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총사령 각하!"
펄럭!
2군 사령부 막사천막이 열리고, 다수의 군관들이 다급한 얼굴로 뛰어들어왔다. 2군의 고위 군관들이었다.
그들이 허겁지겁 보고한다.
"적이! 적이 야습해왔습니다J"
"아군 병력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야간이라 불리합니다!"
"놈들의 전력은 암흑기사 2천과 키메라 5천가량.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전력이 집중되어 일점돌파 당했습니다!"
군관들의 보고. 그에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마이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드르륵.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선 그녀가 나직이 읊조렸다.
"놈들이 야간에 강할 줄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야습. 마이사 또한 충분히 예상 했던 일이었기에 대비 또한 제대로 갖춰놨었다.
야간 경계병력을 증강시키고 방어선을 공고히 했으며, 마법사 및 기사들과 연계해 위급상황 시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체계 또한 정비해 놨다.
이 정도의 준비태세라면, 아무리 철저한 야간기습이라 한들 결코 통 하지 않을 터다.
마이사는 그리 예상했고, 그녀의 추측은 합리적이었다.
적이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적은 인간이 아니었다.
검은색 오러를 다루는 암흑기사. 그리고 각종 인체개조 시술에 더해 진한 흑마나를 품은 키메라가 바로 이번 야습을 걸어온 적이었다.
놈들은 야간 전에 강하다.
온몸은 시커먼 검은색 일색이라 눈에 잘 띄지도 않으며, 재빠른 기 동성을 가지고 있다. 더해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민감한 암적응 능력 또한 갖 추고 있다.
그 차이는 꽤나 컸다.
'우리 제2군 본영 바로 앞까지 은밀하게 접근하고 이후 일점돌파 를 실시하다니. 초계망이 허무하게 꿰뚫렸어.'
야영 중인 2군의 초계망은 꽤나 촘촘했다.
다중으로 이루어져 있는 초병들 의 감시거점들. 주기적으로 순찰하는 병력. 철저한 연락체계까지.
마이사가 지휘하는 군대인 만큼, 그 어떤 군대보다도 완벽한 감시망을 구성했을 터인데.
그이상으로 적이 야간전에 특화되어 있었다.
"놈들이 코앞입니다! 대피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놈들은 아군 본영 깊숙히 침투, 어느새 이곳 사령부 코앞까지 밀어닥친 상황이었으니 .
마이사는 시선을 돌려 사령부 막 사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살짝 열려있는 천막의 입구. 그 너머 어딘가에서는 소음이 들려 오고 있었다.
챙. 쾅. 콰직. 비명과 단말마. 병사들의 고함소리.
본영에 침투한 적의 병력과 전투하고 있는 소음이다.
그리고 소음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이곳 마이사 슈베츠가 있는 사령부 막사를 향해서 말이다.
휘하 군관들이 다시금 요청한다.
"각하! 말을 구해왔습니다! 어서 피신하십시오!"
"병사와 기사들이 시간을 끌어줄 것입니다! 어서 가셔야 합니다!"
도망치라고.
적에게 노려지고 있는 이곳 사령 부 막사를 포기하고, 후방으로 대피 하라고 말이다.
마이사는 군관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각 군단의 군단장과 참모 등을 비롯한 고위 군관들.
그들은 마이사의 여자라는 성별 에도, 자신보다도 훨씬 낮은 나이에 도 결코 업신여기거나 우습게 보지 않았다. 오직 그녀의 지휘를 믿고 따르며 온 힘을 보좌했다.
지금도 그렇다.
대피를 촉구하는 저들의 표정에는 오직 마이사에 대한 걱정과 다 급함만이 가득하다.
병사와 기사들을 적의 먹이로 던 져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를 지켜야 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리 여기고 있다.
그녀가 없다면 이전쟁,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지니 말이다.
현재의 연합군은 마이사의 철두 철미한 조율과 천재적인 군략으로 유지되고 있었으니 .
오직 마이사만이 이 다국적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을 지휘할 수 있다.
