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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381화 (381/390)

381화.

전투마법사들이 일제히 화력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현한 광역마법들이 도시를 두드린다.

굉음과 폭발이 일고, 유적도시의 건물들이 우르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광인과 포식자들이 건물파 편들에 깔린다.

허나 전투마법사의 공격을 그들을 처치하지 못했다.

- 오오오오오오!

그저 화만 돋구었을 뿐.

놈들이 우수수 파면무더기에서 일어서 성벽 방향을 향해 몰려간다. 어그로가 제대로 끌린 것이다.

작전대로다.

"이제 가지."

성벽쪽의 병사들에게 제대로 어그로가 끌린 지금. 이제 나와 니디 아를 비롯한 최고정예들이 저 유적 도시 내부로 침투할 때다.

나는 성벽 아래로 밧줄을 내렸다.

"내가 먼저 내려가겠다. 다들 따 라와."

지금 나와 니디아가 있는 이곳은 제4성벽, 그중에서도 계단조차 없는 몹시 외진 위치였다.

이처럼 적이 드물고 외진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발각 위험을 조금이 라도 줄이는 방법.

부웅.

나는 성벽 밖으로 몸을 던졌다.

양손으로 밧줄을 잡고, 마찰을 걸어 하강속도를 조절했다. 내 몸이 적당한 속도로 지면에 가까워진다.

타탁.

나는 대지를 밟은 직후 곧장 움직여 주변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런 내 뒤를 따라오듯 나와 함께할 이들이 모조리 내려온다.

'니디아. 타냐. 마게브.'

이번 일에 동원된 정예들이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 넷.

나야 말할 것도 없고, 다들 대단 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정도면 4명이란 숫자에 상관없이 거대한 전력이라 할 수 있으리라.

타탁. 바스락.

모두가 밧줄을 타고 무사히 다 내려온 뒤, 나는 그들을 둘러보며 나직이 고했다.

"이제 가지."

광인과 포식자놈들을 유인한 틈 에, 크라함의 위치를 찾아 움직일 때다.

나와 엘프들은 눈 내리는 유적요 새로 향한다.

"좋아. 이제 슬슬 도시에 도착했 겠구나. 한지훈."

마이사 슈베츠. 그녀는 임시 사령부 막사에서 통신수정구를 집어든 채 그리 말했다.

그녀가 들고있는 통신수정구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지훈 의 목소리였다.

- 그래. 방금 전 도시 초입에 도착했어.

"지금 위치는?"

- 유적요새 동쪽 외곽구역. 자세 한 위치는 모르겠는데 주변에 반파 된 5층 이상 고층건물이 4개 정도 보인다.

"5층 건물 4개라…. 어디인지 알 거 같은데. 기다려봐."

마이사는 테이블 위에 자리해있는 지도로 시선을 옮긴다. 역시나 엘프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전략 지도였다.

적아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감시 해 표시해주는, 몹시나 유용하고도 대단한 능력을 가진 아티팩트 지도.

하지만 이 아티팩트 지도는 지금 반쯤 먹통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광인과 포식자의 수가 너무 많 아서, 적아 표시기능이 작동하지 않다니.'

그들 하나하나가 대량의 혹마나 를 품고 있는 생체병기들. 그런 놈 들이 물경 수천 개체나 뭉쳐있다.

이에 대기 중에 퍼져있던 마나가 교란당해, 아티팩트 마법지도가 제대로 작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지금의 마이사는 눈뜬 장 님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정보를 얻었던 아티팩트 지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도가 없다 한들, 그녀에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한지훈. 위치를 찾았다. 지금 그곳 근처에 광인들이 있을 확률이 높아."

-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자리를 옮겨야지. 기다려. 비교적 적과 덜 조우하며 유적지 중심 부로 향하는 동선을 알려주지. 먼저…."

그녀의 능력은 이미 완성되어있 기 때문이다.

지금 마이사는 복잡한 화력투사 지휘를 하는 와중에도 한지훈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나는 어둑한 뒷골목을 달렸다.

좁디좁은 골목길이었다.

건물과 건물 틈새에 나있는 아주 좁은 길.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고, 하늘에서 펑펑 내려오는 함박 눈들도 거의 새어들어오지 않는다.

즉 은신과 침투에 적합한 공간이 었으니 .

우리는 그 뒷골목을 빠르게 달려 요새 중앙으로 향한다.

이 뒷골목은 제대로 된 방향파악 이 힘들 정도로 시야가 협소한 곳 이었다.

헌데 우리가 이런 뒷골목에서 정확히 길을 따르며, 요새 중앙으로 향할 수 있는 이유.

