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나는 전투마를 타고 달려가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적의 지휘부로 추 정되는 커다란 목제 건축물이 보인다.
씩 미소지었다.
"좋아. 놈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도착했어."
나는 적이 예비대를 운용해 반격 하기도 전에 공백지대를 주파, 적의 지휘부 바로 코앞까지 신속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 마이사 덕분이었다.
- 좌측으로 돌아라. 적의 호위병력은 정면에 있을 것이다. 왼쪽 방향으로 들어가야만 보다 적은 전력을 상대하며 적의 고위 흑마법사들을 노릴 수 있을 것이야.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
마이사는 내가 가야할 방향을 마나통신을 사용해 짚어주었고, 덕분에 적의 방어병력과 마주치지 않고 적 지휘부까지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녀의 지휘가 없었다면 나는 적의 방어병력과 조우해 한참이나 늦게 도착했으리라.
"후우."
심호흡하며 장검을 집어들었다. 역시나 세계검이었다.
크게 소리친다.
"기사들! 적 지휘부 좌측으로 돌 입한다! 전투준비! 오러를 발현하 라!"
"전투준비! 전투준비!"
"오러를 발현하라! 전투를 준비 하라!"
내 목소리에 반응해 하나둘 오러 를 끌어올리는 기사들.
나는 혼자서 적진에 난입하지 않았다. 지금 내 뒤에는 5천에 달하는 정예 기사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고위 흑마법사들 따위,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으리라.
아무리 고격의 흑마법사라 한들 근접한 기사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으니까.
나는 마이사의 지시에 따라 왼쪽 으로 크게 선회했고, 곧 적의 허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방어병력이 그리 많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
저곳으로 가면 되겠지.
전투마의 배를 박찬다.
두두두두두두.
가속하는 전투마. 빠르게 스쳐지 나가는 주변의 배경. 커다란 지휘부 건물의 모습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다.
"기사! 기사들이다! 놈들의 기사 들이 왔다!"
"빌어먹을! 키메라랑 노예병사들을 불러!"
"방호마법을 운용…."
흑마법사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한다.
허나 그래봤자다. 놈들은 결코 이쪽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니.
콰르르르르릉!
세계검을 휘둘렀다. 푸른색 궤적 이번뜩이고, 노예병사와 키메라들 이 단숨에 절삭되어 피안개를 흩뿌 린다.
검은색 피안개 너머 경악하는 흑마법사들.
"한지훈…! 한지훈이다!"
놈들이 내 모습을 알아보고는 눈을 크게 뜬다.
나는 그리로 돌진했다.
"한지훈 의장합하! 잡졸들은 저희들이 상대하며 길을 열겠습니다! 놈들의 지휘관을 노리십시오!"
"그리하지."
내 돌진을 보조하는 휘하 기사 들. 그들을 믿고 세계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콰직! 서걱!
나는 쉼 없이 세계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적의 흑마법사를 베었고, 놈이 지휘하는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을 절삭했으며, 도망치는 놈들을 말발 굽으로 짓이겨버렸다.
적의 방어진형이 순식간에 와해 되어 흩어진다.
이후 나는 놈들의 방어병력을 뚫 고 지휘부 건물 내부로 파고들었다. 전투마에서 하마한 뒤 건물 내부를 걸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들려오는 철그 럭, 거리는 소음들.
피식 웃었다.
"우글우글하구만. 전선에 나가지 않고 후방에 남아있던 병력이 이렇게나 많았나?"
건물 복도 곳곳에 암흑기사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하나같이 암흑색 장검을 집어든 채 내가 서있는 복도 앞뒤를 포위하듯 도열한다.
놈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 쳐라!
암흑기사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나는 오러를 끌어올렸다.
"아틀리트 님이시여! 적의 기사 들이 건물 안까지 침입해왔습니다!"
"암흑기사들이 영격증이지만…
막을 수 없습니다! 놈들이, 특히나 한지훈 그자가 너무나도 강합니다!"
"어서 도주하셔야 합니다!"
휘하 흑마법사들이 다급히 보고 해온다. 아틀리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도주, 도주라…."
마치 체념이라도 한 듯 어딘가 힘 빠진 목소리.
그에 휘하 흑마법사들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아틀리트께선 저희 볼라바아에 남은 마지막 최상급 흑마법사이십니다. 그대가 없다면 저희들은…."
