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화 (3/404)

03.부사관

강창석이 흥미로운 듯 서류를 자세히 서류를 살펴보았다. 얼마 전 있었던 사단 집체 훈련에서도 사격으로서는 최고의 점수를 받았을 정도로 뛰어났다. 총탄 대부분이 과녁 중앙에 들어갈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사격을 배우는 선수가 아닌 이상 군에서 처음 총을 잡고 사격을 배운 사람이 이 정도 실력을 보인 거라면 천부적인 자질을 가졌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왜소한 체격이 아쉬웠으나 평가엔 제법 끈기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무엇보다 체력도 일반병사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나와 있으니, 훈련만 잘 따라와 준다면 최고의 스나이퍼로 양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때, 이번에 특전부사관 중 스나이퍼를 양성하려고 하는데 관심 있나?”

“예. 그렇습니다.”

최일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동안 부사관 지원을 망설이던 그가 특전부사관에 지원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바로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한동안 해외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최일은 오래전부터 해외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고아에 생활도 빠듯하게 살아가는 최일로서는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특전부사관이 되면 해외에서 근무를 한다는 말에 망설이지 않고 지원을 결심한 것이다.

지금까지 부사관 지원을 망설였던 이유는 교육을 받고 다시 부대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곳은 강원도에서도 외진 곳이라, 겨울엔 뼈를 에는 추위와 많은 눈이 내려 생활하기 힘든 곳이었다.

“지금 부사관에 지원하겠다는 말인가?”

최일의 말에 오히려 강창석 소령이 당황한 듯이 물었다. 아니 강창석뿐만 아니라 주변에 앉아있던 병사들까지도 모두 최일을 돌아볼 정도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최일이 이렇게 망설임 없이 긍정적으로 대답할 거라 생각지 못한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강 소령이 찾아간 부대에서 단 한 병의 사병도 특전부사관에 지원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원율은 극악했다. 강 소령 역시 사병이 부사관,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곳이라 할 수 있는 특전부사관에 지원하는 것에 다소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일반 부사관을 위주로 특전부사관을 모집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사병으로부터 처음 긍정적인 대답을 듣게 된 것이다. 그것도 내심 스나이퍼로 양성하고 싶은 병사에게서 들은 대답이니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였다.

“음… 정말 관심이 있는 건가? 내가 상관이라 그렇게 대답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이전부터 부사관 제안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호! 그렇군. 헌데 이전부터 제안을 받았다면 차라리 이곳에서 부사관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 따로 특전부사관에 지원하려는 이유가 뭐지?”

“이왕 부사관이 될 생각이라면 외국 생활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래전부터 해외를 나가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해외에서 생활하고 싶어서 특전부사관에 지원한단 말인가?”

강 소령이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아닙니다. 그것이….”

최일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강 소령을 바라보았다.

“단지 해외에 파견 가고 싶어 그러는 거라면 다른 일로도 얼마든지 해외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여기서 부사관 지원을 하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야 하지 않습니까?”

최일이 솔직하게 대답을 하자 옆에 있는 사병들도 이해한다는 듯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은 여기서 부사관을 지원하면 다시 이 산골짜기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그만큼 군인으로서 이곳은 다시 돌아오기 싫은 곳이기도 했다.

좌중을 둘러보던 강 소령은 최일의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최일이 말한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좋아.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지. 혹 따로 배운 운동이나 무술이 있나?”

“검도를 조금 배웠습니다.”

최일은 검도를 익혔다는 이야기만 했다. 태극권을 제법 오랫동안 수련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처음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그 말을 했다가 한동안 부대원들 앞에서 태극권을 펼쳐 보여야 하는 수난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검도를 배웠다는 사실 때문에 한동안 빗자루를 들고 칼춤을 춰야 했지만. 혹시 시범을 보이라고 할까 싶어 검도도 얘기하지 말까 했으나, 특전부사관을 지원하는데 무술 한 가지는 익혔다고 해야 할 것 같아 말한 것이다.

“그래? 나도 검도를 했는데 손 좀 보여주겠나.”

