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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388화 (388/390)

388화.

쿠르르르르르르…

장엄한 기운이 이어두운 공간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거대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 살아생전 단 한번도 느껴 본 적 없는 패도적 존재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시나리오 관리자의 강림이라.'

이토록 대단한 기운을 가진 존재 라. 나는 그럴 만한 존재를 단 하나밖에 알지 못한다.

'설마 엘로힘인가.'

시나리오 관리자란, 엘로힘을 뜻 하는 게 아닐까?

이 세상의 창조주이며 시나리오 의 관리자.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 질 만한 인물은 녀석밖에 없을 터다.

내가 가만히 서있는 와중에도 변화는 계속되었다.

어느새 어둠 속에 파묻혀있던 공간이 점차 밝아져 간다.

하늘 위로 환한 빛줄기가 드리워 지고, 이어둑한 공간이 점차 찬란 한 황금색 광휘로 가득 차오르게 되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이 공간은 더 이상 어둡지 않다.

아무런 물건 없는 삭막한 광경은 그대로였으나, 환한 빛으로 그득 차 온 시야가 찬란한 황금색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내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 띠링!

내 눈앞에 홀로그램 안내창이 떠오른다.

[한지훈.]

기존의 안내창처럼 무기질적인 파란색은 아니었다. 황금색으로 반 들거리는 찬란한 색의 안내창이었다.

이것이 저 시나리오 관리자란 녀석의 메시지인가.

- 띠링! 띠링!

안내창이 연이어 떠오른다.

[시나리오의 완성을 축하한다. 이 로써 너도 자격을 획득하였다.]

[환영한다.]

자격을 얻었으며, 환영한다는 말. 그에 나는 물었다.

"자격이라…. 무슨 자격을 말하는 거지?"

[엘로힘이 될 자격.]

"시나리오 관리자의 정체는 역시 엘로힘이었나?"

[그렇다.]

내 예상대로, 시나리오 관리자의 정체는 엘로힘이었다.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관리자.

녀석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이름 없는 별 한지훈. 모든 유물을 습득해 반신의 격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신화神話'를 완성해낸 것이지.]

"신화라……"

완성된 시나리오는 결국 신화였다. 신이 탄생하기 위한 줄거리. 이 세상은 엘로힘을 탄생시키기 위한 인큐베이터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 문득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신화를 완성했다. 인큐베이터인 이 시나리오의 쓸모가 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나리오는 어떻게 되지?'

그런 내 의문에 대답하듯. 시나리오 관리자-엘로힘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이 세상은 새로운 엘로힘을 배 출해 목적을 달성했다. 더 이상은 필요 없지]

[시나리오를 순수한 마나와 자연력으로 환원해 네 격을 상승시키는데 사용할 거다.]

[그렇다면 너는 완벽한 신격을 얻어 비로소 완전해지겠지.]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나는 후우 한숨 쉬었다.

"역시. 이 세상은 어찌 되든 멸망할 예정이었던 것인가."

아무도 엘로힘의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그대로 예정된 멸망에 집어삼켜 사라진다.

반면 누군가가 엘로힘의 경지에 도달하면, 이 세상은 엘로힘이 되는 존재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순수 한 마나와 자연력으로 환원되어 흡수된다.

결국 그런 운명을 가진 세계가 바로 이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 띠링!

[시나리오 해체 준비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눈앞의 홀로그램창을 바라 본다.

* * *

끼긱. 끼기기직.

이형의 소음이 들려온다. 그에 니디아는 눈쌀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전투는 없다. 광인과 포 식자는 모두 죽어 쓰러졌으며, 오직 짙은 함박눈만이 하늘에서 나풀나 풀 떨어져내리고 있다.

콰득. 콰지직.

하지만 여전히 이형의 소음이 들 리고있다. 마치 거대한 기계장치가 부서져가는 듯한 소음.

그에 니디아는 중얼거렸다.

"이 소음은 뭐죠?"

그녀는 기감을 집중해 청각을 돋 웠다. 마나 또한 끌어올려 전신의 감각을 극한까지 증폭시켰다.

