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아이템 : 리바이어던의 핵'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아이템 : 베히모스의 핵'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나는 유물을 활성화했다.
치솟는 전능감.
진일보하는 신체.
온몸에 활력이 돈다. 가슴속 깊 숙한 곳에서 자신감이 차오른다.
지금이라면 그 어떠한 일도 기어 코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예를 들자면, 눈앞의 크라함을 죽이는 것이라든지.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정면의 크 라함을 바라보았다.
내가 유물을 활성화한 것 처럼, 놈 또한 마법을 발현한 상태.
"보여주마, 한지훈. 이 세상에 대 한 나의 증오를! 절대에 도전하는 나의 의지를!"
녀석이 한 손에는 마법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검은색 세계검을 쥐어들고 흑마나를 운용해간다.
암흑색 기운이 놈의 전신을 휘감 는다.
"세계에 순응했던 네놈은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
크라함의 전신을 휘감았던 검은색 기운이 방사되어 사방을 뒤흔들 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공간 전체가 놈의 검은색 기운을 한껏 머금어 타락해가고 있다. 공기 속에 섞여있던 미미한 자연력 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놈이 준비를 마친 것일까.
크라함이 양팔을 활짝 펼치며 마법을 발현한다.
"죽어버려라. 한지훈."
주변에 방사되었던 검은색 기운 이 점차 뭉쳐져 실체화하더니, 이쪽 으로 파도처럼 몰아쳐오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르르!
검은색 파도가 정면의 온 시야를 뒤덮는다. 나는 이쪽으로 들이닥치는 암흑의 파도를 바라보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진멸세계라.'
마법 이름치고는 꽤나 살벌하다.
진멸세계盡滅世界. 모든 것이 죽 거나 멸망한 세계를 뜻한다. 참으로 광오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름 그대로 강력한 위력의 마법이라면, 이쪽이 결코 이길 수 없을 터.
하지만 나는 알고있다.
'그래봤자 미완성일 게 분명하 지.'
놈은 엘로힘이 아니다. 그저 유물 두어 개와 한스의 육신을 가진 초월자에 불과하다.
그런 초월자 하나가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이 세상 자체를 지워버 리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기껏해야 이 지하공간을 완전히 장악하는 정도일 뿐.
허나 그래도 위협적이긴 하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검은색 파도 라니. 그이름대로, 저 암흑색 파도는 접촉한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릴 정도의 힘을 담고있다.
물론 나도 당하고만 있진 않는다.
"이쪽도 초월자라고."
세계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전신에서 맥동하는 고격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화르르르륵!
세계검에서린 오러의 불꽃이 변 해가기 시작한다.
시퍼런 청색에서 순수한 백색으로. 유물의 힘을 받아들인 세계검이 정화의 기운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 이다.
후욱.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다. 크라함."
검을 수직으로 내려그었다.
콰아아아아앙!
백색 검기가 쏘아진다. 웅혼한 기세를 품은 초월자의 검격. 강렬하 고도 웅혼한 공격.
콰르르르르르르!
내 검기는 이쪽으로 몰아쳐오는 검은색 파도를 순식간에 절반으로 갈라버리고 길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파도 뒤 크라함 의 모습.
'죽인다.'
나는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돌진했다.
콰앙!
가공할 만한 속도로 나아가는 내 몸. 내가 크라함의 지척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찰나에 불과했다.
검을 들어올려 놈을 베기 위해 움직인다.
시도하는 것은 수평베기.
콰르르르르릉!
반월 모양의 백색 궤적이 공간을 휩쓸고, 크라함에게로 쇄도해간다. 녀석의 목을 노린 검격이었다.
내 실력이라면 단칼에 녀석의 목을 절삭할 수 있으리라. 그리 여겼 던 것이다.
허나 내 예상보다도 크라함의 실력은 더욱 출중했다.
쩌어어엉!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 가 크게 울린다. 내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잊어버린 것인가? 한지훈."
크라함은 어느새 왼손의 장검으로 내 공격을 막아낸 상태였다. 빛 조차 반사하지 않을 정도로 짙은 검은색의 장검, 크라함의 세계검이다.
놈이 입가를 비틀어 웃는다.
"나는 한스의 육신을 취했다. 대적자의 운명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대적자의 운명을 가진 나 는…."