최일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강 소령이 최일의 손을 끌어와 손바닥을 살펴보았다. 검도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검을 잡는 특유의 파지법 때문에 손바닥에 독특한 굳은살이 박혔다. 그걸 살피면 검도를 얼마나 수련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음, 꽤 오래 한 것 같은데. 얼마나 했지?”

“1년 남짓했습니다.”

최일의 말에 소령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시 손바닥을 자세히 살펴본 그가 최일을 바라보았다.

“허~. 정말 1년 남짓했단 말인가? 손을 봐서는 몇 년은 꾸준히 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정말 1년 남짓 배웠습니다. 다만 한동안 검도에 미쳐있다 보니 손바닥에 굳은살이 제법 단단히 박혔을 뿐입니다.”

“뭐…. 배운 사람이 1년을 배웠다니 할 수 없지! 알겠네.”

최일의 손을 놓아준 소령은 남은 세 명에게도 의사를 물었지만 세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

최일은 소령을 통해 특전부사관 지원서에 서명을 하고, 중대에 복귀하자마자 행정보급관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동안 공을 들여놓은 최일을 강 소령이 데려가는 상황이니 상당히 억울할 법도 했다. 그러나 이미 서명을 마쳐버렸으니, 배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일 수밖에는 없었다.

최일은 부사관에 지원하면서 모든 일과 생활에서 열외가 되었다. 어차피 부사관 교육을 받을 상황이니, 굳이 사병들과 함께 훈련받을 필요가 없던 것이다.

때문에 최일은 온전히 행정보급관의 차지가 될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부사관을 지원한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행보관의 소위 갈굼이 시작되었다.

“최일. 행보관님이 부르신다.”

“최일, 이번엔 쓰레기장이다.”

“최일, 창고로~.”

“최일~!”

* * *

빠르게 상병으로 진급한 최일은 마지막 장기휴가를 나와 한동안 소망원에서 지냈다. 입대하기 전 살던 집도 이미 정리했고 남은 옷가지는 모두 소망원으로 옮겨 두었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원장부부는 최일이 부사관에 지원했다는 말에 안타까워했다. 내심 그가 전역 후 이곳 도예 공방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 모두 친자식처럼 길러왔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키워온 최일에게 좀 더 큰 애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어릴 적부터 특출 난 손재주를 발휘했던 그였으니, 원장부부는 최일이 자신들의 뒤를 이어 도공이 되길 바란 것이다.

“몸 건강히 돌아오너라.”

부대 복귀를 앞둔 최일을 마중 나온 원장부부는 안타까운 얼굴로 최일을 배웅했다.

“걱정 마세요. 건강하게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이왕 결심했다면 열심히 해 보거라. 그리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렴. 이곳이 바로 너의 집이라는 걸 꼭 기억하고.”

“네!”

최일은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돌아섰다. 그러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단 묘한 기분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 * *

특전부사관 후보생들은 5주간 기초적인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다. 5주라는 짧지 않은 훈련이 끝난 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훈련이었다. 본격적으로 특전부사관으로서의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산악 훈련부터 고공 낙하, 해상침투, 특공무술과 크라브 마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루어지는 천리행군까지. 교육은 28주간 이루어졌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특전부사관의 훈련은 일반 부대의 훈련과는 차원이 다른, 어렵고 힘든 훈련들의 연속이었다.

군대를 오기 전, 악에 받쳐 일 년 동안 밤낮으로 죽도를 휘두른 최일의 끈기와 노력으로도 중간에 포기하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고된 훈련이었다.

체격이 좋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체력적으로 뒤처졌지만, 최일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다른 분야였다. 그는 강 소령도 인정할 정도의 탁월한 저격능력과 함께,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이동 간 즉각 조치 사격에서 무척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덕분에 최일은 원하는 대로 해외 파견부대에 뽑혀 갈 수 있었다.

“김동석!”

“중사, 김동석.”

“최일!”

“하사, 최일.”

강찬석 소령은 작게 접힌 쪽지를 최일의 사수인 김동석에게 내밀었다.

“작전지역까지는 미군에서 지원해 줄 거다.”

“알겠습니다.”

“최일!”

“하사 최일!”

“이번이 첫 임무지만 그리 어려운 임무는 아니니 긴장하지 말고 잘 해주게.”