다름이 아니었다.

- 세 갈래 길이 나온다면 좌측으로 가. 조심해, 광인들이 배회하고 있을거다. 은밀히 처치하면서 이동 해.

"알았다. 그리하지."

마이사의 지시가 너무나도 상세 하고 정확한 덕분이었다.

그녀는 엘프의 정보력 덕분에 만들 수 있었던 이곳 윈터아르비엔의 지도와, 시시각각 성벽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현황. 두 가지의 정보를 조합해 적과 아군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지휘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예상의 정확도는 꽤나 좋다. 예상이 아닌 예지라고 불러야 할 만큼.

지금도 그렇다.

"광인이다. 두 개체."

마이사가 광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니, 실제로 뒷골목을 배회하고 있는 광인놈 두 개체가 시야 속에 잡혔다. 뒷골목 안쪽에 있기에 제대로 마법폭격의 어그로가 안 끌 린 녀석들이다.

후욱.

나는 숨죽여 놈들에게 접근했다.

직후 놈들을 향해 뻗어져나가는 두 줄기의 쾌검.

콰직! 서걱.

이후 울리는 관통음과 절삭음.

오러 서린 내 검날이 녀석들의 목을 순식간에 관통하고 베어버렸다. 놈들이 힘없이 털썩 쓰러져 하얀색 눈을 검은색 핏물로 물들여간다.

"좋아. 처리 완료."

나는 그리 말하고는, 시선을 돌려 내 시야 한켠에 떠올라있는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스킬 : 은신술(하급)]

내 기습을 보조한 시스템의 스킬.

하급에 불과했지만, 내 민첩이 민첩인 만큼 아무리 광인이라 한들 이쪽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더해 내 세계검에는 정화의 기운 이 듬뿍 서려있다. 놈들은 되살아날 수 없다.

"계속 이동하지."

우리는 계속해 이동한다.

나와 엘프들은 두 시간 가량을 뒷골목을 따라 은밀하게 이동했다.

그동안 광인 수십 개체를 조용히 처치했고, 마이사의 길안내를 받아 마침내.

- 거기서부터 유적도시 중앙구획 이다.

우리는 도시 중앙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슬쩍 뒷골목 틈에서 목을 빼내 도시의 모습을 살폈다.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래, 확실히 중앙구획으로 보이 는데 ."

뒷골목 밖 큰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드넓은 도로가 길게 뻗어있고, 그런 도로의 좌우에 커다란 건축물 이 빼곡히 들어차있다.

비록 지금은 노후화되고 방치되 었지만, 아주 머나먼 옛날에는 이 도시가 지금의 제국수도나 내 영지 루벤처럼 극도로 성세한 도시였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옆에서있던 니디아가 나직이 입을 연다.

"윈터아르비엔. 저의 조상들의 머 나먼 옛날 수도이지요."

"네 조상이라면… 엘프? 여기가 엘프의 도시였다는 말인가?"

"네. 맞아요."

처음 안 사실이다.

"본래 이유적도시의 이름은 윈 터아르비엔이 아니었어요. 그냥 아 르비엔이었죠. 머나먼 과거, 저희 엘프가 중앙대륙에 틀어박히지 않았고, 아직 엘로힘이 이 세상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적 수도였어요."

"이런 춥고 척박한 땅이 수도라고?"

"네. 물론 아주 옛날에는 지금의 중앙대륙처럼 풍족한 땅이었다고 해요. 엘로힘이 이 세상에 애착을 잃고 떠나버린 뒤로는 이렇게 차가 운 땅이 되어버렸지만요."

그녀가 삭막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래서 저희 엘프 조상들은 이곳 북부대륙에서 중앙대륙으로 거 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지요. 그야, 이런 척박한 곳에서 더 이상 살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의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본래 이곳 윈터아르비 엔은 엘프의 옛 수도였다.

북부대륙은 중앙대륙 못지않은 풍족한 대지였고, 엘프들은 문명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아득한 과거임 에도 이 정도로 거대한 도시를 세울 정도로 엘프의 세력은 강했다.

하지만 엘로힘이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을 잃고 타 차원으로 떠나버렸다.

그 여파로 북부대륙은 그 온난함을 잃고 만년설한의 땅으로 화해버렸고, 그렇기에 엘프들은 중앙대륙으로 이주하고 만다.

대충 이런 내용인 것 같다.

'…뭐, 나랑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로군.'

알면 좋고, 몰라도 별 상관없을 정도의 잡정보다.

하지만 그런 내 감상은 이어진 그녀의 말에 바뀌고 만다.

