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유적요새의 제4성벽 위.
"괴물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한창 광인과 포식자들에 대항해 싸우던 병사와 기사들이 다급히 보고했다.
그에 현장에서 병력을 지휘하고 있던 마이사 슈베츠가 성벽 밖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확실히… 광인과 포식자들 이 쓰러지고 있어."
마이사의 시선에 적의 모습이 보 인다.
방금 전까지 성벽을 기어오르고, 병력과 치열한 접전을 치르고있던 광인과 포식자들의 무리.
그들이 비틀거리며 쓰러지고있다. 제대로 된 치명상을 입지 않았음에 도 하나둘 힘을 잃고 지면에 몸을 뉘이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적 생체병기들의 무력화.
마이사는 어째서 저들이 쓰러지 는지, 그이유를 아주 잘 알고있었다.
"크라함이 죽은거야. 해냈구나, 한지훈…."
지금, 한지훈은 저들의 수장인 크라함을 죽인 것이다. 그리하여 놈 의 피조물들인 광인과 포식자는 더 이상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 것일 터고.
마이사는 한지훈의 승리를 확신 했고, 이 기쁜 소식을 아군에게 알리지 않을 그녀가 아니었다.
마이사는 목청 돋워 크게 외쳤다.
- 크라함이 죽었다!
그녀 의 목소리 가 마나통신망을 타고 연합군 전체에 빠르게 전파되었다.
- 포식자와 광인들을 소탕하라! 놈들은 가진 힘 대다수를 잃었으니 , 수월하게 청소할 수 있을 것이다. 끝이 멀지 않았다!
"적을 몰아쳐라! 놈들은 대부분 의 힘을 잃었다!"
"우군의 화력이라면 손쉽게 놈들을 소탕할 수 있다!"
"승리가 가깝다! 남아있는 아티팩트 병기들을 모조리 쏟아부어! 단 한놈도 남기지 마라!"
"명령을 따릅니다!"
그녀의 외침에 병사와 기사들의 사기가 급격히 상승한다. 그에 전투 의 흐름이 점차 이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지친 기색의 병사들이 힘을 쥐어 짜내 아티팩트 병기를 다루었으며, 기사들 또한 오러를 줄기차게 뿜어 내며 접근한 적의 잔당들을 몰아쳤다. 마법사들 또한 마나를 끌어모아 광역마법을 발현했다.
콰르르르르릉…!
이전까지의 힘겨웠던 사투가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광인과 포식자 무리가 손쉽게 쓸려나간다. 성벽 아래에 적 생체병기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이기 시작한다.
마이사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전쟁이 끝났어."
크라함은 죽었으며, 광인과 포식 자들은 손쉽게 쓸려나가고 있다. 이미 전쟁은 연합의 승리로 확정되었다.
모두 한지훈 덕분이다.
만약 그가 크라함을 죽이지 못해 패배했다면, 죽는 것은 저 흑마법사 들의 생체병기들이 아닌 바로 자신 들이었다.
하지만 한지훈은 크라함과의 대 결에서 승리했고. 그 결과 자신들 또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싱긋 웃는 마이사.
그녀는 자신을 보좌하는 측근에 게 지시했다.
"참모장. 내가 탈 전투마와 호위 할 기사들을 대기시키거라."
"각하. 어디로 향하실려는 것입니까?"
"어디긴? 당연히…."
마이사가 시선을 돌려, 유적도시 방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 의 시선에는 기쁨의 기색이 한껏 진하게 담겨있다.
"활약한 영웅을 마중 가야 하지 않겠나."
그녀는 현장이 정리되는 즉시, 한지훈을 보러 갈 심산이었다.
마이사와 기사들이 유적도시로 향한다.
"해냈군요. 한지훈 씨."
니디아는 흩어져가는 녹색 광휘 를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방금 전, 지하에서 느껴지던 흉 험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말인 즉, 크라함이 죽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일 터.
한지훈은 비로소 크라함을 죽여 마지막 승리를 쟁취해낸 것이다. 니 디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정말 모든것이 끝났어요."
크라함은 엘프에게도 , 인류에게도 둘도없는 적이었다.
