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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373화 (373/390)

373화.

"아직도!"

콰앙!

커다란 건물 안. 한 노쇄한 흑마법사가 탁자를 내리친다. 탁자 위에 올려져있던 여러 수정구들이 충격에 흔들거린다.

탁자를 내려친 흑마법사. 그는 크라함의 최측근 흑마법사 중 하나 이자, 최상급의 경지를 이룬 강자 중 하나였다.

그의 이름은 아를리트. 지금 그는 분노해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직도 크라함께서는 아무 연락 도 받지 않으시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아를리트. 종주께선 지하에서 모든 연락을 차단하신 채 침묵 중이십니다."

"어째서…."

후우. 아를리트가 크게 한숨쉬었다.

"제1성벽이 완전히 적에게 장악 당했고, 제2성벽 또한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전투는 현재 적의 우세. 머지않아 제2성벽 또한 함락될 터지."

그는 지금 전장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2성 벽에서 다수의 흑마법사들이 죽어 나가고 있으니 .

아를리트의 눈가가 찌푸려진다.

"헌데 어째서 우리의 종주께선 침묵하시는 것인가? 이럴 때일수록 크라함께서 직접 지휘하셔야 할 터 인데…."

본래였다면, 크라함이 나서지 않아도 흑마법사의 군세가 절대의 우 위를 지녔을 것이었다.

연합에 비해 더 강력한 군세를 보유한 데 더해, 요새에서 방어전에 힘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모든 지성체의 연합이라는 것일까.

연합은 강했다.

압도적인 수, 출중한 정예도.

지휘관은 노련했고, 기사는 강직 했고, 전투마법사들의 화력은 압도 적이었다.

또한 연합의 일치단결된 움직임 은 전혀 상정 외의 것이었다.

저토록 거대한 규모의 다국적군을 이토록 수월하게 움직이다니.

국가도, 소속도 다른 이들이 무려 50만이 넘게 모였다.

그들을 전장에서 지휘하기는커녕 제대로 화합시킬 수도 없을 터. 흑마법사들은 그리 여겼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저들은 마치 한몸이 된 듯 일심 동체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

마치 같은 국가 소속의 군대라는 듯이, 아무런 삐걱거림 없이 명령을 따르고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사소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제 동족끼리도 창칼을 들 이미는 존재. 무수히 많은 집단을 조율해 하나로 뭉치기에는 어려움 이 따른다.

헌데 이토록 수월하게 다국적군을 운용하다니.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아틀리트는 자리에서 턱을 괴고 생각했고,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이사. 그리고 한지훈. 두 년놈 들이 문제로다."

한지훈과 마이사. 둘 다 각자의 영역에서 정점에 이른 실력자들이 자, 현 연합군을 묶고 있는 구심점이었다.

"한지훈의 무력으로 현장을 통솔 하고, 마이사의 지략으로 병력을 조율하고 있다."

전방을 지키는 것은 한지훈, 후 방을 담당하는 것은 마이사였다.

한지훈이 현장에서 날뛰며 강대 한 무력을 보여 사기를 진작시키고.

마이사가 후방에서 무수히 많은 군대를 세밀하게 조율해 최대한의 효율을 발한다.

그 두 명의 위인이, 이거대한 다국적군을 하나로 뭉치고 있는 것 이다.

아틀리트는 추측했다.

'둘 중 한쪽만 무너뜨려도 연합 군을 분열시킬 수 있을 터.'

연합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그중 하나를 무너뜨린다면, 연합 군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 그리 여기는 아틀리트였다.

그의 고뇌가 이어진다.

'한지훈을 처치하기엔 놈의 개인 무력이 너무나 강대해서 힘들다. 하지만, 마이사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마이사는 지략에 강할 뿐, 그녀 본인에게는 일개 기사만큼의 전투 능력조차 없으니까.

아틀리트는 고민을 끝내고 지시했다.

"별동대를 만들어라. 적의 후방에 침투시켜 지휘부를 노린다."

아틀리트는 마이사를 노린다.

"비록 우리의 종주께서 침묵 중 이지만… 마이사. 그년을 제거해 연합군을 뒤흔든다면 수월하게 이길 수 있을 터."

