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나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재정비 하기까지 기다린 뒤 제2성벽 공략을 실시했다.
공략법은 간단했다.
마법으로 제2성벽의 성문을 부숴 버린 뒤 내가 기사들을 이끌고 전 진한다. 이후 병사들을 투입, 우리 기사들이 돌파해놓은 공간을 완전히 점거한다.
전형적인 돌파작전이었다.
- 적의 성문을 날려버리겠다. 잠시기다려라.
통신수정구에서 제피르의 목소리 가 들려온다.
직후 하늘에서 떠오른 다수의 광 역마법진. 조준하는 것은 제2성벽 남문.
나는 자리에 앉아 기사들과 함께 남문을 바라봤고, 곧 통신수정구에서 제피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발현하라.
이후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화려한 마법의 세례.
폭렬폭풍이 성벽을 뒤흔들고, 바람의 칼날이 성문을 난자했다. 얼음 창 따위가 그사이사이를 꿰뚫고 성문을 관통했다.
그렇게 마법의 세례가 제2성벽 남문에 집중되었고.
콰콰콰콰콰콰쾅!
공기를 뒤흔드는 폭음.
번뜩이는 섬광.
콰르르르르릉
곧 성문은 산산히 부서졌다. 다수의 방호마법진이 새겨져 견고한 방어력을 자랑하던 두터운 성문이, 압도적인 마법의 화력을 미처 견디지 못한 것이다.
쓰러져 뻥 뚫리는 성문. 충격에 의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제약되는 시야.
그 너머 적들의 모습이 보인다.
- 남문이 뚫렸다!
- 키메라와 노예병사를 보내! 놈 들이 남문을 돌파할 심산이다!
- 광인과 포식자는 없는가?!
- 제기랄! 키메라를 집중시켜라!
크라함의 직속 부하라 할 수 있는 흑마법사들. 그리고 놈들이 이끄는 키메라와 노예병사까지.
놈들의 수는 퍽 많았다.
좁은 성문 너머로 보임에도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의 수만 만 단위에 달하는 듯했다.
미리 남문이 뚫릴 것을 예상하고 저쪽에 병력을 집중시켜놨다는 것 이겠지.
"이제부터 진짜 전투라 이건가. 준비를 꽤나 철저히 해놨는데 ."
그리고 나는 뚫린 남쪽 성문 너머, 적들의 준비태세를 확인했다.
놈들의 준비태세는 만전이었다.
성문 너머에는 간이해자가 파여 있고, 해자 너머에는 기병들의 전진을 저지하는 목제 방벽 따위가 설치되어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키메라와 노 예병사들의 군세가 우글우글 모여 있고 말이다.
이쪽의 돌진을 저지함과 동시, 물량으로 뚫린 입구를 막아내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진형이다.
뭐. 공략하는데 그리 큰 걱정은 안됐다.
나 또한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나는 통신수정구를 들어올려 지시했다.
"대지계 전투마법사들. 마법의 준비 상태는 어떻지?"
- 만전입니다, 의장합하. 언제든 지 명령만 하신다면, 이 일대의 땅 과 흙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대지계 마법을 발현 하라. 저 남문 너머에 있는 해자를 완전히 메꿔버려."
- 명령을 따릅니다.
대지계 마법사들의 마법이 발현 되었다.
웅웅응웅웅!
전투마법사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갈색 광휘.
그들의 마나가 공기를 타고 유동하며, 남문을 넘어 해자가 자리해있는 공간까지 파고들었다.
이후 해자가 메꿔지기 시작했다.
저 깊은 구덩이 안쪽으로 흙이 차오르더니, 어느새 지면이 평평하 게 다져지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평탄화 작업은 그저 해자를 메우는 것으로 끝나진 않았다.
평평하게 다져진 땅이 유동한다.
우드득. 콰직.
이후 지면에 박혀있는 목제 장애 물과 방벽 따위들이, 땅의 유동에 의해 힘없이 바스라진다.
곧 나와 적 병력 사이를 가로막는 그 어떠한 장애물도 사라지게 되었다.
- 빌어먹을! 적이 대지계 마법을 다룬다!
- 해자랑 장애물들이 모두 무력 화되었다.
