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연합군이 윈터아르비엔을 포위했다.
요새유적을 삼면에서 둘러싼 채 군영을 펼치고 진형을 재정비하는 연합군 병력.
나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시선을 좌우로 돌려도 대량의 병력이 드넓게 전개되어있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오른쪽, 동쪽에는 오스카의 제3군."
그곳에는 오스카가 이끄는 제3군이 자리해있다.
병력의 규모는 약 15만의 병사와 3천의 기사. 트웨인과 군소국가연 합의 병력이었다.
나는 다시금 고개 돌려 왼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왼쪽, 서쪽 방면 마이사의 제2군."
서쪽을 맡은 것은 마이사 슈베츠였다.
그녀는 10만의 병사와 5천의 기사들을 이끌고 있다. 슈베츠군 소속 의 병사들이었다.
그녀가 슈베츠의 군주이니만큼, 슈베츠에서 파병 나온 병력을 직접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가 지휘하고 있는 병사들을 주시했다.
"그리고 남쪽에는 내가 지휘하는 제 1군."
이쪽이 주공이기에, 제1군에 소속된 병력의 수가 가장 많았다.
병사 30만, 기사 1만 2천. 마법사 3천.
가장 강력한 화력과 돌파력을 발 휘할 수 있도록 집중된 병력.
나는 이들을 직접 이끌고 적진으로 난입할 예정이다.
그렇게 내가 병력의 수와 배치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 한지훈. 병력의 배치가 전부 완료되었다.
통신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마이사의 목소리.
- 공성탑과 투석기 제작 또한 완료했다. 그쪽은 어떻지?
"여기 제1군도 공세준비를 끝냈 어. 공성병기 제작은 진즉 끝냈고, 병력의 전개도 완료되었지."
- 제3군도 전투준비가 완료되었 다고 해. 이제 슬슬 시작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런가."
공성전 준비를 끝냈다.
병력 배치, 공성병기 제작과 더 불어 전투마법사들과 기사들 또한 만전의 상태.
언제든지 공격을 시작할 수 있다.
- 한지훈.
"왜."
- 죽지 마라. 아니, 죽게 하지 않아. 절대로.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마지막 전투라고 긴장한 것인가. 그녀의 말에는 기세가 살아있었다.
마이사가 고한다.
- 전군, 전투준비!
그녀의 전투준비 명령이 마나통 신망을 타고 전군에 전달되었다.
우수수수.
시야 전역에 자리해있는 대량의 군세. 그곳곳에서 깃발이 솟아오른다. 연합군에 소속된 각 세력의 군 기들이었다.
나는 그 깃발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제국군의 군기. 슈베츠군의 군기.
트웨인의 군기가 눈에 잘 띈다. 그들의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간간이 엘프전사들의 군기, 그리고 각 군소국가의 군기들 이 눈에 띄기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0여 개에 달하는 기사단들 또한 각각의 깃발을 치켜들고 있었다.
볼로냐 기사단, 아드네 기사단, 고르간트, 파라블렘…. 각양각색의 기사단기가 각종 군기 사이에 떠 올라 바람에 펄럭인다.
나는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55만에 달하는 대량의 병력으로 뒤덮여있는 지평선.
그들이 들어올린 깃발들이 펄럭 이는 저 광경 너머, 자리해있다.
비처럼 쏟아져내리는 눈보라를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요새유적지.
윈터아르비엔.
크고도 웅장한 자태를 지닌 곳.
성벽은 고층빌딩처럼 높아보였으 며, 규모 또한 거대해 마치 제국 수도 외곽 성벽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저 커다란 성벽 너머에, 놈들이 있을 것이다.
'흑마법사와 놈들의 수하들.'
공성전. 수없이 해보았다.
하지만 이번 공성전은 그 어떤 때보다 힘겨울 터.
저토록 크고 견고한 요새다.
게다가 인간이 아닌, 흑마법사와 놈들이 부리는 군세를 상대로 저 요새를 공략해야 하니까.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승리하는 것은 이쪽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어코 승리를 쟁취해냈던 나다.
하물며 지금은 모든 전력과 기세 를 한 곳에 모아 만전의 준비를 갖 춘 상황.
이런데, 내가 패배할 리 있겠는 가?
그럴 리 없지 않은가.
나는 승리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말이다.
- 전투마법사! 화력투사를 준비 하라!
마이사의 이어진 명령이 마나통 신망을 울린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허공에 30개의 광역마법진이 떠오른다.