크라함이 죽어 쓰러지고, 광인과 포식자들 또한 정리되었음에도. 아직 남아있는 위협이 있을 수 있다. 그리 여겼던 것이다.

잠시 후.

그녀는 경악한 눈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모든 마나와 자연력이… 사라지 고 있어요."

온 감각을 극한까지 올린 니디아 였기에, 그리고 세계수와 교감하는 그녀이기에 알 수 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근원. 마나 와 자연력. 그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있다.

지상에 내려앉은 자연력이, 허공에 부유하는 마나가, 순식간에 고갈 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라진 마나와 자연력은 급격하 게 유동해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

바로 그녀가 서있는 장소의 깊은 지하공간. 한지훈이 있는 장소로 말이다.

니디아는 무언가를 깨닫고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한지훈 씨가 엘로힘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멸망해야 하는 건가요?"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마나와 자연력이 한지훈에게로 흘 러가고있다. 그 말인 즉, 한지훈에 게 이모든 자원이 집중되고 있다는 소리일 터.

엘로힘. 그저 한지훈이 모든 적을 죽이고 시나리오를 완성한다면 절로 이루어질 일이라 여겼다.

허나 그렇지 않았다.

하나의 존재가 엘로힘이라는 전 능한 힘을 가지게 되려면 얼마나 많은 마나와 자연력이 필요할까.

가히 하나의 세상, 그 자체에 상 응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나와 자연력이 필요할 터다.

엘로힘은 한지훈을 자신과 같은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데, 이 세상을 통째로 부여하려고 한다.

니디아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요…."

그녀는 사라져가는 주변의 마나 와 자연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량의 마나와 자연력이 내 신체 로 흘러들어온다. 너무나도 막대한 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가 해체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0.5%)]

이 세상 모든 마나와 자연력의 0.5%가 나에게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 양이 하찮을 리 없다.

나는 눈앞의 홀로그램을 바라보 며 말했다.

"나는 엘로힘이 되어 이 세상을 지배할 줄 알았는데 ."

피식 웃었다.

"전혀 아니었군. 내가 엘로힘이 되는 대신 이 세계는 사라지는 것 이었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네가 엘로힘이 되기 위해서는 대량의 마나와 자연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 세계를 해체할 필요가 있지.]

"그런가."

말하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대량 의 마나와 자연력이 내 신체로 흡수되고있다. 내 격이 더더욱 상승해 간다.

[시나리오가 해체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1%)]

지금 내 신체에는 이 세계 모든 마나와 자연력의 1%를 흡수한 상태.

아마도 저 진행률이 100%에 달 할 때, 이 세상은 완전히 사라지리라. 그리고 완전한 신격을 획득한 나만이 남아있겠지.

나는 관리자에게 물었다.

"관리자. 질문이 있는데 ."

[무엇이지? 한지훈.]

"내가 엘로힘이 되는 걸 포기하고 이 세상을 남길 수는 없나?"

나는 이 세상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내가 처음 눈을 뜬 곳이자, 벌써 십수 년을 살아왔던 공간이니 말이다.

그에 관리자가 답하기를.

[불허不許]

[너는 엘로힘으로 선택받았다. 나 를 대리하여 무수히 많은 차원을 관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 세계는 네가 관리하고 진보 시킬 세상들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하찮으니 .]

[미련을 버려라. 필멸자의 시선을 버려라. 우주는 무한하며 네가 관리 할 세상 또한 무수히 많다.]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저 할 말을 하는 것인지. 관리자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아직도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인가? 하찮은 집착에 불과하다.]

[원하기만 한다면 네가 원하는 세상을 창조할 수도 있다.]

[오직 전쟁과 파괴만이 있는 세계를 원하는가? 그리할 수 있다.]

[평화로운 세상을 창조하겠는가? 그것도 가능하다.]

[무한히 팽창하는 문명을 만들고 싶은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련을 버리고 전지와 전능을 손에 넣어라. 일개 지성체에게는 더 없는 영광일 터이니.]

역시. 눈높이가 다른 것인가.

저 시나리오 관리자에게 있어 하나의 세계란, 자신이 만든 그럴싸한 미니어처에 불과할 터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만들 고 소멸시켜버릴 수 있는 물건.