깊게 파여있던 간이해자도, 기사 들의 전진을 막는 장애물과 방벽도. 그 어떤 것조차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대지계 마법사들을 적절하게 운 용하는 한, 대부분의 장애물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파훼할 수 있지."
대지계 마법사들.
비록 강한 화력을 발현하진 못못 해도, 적의 함정이나 장애물 따위를 제거하는 데는 특출난 능력을 지녔다.
나는 그런 그들을 적극적으로 운 용했고, 덕분에 해자와 장애물을 손 쉽게 제거.
아군의 돌진력을 극한으로 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
철컹.
나는 투구의 바이저를 닫았다.
"돌진 준비! 모두 전투마에 올라라! 내가 선두에서겠다!"
나는 돌진을 준비한다.
펄럭.
기사들이 하나둘 기사단의 깃발을 치켜든다.
그들이 오러를 끌어올린다.
- 물량으로 막아야 한다. 병력을 밀집시켜! 적의 돌진에 대비하라!
때마침 들려오는 적 흑마법사의 다급한 목소리. 녀석의 음성에서 들려오는 흑마나의 파동이 꽤나 중후 하다.
아마도 녀석이 저 흑마법사들의 우두머리일 터.
놈의 모습을 살폈다.
짙은 암흑색 로브, 노쇠한 얼굴, 길게 기른 턱수염.
겉으로 보이는 외양은 인자하나, 얼굴 곳곳에 새겨진 문신은 기괴하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얼굴에 새겨 진 문신을 읽었다.
'정규군 병사들은 계급으로 자신 의 위계를 드러내듯, 볼라바아 학파 의 흑마법사들은 얼굴의 문신으로 자신의 경지를 드러내지.'
흑마법사는 새겨진 문신이 기괴 하고 커다랄수록 보다 높은 위치를 가지고있다.
그리고 저 흑마법사는 크고도 복잡한 문신을 얼굴에 새기고 있었다. 저 집단에서 가장 높은 위치와 경 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인 즉, 녀석은 일종의 현장 지휘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놈부터 죽여야겠어.'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지휘관은 최우선적으로 처치해야 하는 제1목 표.
나는 놈을 노린다.
화르르륵.
세계검을 들어올려 오러를 발현한 뒤, 크게 외쳤다.
"돌진하라!"
전투마가 지면을 박차고, 내 신형이 쏜살같이 적에게 쇄도해간다.
기사들이 내 뒤를 따른다.
- 우리의 위대한 종주이시여!
어둑한 지하공간.
통신수정구를 통해 어떤 이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크라함의 측근 흑마법사의 목소리였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 제2성벽이 돌파당했습니다! 놈 들이 남문을 파괴하고 밀고들어 오고 있습니다!
방금 전, 제2성벽의 남문이 돌파 당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연합의 기사와 한지훈이 돌진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
그에 2성벽 남문을 지키고 있는 흑마법사가 다급히 보고해오는 것 이다.
그가 크라함에게 요청했다.
- 광인과 포식자를 보내주십시오! 이런 키메라와 노예병사들 만 으로는 놈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합당한 요청이었다.
한지훈, 그리고 1만에 달하는 기사들의 돌진이다. 하찮은 키메라와 노예병사들 따위로는 그 수가 얼마나 많다 한들 제대로 대응할 수 없으니 .
고급전력이라 할 수 있는 광인과 포식자가 있어야만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음이라.
허나 그런 휘하 흑마법사의 요청 에,
"쯧. 귀찮군."
크라함은 그저 혀를 찰 뿐이었다.
그가 통신수정구를 들어올렸다.
언뜻 휘하 흑마법사의 요청에 대답하려는 듯 보였지만.
전혀 아니었다.
콰드득. 쨍그랑!
그가 손아귀에 쥔 통신수정구를 쥐어 부숴버렸다.
후드득 떨어져내리는 수정구의 파편들. 그것들이 암흑색 마법진이 그득 아로새겨진 지면에 흩어져 뒹 군다.
크라함은 부서진 수정구 파편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네놈들 따위에게 내 심력을 낭비할 수 없다. 곧 마지막 싸움이 있단 말이다."
