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 카아아아아아 j 나와 엘프들을 발견한 광인놈들 이 괴성을 내질렀다.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염병할, 더럽게 시끄럽네.'
세계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콰앙, 하고 터져나오는 파공성. 시야를 가로지르는 푸른색 검광.
서걱!
방금 전 괴성을 내질렀던 광인의 모가지가 절반으로 잘려져 날아오 른다.
후드득 비산하는 암흑색 핏물.
나는 자세를 낮추며 검날을 회수했다.
"광인놈들이 아무리 많아도 내 상대는 아니지."
회수한 검날을 다시금 휘둘렀다. 직후 이쪽으로 달려들던 광인 다수 개체가 베어 쓰러진다. 놈들이 지면을 기며 경련한다.
물론 내가 상대해야할 것은 광인 들뿐만이 아니다.
'포식자.'
시선을 돌려 이쪽으로 돌진해 오고 있는 거체를 바라본다.
- 오오오오오오!
쿠웅! 쿵! 쿵! 쿵! 쿵!
놈이 함성을 내지르며 돌진해 오고 있다. 다소 떨어져 배회하고 있던 놈이, 광인들이 당한 것을 보고는 가세하려 오는 것이다.
그래봤자다.
"고작 포식자 하나로는 아무것 도 못 해."
적어도 내게 세계검이 있는 이상, 그 어떤 생체병기라 한들 소수 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포식자를 운용해 나를 제압하고 자 한다면 수백은 있어야 할거다.
반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포식 자는 고작 한 마리에 불과했으니 .
나는 장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놈의 다리.
포식자의 대가리에 세계검을 꽂아넣기 위해서는 먼저 저 커다란 덩치를 눕혀둘 필요가 있다.
콰직!
내 세계검이 녀석의 발목을 절삭했다.
- 크아아아아아!
놈이 고통 어린 괴성을 내지르며 나자빠진다. 쿠우웅, 울리는 굉음. 수충 건물짜리 거체가 바닥을 구르 니 그 충격에 지면이 흔들린다.
쓰러진 놈의 머리통에 세계검을 박아넣었다.
퍼억 하고 내 세계검이 놈의 이마 속에 박혀 두뇌를 헤집는다. 포 식자는 잠시 부르르 떨더니 절명해 버리고 말았다.
"개같은 것들."
나는 포식자의 머리통에 박혀있 던 검날을 빼내고는, 검을 역수로 쥐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광인들의 머리통을 차례로 부숴버렸다. 확인 사살 절차였다.
퍼억! 퍽! 콰직! 우득!
놈들의 두개골이 부서지고 두뇌 가 짓뭉개지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렇게 내가 막 포식자 하나와 광인 다수를 완전히 처치했을 무렵,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니디아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한지훈 씨."
"왜."
"저길 보세요."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올려 저 멀리를 가리킨다. 나는 고개돌려 그곳을 바라보았고, 곧 표정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드글드글하군, 그래."
"적이 너무 많아요."
방금 전의 소란이 너무나도 컸던 것일까.
광인과 포식자들이 와글와글 몰려들고 있다. 놈들이 건물의 사이사이에서 등장해 이쪽으로 향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 수가 대략 수백에 달하니. 상당히 많은 수가 아닐 수 없다.
"저놈들이 모조리 이쪽을 덮칠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저희는 이길 수 없어요."
그리고 그 적이 이쪽을 향해 돌진해오는 와중이다.
우리와 저놈들의 전투가 벌어진 다면 이쪽은 생존치 못할 것이다.
놈들은 다수고, 이쪽은 소수니까.
만약 내 생명을 소모해 유물을 활성화한다면, 놈들을 압도적으로 분쇄해 생존할 수 있겠지만….
아직 유물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유물사용은 크라함과의 결전에 대비해서 마지막까지 아껴놔야 하니.
물론 내가 저놈들과 싸울 일은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놈들을 따돌리자."
이쪽이 녀석들과 싸워야 할 이유 가 없으며, 반면 놈들을 따돌릴 능력은 충분하니까.
시선을 돌려 내 주변에서있는 세 명의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엘프여왕 니디아. 엘븐가디언 마게브와 타냐.
엘프란 인간보다도 훨씬 유연하고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는 신체를 지니고 있다.
하물며 그 엘프들 중고르고 골라 절정급의 강자들이 바로 저들이다.
광인과 포식자의 무력이 대단타 한들, 회피와 도주에 집중한다면 놈 들을 따돌릴 수 있을 터.
물론 대다수의 광인과 포식자들 이성벽 방향으로 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성벽에서 놈들의 시선을 크 게 분산시키지 않았다면, 오히려 적 에게 포위당해 죽는 것은 이쪽이었을 터다.
나는 지시했다.
"마게브, 앞장서라. 놈들과의 정면대결을 피하고 크라함이 있는 위치를 찾는다."