"4성벽 너머로 갑시다. 3성벽 내부는 이미 함락당했습니다. 물러나 마지막 방어전을 수행해야 할 때입 니다."
흑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도주를 요청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기사들이 지휘부 건물 내부 로 쳐들어왔고, 암흑기사들이 응전 중이지만 역부족. 선두에 선 한지훈 덕분에 암흑기사들이 힘없이 죽어 나가고 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다수의 암흑기사들이 일격사 당했고, 그가 장검을 휘둘러 충격을 발할 때마다 이 건물이 흔들거리고 있다.
쿠르르르릉….
때맞춰 들려오는 묵직한 소음. 건물이 진동하고 천장에 들러붙어 있던 먼지들이 후드득 떨어져내린다.
휘하 흑마법사들이 다급히 외친다.
"아틀리트이시여! 어서!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저희들이 시간을 끌어보겠습니다! 4성벽 너머로 가십시오!"
그들의 외침에 피식 웃는 아틀리 트.
"4성벽 너머로 가서. 도주해서. 내가 뭘 하란 말이냐?"
"아틀리트이시여…."
"생각해보면, 위대하신 종주께서는 우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셨 던 모양이야."
드르륵.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가 향하는 곳은 이곳 지휘소 건물 꼭대기층에 자리 해있는 창가.
창가 너머로는 전투 모습이 펼쳐 지고 있다.
- 모조리 죽여라! 내부의 흑마법사들을 제압 소탕하라!
- 잡졸은 우리 아드네가 맡겠다! 나머지 기사단은 건물 내부로 진입 해- 키아아아아!
수천의 기사들이 키메라와 노예 병사들을 학살하고, 나머지 기사들 이 지휘소건물 내부로 꾸역꾸역 밀 려들고 있다.
아틀리트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크라함께서는 우리가 이 요새를 점거한 직후부터 모든 연락을 차단 하시고 지하에 틀어박혀 계신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아무런 지시조차 없이 말이야.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
"우리를 버린게야. 신이 된다는 과업을 달성하기 직전인 지금, 우리 의 쓸모가 다했다는 소리겠지. 그러 니 한 톨의 관심마저 주지 않은 채 이쪽을 방치하는 것이고."
"아틀리트! 아무리 당신이라 한 들 주인님을 의심할 수는 없소!"
"이자리에서 나만큼 종주를 모 신인간이 없지 않나. 다시 말하지. 종주는 우리를 버렸다. 우리를 크라 함을 진정한 신세계의 지도자라 여기며 믿고 따랐건만, 그자에게 있어 서는 편리한 장깃말 정도에 불과했 던 것이야. 애석한 일이지…."
"아틀리트! 네놈이 정녕!"
휘하 흑마법사들이 분노하며 기 세를 끌어올릴 그때였다.
덜컹!
최상층의 커다란 문이 벌컥 열렸다. 이후 저벅저벅 걸어들어오는 한 기사.
기사의 외형은 꽤나 섬뜩했다.
전신갑주에 온통 검은색 액체가 찐득하게 묻어있다. 커다란 거검을 장비하고 있으며, 강렬한 기세를 발 하고 있다.
철컹.
그가 투구의 바이저를 올렸다.
그러자 보이는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저런 특이한 외향과 저토록 거센 기세를 가진 인물이라. 아틀리트가 알기로 그런 인물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의 저승사자가 왔군."
그는 한지훈을 바라보며 피식 미소지었다. 체념과 회한이 어린 미소였다.
"보아하니 내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데."
나는 최상층에 자리해있는 흑마법사들을 바라보며 그리 추측했다. 놈들의 모습이 꼭 서로 싸우기 직전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뭐,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이놈들을 모조리 죽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나는 장검을 들어올려 바로 코앞에 있는 흑마법사를 베었다.
서걱!
"크아아아아!"
놈의 복부가 반으로 잘려나가며 놈이 반토막났다.
녀석의 절삭된 시체가 지면을 구 르고, 핏물이 목제 바닥을 질척하게 적셨다. 역겨운 혈향이 피어오른다.
"이대로 무력하게 당할 순 없다! 놈을! 놈을 죽여라!"
"마법을 쏟아부어!"
그러자 정신을 차린 것인지, 흑마법사 놈들이 저마다 흑마법을 운 용해 나를 제압하고자 한다.