나는 크라함의 말을 흘려들으며 검을 휘둘렀다.
쩌어엉!
다시금 울리는 커다란 검합음. 크라함의 검은색 세계검과, 내 백색 세계검이 맞부딪히는 충격에 공간 이 뒤흔들린다.
끼기긱. 키긱.
검끼지 맞부딪힌 상태에서의 힘 싸움.
어째서인가. 놈은 마법사임에도 힘으로 내게 밀리지 않았다.
놈의 비웃음 머금은 말이 이어진다.
"나는 네놈과 동일한 경지에 이 브렀다는 것이다. 신체의 강도도, 검술의 실력도. 더해 나는 혹마법의 이능까지 가지고 있으니 , 네놈은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
"염병."
검날을 추슬러 놈을 공격할 기회 를 노린다.
허나 놈은 순순히 근접전으로 진 입할 생각이 없는 듯싶다.
"나의 진멸세계여!"
크라함이 뒤로 물러나며 다시금 마법을 운용한다.
심상치 않은 기색. 묵직해져가는 주변의 공기. 놈의 붉은색 안광에서 흥험한 기세가 끓어오른다.
놈이 뭔지 모를 수작을 부리고 있다.
그에 나는 놈을 추격하려 했지 만.
퍼억!
무언가가 내다리를 꿰뚫는 감각 에, 나는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 무슨."
시선을 돌려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방금 전 내가 돌파했던 검은색 파도가 내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내려 내다리를 바라보았다. 질척한 검은색 기운에 의 해 관통당해있는 내 왼쪽 다리가 시야에 잡힌다.
의아해 눈썹을 찌푸렸다.
'고통은 없다.'
이 검은 기운은 실체가 없다. 물 리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검은 기운에 꿰뚫린 내다리는 일견 멀 쩡해보였다.
혹시 놈의 마법이 실패한 것인 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 나갔지만.
착각이었다.
푸스스스….
* * *
왼쪽 다리가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 괴사.'
내다리가 괴사해 썩어가고 있다.
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내 왼쪽 다리만 죽어버린 것 같다.
이게 무슨 일일까.
나는 시선을 들어올려 크라함을 노려보았다.
크라함은 어느새 나와 거리를 둔 상태.
이쪽을 바라보던 녀석이 히죽 웃 는다.
"역시, 네놈 또한 초월자라 이건가. 진멸세계에 관통당했음에도 바로 죽지는 않는군."
"뭘 한 거지? 네놈."
"순수한 죽음의 기운을 네 신체에 주입했다."
크라함이 마법지팡이를 바닥에 버린다. 더이상 지팡이가 필요치 않은 모양.
저벅, 저벅.
놈이 천천히 걸어 이쪽으로 다가온다.
"진멸세계가 완전히 활성화되어 이 지하공간 전체가 나의 영역이 되었다. 이제 이 공간 속 모든 죽음과 삶은 내가 결정하게 되었으니 ! 네놈은 내 공격을 피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가 기세를 돋운다. 놈의 전신을 휘감는 검붉은 기운. 예의 흉험 한 기세가 더욱 강해져가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놈에게 달려들 어, 저 재수 없는 놈의 머리통에 검날을 박아넣고 싶지만.
지금의 나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저 검은색 공격에 내 신체가 관 통당하자,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 지 않는 것이다.
마치 마취라도 당한 것처럼.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던 크라함.
"바로 죽여버리기에는 아깝지."
그가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사각에서 검은색 기운이 솟구쳐 내 왼팔을 관통했다.
퍼억, 하는 미약한 소음.
역시나 고통은 없다. 허나 내 왼 팔이 금세 괴사해가 까맣게 물들어간다.
내 왼 다리처럼, 왼팔 또한 괴사 해 감각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순식간에 신체부위가 죽어버리는 감각. 그 소름 끼치는 느낌이 척수 를 타고 올라왔다.
위험하다.
"마지막 유희로 네놈을 천천히 죽여주겠다. 비록 완전한 죽음 그 자체이기에, 네게 고통을 주지 못하는 건 아쉽다만. 그래도…."
크라함이 재차 손가락을 튕기고.
퍼억! 검은색 기운이 내 옆구리 를 관통했다. 내내장기관과 신경들이 작동을 정지한다.
허리 아래의 모든 감각이 느껴지 지 않는다. 정체 모를 이물감이 든다.