만약 그녀가 다치거나 죽어 군을 더 이상 지휘하게 되지 못한다면, 다국적 연합군은 결국 통솔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리라.
때문에 군관들은 이곳 제2군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더라도 그녀만 은 보호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아니. 나는 후퇴하지 않는다. 사령부를 지킬 것이다."
"각하! 어째서!"
"나와 그대 군관들이 후퇴한다면, 이곳 제2군이 완전히 붕괴되고 만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지."
그녀는 도망칠 생각이 추호도 없는 듯하다.
마이사는 시선을 내려 테이블 위지도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요새유 적 윈터아르비엔이 그려진 지도. 그 위에는 현재 병력의 수와 배치현황 이자세히 그려져있다.
그녀가 지도를 바라보며 말을 잇 는다.
"여기 제2군이 붕괴된다면 결국 1군과 3군이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적의 야습을 최소한의 피해로 끝내야 해. 그렇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중심을 지켜야 하지. 우리 사령부가 도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병사들은 동요할 것 이고, 기사들은 패배를 직감할 것이다. 사기가 크게 하락할 터. 피해가 극도로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최소한의 피해로 이번 전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말끝을 흐리는 마이사.
피식. 그녀가 쓰게 웃는다.
"어차피 대피할 시기는 한참 늦었다. 도망칠 거였으면 처음, 놈들을 발견하자마자 도주했어야 해. 지금 와서 움직인다 한들 놈들이 더 쉽게 날뛰도록 하는 꼴밖에 안 되는구나."
그녀가 시선을 들어올려 다시금 사령부 막사 입구를 주시한다. 어느새 전투의 소음은 바로 지척.
암혹기사와 키메라들이, 마침내 사령부 막사에 당도해버린 것이다.
서걱!
섬뜩한 절삭음이 울린다.
"크아아아아악!"
직후 터져나오는 병사의 비명 소리. 철퍽, 하고 천막의 벽면을 적시는 그림자. 사령부 막사 앞을 지키 던 초병이 흘린 핏물이었다.
주르륵.
핏물이 힘없이 흘러내리고, 곧 천막의 입구가 펄럭이더니 몇몇의 인영이 내부로 들어온다.
철컹, 철그럭. 날카롭게 울리는 전신갑주의 발걸음 소리.
- 마이사 슈베츠를 찾았다.
암흑기사들의 붉은색 안광이 마 이사를 주시한다.
천막 밖으로 나온 직후. 나는 뒤 돌아볼 틈도 없이 곧장 달렸다.
달리는 방향은 서쪽. 마이사가 이끄는 제2군의 본영이 있는 장소였다.
으득. 이를 악물었다.
'마이사.'
적의 야습.
마이사가 위험하다.
물론 그녀 또한 철저히 대비해놨을 터였다. 그녀의 능력은 그리 하찮지 않으니 , 할 수 있는 모든 방 비를 해두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했나보다.
놈들의 야습이라니.
군관의 보고에 따르면 이미 적을 발견했을 때 놈들은 본영 코앞까지 당도해있었다 한다.
필시 그 우월한 야간전투능력을 살려 이쪽의 초계망을 뚫고 본영 바로 코앞까지 침투한 것이리라.
어쨌든 서둘러야 한다. 자칫 늦 는다면 그녀의 목숨이 위태롭다.
때문에 나는 전투마에도 탑승하지 않고 두다리로 달려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전투마는 오히려 내 주력보다 느리니까.'
지금 내 민첩능력치는 무려 282에 달한다. 내가 지닌 모든 능력치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능력치다.
이토록 초월적인 민첩이니, 당연하게도 전투마가 달리는 속도보다 내가 뛰어가는 것이 더욱 빠른 것 이다.
서쪽 제2군의 야영지까지는 대략 수십 km 거리. 내 주력이 시속 수십km이니 한 시간 정도 뛰어가면 된다. 아마도 전투마를 탔다면 한 시간 하고도 30분은 더욱 지체되었 겠지.