강창석 소령이 최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강찬석 소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막사를 나갔다. 상관의 모습이 사라지자 김 중사가 편하게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최 하사.”

“예. 김 중사님.”

“마음 편히 가지라구! 첫 임무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야. 이번 매복지는 그리 위험지역도 아니고 지난번 일어난 테러 현장과도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예, 알겠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생각은 해보았나?”

김 중사가 은근한 얼굴로 최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보기에는 좀 험악해 보여도 나랑 달리 내 동생은 제법 미인 축에 든단 말이야. 이번에 대학도 제법 좋은 곳에 들어갔거든.”

며칠 전부터 여자 친구가 있는지 묻더니, 없다고 하자 어제부터 그에게 동생을 소개해주겠다며 성화를 부리고 있었다.

“휴~. 김 중사님이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전 가족도 친지도 없는 천애 고아입니다.”

최일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아마도 자신이 고아란 사실을 알지 못하고 동생을 소개해주려는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하하! 자네가 고아라 망설인 것인가? 걱정하지 말게.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김 중사가 웃으며 말하자 최일이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얼마 전에 자네가 소망원이라는 곳과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네. 아! 오해는 말라고, 정말 우연히 들은 것이니까!”

김 중사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비록 난 천애 고아는 아니지만, 우리 남매도 고아나 다름없이 컸다네. 부모님을 일찍 여읜 뒤 도움을 받을 친지도 없어 고아나 다름없이 자랐지. 하지만 어떤가? 부모를 잘 만나도 범죄자가 될 수 있고, 없어도 이렇게 나라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네. 그러니 부모보다는 당사자가 중요한 법 아니겠나. 난 자네가 아주 마음에 들어 성실한 데다 근성도 있고 말이야!”

김 중사의 말에 최일의 얼굴이 조금씩 풀어졌다. 자신이 천애 고아란 사실을 알고도 이렇게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은 소망원의 사람들과 남혜원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생각… 해보겠습니다.”

“좋아. 지금은 그 정도로 만족하겠네. 그래도 작전에서 돌아와서는 대답을 해 줘야 하네. 우리 동생에게도 말을 해 놓아야 하니까. 그럼 이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하고 자, 아직 시간이 있지만 먼저 장비부터 챙기고 편히 쉬고 있게나.”

김 중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일도 막사로 돌아갔다. 막사로 돌아온 최일은 한동안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었다. 김 중사의 말에 당황한 것도 있지만, 오래전 있었던 남명철과 남명도를 만났던 일이 잠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워낙 불쾌했던 사건이라 어제 당했던 것처럼 생생했으나, 이제는 그때의 기억을 떨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준비를 해야지.”

최일이 일어나 한쪽에 세워둔 하드케이스를 침상 위에 올렸다. 케이스를 열자 분리되어 있는 저격용 라이플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k-14 저격용 라이플이었다. 겉으론 그저 보급용 저격 총처럼 보이지만 최일이 직접 자신에게 맞게 부품을 깎아 커스텀 한 총기였다.

일전에 다니던 공장에 도움을 받아 칩 패드 조절 부위에서부터 손잡이 부위와 볼트 부분까지, 직접 재료를 선정하고 제작한 것들이었다. 특히 k-14의 방아쇠는 다른 저격 총과 마찬가지로 투 스테이지 트리거 방식이지만, 방아쇠의 압력이 맞지 않아 아예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볼트 역시 원래의 재질이 아니었다. 스테인리스를 직접 깎아 볼트에서 걸리는 부분을 제거했다.

만족스러운 얼굴의 최일이 라이플을 만지작거렸다. 방아쇠나 볼트의 경우 몇 번의 실패 끝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으니 뿌듯할 만도 했다. 물론 총기 커스텀은 불법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군 내부에서는 암묵적으로 쉬쉬하며 넘어가는 일이었다.

철컥-

저격 총에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한 최일은 개머리판을 접어 어깨에 비스듬히 멨다. 그리고 k-5 권총을 홀스터에서 빼내어 장전한 후 더블 액션으로 조정했다. 조정관을 안전으로 올려 이중안전장치를 한 후 다시 홀스터에 집어넣고 천천히 막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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