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375화 (375/390)

375화.

"마이사!"

나는 앞으로 달려가며 검을 휘둘렀다.

번뜩이는 검광. 허공을 가르는 푸른색 궤적.

내 세계검이 암흑기사 두셋을 단 번에 절삭한다.

- 크아아아악!

놈들이 검은색 핏물을 흩뿌리며 지면으로 쓰러지고, 나는 암흑기사 들의 진형 속으로 난입했다.

경악에 찬 시선으로 이쪽을 주시 하는 암흑기사들.

- 놈! 놈이다! 한지훈이다!

- 한지훈은 남쪽에 있다 하지 않았나! 놈이 어찌하여 이곳에 있는 것이냐?!

놈들이 당황한다.

하기야, 저들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터다.

'30분 만에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하지만 나는 해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포인트를 민첩에 꼬라박고, 포션으로 끝없이 체력을 보충해가며 달려왔기 때문이다.

휙, 쨍그랑!

왼손에 빈 포션병을 던져서 깨트렸다. 시선을 돌려 암흑기사 놈들을 살펴보았다.

당장 시야 속에 보이는 암흑기사 들의 수는 수백. 내 시야 밖에 있을 놈들도 고려하면 적어도 천 단위는 있다 보아야 한다.

꽤나 많은 수의 적.

허나 괜찮다.

나에겐 스킬이 있으니까.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 띠링! 띠링!

[엑스트라 스킬 : 몰입' 이 활성화 됩니다.]

[엑스트라 스킬 : 전투예지' 가 활성화 됩니다.]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심장이 맥동하고, 사고가 가속되었다. 시선 속 모든 정보가 머릿속 으로 몰아쳐온다.

시선을 돌려 마이사를 바라봤다.

"… 한지훈."

마이사는 넋 놓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으득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체념했던 그녀의 얼굴 표정이 떠올랐기에.

'어째서 삶을 포기한거지?'

내가 알고 있던 마이사는 저런 성격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 까지,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가 연합을 부수고, 이 세상 모두를 점령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았었다.

헌데 이번 시나리오의 그녀는 이전 시나리오와 달리 너무나도 쉽게 삶을 포기해버렸다.

그이유가 무엇인가.

오래 생각할 수는 없었다.

- 저년부터 죽여!

내 등장에 잠시 경직되었던 암흑 기사놈들이 마침내 제정신을 차렸 기 때문에.

놈들이 제목적을 상기하고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웅!

마이사와 인접해있던 암흑기사가 장검을 휘둘렀다.

검날이 공기를 가르며 마이사에 게 쇄도해가는 꼴이, 가속된 사고 덕분에 똑똑히 보였다.

그렇게 놔두어서는 안된다.

나는 바닥을 박찼다.

콰앙!

앞으로 돌진하는 내 몸. 허공에 부유한 상태에서 검을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반월 모양의 푸른색 궤적이 어둠 속에서 번뜩인다.

콰르르르르릉!

이후 터져나오는 커다란 굉음과 후폭풍.

다수의 암흑기사들이 절반으로 절삭되어 검은 피안개를 흩뿌리며 날아간다.

나는 다시금 지면을 박찼다.

쿠웅!

이번에는 좀 더 낮게, 마치 바닥에 배를 깔듯. 낮은 자세로 도약했다.

나는 놈들의 품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다시금 장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횡방향.

콰드드드드드득!

놈들의 무릎을 길게 베어버렸다.

- 끄아아아아아!

다수의 암흑기사가 양다리를 잃고 우르르 쓰러진다. 내 도약에 상 체를 방어하던 놈들은 이쪽의 검격을 미처 막아낼 수 없었다.

내 앞을 가로막던 암흑기사놈들 이모조리 쓰러졌다. 길이 뚫렸다.

마이사와의 거리는 지척. 이제 그녀를 구해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늦고 말았다.

간발의 차였다.

퍼억!

"크윽…!"

마이사가 크게 눈을 뜨며 신음했다. 그녀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복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은색 장검 하나가 박 혀있었다. 암흑기사의 장검이었다.

'염병!'

나는 속으로 욕을 뇌까리며 장검을 휘둘렀다.

서걱!

마이사의 배를 찌른 암흑기사의 모가지가 단번에 잘려나간다. 놈의 목 없는 시신이 분수처럼 피를 내뿜고는, 힘없이 털썩 쓰러진다.

쓰러지는 것은 마이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복부에 검이 관통당한 그녀가 고통을 채 이기지 못해 무너지듯 쓰 러진 것이다.

"마이사!"

나는 한달음에 그녀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주변에는 아직도 수백에 달하는 암흑기사들이 도열해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놈들이 얼마나 많던지 나를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

그것보단 마이사의 상태가 걱정이다. 나는 그녀의 검상을 살폈다.

내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심상치 않은데.'