미친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인간 이 두다리로 자동차에 달하는 이동속도를 발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하다.
한 시간.
꽤나 빠르게 당도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충분치 않다.
당장 2군 본영에서 치열한 전투 가 벌어지고 있을 터. 아군 방어병력이 한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우려된다.
놈들은 강한데다, 아군은 갑작스 러운 기습에 제대로 된 방어진형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더해 전투피 로가 아직 남아있을 테니, 능력의 최대한을 이끌어내는 것도 불가능.
제2군은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손쉽게 돌파당 할 것이다. 그리하여 놈들은 손쉽게 마이사를 죽여 없애겠지.
그렇게 놔둬서는 안된다.
때문에 나는 사용한다.
"민첩. 300포인트 상향."
유물을 제대로 활성화할 수 있게 된 이후 꼭꼭 아껴두었던 포인트. 도합 300pt.
그동안 나는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평상시의 능력치 또한 모자람이 없었고, 더욱 많은 능력치가 필요할 때는 유물을 활성화해 막대한 힘을 발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굳이 포인트를 소모해가며 능력치를 키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1분 1초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할 때. 고작 단 하나의 민첩도 아쉬운 상황이다.
그렇기에 나는 가진 모든 포인트 들을 갈아넣어 민첩을 상향시키고 자 한다.
- 띠링!
청아하게 울리는 알림음 소리.
[능력치 : 민첩'을 300포인트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30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언제나 보아왔던 홀로그램 창이 떠오른다.
나는 곧장 대답했다.
"수락."
그리고 내 신체가 변화를 시작한다.
내 신체의 움직임이 더욱더 빠르 게 가속되어갔다.
내 얼굴을 때리는 풍압이 강해졌고, 스쳐지나가는 배경들이 훨씬 빠르게 뒤로 밀려난다.
[민첩 582]
기존에 두배에 달하는 막대한 민 첩 능력치.
그 체감은 가히 대단했다.
몸이, 인지속도가, 온몸의 신경반 응이 극한으로 가속되었다.
몰입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세상 그 자체가 느려진 것 같다.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감각이 보다 또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급격히 상승한 민첩에 환희할 시간 따위는 없다.
'마이사!' 그녀를 구해야만 하니까.
지금은 달리는 것에 집중해, 한 시라도 빠르게 그녀의 곁으로 갈 뿐이다.
"암흑기사! 놈들이다!"
"총사령각하! 어서 피하십시오!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오오오오오!"
사령부 막사 내부에 암흑기사들 이 등장하자, 군관들이 기합을 내지 르며 허리춤에 패용하고 있던 장검을 일제히 꺼내들었다.
화르르륵.
곳곳에서 일렁이는 푸른색 광휘. 이후 막사 안을 가득 메우는 오러 의 파동.
이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고위 참모나 군단장 등 일반 병사들을 통솔하는 이들이었다. 기사들과는 달리 모든 인물이 오러를 다루 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신체를 단련하고 전장을 전전하는 무인들.
하물며 그 계급은 드높으며, 경험 또한 풍부하다.
그렇기에 오러를 다루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
수십에 달하는 고위군관들이 일제히 장검을 뽑아들고 오러를 발현 하자 그 기세가 꽤나 강렬하고도 묵직하다.
마치 정예 기사단의 편대를 보는 것만 같은 광경. 저들이라면 수십의 암흑기사들이라면 능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허나 적은 고작 수십이 아니었다.
- 하찮은 놈들. 도망칠 생각인 가? 헛된 희망을 품고 있구나.
서걱! 사각!
사령부 막사의 벽면 천막이 외부에서 난도질된다. 잘려나간 벽면 뒤에서 보이는 것은 암흑기사들의 모습.
막사의 모든 벽면이 잘려나가 넝 마쪼가리로 화하기까지 걸린 시간 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이사는 비로소 현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도망은 무슨. 이미 완전히 사령부는 포위되어 있었잖아? 어차피 가망이 없었네."