붉은색, 푸른색, 어떤 것은 황토 색…
각 전투마법단의 속성색들.
마이사의 지시에 따라 삼십의 전투마법단, 도합 3천에 달하는 전투 마법사들이 제각기 100중첩 광역마 법진을 준비하는 것이다.
쿠르르르르르….
마나의 파동이 공기를 울린다.
허공에 떠오른 30개의 광역마법 진들이 눈보라 몰아치는 하늘을 가 려버렸다. 마법진이 중첩에 중첩을 거듭해간다.
그렇게 전투마법사들이 화력투사 를 위해 한껏 광역마법진을 완성해 가고 있을 때.
- 보병대 제1파 전진! 전진하라!
마이사의 전진명령이 전파되었다.
부우우우우우우-.
기다란 뿔피리 소리가 전장 곳곳에서 울려퍼진다.
그와 함께 우수수 솟아오르는 신호기.
신호기의 색은 파란색. 약보로 전진을 의미하는 신호기다.
그에 맞춰 보병대 병력이 마침내 전진을 시작했다.
척! 척! 척! 척!
끼리릭. 끼리리릭….
진형을 갖춘 병력이 여러개 의 공성탑과 공성사다리차와 함께 발 맞춰 걷는다.
왼손에는 방패를, 오른손에는 창 과 검을 꽉 쥐어들고, 공성탑과 공성사다리를 이끌며 말이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절도있는 소음을 발한다.
나는 시선을 돌려 허공에 떠올라 있는 마법진을 바라봤다.
마법진의 중첩도는 약 40중첩.
반절가량 완성되었다.
- 제2파 전진!
그리고 보병대 2파가 전진을 시작, 그들 또한 천천히 전진해갔다. 2파가 1파와 간격을 벌린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일정한 간격을 벌리고 절 도있게 전진하는 모습이 마치 해안 가에 몰아친 파도 같다.
나는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파식 공격, 꽤 능숙한데? 마이 사.'
지금 마이사는 제파식 공격전술을 펼치고 있다. 파상공격이라고도 부르는 그것이다.
투입하는 병력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두어 최대한의 효율을 발하는 전법.
공성전에서 특히나 중요하다.
제파식 공격은 지휘관의 역량과 능력을 크게 드러낸다.
각 제파의 간격이 너무 좁다면 병력의 밀집도가 너무 좁아져 적의 화력에 쓸려나가기 십상이고.
반대로 제파끼리의 간격이 너무 벌어진다면 축차투입이 되어 오히려 쉽게 격파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이사의 제파식 공격전술은 꽤나 능숙했다.
제파끼리의 간격이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다. 투입한 병력이 최대한 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완벽한 간격을 지키고 있다.
그녀는 틀림없이 훌륭한 지휘관 이다.
'이제 슬슬 시작하겠네.'
어느덧 병력은 제3파까지 전진을 시작했고, 가장 먼저 출발했던 제1파가 성벽 근처에 당도했다.
성벽 위에 자리해있는 적의 병력 이 대응하려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여전히 광역마법진들이 떠올라 화려한 마나광을 사방천지에 흩뿌리고 있다.
100중첩까지 완성된 광역마법진 30개.
그것들이 가진 화력을 온전히 쏟 아부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이사의 목소리가 통신 망을 울렸다.
- 지금이다! 전투마법사! 화력 투사! 화력을 투사하라! 목표는 성 벽의 남문! 성벽을 부숴버려!
그녀의 명령이 하달된 즉시.
번쩍!
광역마법진들이 일제히 발현되며 섬광을 터트렸다. 시야 가득 백색 광휘가 메운다.
직후 울려퍼진 것은 가공할 만한 폭음.
콰콰콰콰콰콰콰쾅!
대량의 화력이 요새 남문에 직격했다.
요새유적지의 남쪽 성벽이 우르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구궁….
지하공간이 진동한다.
그러자 후드득 떨어져내리는 천장에 붙어있던 먼지들.
떨어진 먼지가 흑마법사의 어깨 와 후드 위에 내려앉는다.
한스의 모습을 한 크라함이 클클 웃는다.
"요란하구나, 한지훈. 전투마법사 를 도대체 몇이나 데려온 것이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몸에 붙은 먼지들을 털어냈다.
"이 깊은 지하까지 진동이 전해 질 정도의 화력이라. 준비를 단단히 해왔군."
