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연합군 병사들이 제3성벽을 향해 나아간다.
이전과 달리 그들의 병력전개는 널찍이 퍼져있었다.
하나의 지점에 병력을 집중시켜 단숨에 돌파하려는 것이 아닌, 전방 위적인 공세를 가해 화력을 골고루 퍼트린 것이다.
아틀리트가 클클 웃었다.
"멍청한 연합군 놈들. 일점돌파를 시도하지 못할 정도로 군율이 망가 졌는가. 쉬운 싸움이 되겠군."
아틀리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 하고 있다.
마이사 없는 연합군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그리 여기고 있기 때문에.
휘하 흑마법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맞습니다. 놈들은 일점돌파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이 사 그 계집이 없기 때문에 통솔력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이겠지요."
"그래도 기특하지 않습니까? 사령탑이 없는 놈들이 그나마 공세는 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쉬운 전투가 될 것입니다."
흑마법사들이 저마다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모두가 승리를 확신했기에 예비 대조차 제대로 준비해두지 않았다.
어차피 적은 일점돌파를 시도치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는 상태.
당연히 성벽은 함락당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예비대조차 투입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허나 그들의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적이 성벽에 접근했습니다. 요격 전투를 실시합니다."
"… 공성병기들이 예상보다 많습니다. 놈들의 보병대가 성벽을 기어 오르려고 합니다."
"마법사의 화력이 예상보다 강하 군."
"남쪽 3번 구획이 위험에 처했습니다!"
하나둘 올라오는 심상치 않은 보고들.
아틀리트 곁을 지키는 흑마법사 들이 저마다 긴장을 끌어올린다.
전투가 계속되었고, 보고가 이어 졌다.
그다지 유쾌한 보고들은 아니었다.
"서쪽 7번 구획에 적 보병대 병력이 올라옵니다! 지금은 성벽 위에서 교전 중!"
"남쪽 3번 구획! 적의 기사단이 성벽 위로 올라왔습니다! 성벽 위에 배치된 노예병사와 키메라들이 쓸려나가고 있습니다!"
"동쪽! 보병들이 올라옵니다! 너무 많은 수입니다!"
"충차가 서쪽 성문을 타격했습니다! 문이 부서지려 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아틀리트의 입가에 어렸던 미소 가 순식간에 사라져간다.
그에게 휘하 흑마법사들이 요청했다.
"아틀리트이시여! 예비대를 투입 해야 합니다! 곳곳에서 성벽이 함락당하려 합니다!"
"예비대… 예비대라. 어디로 보내 야 하지?"
"그야…"
흑마법사들이 전장 지도를 살핀다. 예비대를 투입해야 할 지점을 살피고자 하는 것일 터.
허나 그들은 곧 침음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적의 주공이 어디인지 전혀 모르지 않나. 동쪽? 서쪽? 그것도 아니면 이전처럼 남쪽이냐?"
적의 주공이 전혀 인식되지 않았 기 때문에.
동쪽, 서쪽, 남쪽성벽. 그 어떤 곳에서도 적의 주공이라 인식되는 공세지점이 전무했다.
온 성벽에 걸쳐 연합군 병사들이 공성장비를 이끌고 공격을 시도했고, 마법사들이 마법을 퍼부었으며, 기사단들이 돌진해 성벽 위를 타고 올랐다.
예비대를 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예비대란 적의 주공으로 인식된 지점에 투입해야 하는 것.
헌데 정작 그 주공이 어디인지 전혀 판별할 수 없는 상황.
그에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아틀리트였다.
흑마법사들이 결정을 머뭇거리는 그 순간에도 적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곧 아틀리트의 귓가를 때리는 다급함 어린 보고들.
"서문이 완전히 뚫렸습니다! 적의 병력이 파고듭니다!"
"남쪽 성벽 위 또한 마찬가지입 니다! 적 보병과 기사들에 의해 성 벽 위가 장악되어갑니다!"
"동쪽 공세가 너무 거셉니다. 적 이 벌써 다수의 구획을 점거하고 병력을 성벽 위로 올려보내고 있습니다."
"아틀리트이시여! 이렇게 성벽을 빼앗겨서는 아니됩니다! 어서 예비 대의 투입을!"
아틀리트는 이를 꽉 악물었다.
"밀어! 밀어붙여라!"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을 도륙하 라! 놈들을 모조리 죽여 이거점을 확보하라!"
"돌진! 돌진하라!"
"으아아아아!"
병사와 기사들로 이루어진 혼성 부대가 3성벽 너머에서 전투했다.