그녀의 복부 관통상은 결코 평범 하지 않았다.

복부에 박혀있는 검은색 장검.

그곳에 어린 암흑색 기운이 스멀 스멀 일어나 그녀의 신체 속으로 점차 파고들고 있다. 모종의 기운이 그녀를 침식해가고 있는 것이다.

"망할."

불안한 기분이 든다.

허나 일단은 목숨이 붙어있다.

나는 그녀의 복부에 박혀있는 장검을 빼내고는, 상처와 입가에 포션을 흘려넣었다. 곧 부글부글 기포가 인다.

일단 목숨은 붙어있으니 , 이 포 션으로 충분히 살릴 수 있을거다.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 쓸모없는 짓이다. 한지훈.

철그럭, 철컥.

주변에 도열해있는 암흑기사들이 한 발자국씩 걸어나온다. 놈들이 검 과 창끝을 이쪽을 겨누었다.

암흑기사들의 말이 이어진다.

- 저 계집을 찌른 장검에는 저주 가 깃들어있다. 하찮은 포션 따위를 아무리 들이붓는다 한들, 결코 치유 하지 못하지.

철그럭.

놈들이 한 발자국 더 걸어나온다. 창을 찌른다면 맞을 수 있는 거리.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만큼 놈의 말이 충격적이 었기 때문에.

고개 돌려 방금 전 아가리 놀린 암흑기사들을 바라본다.

"저주라고…?"

- 우리가 평범한 장검으로 저 계 집을 처형할 줄 알았더냐? 완벽히 말살하기 위해 준비한 장검이다. 편히 죽게 할 수는 없지.

"개같은 새끼들."

시선을 돌려 마이사를 바라본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채 두 눈을 감고있다. 저주의 영향일까. 안색이 점차 창백해져가고, 식은땀이 끊임없이 흐른다.

포션에도 전혀 차도 없는 모습.

놈의 말은 사실로 보였다.

- 이번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사령탑을 처치했으니 너희 연합은 통솔력을 잃고 흩어질 것이며, 네놈 은 더 이상 전장에 나오지 못하게 되겠지. 네 대신 군을 지휘할 인물 이 없으니 말이다.

- 그러니 순순히 죽어라.

- 예정에는 없었지만, 네놈까지 처형시켜주지. 크라함께서도 기뻐하 실 것이다.

화륵. 화르르륵.

암흑기사들이 제각기 오러를 불러일으킨다. 흉흉한 암흑색 불꽃이 곳곳에서 타오른다.

- 볼라바아를 위하여 !

놈들이 검을 치켜들었다. 나는 세계검을 쥐고 놈들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놈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내가 직접 나설 필요 가 없었다.

"이런, 늦고 말았네요. 미안해요 한지훈 씨."

뒤늦게나마 내 아군이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에.

번쩍! 번쩍! 번쩍! 번쩍!

곳곳에서 섬광이 터져나오고, 엘프 전사들이 빛무리를 헤치며 등장했다.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던 인물은다름 아닌 니디아였다.

그녀가 변명하듯 말한다.

"사태를 확인하고 곧장 도약 마법을 운용했지만. 결국 늦고 말았네 요. 그래도 완전히 늦은 건 아닌 것 같으니… 이 정도는 용서해주실 거죠?"

니디아의 시선이 나와, 내게 안 겨있는 마이사에게로 향한다. 마이 사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니, 완전히 늦었네요. 이걸 어 쩌지?"

엘프전사들은 개개인이 고강한 무력을 지닌 이들. 암흑기사들로서는 전투를 꺼릴 수밖에 없는 상대다.

그런 엘프 전사들 수천이 도약마 법을 통해 현장에 등장했다.

- 엘프! 엘프다! 엘프 전사들이 다!

- 이길 수 없다! 퇴각해!

- 후퇴거점으로 향하라!

그에 암흑기사들은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암흑기사들이 퇴각하고, 엘프 전사들이 그들을 뒤쫓아 사냥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쓸데없는 전투를 하지 않고 오직 마이사의 상태에 신경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마이사의 안색을 살피고, 곁에서있던 니디아가 푹 한숨 쉰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포션을 사용해도 아무런 차도가 없어. 왜 이러는거지?"

"한번 제가 알아보지요."

그녀가 부드럽게 손가락을 움직여 마법인지 정령술인지 모를 것을 시전했다. 공기가 녹빛으로 흔들리고, 이형의 기운이 술렁인다.

마침내 마이사의 상태를 확인한 니 디아.

그녀의 표정이 더욱 찌푸려진다.

"역시, 흑마법사의 저주네요. 포 션으로는 차도가 없는 게 당연해요. 포션은 일반적인 신체의 손상만을 치료할 수 있을 뿐, 저주는 해주할 수 없으니까요."

"마이사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그저주를 해주하면 되 나'?"