사령부 사방에는 암흑기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어느새 암흑 기사들이 물샐틈없이 사령부를 포 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빌어먹을. 결국 퇴로는 없던 것 인가."
군관들이 침음성을 흘린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도주할 길은 전무하며, 이곳을 포위한 암흑기사의 수는 최소 천단위.
반면 마이사를 지키는 것이라고는 오러를 다루는 고위군관 수십과, 오러를 다루지 못하는 고위군관 십 여 명에 불과하니.
살아나갈 가능성, 없다고 보아도 되겠지.
푹 한숨쉬는 마이사.
'결국 이렇게 되는건가.'
그녀가 비식 웃는다.
막상 죽음을 목전에 두었지만, 그다지 슬프거나 억울하지는 않다. 삶에 미련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그녀의 숙원이었던 고국의 해방을 완료해서일까?
문득 생각해보면 그녀는 항상 고 국의 해방만을 위해 살아왔었다.
솔직히 말해, 힘겨운 삶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포자기 해 모든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남장을 한 채 뒷골목에서 굴러다 닐 때도, 먹을 것이 없어 오물과 나무껍질을 주워먹을 때도, 심지어 소년병으로 징집되어 날카로운 창 날에 깊게 베였을 때도.
그녀는 언젠가 있을 슈베츠 왕국의해방과 부모님의 복수만을 위해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결국 숙원을 이루게 되었다.
한지훈을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인해 슈베츠 왕국이 해방되었고, 연 방군 또한 물리쳐 부모님의 복수를 완성했던 것이다.
비로소 숙원을 이룬 마이사.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아있는 것 이 아무것도 없었다.있는 것이라고는 연방에 수탈당 해 반쯤 부숴진 고국에, 끝없이 몰아치는 일거리, 가족 없는 쓸쓸한 왕궁뿐이다.
어쩌면 그래서일 수도 있다.
그녀가 생에 큰 미련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은.
그토록 힘겨운 역경과 고난을 거 치고 결국 모든 숙원을 완성했는데 .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은 없으니까.
이래서야, 그토록 힘겨운 삶은 견뎌가며 살아왔던 이유가 없다.
지독한 무기력함. 그리고 허탈함 이마이사의 심신을 채운다.
그녀가 나직이 묻는다.
"암흑기사. 너희 또한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 그리 된 것일테지."
암흑기사 치고 사정없는 이는 없다.
애시당초 평범한 인간이 광기에 물들어 흑마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지간한 일로는 힘들다.
저들 또한 마이사만큼, 어쩌면 마이사 이상의 비극을 겪어 결국 흑마나에 귀의하게 되었으리라.
웃긴 일이다.
불행한 이가 다른 불행한 이를 죽인다. 그 어디에도 행복한 인물은 없다. 이 세상은 칙칙하고도 눅진한 회색으로 물들어있을 뿐이다.
어째서 세상이란 이모양 이 꼬 라지인지.
문득 마이사는 이 세상이란 것 이, 이 세상의 창조주란 양반이 꽤 나 우습게 느껴졌다.
그녀는 시니컬하게 웃었다.
"신이니 뭐니 하는 거 참 무책임 하단 말이야. 세상을 만들면 뭐해? 제대로 관리도 안 하고, 온통 비극 으로 채워넣고서."
- 잡설이 길군.
"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 대충 유언이라고 생각해."
그녀는 반항도 않고 눈을 감았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는걸 깨달은 이상, 쓸모없는 발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일 뿐.
철그럭.
암혹기사가 장검을 들어올린다. 녀석의 검은색 오러광이 검신을 물 들인다.
그리고 문득, 마이사는 어떤 인물의 얼굴을 떠올린다.
'한지훈.'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를 가진 인물. 이계에서 온 신기한 사람. 이 세상의 주인공.
삶의 마지막 순간, 그리운 부모님의 얼굴도 아닌 한지훈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이사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어 렴풋이 마지막 남은 미련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
그렇게 그녀가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일 때.
그때였다.
"마이사!"
커다란 목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때렸다.
꽤나 익숙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