병사들이 방진을 이루고 창칼로 키메라들을 밀어낸다.
물러나 한곳에 뭉친 키메라들에게 기사들이 돌진, 놈들에게 오러서 린 검날을 휘둘렀다.
키메라들이 우수수 죽어나간다.
- 키익! 캬아아아아!
철퍽. 후드드득.
시야 곳곳에서 튀겨오르는 검은색 핏물. 그사이사이를 누비는 기사들의 오러서린 검광.
키메라들이 힘없이 죽어나가고, 노예병사들은 보병들의 장창방진에 의해 갈려나갔다.
놈들의 시체가 지면 곳곳에 아무 렇게 버려져있다.
성벽 너머의 전투는 순조로운 상황.
허나 그렇다고 뒤에서 뒷짐이나 지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나 또한 전투에 참여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잘려나 가는 적 키메라의 허리.
- 키아아아아!
놈이 검은색 핏물을 흘리며 나자 빠지고, 나는 진각을 밟듯이 일보 전진.
회수한 검날을 다시금 휘둘렀다.
콰앙!
내 검격이 허공을 파고들어간다.
가공할 만한 충격에 10여 개체의 키메라가 파동에 휩쓸려 날아가고, 내 검신이 적 키메라 세 개체를 동시에 관통했다.
놈들이 힘없이 철퍽 무너진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교두보를 확보한건가."
아침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 었고, 고작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남쪽 성벽을 장악 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 너머까지 진출해있다.
성벽. 본래 공략하기 어려운 방어구조물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쉽사리 공략해냈다.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 한지훈. 여기 2군은 서쪽 성벽을 완전 점거했다. 그쪽 또한 남쪽 성벽을 장악한 걸로 보이는데….
"어. 우리도 성벽 위를 완전 점 거했고, 지금은 요새 내부에서 전투 중이다."
- 적의 예비대가 보이나 ?
"아니. 전혀 안보여."
흑마법사들이 예비대를 운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성벽 위에 있는 놈들이 적의 전력 전부가 아닐 터인데, 예비 대를 아직도 투입하지 않고있다니.
이상한 노릇.
내 대답에 마이사가 킥킥 웃으며 말한다.
- 이런. 흑마법사 놈들, 정말 예상 외인데. 엉뚱한 곳으로 예비대를 투입하리라 예상했지만, 설마 예비 대조차 투입하지 않을 정도로 우왕 좌왕 할 줄은-.
"그만큼 이쪽의 전술이 기존 상식과는 많이 다르니까. 어떻게 대응 해야 할지 감이 안잡히는 것이겠지."
본래 공성전에서는 주공과 조공 이 기본이었다.
조공이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실질적으로 성벽 위를 공격할 주공 이 무수히 많은 공성병기과 주력군을 이끌고 성벽의 일점을 공략하는 것.
이것이 이 세상 공성전의 기초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투에서 마이사는 기초적인 공성전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다.
종심전투교리. 주공을 숨겨 적을 기만하고 적의 예비대 투입을 교란 한다.
적의 방어를 파훼한 뒤 주공이라 할 수 있는 충격군이 적 종심 깊숙이 파고들어 후방을 유린한다.
그리고 주공은 나였다.
"이제 놈들의 방어선을 깨부쉈으니 , 슬슬 돌진해봐야겠어. 마이사?"
- 그래. 한지훈.
"적의 종심을 돌파해 놈들의 후 방을 급습하겠다. 전체적인 지휘는 맡긴다."
이제 나는 전투마를 타고 달려나 가, 적 지휘부를 급습해야만 한다.
놈들의 지휘부는 제3성벽 안쪽 어딘가. 그곳에 있을 흑마법사 놈들을 모조리 갈아버린다면 손쉽게 이 길 수 있다.
마이사가 흔쾌히 대답한다.
- 그래. 믿고 맡기라고.
"이제 간다!"
나는 전투마 위에 탑승한 뒤, 투 구의 바이저를 내렸다. 전투마의 배 를 박찼다.
히히히힝!
전투마가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녀석이 앞으로 가속하기 시작한다.
두두두두두.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그런 내 뒤를 기사단이 따른다.
방향은 북쪽. 적의 사령부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방향이었다.
"연합군 놈들이 성벽을 완전히 돌파했습니다!"
아틀리트는 눈을 꾹 감았다. 그 의 눈꺼플은 가늘게 떨리고있다.
두려워서? 그건 아니었다.
"빌어먹을 연합군 놈들."