스스로가 신의 자리에 올라 이 세상을 멸망시키고 자신의 세계로 재탄생 시키고자 하는 이.
그런 크라함이 사라지고, 그가 노리던 자리를 한지훈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이 세상은 크라함의 마수에서 보호되고 예정된 멸망을 지연시 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니디아의 시선이 지하로 향하는 철문으로 향한다.
"엘로힘이 되신 것. 축하드려요, 한지훈 씨."
이제 곧 한지훈은 엘로힘이, 혹은 그에 준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한참이나 지그시 철문을 주시하 던 니디아.
"한지훈 씨께서 다스릴 세상이라.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그녀는 자문하고는, 싱긋 웃었다.
"분명, 이전과는 달리 평화롭고도 따스한 세상이겠지요. 앞으로의 세계가 기대되네요."
니디아는 철문 앞에서 한지훈을 기다린다.
나는 크라함의 시체를 뒤로하고 걸어가, 수정문 앞에 도달했다.
반투명한 색의 커다란 수정문.
별다른 조명이 없는 탓일까. 문자체는 반투명함에도 내부가 보이 지 않았다.
오직 그 매끄럽고 반투명한 표면 만이 내 얼굴을 비추고있다.
나는 수정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제 내가 엘로힘이 된 다고?"
수정구에 비친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를 지닌 인물이 따라 움직인다.
혼잣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개소리지. 내가 신이라니."
수정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 출생에 대한 비밀을 들었고, 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내 삶에 대 한 인식은 평범한 지성체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익을 얻으면 기뻐하고, 손실에 슬퍼하며, 아군의 죽음에 안타깝고, 적에게 분노하는 .
헌데 그런 내가 초월자에 도달 해, 반신을 뛰어넘어, 신이 된다고 한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뭐, 어쨌든."
물론 상상되지 않을 뿐, 결국 그리 될 예정이다.
나는 취할 수 있는 이득을 굳이 취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니까.
손을 뻗어 수정문에 가져다댔다.
번쩍!
수정문에 새겨진 여러 복잡한 마나회로들이 일제히 점멸하며 찬란 한 빛을 내뿜는다. 빛의 광량은 몹시 강렬했으나 어째서인지 전혀 눈 이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빛나는 수정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 띠링!
[유저의 정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나는 내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직후 주르륵 갱신되어가는 홀로그램 안내창.
[유저의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유저 ID : 한지훈]
[이명 : 이름 없는 별]
[칭호 : 위대한 대영웅]
[칭호 : 초월]
[칭호 : 미지 (Unknown) 난이도 유제
[유저의 격이 반신 (Demigod)에 도달한 것을 확인.]
[입장권한을 획득했습니다.]
[환영합니다. 유저 한지훈.]
찰칵. 스르르륵.
수정문이 좌우로 열린다. 별다른 소음 없이, 매우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말이다.
그 광경에 나는 피식 웃었다.
"무슨 자동문도 아니고."
시선을 들어올려 열린 수정문 안쪽 공간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암흑으로만 이루어진 정체 불명의 공간이 열린 수정문 너머에 자리해있다. 아무런 광원이 없기에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다.
나는 그곳으로 발을 뻗어보았다.
저벅.
울리는 발걸음 소리.
걸음을 재촉해 안쪽으로, 안쪽으로 나아간다.
한참이나 걸어오자, 이내 사방이 완전한 암흑색 장막에 에워싸였다. 그 어떠한 물건이나 구조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주의 공허 공간이 지상에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나는 이어둡고 삭막한 공간이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다.
비슷한 곳에 벌써 여러 번이나 가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장소를 떠올려본다.
'이 공간은, 내가 항상 갔던 검은색 공간과 많이 비슷해 보이는데 .'
처음, 내가 눈을 떴던 예의 그 공간. 지금 이 공간은 그곳과 몹시 흡사해보인다.
추측해본다.
'이 시스템의 중추공간이라는 곳 은, 어쩌면, 내가 시나리오 챕터를 클리어할 때마다 갔던 그 검은 공간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며 나아갔고.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블랙 오케스트라]
이 공허한 공간 속. 오연히 떠올 라 환한 빛을 흩뿌리는 하나의 홀로그램.