"네. 마법사들을 동원한다면 하루나 이틀 안에 보통 해주되지요. 하지만…."

니디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주에 사용된 흑마나의 농도가 너무 짙어요. 이래서야 저주가 해주 되는 것보다는 그녀가 죽는 게 더 빠를거예요."

나는 시선을 돌려 마이사의 상태 를 다시금 살폈다.

그녀의 안색은 더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마치 꽁꽁 얼어붙은 시체처럼, 혈색이 단 한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불안한 것은, 식은땀조차 더 이상 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신체활동이 완전히 멎은 것 처럼 말이다.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대 동맥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아직 심장은 뛰고 있는지, 혈류가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허나 오래가지 못하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점차 박동이 미약해지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길어야 10분 정도일거예요."

니디아가 내게 말했다.

"저주가 그녀의 몸에 완전히 침 식해 목숨을 앗아갈 때까지의 시간 이요. 아무리 많은 수의 마법사를 동원한다 한들, 그 정도의 시간만으로는 마이사를 살릴 수 없겠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거야."

"방법이 없어요."

고개를 가로젓는 니디아.

"고위 흑마법사가 작정하고 준비 한 저주에요. 진행이 너무 빨라요. 해주하기엔 시간이 없고요."

"그럼, 이대로 죽기까지 방치하라 고?"

"하지만, 방법이 없단 말이에요!"

니디아가 내게 소리친다. 그 격 한 반응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니디아가 재차 한숨 쉰다.

"저도 살리고 싶어요. 마이사는 연합의 두 중추 중 하나. 그녀가 무너진다면 지휘체계가 무너질거예 요.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한지훈, 당신밖에 없고요. 하지만 한지훈 씨가 전투에서 빠진다 면…."

"사기가 무너지겠지."

"네. 사실, 현장은 한지훈 씨께서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덕분에 사기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한지훈 씨 께서 전투에서 빠진다면 병사와 기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질 거예요. 지금까지와 달리 이쪽이 밀리기 시작하겠죠. 앞으로가 고생이겠네 요…."

연합군은 크게 두 개의 기둥 덕분에 유지되고 있었다.

전방에서 군을 이끌고 전투하는 나, 한지훈 라이젠.

그리고 후방에서 군을 지휘하는 마이사 슈베츠.

하지만 여기서 마이사가 빠진다 면?

힘겨운 전쟁이 될 것이다.

내가 전방에서 물러나 후방에서 군을 지휘한다면 전방이 삐그덕거 릴 것이고, 그렇다고 계속해 전방에서 군을 이끌자니 후방이 무너져 각 군과의 연계가 흐트러지고 만다. 연합군 전체 통솔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렇듯, 마이사는 연합군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시선을 내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다.

마이사의 숨기 끊기기 일보 직전 이다.

피부가 점차 차가워져 간다. 심장의 맥동 또한 극도로 미약하다.

나는 아까 전 그녀가 내뱉었던 말을 떠올려본다.

- 신이니 뭐니 하는 거. 참 무책 임하단 말이야. 세상을 만들면 뭐 해? 제대로 관리도 안 하고, 온통 비극으로 채워넣고서.

그녀는 과연 어떤 심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일까.

어찌하여 비극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것인가.

확실히, 그녀의 인생은 꽤 비극 적이었다.

다행히 고국의 복원과 연방에 대 한복수는 끝마쳤지만.

그 후, 그녀에게 남은 것이 있나?

아니다.

모든 숙원을 마쳤음에도 가족은 없고, 되찾은 고국은 엉망진창에, 여전히 친한 지인 하나 없이 홀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때문에 마이사는 삶에 대한 애착 도, 미련도 없었던 것일까.

그래서 저항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 것인가.

나는 피식 웃었다.

"엄살 부리긴. 뒤늦게 사춘기라도 온 것이냐? 마이사."

그녀로선 나름 심각한 고민이겠 지만, 내게 있어선 그저 사춘기에 하는 흔한 고민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30대에 달한 내가 공감하 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그런 고민 말이다.

나는 품속을 뒤져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작은 유리병 속에서 찰랑이는 황금색 액체. 액체는 환한 금빛을 반짝이고 있다.

엘릭서였다.

퐁.

나는 그것의 코르크 마개를 잡아 당겨 열었다.

"한지훈!"

그에 경악하는 니디아.

"설마, 마이사를 살리는데 엘릭서 를 사용할 셈인가요?!"

"그래."

"마지막 남은 엘릭서에요. 그것이 없다면 한지훈 씨는 유물의 힘을 발현할 수 없어요. 아니, 발현한다 면 무조건 죽게 된다고요!"

"알고 있어."

"그런데 어째서, 마이사를 살리려 하는…."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유리병을 기울여 마이사의 입가에 엘릭서를 흘려넣었다.

찬동게임판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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