마게브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혹 마나 계수기를 집어든 채 앞으로 달려나간다.
나는 그의 뒤를 따른다.
우리는 적의 추격을 따돌려가며 도시 내부를 수색했다.
수색하는 과정은 꽤나 단순무식했다.
"한지훈 씨! 이쪽입니다!"
가장 선두에서있던 마게브가 그리 외쳤다.
지금 마게브는 손아귀에 혹마나 계수기를 들고서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그가 흑마나 계수기로 흑마나의 농도가 진한 방향을 찾으며 나아가고, 우리는 그가 짚은 방향에 있는 적을 모조리 죽이거나 배제하며 앞 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공기를 뒤흔드는 묵직한 파공성. 주변을 휩쓰는 검풍. 터져나오는 검은색 피안개.
내 검날에 광인 십여 개체가 단숨에 베여 시체로 화한다. 놈들의 신체파편이 여기저기에 후드득 떨 어져 내렸다.
나는 시선을 돌려 내 배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아직도 이쪽을 쫓아오고 있는 광인과 포식 자들의 행렬이 보인다.
"쯧"
절로 혀가 차졌다.
"더럽게 끈질긴 것들. 도통 포기 하질 않는구만."
"지성 없이 오직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것들이니까요. 적은 저희가 시야 안에 있으니 죽어 사라질 때 까지 쫓아올 거예요."
"지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 적이 라. 정말 성가신 적들이야."
이쪽을 추격 중인 광인과 포식자 들이 어느새 배 이상으로 불어있었다.
그 수가 대략 1천 가량.
유적도시 중앙구획에 도착해서 붙은 적의 추격행렬이 점차 불어나, 결국 천이 넘는 수의 생체병기에게 쫓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곧 머지않았다.
"한지훈 씨. 거의 다 왔습니다. 저 내성 지하에 크라함이 있을 것 입니다."
마게브가 크라함의 위치를 거의 다 특정해냈으므로.
엘프들과 도시 곳곳을 누빈지 어느새 두 시간가량이 지났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지로는 네 시간 가량 이후.
지금 우리는 유적도시의 완전 중앙지점에 도달해있다. 흑마나의 농 도가 가장 높은 지점이었다.
시선을 돌려 전방에 보이는 건물 의 모습을 살핀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딱 봐도 이곳이 적의 중심지로 보이는구만."
꽤나 투박하게 생긴 내성이다.
높이는 그리 높지 않다. 성치고는 상당히 작은 수준.
창문은 하나도 없었고, 성을 둘 러싸고 있을 첨탑은 모조리 부서져 바닥에 파편으로 굴러다니고 있다. 오직 내성건물만이 우뚝 서있다.
그 흔한 창문이나 발코니 하나 없이, 오직 회색벽돌로만 이루어져 있는 석제 건물.
"저 건물 지하에 크라함이 있다 이 말이지."
나와 엘프들이 내성 앞까지 달려 갔다. 나는 검을 휘둘러 성문을 부 숴버렸다.
콰아앙!
손쉽게 터져나가는 내성의 문짝. 내부경관이 드러난다. 그리 넓지 않은 홀과 온통 깨져있는 대리석 바닥이 시야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내성 안에는 별다른 호위병력이 없는건가.
"좋아. 그럼 지하통로를 찾지. 니 디아?"
"맡겨만 두세요."
니디아가 정령술을 발현했다.
그녀가 손짓하자 이름 모를 정령 들이 모여들어 반짝였고, 곧 무어라 주문을 외우니 사방으로 녹색 기운 이 퍼져나가며 이능이 발현되었다.
잠시 침묵하던 니디아가 눈을 떴다.
"지하로 통하는 길을 찾았어요. 따라오세요."
마게브가 물러나고 니디아가 앞 장선다.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 내성 의외진 공간으로 향하더니, 어떤 문짝을 발견했다. 꽤나 견고해보이는 철문이었다.
그녀가 철문을 발로 걷어찬다.
쾅 제대로 잠금조차 되어있지 않은 것인지, 철문은 힘없이 열려 문 뒤 배후공간을 드러냈다. 문 뒤에는 지하로 향하는 기나긴 계단이 자리해 있다.
너무나도 기다란 계단이다.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음에도, 그 끝이 어디인지 여기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깊은 계단.
"저지하 안쪽에 크라함이 있을 거예요."
크라함의 위치를 확신하는 니디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들어가지."
이제 이 계단 아래로 향한다면 크라함과 조우할 것이다.
크라함은 강한 적. 놈을 상대하 는데 있어 믿음직한 아군은 한 명 이라도 더 있어야한다. 그렇기에 나는 엘프들과 함께 지하로 향해 크 라함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건… 안돼요. 한지훈 씨. 저희는 저 아래로 내려갈 수 없어요."