크라함은 지금 의도적으로 수하 흑마법사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만약 크라함이 직접 흑마법사들을 지휘했다면, 그리하여 광인과 포 식자 등의 고급전력을 적극적으로 투입했다면.
연합군는 이토록 쉽게 요새를 돌파하고 있지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크라함은 의도적으로 병력을 비효율적으로 배치했다.
가진 고급전력은 후방 깊숙한 곳에 배치하고, 제1, 2성벽 따위에는 하찮은 키메라와 노예병사들 따위 만 배치했던 것이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한지훈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는 한지훈을 유인하고 있었다.
허점을 만들고 녀석이 깊숙히 파고들게 하여 , 결국 자신의 앞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빈틈을 만들어두는 것이다.
물론 그가 직접 지휘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으니 .
"그리고, 어차피 내게는 쓸모없는 놈들이다. 마지막 결판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굳이 살려둘 이유가 없지."
크라함에게 있어 휘하 흑마법사 들이란 결국 소모품에 불과했다.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유용한 장기 말들.
저들이 모조리 죽어나가도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지훈과 마지막 전투를 벌일 때 그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크라함은 여전히 지하 속에 있전투가 계속된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강렬한 파공성을 울리며 그어지는 내 세계검.
청색 검광이 반월의 궤적을 그리고, 내 날카로운 검날이 키메라의 목을 베어낸다.
서걱!
- 키이 익
* * *
키메라의 목이 붕 떠오르며 검은색 핏물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순식간에 절명해 지면에 나자빠 지는 괴물.
나는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검의 가속을 살려, 검날을 위에서 아래, 수직 방향으로 내려그었다. 적 노예병사의 정수리에 내 검 신이 틀어박힌다.
퍼어어어억!
터져나가는 노예병사의 골통.
놈이 몸을 경련하며 나자빠진다.
또다시 검은색 핏물이 퍽 튀겨댄다.
나는 시선을 돌려 전방을 바라봤다.
무수히 많은 수의 키메라와 노예 병사들 너머 자리해있는, 검은색 로 브를 입고 있는 수백의 인영들.
이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을 부리는 흑마법사들이다.
나는 놈들을 노려보며 생각한다.
'놈들은 병력 뒤에 숨어있다.'
나와 기사들이 돌진하자, 녀석들은 대량의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을 투입해 이쪽의 전진을 가로막았다.
일단은 물량으로 틀어막아보자는 심산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흑마법사들을 향해 돌진해가던 우리 기사들의 기세가 한 꺼풀 죽 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저 키메라와 노예병사들 로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을 터다.
'이쪽 기사들의 수는 1만이 넘어가.'
반면 놈들의 수가 수만이라 하나, 그 병력의 대다수가 노예병사들 이었으니 .
놈들은 결코 이쪽을 막을 수 없다.
녀석들이 죽기까지는 시간문제일 터.
그리 생각했다.
놈들이 도망치려는 기색을 보이 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지훈 라이젠 의장합하! 놈들 이 도주하려 합니다!"
"염병!"
내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과연, 제목숨은 소중하다 이건가. 흑마법사들은 전투를 포기하고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 도약마법을 운용하라! 후방으로 대피하는 거다!
화륵. 화르륵.
하나둘 일렁이는 검은색 기운. 놈들의 신체가 암흑의 불꽃에 뒤덮 여간다. 도약마법이었다.
이제 놈들은 도약마법을 발현해 전장에서 이탈할 것이고, 후방에서 재정비해 다시 전장으로 복귀할 터.
그렇게 두어서는 안된다.
키메라나 노예병사들과는 달리, 흑마법사 놈들은 녀석들의 지휘관 격 인물들이다.
놈들을 최대한 많이 죽여둬야 앞 으로의 전투가 편해진다.
나는 지시했다.
"흑마법사들을 잡아 죽인다! 베 르겐!"
"그래, 한지훈."
"길을 열어줘. 내가 놈들을 잡겠다."
내지시에 베르겐이 고개를 끄덕 인다.
"알겠다. 길을 열지."
그가 크게 소리쳤다.
"볼로냐 기사단의 각 전대장! 종 심돌파다! 돌파진형을 갖춰라!"