그는 단지 분노해있을 뿐이었다.
아틀리트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동자에는 붉은색 안광이 번들거리고 있다. 흑마나를 운용 중 이라는 증거.
아틀리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 섰다.
"성벽의 전 방향이 뚫렸으니 . 이제와서 예비대를 투입하기엔 무리 로군."
"상관없다. 제깟 놈들이 얼마나 많다 한들. 놈들은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성벽이 아닌 이곳에서 싸우더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
아틀리트가 시선을 돌려 지도를 바라본다.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지도. 그곳에서는 현재 요새 내부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표기 되어 있다.
아를리트가 쯧 혀를 찬다.
"남쪽에서 기사들이 돌진해오는 군. 역시 주공은 남쪽이었던 것인 가."
남쪽에서 치고들어오는 기사들의 수가 심상치 않다. 정예로 보이는 기사들이 대략 5천가량. 몹시나 많은 수.
그제야 아틀리트는 적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병력을 넓게 퍼트렸던 것. 그것 은 그저 연합군측이 통솔이 무너졌 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놈들이 진정한 주공을 감추 기 위한 기만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으득. 이를 가는 아틀리트.
"보아하니, 마이사 그 계집이 죽 지 않았나보군."
그는 그리 확신했다.
고르게 병력을 전개해 이쪽의 판단력을 흐리고, 주공을 숨겼다. 예비대 투입을 지연시켰다.
이후 전투에 진입해 섬세한 군사 들의 지휘를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모든 성벽을 장악해버렸다.
마이사가 없다면 결코 불가능한 솜씨이 리라.
아틀리트가 누군가를 호출한다.
"만티넘. 이리로 나오도록."
만티넘. 마이사를 찔렀다고 보고 한 암흑기사의 이름이었다.
만티넘이 걸어나오고, 아틀리트는 그에게 되물었다.
"마이사 슈베츠가 검에 찔린 것.
제대로 확인했나?"
- 그렇습니다. 아틀리트이시여.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던 사실이나이다.
"그렇다면 놈들의 저 치밀한 움직임은 무엇이지? 마이사의 솜시 아니라면 저것이 가능하겠는가?"
아틀리트의 물음에 만티넘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마이사 슈베츠. 필시 그 계집은 아직도 살아있다. 내가 직접 부여한 저주검에 베였다면 그럴 리 없을 터인데 말이다."
지금 연합군 측이 보여주는 움직임. 마이사 슈베츠가 보일 만한 치 밀함이 담겨있다.
저 군대 전체를 지휘하는 것은 분명 그녀이리라.
그 말인 즉, 마이사는 아직 생존 해 있다는 것.
후우, 한숨을 내쉬는 아틀리트.
그가 손을 들어올린다. 그의 손 에는 검은색 기운이 일렁이고 있다.
"네놈의 거짓 보고 때문에 이쪽 이 큰 피해를 보았다. 생명으로 죗 값을 치러라."
- 아틀리트이시여! 그게 무슨….
암흑기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퍼억!
아틀리트의 손날이, 암흑기사의 투구 속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콰직! 우드득!
아틀리트가 암흑기사의 투구 속 안면을 완전히 분쇄해버렸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 펴니 두개골 내부가 완전히 진탕됐고, 암흑기사 의 움직임이 멈추게 되었다.
철퍽. 후드득.
손을 빼내자 힘없이 무너지는 암흑기사의 시신. 주르륵 흐르는 검은색 핏물.
아틀리트는 쯧 혀를 차고는 주변 흑마법사들에게 지시했다.
"비로소 놈들의 주공을 확인하게 되었으니 예비대를 투입하겠다. 후 방에 있는 키메라와 노예병사 군단을 전위로 세워라. 놈들의 돌진을 막는다."
"명을 따릅니다. 종주의 대리자이 시여."
흑마법사측의 예비대가 앞으로 나선다.
아니, 나서려했다.
그러나 예비대는 차마 앞으로 나 설 수 없었다.
"아틀리트이시여! 적의 기사들이 지휘부 코앞까지 접근해왔습니다!"
"… 뭐'?! 벌써! 어떻게?!"
적의 접근이, 예비대가 놈들을 맞이하러 가는 것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아틀리트의 당황한 시선이 다시 금 홀로그램 속 지도로 향한다.
어떻게 저토록 빠르게 움직인 것 일까.
한지훈이 이끄는 기사들. 그들은 벌써 이곳 지휘부 바로 앞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놈들의 위치는 지척.
아틀리트의 얼굴에 경악이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