니디아는, 아니, 그녀를 비롯한 엘프들은 지하로 향하지 않으려는 듯싶었다.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지? 니디아."
"저지하공간 아래에는 시스템의 중추가 있어요. 그리고 시스템의 중 추란 엘로힘이 만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관리되는 장소. 저희같은 하찮은 존재가 감히 가서는 안 되는 곳이지요. 이걸 보세요."
니디아가 발걸음을 옮겨 문 너머 지하계단으로 향하려했다. 하지만 그리하지 못했다.
파직!
니디아가 막 지하계단을 향해 발을 내뻗는 순간, 푸른색 뇌전이 일어나 그녀를 밀어냈으므로.
니디아가 표정을 찌푸린다.
"저나 마게브도 감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결계가 펼 쳐져 있어요. 추측하기론, 일정 격 이상의 힘을 가진 인물들만이 출입 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 같아요."
"그런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조율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에요. 힘도, 자격도 없는 하찮은 것들이 감히 출입할 순 없지요. 저 공간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초월자 급에 준하는 힘이 있어야해요."
나는 발을 뻗어 계단을 한 발자국 걸어보았다. 방금 전 보았던 푸른색 뇌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초월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니디아의 말은 사실 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금 지하통로 안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은. 크라함도 초월의 격에 도달했다는 소리일 터인데."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토록 대단한 흑마나의 능력과, 내 대적자였던 한스의 신체까지 차 지한 놈이다. 더해 크라함은 유물 또한 두 개나 가지고있다. 초월의 격에 도달했다 한들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다시금 고개 돌려 니디아를 바라본다. 그녀가 싱긋 웃었다.
"자, 그럼. 한지훈 씨."
"어."
"저희의 역할은 모두 끝났어요."
그녀가 말하는 와중 여러 괴음들 이 들려온다. 키이익, 캬아악 거리는 광인과 포식자들의 소음들.
놈들이 이내성 안쪽으로 들어온 것 같다. 타냐가 장검을 꺼내들고 마게브가 마나를 끌어올린다. 명백한 전투준비 태세.
저들은 내가 지하공간에 가있는 동안, 이곳에서 싸울 심산이다.
아마도 내가 크라함을 처치하기 전까지. 끝없이 이곳에 고립된 채 무수히 많은 광인과 포식자들을 상대하겠지.
후우.
니디아가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이제 곧 모든 것이 결정되어요.
새로운 엘로힘의 탄생, 멸망과 부흥, 종말과 연속. 이 시나리오의 끝 이 다가올지, 아니면 시나리오가 계속해 이어갈지 말이에요. 그리고… 한지훈 씨."
나는 니디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을 읽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무언가 주저하는 듯한 기색이 떠올라있었다.
니디아는 내게 뭔가를 말하려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결국 스스로 체념한 것인지 말하는 것을 단념해비 리고 말았다.
과연 그녀는 내게 뭘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한지훈 씨."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마침내 다음 말을 이었다.
니디아가 나에게 나직이 고한다.
"이 세계를 구원해주세요."
나는 그녀의 얼굴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보았던 그녀의 말이,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얼굴을 했던 엘리스의 말이 기억 속에서 떠올랐 기 때문이다.
- 부디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말아주세요. 한지훈 씨.
처음, 내가 이름 없는 별이라는 것에 대해 들었을 적. 전대 여왕 엘리스는 나에게 말했었다.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 고.
그리고 이제 내 운명을 깨달은 지금, 현대 엘프 여왕 니디아는 내 게 이 세상을 구원해달라 요청하고 있다.
이전 시나리오와 다르게 완전히 바뀐 결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나는 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
아니. 실제로 구할 수 있을지 어 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 볼 것이다.
어차피 미련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죽음이 예정된 마지막 싸움이다.
어차피 죽을 거. 최선을 다해 발 악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 무사히 살아남아서. 모든 일이 다 끝난 다음에 뵈어요. 이름 없는 별… 아니, 한지훈 씨."
니디아는 내가 살아남을 것이라 여기고 있는 듯하다.
내가 엘릭서가 없어 죽을 것임을 알고있을 터인데, 어째서 저리 말하 는건가?
"니디아! 그게 무슨 소리…."
나는 그에 대해 물으려 했지만, 그녀가 문을 닫는 것이 빨랐다.
쿠웅. 하고 닫히는 두터운 철문.
"뭐야."
그러자 밖에서 새어들어오는 빛 이사라지는 대신, 지하계단 양쪽 벽에 박혀있는 마나등들이 일제히 점멸해 청색 조명을 사방으로 흩뿌린다.
아무래도 문을 닫으면 그에 반응 해내부의 마나등이 켜지는 모양.
"… 일단. 가볼까."
나는 발걸음을 옮겨 지하계단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곧, 크라함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