이후 점차 완성되어 가는 놈들의 공격마법.
허나 나는 피식 웃을 뿐이다.
'느려.'
그 어떤 마법사라 한들, 마법을 발현하는 데에는 연산과 마나제어 과정이 필수적. 약간의 시간이 소모 된다.
하물며 저자들 대부분이 중금 내지 상급에 불과한 흑마법사들. 최상 급의 경지가 아닌 이상 즉각적인 반응은 곤란하다.
반면 나는 검을 들어올려 휘두르 면 될 뿐.
그러니까, 간단한 이야기다.
"네놈들의 마법이 완성되기도 전 에. 너희들 모두가 죽을 것이다."
콰앙!
나는 바닥을 박차고 놈들에게 쇄 도했다. 놈들의 뭉쳐있는 곳으로 향 하자 흑마법사들의 경악한 모습이 시야 속에 잡힌다.
나는 장검을 휘둘렀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다란 사선을 이루는 검격.
퍼어어어억!
피육이 갈려나가는 소리.
"끄아아아악! 아악! 아아아아!"
"내 몸이…! 내 몸이!"
장검을 크게 휘두르자 10여 명의 흑마법사들이 단번에 반으로 쪼개 져 바닥으로 후드득 무너져내렸다. 피안개가 터져나오고, 역겨운 혈향 이 더욱 진해진다.
그 와중에도 내 몸은 계속해 움직이고 있었으니 . 몸을 돌리고, 측 면의 흑마법사들을 향해 검을 내찔 렀다.
콰아아아앙!
한줄기 섬광이 흑마법사들이 뭉 쳐있는 곳을 타격한다. 놈들의 몸뚱 아리가 폭탄처럼 터져나간다. 다시 금 시야를 가득 메꾸는 피안개.
'마법사는 근접한 기사를 결코 이길 수 없지.'
흑마법사. 강력한 존재다. 수백이 모인다면 하나의 도시를 파괴할 수 있으며, 수천이 모인다면 일국을 한순간에 멸망시키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근접한 기사를 이길 수 있는 마법사는 흔치 않다. 더욱이나 정도의 강자를 근접에서 상대할 수 있는 이는 더더욱 희소하니.
놈들의 죽음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퍼억! 콰직! 서걱.
나는 놈들이 채 마법을 발현하기 도전에 모조리 죽여버렸다. 어떤 놈은 단칼에 목이 잘려 죽었고, 어떤 놈은 심장이 꿰뚫렸으며, 어떤 놈은 몸뚱아리가 절반으로 쪼개져 죽어버렸다.
그렇게 아주 잠깐의 시간 뒤.
"후우."
나는 이 널따란 방안에 있는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파앙!
장검을 크게 휘둘러 검날에 맺힌 검은색 핏방울을 털어버렸다. 시선을 돌려 방의 정 중앙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 명의 인물이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이자리에 있던 흑마법사 들 중 가장 높은 경지를 가진 녀석. 최상급 흑마법사로 보인다. 이름이 아마 아틀리트였던가.
놈에게 검날을 겨누며 물었다.
"네놈. 어째서 나를 공격하지 않았지?"
내가 녀석을 즉결처형하지 않는 이유. 놈이 전혀 공격 의사를 내비 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놈은 최상급의 경지에 닿아있는 흑마법사다. 이자리에서 내게 대응할 수 있는 놈은 녀석이 유일하다.
헌데 그런 녀석이, 오히려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 멍하니 서있을 뿐이라니.
그에 나는 의문을 느꼈고. 그렇 기에 놈을 죽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이유를 들을 때다.
아틀리트가 입을 연다.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희망이라. 흑마법사 놈들에게 절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
"우리 흑마법사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종주 크라함이 신세계의 신이 된다면 우리는 그의 수혜자가 될거 라는 희망이. 우리가 죽더라도 신이 된 크라함이 우리를 되살려 영생을 누리게 해주리라는 희망 말이다."
아틀리트가 미소지었다. 일그러진 미소였다.
"하지만 전혀 아니더군. 크라함은 우리를 버렸다. 놈은 그저 우리를 장기말처럼 여기고 소모했을 뿐이 야. 우리에게 다음생은 없다. 크라 함이 진정 엘로힘의 자리에 오르더 라도 우리를 되살려줄 일은 없겠지."
"그걸 이제야 깨달았나?"
