

“그렇군요.”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짓던 카일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지는 않는 성격 덕이었다. 그는 이미 그런 삶에 익숙했다.

“마법 무구를 가지고 싶으냐?”

“하나쯤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가질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지금 배우고 있는 검술에 집중하겠어요.”

“좋은 자세다. 욕심이 나쁜 건 아니나, 지금 가진 걸 조금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단다.”

보일의 말이 옳았다. 카일은 지금 배우고 익힌 것들에 조금 더 집중하자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런데 다른 용병들은 어떤 검술을 사용하나요?”

“전통적인 용병 가문의 경우 가문에서 검술이 이어져 내려온단다. 그러나 많은 수의 용병은 저가에 판매되는 용병검술을 익힌 뒤 수많은 실전을 거듭하면서 자신만의 검술을 만들거나, 용병대에 들어가 검술을 배우지.”

“용병 가문도 있나요?”

“물론이다. 대를 이어 용병을 해오며 검술을 발전시켜 온 가문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용병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넘어 귀족이 된 자들도 있단다.”

“와! 신분을 뛰어넘었다니 대단해요. 그들 가문의 검술은 엄청나겠네요.”

“이 아비도 그런 자들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단다. 허나 지금 배운 24식의 검식 보다 대단하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보통 검식에 한 동작이 추가될수록 마나의 질과 양은 늘어가게 된단다. 그러나 내 장담하는데 용병 중에서 20식이 넘어가는 검식을 소유한 용병은 극히 드물 것이다. 이른 나이에 내가 중급 엑스퍼트가 된 것도 가문의 검식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보일은 검술에 관해 설명했다.

검술의 초식이 늘어날수록 마나 로드가 조금 더 촘촘히 몸 안에 새겨지고, 더 많은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단 소리였다.

“그런데 아버지, 검술을 익힐 때 몸 안으로 들어왔던 마나가 대부분 저절로 빠져나가던데, 혹 제가 잘못 익혀서 그런 건가요?”

눈을 휘둥그렇게 뜬 보일이 카일을 바라보았다.

“정말 몸 안에 들어온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단 말이냐?”

“예.”

카일의 대답에 보일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카일, 넌 분명 마나 친화력이 높은 게 분명하다!”

한동안 기쁜 듯 웃던 보일은 이내 확신의 근거를 설명해 줬다.

“네가 그렇게 느낀 것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대기 중에 있는 불순한 마나 때문이다. 이것들은 몸 안으로 들어온 뒤 검술로 인해 만들어진 마나 로드에 의해 정제 당하지. 바로 그 과정에서 불순한 마나 대부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간단다.”

마치 물을 정수하듯이 마나 역시 마나 로드를 통해 정제된다는 말이었다. 이해한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도 비슷한 이유라 할 수 있다. 바로 검식을 따라 형성된 마나 로드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마나의 성질과 정제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아직은 마나 로드가 미약해 벌어지는 일이지.”

“그럼 걸러지지 못한 마나들은 어떻게 되나요.”

“자연스럽게 몸 안에서 빠져 나가 버릴 뿐이야.”

“만약 마나 로드가 넓어진다면 더 많은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가요?”

“정확하다. 계속 수련을 이어간다면 마나 로드는 자연스럽게 넓게 확장되고 더 많은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마나를 처음 느낀 사람들은 그저 마나가 희미하게 몸 안에 유입된다고만 느끼지, 카일 너처럼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채지 못한다. 이는 분명 너의 마나 친화력이 높아 몸 안에 들어온 마나의 유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마나를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유리하단 소리다.”

보일의 설명에 카일은 그제야 자신의 마나 친화력이 높다는 것과 그동안 공들여 익혀온 단전호흡법이 마나 연공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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