"만약 한지훈 씨가 크라함을 처 치하고 새로운 엘로힘이 되지 못한 다면, 이 세상 전체가 결국 이렇게 변해버리고 말겠죠."

"그게 무슨 소리야?"

"과거 온난하고 따스했던 북부대륙이 이토록 춥고 메마른 땅이 된 이유. 말했다시피 신이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 본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눈이 펑펑 쏟아져내리고 있다.

내 입가에서 피어오른 입김이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신이 없는 세상은 결국 정체되고 썩어가게 돼요. 흑마나가 만들어 지면서 정기의 순환에 점차 차질이 생기지요."

정비 없는 자동차 엔진이 마모되어 결국 망가지게 되듯. 세상이란 그냥 굴러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세상을 유지보수 해주 어야만 정상적인 세계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런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세상은 정상적이지 않다. 엘로힘이라는 작자가 이 세계를 버렸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정비 없이 굴러가고 있는 세상. 그에 하나둘 폐해가 튀어나오고 있다. 북부대륙의 동결과 혹마나의 등장이 그 예다.

니디아가 씁쓸하게 웃는다.

"그래서예요. 저희 엘프가 한지훈 씨를 도우고, 한지훈 씨 몰래 한스 를 회유하려 했을 정도로 새로운 신을 만들려 한 이유. 신이 없는 세상은 정체되고 결국 쇠퇴하고 말 아요. 이곳 북부대륙처럼요."

그리고 엘프는 그 어떤 종족보다 도 이 세상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 들.

그들은 예정된 멸망을 반드시 회 피하고 싶었고, 그렇기에 나와 한스 를 눈여겨보았다.

니디아가 시선을 내려 눈을 마주친다.

"잡담이 길었네요. 그것보다는 이제 크라함의 위치를 알아내는데 전력을 다해야겠죠. 우리에게는 시간 이 많이 없으니까요."

"그렇지."

"마게브. 탐지기를 꺼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여왕님."

니디아의 말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게브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회색 수정구였다.

이전에 굴라덴에서 보았던 아티팩트. 흑마나 계수기. 그것을 개량 의 개량을 거듭해 만들어낸 물건이다.

마게브가 마나를 흘려넣어 수정구를 작동시키자, 이후.

티틱… 틱… 티틱….

마치 가이거 계수기의 신호음과 도 같은 소리가 수정구에서 들려온다. 흑마나 탐지신호다.

니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도시 중앙구획쯤 되니 혹 마나가 탐지되는군요. 이제 이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 가장 혹마나 농 도가 진한 곳으로 향하게 되면, 그곳에서 크라함을 만날 수 있을거예 요."

"흑마나 계수기라. 굴라덴 때와 똑같구만."

"네. 그때와 똑같죠."

굴라덴 잠입작전 당시에도 저 흑 마나 계수기를 사용해 적의 마법진 위치를 파악했었다. 이번에도 똑같 은 방법으로 놈들의 중심부를 찾아 갈 심산이다.

"좋아. 크라함의 위치를 찾는 건 이거면 됐고. 이제 문제는…."

나는 시선을 돌려, 유적도시 중앙구획 도로를 바라본다. 그러자 저 멀리 보인다.

쿠웅, 쿵! 쿵! 쿵 쿵!….

웅장한 소음을 울리며 움직이는 적의 무리. 포식자와 광인놈들이 무리 지어 일정 간격으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피식,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저 배회하는 놈들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인데."

도시 중앙구획쯤 되자 제대로 어그로에 끌리지 않은 놈들이 퍽 많다.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크라함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일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곳곳을 배회하는 광인과 포식자의 수가 너무나도 많 았으니까.

"아무래도 은신놀이는 여기서 끝 인가본데."

더 이상 은밀히 도시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들키는 것은 기 정사실.

이제 남은 것은 강행돌파뿐이다.

철그럭, 세계검을 집어들었다.

"전투준비해. 놈들을 뚫고 도시 내부까지 간다."

"… 알았어요. 한지훈 씨. 다들 준비하세요. 지금부터 아주 큰 소란을 피우게 될 것 같으니까요."

니디아와 엘프들이 하나둘 전투 를 준비한다.

니디아가 정령들을 불러들이고, 마게브가 마나를 끌어올려 마법을 연산해갔으며, 타냐는 오러를 일으 켰다.

각각 기세를 끌어올리는 세 명의 엘프들.

나는 그들이 준비되기까지 잠시 기다리고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대로 방향을 바라본다.

작게 읊조렸다.

"간다."

콰앙!

나는 지면을 박차고 밖으로 쇄도 해갔다. 포식자와 광인놈들이 이쪽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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