크라함이 시선을 내려 자신의 발 치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래봤자다. 네놈은 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크라함이 시선을 내려 자신의 발 치를 바라보았다.
요새의 지하공간, 시스템의 중추 가 자리해있는 장소. 그곳의 바닥에는 새카만 마법진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아니. 어디 바닥뿐일까.
자세히 본다면 이 지하공간 전체에 마법진이 새겨져있다.
바닥에도, 사방을 에워싼 벽면에 도, 심지어 천장조차. 기기괴괴한 암흑색 마법진이 그려넣어져있다.
크라함의 입가에 떠오르는 짙은 미소.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는 이미 한지훈을 맞이할 준비 를 모조리 끝내둔 상태였다.
모종의 마법진을 지하공간 가득 새겨둔 것이다.
크라함은 자리에 주저앉는다.
"어서 와라. 한지훈."
그가 지하공간에 들어앉아 한지훈을 기다린다.
"성벽이 무너졌다."
나는 전방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3천의 전투마법사들이 화력을 집중해 요새유적지의 남쪽 성벽을 부 숴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자세히 살핀다.
쿠르르르르르르….
와르르 무너지는 성벽.
높다란 성벽 위에 자리해있던 노 예병사와 키메라 따위가 힘없이 떨 어져 낙사하고, 파편 무더기에 깔려 압사당한다.
충격에 흙먼지 구름이 진하게 피 어오른다.
"진입타이밍은 완벽."
그때에 맞춰 성벽에 도착한 아군 보병대의 제1파.
병사들이 무너진 성벽잔해를 기어오르며 빌빌거리는 키메라와 노 예병사들을 죽여 없애고 있다.
미처 녹지 않았던 새하얀 눈들 위에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의 검은색 핏물이 스며들어간다.
이제 저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남쪽 성벽을 돌파할 것이고. 아군의 본격적인 병력이 투입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해놓을 것이다.
나는 미소지었다.
"이제 우리 차례로군."
시선을 돌려 내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직접 이끌 1만 2천의 기사들이 돌격진형을 갖춘 채 대기하고 있다.
이들이 나와 함께 요새 내부로 진입, 적에게 직접적인 무력을 투사 할 것이다.
"기사들의 돌진준비는 끝났나? 베르겐."
기사들의 가장 선두에 있던 이, 볼로냐 기사단장 베르겐에게 그리 물었다.
그가 나에게 대답한다.
"준비는 만전이다. 언제든지, 명령만 한다면 함께 돌진할 수 있다."
"좋아."
강인한 베르겐의 얼굴이 참으로 믿음직하다.
나는 전투마 위에 오르며 외쳤
"마지막 전투다!"
철컹.
투구의 바이저를 닫았다.
"이번 전투로, 흑마법사와 놈들의 수하 세력은 영원토록 사라질 것이 다!"
왼손으로 전투마의 고삐를 쥐었다.
"다시는 흑마법사의 세력이 준동 하지 않도록, 더 이상 놈들에게 희생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오른손으로 내 거대검, 세계검을 뽑아들었다.
철그럭.
묵직한 무게감이 기분 좋다.
"적을 모조리 죽여 없애 말살한 다!"
나는 세계검을 드높이 치켜들고, 오러를 발현했다.
"인류를 위하여 !"
화르르르륵!
격렬하게 타오르는 푸른색 불길. 내 신형에 청색 오러광이 번들거리 기 시작한다.
발로 전투마의 배를 찼다.
"나를 따르라!"
"한지훈 의장합하를 따르라!"
"돌진! 돌진하라!"
두두두두두.
내가 타고 있는 전투마가 먼저 달려나가고, 그런 내 뒤를 일만이 넘는 수의 기사들이 뒤따른다.
두터운 눈이 내리깔린 대지를, 전투마들의 말발굽들이 가로지른다.
나는 전방을 노려보았다.
쏟아져내리는 눈보라 너머, 성벽 이 무너져내린 윈터아르비엔이 보 인다.
점차 크게 다가오고 있는 유적요 새 윈터아르비엔의 전경.
요새와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다.
저 요새 안 어딘가에, 놈이 있을 것이다.
' 크라함.'
이모든 일의 흑막. 나는 놈을 찾아 움직인다.
놈과 결판내기 위해서.
녀석을 죽여버리기 위해서.
나와 기사들은 눈보라를 헤치며 요새를 향해 돌진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