그의 지시에 응해 별동대가 조직 되었다.

흑마법사와 암흑기사로 이루어진 일단의 병력이 분주히 움직이며 야습을 준비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틀리트가 나직이 읊조린다.

"오늘은 만월이다. 달의 힘이 가장 강한 지금이라면, 보다 수월하게 놈을 죽여 없앨 수 있겠지."

흑마법사와 암흑기사로 이루어진 병력이 서쪽을 향해 출발한다.

- 키아아아아!

키메라가 달려든다. 나는 검날을 크게 휘둘러, 달려드는 키메라의 목을 절삭했다.

서걱!

- 키익…!

키메라가 째진 음성을 내뱉으며 힘없이 쓰러졌다.

놈의 둔중한 몸뚱아리가 실 끊긴 인형처럼 바닥을 구르고, 검은색 핏물을 흩뿌렸다.

콰직.

나는 녀석의 심장에 검날을 박아 넣어 확인사살까지 끝마치고는, 시선을 돌려 전장의 현황을 바라보았다.

쯧. 절로 혀가 차진다.

"참고약한 광경인데."

전장의 모습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지면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의 시체, 그리고 신체파편들.

검은색 핏물이 질척하게 흘러나 와 하얀색 눈밭을 오염시켜갔으며, 공기는 비릿하고도 역겨운 혈향이 넘실거렸다.

나는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벌써 밤인가."

아침 동틀 무렵에 실행했던 전투였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덧 해가 저물어 천천히 어둠이 다가오고 있다.

전투를 진행하는 와중 어느새 저녁 무렵이 되어버린 것이다.

피식 웃었다.

"역시, 참 커다란 요새야. 하루종 일 전투해도 고작 제2성벽까지밖에 점령하지 못했다니."

과연 최북단 요새유적지, 윈터아 르비엔이다. 이 요새는 그 명성대로 너무나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어둑해져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색 눈이 펑펑 쏟아져내려 지면에 떨어진다.

떨어진 눈싸라기는 검게 물든 대 지와 시체들의 위에 내려앉아, 추한 전투 직후의 경관을 조금씩 가려주 고 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제 남은 성벽은 제3성벽과 4성벽.'

시선을 돌려 북쪽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다음날 내가 공략해야 하는 3성벽과 4성벽이 자리해있다.

눈살을 찌푸린다.

"분명, 제3성벽 이후로는 광인과 포식자 따위가 많겠지."

여태까지 광인 및 포식자들이 단 한 개체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투는 몹시 수월했다.

일반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저 좀 귀찮은 장애물에 불과할 뿐.

하지만 광인과 포식자는 다르다.

놈들이 제대로 전투에 참여한다 면, 아군 기사와 병사들의 희생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터.

나는 그 점을 경계하고 있다.

그렇게 내가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 한지훈. 들리나?

마이사의 목소리가 통신수정구를 울려온다. 나는 그녀의 부름에 품속 의 통신수정구를 쥐어들어 대답했다.

"그래, 마이사. 잘 들려."

- 다행이로군. 흑마법사 쪽에서 이쪽의 통신망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잘 되는 걸 보아하니 엘프 마법사들이 훌륭히 대응해준 듯한데.

"그런가. 하긴, 흑마법사 놈들이 라면 이쪽의 통신을 방해할 만하지."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사이, 흑마법사측의 재밍시도가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쪽에는 엘프가 있다.

그들은 마법으로는 둘째가라면서러울 정도의 종족.

흑마법사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 하든, 엘프가 있는 한 이쪽의 마나 통신은 건재하다.

마이사는 이어 말했다.

- 동쪽과 서쪽은 아군이 완전히 적을 몰아내고 해당지역을 점거한 상태다. 거기 남쪽 상황은 어떻지? 한지훈.

"이쪽은…."

나는 그녀의 물음에 시선을 돌려 다시금 전장을 주시했다. 그리고 역시나, 전장에는 적이 자리해있지 않다.

"확인사살! 확인사살해라!"

"확인사살을 게을리하지 마라. 키메라 놈들은 무시무시한 재생능력을 갖췄다. 혹여나 살아있는 놈이 있다면, 금세 회복한 뒤 무방비한 우리를 노릴 수도 있다."