그곳에 떠올라있는 익숙한 게임 의 로고.
큭큭 웃었다.
"그래. 역시 이 공간은 내가 몇 번이나 갔던 그 검은 공간이었어."
그 누가 알았을까.
가장 처음 눈을 뜨자마자 보였던 그 암흑색 공간이, 다름 아닌 목적지였음을.
저벅, 저벅, 저벅.
와본 적 있는 공간이란 걸 확인 도 했겠다, 나는 거리낌 없이 걸어 예의 로고 앞에 섰다.
고개를 들어올려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 띠링!
마치 영혼을 울리는 듯, 청아한 알림음 소리.
홀로그램이 일변한다.
[게임 클리어.]
[귀하의 점수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시스템이 시나리오의 완성을 감 지했기에, 점수 정산작업이 시작되는 것 같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 정말 시나리오가 끝났구나."
털썩.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는 멍하니 정산창을 바라보았다.
[아군의 피해….]
[적의 피해….]
[얻은 포로….]
[얻은 재화….]
정산창의 점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숫자가 가파르 게 치솟는 꼴이 괘나 볼만하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다.
[사용한 포인트….]
[완료한 퀘스트….]
[도달한 지위….]
[전투점수….]
그동안 내가 무얼 했는가.
일개 제국군 십인장으로 시작해, 백인장과 천인장을 넘어, 군단장과 야전사령관을 지나, 연합의 의장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룬 업적이 한둘이 아니다.
[처치한 적의 수…]
[정복한 영토의 면적….]
[보유 세력….]
[달성한 업적….]
모든 적대세력을 쳐부쉈다.
대륙의 거의 대다수 국가를 합병 하거나 동맹을 맺었으며, 진정한 적 이라 할 수 있는 흑마법사의 세력 또한 완전히 파괴했다.
강적이었던 크라함마저 완벽하게 처치했다.
이토록 많은 일을 해왔으니 . 점수가 높을 수밖에.
- 띠링!
귓가를 울리는 알림음 소리.
정산이 완료되었다.
[축하합니다! 귀하의 시나리오가 최고점을 기록하였습니다.]
[시나리오의 완전 클리어를 인정 합니다.]
[메인 퀘스트]
[시나리오를 완성하라.] (완료)
이로써 나는 시나리오를 클리어 하고 모든 퀘스트를 완료했다.
시원섭섭한 감정이 올라온다.
'정말로 끝이야.'
생각해보면, 시스템과 시나리오의 인도대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나는 퀘 스트에 의해 육성되어왔다.
해야 하는 일을 했고, 죽여야 하는 적을 죽였다.
노력에 대한 보상 또한 확실하니 퀘스트를 수행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가호로 점점 강해지는 스스로에 자부심을 가지기도했다.
"시나리오. 시스템. 퀘스트…."
한때는 내가 상위존재에게 좋을 대로 이용당하는 것이라 여기기도했다.
그야, 나에게 시스템을 쥐어주고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이유도, 그 목적도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순조롭게 엘로힘으로 만들기 위해 만든 안배. 그게 시나리오 아닐까?"
시나리오란 나란 인물을 엘로힘 으로 만들기 위한 이정표.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애시당초 나는 '원본'이 아니다.
엘로힘에 의해 만들어진 복제품에 불과하다.
계획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창조 된 '원본 한지훈'의 개량품인 것이다.
엘로힘의 목적은 자신을 대리할 쓸 만한 부하를 만드는 것.
그에 엘로힘은 원본 한지훈을 토대로 기억과 능력을 변형해 나를 만들어냈으며, 그런 나를 성공적으로 성장시키고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내게 시련을 부여했다.
결국 '시나리오의 완성'이란 내가 모든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엘로 힘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
세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큰 줄기는 대략 이런 느낌 아닐까?
뭐, 지금에 와서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모두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하니."
나는 모든 적을 상대로 승리해냈고, 결국 이자리에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렇게 내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 띠링!
갑작스레, 새로운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시나리오 관리자가 강림합니다.]
[대비하십시오.]
"… 뭐?"
내가 경악성을 내뱉는 그때.
쿠르르르르르르…
장엄한 기운이 이어두운 공간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