"명령을 따릅니다! 기사단장 각하!"
베르겐의 외침에, 한창 전투에 집중하고 있던 각 전대장들이 전투 를 중지하고 진형을 꾸린다.
전체적인 모양은 쇄기꼴 대형. 전형적인 돌파진형이다.
물론 돌파진형을 갖추는 것은 베 르겐의 볼로냐기사단뿐만이 아니었다.
"아드네 기사단! 돌파진형을 갖 춰라!"
"고르간트 1번부터 10번 전대장! 아군의 돌진을 보조한다. 좌익을 맡 어!"
"파라블렘! 우리는 우익이다! 우 측 적을 몰아내 아군의 기동을 보조한다!"
볼로냐 기사단의 돌진태세에 호 응해, 전투에 참여한 다른 기사단 단원들 또한 진형을 변경하는 것이다.
나는 앞쪽을 주시한다.
- 놈들이 이쪽을 노린다!
- 어서… 어서 도약마법을 발현 하라! 후방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
이쪽의 돌진태세를 눈치 챈 것인 지, 도약마법을 연산 중이던 흑마법사 놈들이 더더욱 다급히 마법을 발현하려 한다.
그리고 그때.
"돌진! 돌진하라! 적의 종심을 돌파해, 흑마법사에게까지 가는 길을 열어라!"
"오오오오!"
마침내 돌파진형을 완성한 기사 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콰직! 퍼억!
크게 쇄기꼴을 만든 기사들이 앞 으로 쇄도해간다.
그들이 기다란 기병창을 찔러넣고, 오러 서린 검날을 휘둘렀다.
잘 짜여진 진형. 넘쳐 흐르는 개인의 기량. 탁월한 현장 지도자.
여러 요소가 합쳐서 앞을 가로막는 적의 병력을 쓸어버리기 시작한다.
이곳저곳에서 검은색 핏물이 쉼 없이 터져나오고, 지면이 온통 괴물 과 노예병의 시체로 뒤덮인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훌륭해.'
단 한번의 돌진이었다.
그 돌진 덕분에, 꽤나 멀었던 흑마법사와의 거리가 몹시나 가까워 졌다.
이 정도라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놈들 사이로 난입할 수 있는 수준.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전투마의 가속력을 살려 앞 으로 돌진해간 뒤, 강하게 전투마의 배를 차며 고삐를 위로 당겼다. 그러자, 콰아앙!
달려가던 전투마가 뒷발로 지면을 찼다.
부웅 도약한 전투마. 온몸을 휘 감는 부유감.
내 시야가 순간 허공으로 치솟는다.
나는 시선을 내려 지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한창 도약마법을 완성 해가는 흑마법사들이, 멍한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보인다.
피식 웃었다.
'놀랐겠지. 설마 전투마가 이토록 먼 거리를 도약해올 거라 예상치 못했을 터이니.'
내가 없었다면 놈들은 간발의 차 로 도주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기사들의 종심돌파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녀석들이 도약마 법을 발현하는 것이 더욱 빠를 테 니까.
하지만 나는 기사들이 종심돌파 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이 만들어준 공간으로 돌진을 시도해 수십의 키메라와 노예병 사들을 넘어서, 놈들의 머리 위로 뛰어들었다.
내가 가진 기마술 스킬 덕분에 가능한 도약이었다.
이제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일만 남았다.
나는 작게 읊조렸다.
"어딜 도망가."
허공으로 떠올랐던 전투마가 마침내 지상과 격돌한다.
착지하는 와중, 전투마의 앞발굽 이 적 흑마법사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퍼억!
흑마법사 하나가 골통이 터져 죽었다. 아까 전 보았던 노쇄한 흑마법사였다.
적의 지휘관격 흑마법사를 단숨에 해치운 것이다.
"마, 맙소사! 수석님께서…!"
"놈이 진형에 난입했다!"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당황한 흑마법사들. 나는 검을 휘둘러 녀석들을 베어냈다.
콰아아아앙!
한껏 오러를 담아 휘두른 검격.
푸른색 궤적이 공기를 절삭하고, 충격에 광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놈들이 검은색 피안개를 일으키 며 우르르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