"전투마법사 불러와! 대지 정화작업을 실시해야 한다!"

화르르르륵!

일렁이는 불길. 불길이 오염된 토양을 태워 깨끗이 정화해간다.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의 시체가 불에 타 사라지고, 병사들이 불길 사이사이를 분주히 누비며 창칼을 시체에 박아넣어 확인사살한다.

격렬한 전투 이후의 뒤처리 작업.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남쪽을 완전히 점거한 뒤 안정화시켰고, 지금은 전투 후 뒤처리 작업 중이다. 대지 정화와 확인사살을 실시하고 있지."

- 그렇군. 그동안 수고했어, 한지훈. 오늘 전투는 종료야. 푹 쉰 뒤 내일 제3성벽 공략을 하면 될 것 같은데.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다. 야간까지 싸우기에는 병사와 기사들 이 피로를 감당 할 수 없으니까."

- 그건 그렇지.

이미 나와 기사들, 그리고 기사 들의 뒤를 따르던 병사들은 하루종 일 싸웠다.

나야 아직 멀쩡하지만, 다른 이 들은 전투의 피로로 지친 상황.

더해 밤이 곧 도래한다. 시야가 극단적으로 제한될 터.

이상황에서 전투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렇기에 나는 군영을 펼치고 오늘의 전투를 마무리할 심산이었다.

"좋아. 그럼 마이사, 그쪽도 슬슬 마무리하고 수면을 취해라. 내일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선 휴식을 제대로 취하는 것도 해야 할 일이야."

- 그대의 말대로다. 슬슬 나도 자러가야겠지. 피로가 많이 쌓였어.

"보초 제대로 세우고. 야간 경계 태세도 최상으로 강화해. 오늘은 만 월이다. 적의 야습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야."

- 말 안 해도 그리 할 생각이었 다, 한지훈.

"그럼 내일 보자고. 통신종료."

- 통신종료.

뚝 통신이 끝났다.

나는 통신수정구를 품속에 잘 갈 무리하고는, 발걸음을 옮겨 숙소막 사로 향했다. 성벽 안쪽에 설치되어 있는 야전막사였다.

저벅, 저벅, 저벅.

막사를 향해 걸어가는 길.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야습이라.'

나는 오늘 밤, 적이 야습을 걸어 올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흑마법사는 밤에 더욱 강해지는 족속들. 특히나 만월에 강하지.'

달(luna)은 광기(lunatic)의 힘을 품고 있다.

흑마법사와 암흑기사들은 광기의 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들.

놈들은 만월이 떠오를 때 훨씬 더 강해진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만월이지."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어둑한 하늘 위, 커다랗게 떠오른 달이 보인다.

지구의 그것보다도 훨씬 커다란 달.

달은 옅은 붉은색 기운을 풍기고 있다.

어느새 내가 초월자의 경지에 이른 덕분일까. 달의 광기 어린 기운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참 흉흉한 기운이야."

흑마법사 놈들.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

저토록 위험한 기운을 받아들여 가면서까지 경지를 드높이고자 하다니.

그런 녀석들이 오늘 밤을 놓칠 리 만무.

"갑옷을 입고 자야겠어. 병사들의 야간 경계도 강화시켜야겠는걸."

나는 그리 생각하고는 내 숙소막 사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 한지훈 의장합하!

품속에 잘 갈무리해놨던 통신수 정구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 왔다.

나는 수정구를 쥐어들었고, 내가 대답하기도 전, 통신을 걸어온 군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야습! 야습입니다!

"역시나인가."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다만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쯧 혀를 찰 뿐.

하지만 이어진 군관의 말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적의 별동대가 서쪽, 제2군 방향으로 향합니다!

"서쪽이라. 놈들의 목표는? 파악 했나?"

- 놈들은 2군 사령부막사 방향을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필시 그곳을 급습할 심산입니다!

2군 사령부.

마이사 슈베츠가 있는 곳이다.

'마이사를 노리는건가.'

나는 통신수정구에 대고 대답했다.

"당장 그리로 가지."

흑마법사 놈들. 야습으로 이쪽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 판단했건만, 실수였나.

나는 서둘러 막사 밖으로 빠져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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