추측하건데, 흑마법사들에게 있어 크라함이란 존재는 일종의 종교와 도 다름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따른다면 죽은 이후에도 되살아나 영생을 누릴 수 있다니. 사이비종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놈의 발언을 들어보니 흑마법사 놈들의 비정상적인 충성심이 조금 이나마 이해되었다.
'어차피 죽어도 크라함이 신이 되면 자신들을 살려줄 터이니,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 그리 무섭지 않다는 것인가. 실제로 한스를 완전히 되살렸으니 놈들의 충성심이 강해질 만해.'
하지만 크라함이 죽은 흑마법사 들을 되살려줄 일은 없을 터다.
크라함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행동할 뿐인 악인이다. 그런 이가 수 하들을 챙기는 모습은 절대 상상되지 않았다.
그에게 놈들은 그저 편하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에 불과하다.
아틀리트가 큭큭 웃는다.
"그래. 멍청하다는 표정이로군. 맞다. 나는 멍청하지. 여기 죽은 이모지리들도 멍청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모든 흑마법사들에게 지식과 힘을 베푼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 믿을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 었지. 아틀리르가 그리 중얼거리고 는, 양팔을 활짝 벌렸다.
"자, 어서 죽여라, 한지훈! 최상 급 흑마법사는 내가 마지막이다. 4성벽 뒤로는 흑마법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4성벽 뒤에는 그럼 아무것도 없는건가?"
"아니. 광인과 포식자들이 있지. 대략 수천 개체 정도."
놈이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 알려준다. 나는 정말로 궁금했던 것을 놈에게 물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크라함의 위치 는? 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지?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은데."
"4성벽 너머 요새 지하 어딘가에 있다. 그곳에서 며칠 동안 모든 연락을 끊고 무언가에 매진하고 있다. 내가 알고있는 것은 이게 다다."
"그래."
나는 세계검을 들어올렸다. 푸르 게 빛나는 오러의 광휘.
눈앞의 흑마법사를 바라본다.
놈의 표정은 허탈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홀가분해 보였다.
추측해보건데, 놈 또한 힘겨운 삶을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생의 종착지가 이런 곳이라는 것에 허탈하면서도, 마침내 이 힘겨운 삶이 끝난다는 것에 홀가분해하는 얼굴이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적은 죽일 뿐.
"잘 가라."
서걱!
청색 검광이 번뜩이고, 내 장검 이놈의 목을 절단했다. 놈의 모가지가 붕 떠오르더니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뒹군다.
털썩.
이후 스르륵 무너지는 놈의 몸뚱 아리. 나는 품속에서 통신수정구를 꺼내들었다.
"마이사. 흑마법사 놈들은 모조리 죽였다."
- 수고했어, 한지훈.
"이제 정화작업을 실시하고 빠져 나가지."
나는 주변에 널려있는 마법서놈 들의 시체를 한곳에 모은 다음, 성 냥을 꺼내 불붙였다.
화륵. 화르르륵.
마법서에 옮겨붙은 불이 타오르 기 시작한다. 불길은 점차 빠르게 번져나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시체가 낭자한 건물 복도와 계단을 걸어, 기사들을 데리고 놈들의 지휘부에서 벗어났다.
건물 밖으로 나온 나는 시선을 돌려 지휘부 건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휘부가 노후화된 목제 건축물 이라서일까. 시뻘건 불길은 그 잠깐 사이 극도로 거대해져, 지휘부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다.
이후 화마를 견디지 못하고 우르르 무너져내리는 적의 지휘부.
콰르르르르르르!
건물이 붕괴한다.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온통 가린다. 뜨거운 열기가 주변에 내려깔려있는 눈들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나는 그 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4성벽 너머에는 광인과 포식자 들밖에 없다고."
부서진 건물에서 시선을 돌려, 성벽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성벽이다. 그 성벽 위를 노려본다.
1번부터 3번 성벽 위에는 방어를 위한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이 배치 되어 있었건만, 4성벽 위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성벽 너머 유적지 안에, 광인과 포식자 놈들을 실컷 풀어놨겠지.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읊조린다.
"크라함."
게임에서는 내 든든한 아군이었 으나, 현생에서는 나의 적인 이의 이름. 볼라바아 학파의 종주. 모든 것의 혹막.
"곧이다."
곧 놈과 만날 것이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연합군 본영 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