나는 승산이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공간 가득 새겨진 마법진의 정체가 뭔가 했더만.'
진멸세계. 영역 안 모든 존재에 게 죽음을 선사하는 마법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단히 강력한 마법이다.
일단 적중하기만 한다면, 초월자 인 나조차 이토록 쉽게 제압해버린 시종일관 여유로웠던 놈의 태도 가 이해되었다.
이토록 강력한 마법을 준비해 놨 으니 질 가능성이 추호도 없다 여 겼겠지.
"천천히 죽어가는 네놈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진 않군."
즐거운 것일까.
크라함이 이쪽을 바라보며 빙그 레 미소 짓는다. 놈답지 않게 상쾌 한 미소였다.
놈의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따악, 울리는 손가락 튕기는 소리.
퍼억! 퍽!
검은 기운이 내 목덜미와 심장을 관통했다. 목 아래의 모든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팔다리, 움직일 수 없다. 심장박 동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 피가 통 하지 않는다. 숨도 쉴 수 없게 되었다.
숨이 막힌다.
커…헉나는 폐부에 공기를 집어넣기 위해 입을 뻐끔거렸으나, 헛수고인 일 이었다. 내 폐와 기도 또한 괴사한 상태이기 때문에.
목 위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죽 어버렸다. 내 목이 잘린 것과 다름 없는 상황이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져감을 느꼈다.
두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인가?
생각이 흐리멍텅해진다. 시야 또한 회색빛으로 물들어갔다. 눈동자 의상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이런, 거의 다 죽어가는군. 마음 같아선 더욱 오래 즐기고 싶지 삐이이 이이이.
내 귓가를 울리는 이명소리. 눈앞이 어두워진다.
천천히 세계검을 꺼내 내 앞으로 들이미는 크라함.
"슬슬 끝내보지."
직후 시야가 완전히 어둠속으로 가라앉았다. 귓가를 울리는 이명 또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각과 청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 이, 결국 끊겨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 도 들리지 않는다.
그 어떠한 감각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내 의식이 점차 심연 아래로 가 라앉아간다.
나는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 띠링!
모든 감각이 망가져버렸음에도 불구,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울리는 알림음 소리.
완전히 어둠에 물든 시야 속.
[시스템 관리자가 시나리오에 개 입합니다.]
환하게 빛나는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무언가,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엘프 여왕 니디아는 눈을 감고 이능을 발현했다.
'세계의 축복.'
그녀가 발현한 마지막 이능이었다.
이 세상 온천지에 자연력와 마나를 순환시키는 거대한 영물, 세계수그리고 그 세계수와 교감하며 수 호하는 존재 엘프 여왕.
그 둘의 모든 힘과 격, 그리고 영혼까지 소모해 발현하는 , 사실상 시나리오에서 단 한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마지막 이능이었다.
그만큼 그 효과는 너무나도 대단하다.
대량의 자연력과 마나를 한 존재 에게 부여. 일시적으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신적인 존재로 만들어준다.
그러한 세계의 축복을 발현했으니 . 이제 한지훈은 살고, 자신과 세계수는 죽을 것이다.
그렇기에 니디아는 축복을 발현 함과 동시에 눈을 감고 다가올 죽음에 대비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 저는, 왜 죽지 않는거죠."
니디아는 눈을 뜨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어째서 일까.
자신은 건강했다.
혈색은 평소와 다름없었으며, 팔다리는 자유롭게 움직였다. 심장속 의 마나와 자연력 또한 평상시 그대로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세계의 축복. 엘프여왕과 세계수 둘 모두를 희생해가며 발현하는 이 능일 터인데. 어째서 이능을 발현한 자신이 이토록 멀쩡한 것인가.
니디아는 의아해 고개를 갸웃거 렸고. 문득,
"이건……"
이형의 기운을 탐지해낼 수 있었다.
너무나도 고위의 기운이었다.
엘프여왕인 자신이나 심지어 세계수조차 초월할 정도로 고위의 기운. 압도적인 상위 격의 힘.
니디아는 이런 대단한 기운을 가졌을 법한 존재를 단 하나밖에 알 지 못했다.
"엘로힘."
이 세상을 방치했던 그들의 신. 엘로힘. 그가 갑작스레 이 세상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니디아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