그렇기에 녀석은 이 세상을 방치 했겠지. 녀석에게는 무수히 많은 세상이 있을 것이고, 그 세상 하나하나를 세심히 관리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일 테니까.

이 세상에 종속돼있던 나와는 바라보는 시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엘로힘."

신적인 힘이라. 얻을 수 있다면 좋고, 굳이 얻지 않아도 좋은 것이 라 여겼다.

이 세상 전체를 소멸시켜서까지 엘로힘이 되고 싶진 않다.

문득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지휘하던 병사들. 군의 여러 장교와 군관들. 영지에 있는 나 의 세력원들. 조력자인 제국 황제와 여러 군주들. 니디아와 마이사….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 심상을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 조력하고, 혹은 내가 도움을 주었던 많은 인연들.

내가 엘로힘이 된다면 그들 전부 를 잃게 된다. 무한한 힘을 얻는 대신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관계가 소멸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역시. 나는 이 세상을 버리지 못하겠어."

[그것이 무슨 소리이지? 한지훈.]

"그러니까."

철그럭. 오른손에 쥐고있던 세계 검을 올려들었다.

"이런 이야기다. 관리자."

힐끔. 전면의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시나리오가 해체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2%)]

지금, 나에게는 세상의 2%에 달 하는 마나와 자연력이 있다.

아직 엘로힘에 달할 정도로 강대 한 힘은 아니지만, 평범한 생명체의 격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의 힘을 얻은 것이다.

더해 내가 들고있는 것은 세계검 이다.

과거 니디아가 나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절삭할 수 있는 아티팩트에요. 그 어떤 물질과 영혼, 심지어 운명과 시나리오 마저 파훼할 수 있는 최상위의 아티팩트.

- 이것이 있다면 예정된 시나리오를 파훼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겠지요.

그것이 내 손아귀에 쥐어져있다.

더해 지금의 나는 반신의 격에 올랐고, 이 세상 모든 마나와 자연력의 2%를 품고있다.

이 정도로 막대한 힘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엘로힘의 간섭을 베어낸다."

나는 세계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화르르르르륵!

세계검의 검신을 타고 백색 불꽃 이 격렬하게 타오른다. 그 어느 때 보다도 환한 광휘가 일어나 찬란한 빛을 흩뿌린다.

그것을 들어올렸다.

[미련하군, 한지훈. 네가 엘로힘 만 된다면 이런 세상 따위 얼마든지 창조하고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인연을 잃게 되지."

[지성체들의 인연 따위 영겁에 비하면 한없이 덧없는 것. 전지와 전능을 버리고 하찮은 인연을 선택 하려 하느냐.]

"그래."

나는 환하게 빛나는 커다란 대검, 세계검을 치켜들었다. 내 신체에 있는 온 기운을 검신에 밀어넣었다. 찬란한 광휘가 그 세기를 더더욱 드높여간다.

떠오르는 관리자의 메시지.

[결국, '인연'에 대한 미련을 배 제하지 못해 실패하는가. 이사태를 막기 위해 네놈을 복제품으로 창조 해냈거늘.]

"역시 내게 가족이 없는 건 삶에 대한 미련을 조금이라도 억제하기 위해서였나."

[그렇다.]

하긴. 혈연이 남아있는 인물이 지금 이자리에 있다면, 나보다도 훨씬 많은 미련을 느꼈을 것이다. 비록 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한 들 가족이 모두 소멸하게 되는 것 이니.

때문에 엘로힘은 굳이 나를 복제 품으로 만들어냈다. 인연에 대한 집 착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엘로힘이 되는 것 대신 이 세계를 보전하는 것을 택했다.

[어렵구나. 모든 것을 알고있음에 도 지성체의 자유의지를 예상하지 못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네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어.]

체념한 듯한 관리자의 메시지. 나는 시선을 돌려 예의 시나리오 해체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시나리오가 해체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3%)]

어느새 시나리오 해체는 3%에 달한 상태.

이 세상 모든 마나와 자연력의 3%가 내 몸속에 담겨있다.

어디 한번 해볼까.

엘로힘의 간섭을 베어내는 것-나는 검을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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