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366화 (366/390)

366화.

나는 눈을 떴다.

그러자 시야에 잡히는 것은 익숙한 천막의 천장.

금세 깨달았다.

"의료천막인가."

부스럭.

나는 침상 밖으로 빠져나와 간단히 외투를 챙겨입은 다음, 천막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기사들이 보초 를 서고 있다.

내가 걸어나오자 녀석들이 화들짝 놀란다.

"의장합하! 일어나셨습니까?!"

"그래."

"이, 이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 오! 당장 의무장교를 불러오겠습니다!"

"망할, 의무장교는 어디갔어?!"

"잠시 뒷간에 다녀온다며…."

아무래도 내 상태를 살피던 의무 장교가 잠시 자리를 비운 때에 내가 깨어난 듯하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의무관은 됐다. 그보다,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누워있던거지?"

"오늘로 딱 일주일째입니다. 의장 합하."

"그래… 일주일이라."

천천히 내 몸 상태를 살폈다.

오래 누워있던 탓에 근육과 관절 이 뻐근하긴 하지만, 당장 몸을 움직이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이전에는 막 깨어났을 때 제대로 거동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는데 .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좋은 상태다.

추측해본다.

'유물을 하나 더 얻은 덕분인가?'

지금의 나는 무려 두 개에 달하는 유물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 그 덕에 내 회복력이 늘어난 것이리라.

뭐, 그딴 것보다는 지금 현황 파악이 먼저다.

나는 기사들에게 지시했다.

"사령부 막사까지 안내하라."

기사들의 안내를 받아 나는 사령 부 막사에 도착했다.

루벤의 외성 안쪽, 군 주둔지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

그곳에 무수히 많은 수의 천막이 쳐져있다. 마이사가 지휘하는 연합 군 본영이었다.

펄럭.

나는 본영에서 가장 커다란 천 막, 사령부 천막을 걷으며 안으로 진입했고.

그곳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것인 지대부분의 고위 인사들이 자리해 있었다.

군단장과 기사단장, 마법단장 등 단장급 인사들.

연합의 내부를 책임지는 고위 행 정관료들.

연합에 댈 물자를 생산하는 드워프 족장들.

그리고….

'마이사 슈베츠.'

연합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이, 연합군 총사령관 마이사 슈베츠 까지.

나는 그들을 잠깐 훑어보고는, 스스럼없이 가장 상석자리로 가 앉 았다.

피식 웃으며 입을 연다.

"모두들 오랜만이다. 다들 제대로 살아있구만. 다행인 일이야."

"한지훈 의장합하. 합하께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계신 동안 많은 이 들이 걱정했습니다. 몸은 좀 괜찮으 십니까?"

"그래. 내 몸은 괜찮아. 보다시피 말이지."

나는 보란 듯이 고개를 크게 끄 덕였고, 내 평안한 안색을 바라본 이들이 표정을 푼다.

내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 이 정도면 됐다.

나는 마이사에게 물었다.

"마이사. 내가 막 깨어나서 전투 보고를 받지 못해서 말이야. 흑마법사 놈들과의 전투결과, 어떻게 되었 지?"

"전투 결과는 대승이다."

내 물음에, 이쪽을 아무말 없이 바라보던 마이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노예병사와 키메라, 추정 30만 이상을 완전히 전멸시켰고, 포식자 또한 323개체를 소탕했어. 흑마법사의 세력 과반을 이전장에서 물 리적으로 지워버린거다. 대승이 아닐 수 없지."

"확실히… 대승이긴 하군. 하지만 이쪽 또한 손실이 있겠지. 아군의 피해는?"

"전공에 비해서는 경미한 피해다. 전사 이만에 부상 3만 정도. 사상 자가 도합 5만 정도로군."

"으음…."

나는 신음했다.

5만의 사상자. 아군이 달성했던 전공에 비해서는 확실히 적은 손실 이다.

수십만의 키메라와 노예병사"그리고 수백 체의 키메라를 전멸시키는데 5만에 불과한 병력손실이라 니.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5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에 나는 표정을 필수 없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더 강했다면.'

그렇다면 희생을 좀 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고개를 털어내 상념에서 벗어났다.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것은 나중에,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에 해도 늦지않아.'

지금은 눈앞의 일에 집중할 때다.

나는 시선을 돌려 다시금 마이사 를 바라봤다. 그녀가 이어 현황을 보고한다.

"그리고, 이번 전투로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항흑마나 아티팩트를 소모해버렸어. 그래서 새로운 아티팩트들을 양산 중에 있다."

"그래. 빈 재고를 채워야겠지. 언제 다시 놈들이 나타날지 모르니."

이번 전투에서 대량의 아티팩트를 소모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급 히 소모했던 것 이상의 아티팩트를 양산해야했다.

아티팩트 병기 없는 일반 군대는 흑마법사의 하수인들을 상대하기 힘드니 말이다.

나는 당연한 일이라 여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예상 외의 것이 하나 있었다.

"기존 재고량의 5배. 이 정도의 수량을 목표로 양산작업에 착수했다. 기한은 2주일."

"… 2주일만에 기존 보유량의 5배양산이라고?"

새롭게 양산을 시작한 아티팩트 의 목표 수량이, 너무나 턱없이 높 았다.

기존 재고량 5배에 달하는 아티팩트의 생산.

막대한 인력과 자원, 그리고 금력이 빨려들어가는 인인데, 기한이 고작 2주일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드워프와 인간 장인들 이 온 힘을 합쳐 달려든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 한들 턱없이 부족한 시간.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래. 확실히 아티팩트의 재고 가 많으면 좋긴 해. 하지만 지금 그럴 여력이 있나? 자금도, 인력도 부족할 터인데."

내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마이사.

"자금은 연합의 모든 국가가 십 시일반 해 충당했다. 인력 또한 지원받았으며, 드워프 장인들 모두를 생산작업에 투입시켰지. 충분히 가능하다."

"가능하다 한들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을 텐데."

"아니. 우리는 서둘러야 한다, 한지훈."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나에 게 알려왔다.

"한 달 뒤. 흑마법사들이 북부대륙을 침공할거다."

내 얼굴에 놀람 대신 의문이 어린다.

북부대륙. 그 아무것도 없는 땅 에, 어째서 흑마법사가 침공한단 말 인가.

놈들이 침공한다 한들 엘프와 세계수가 있는 중앙대륙이나 , 혹은 내 영지가 있는 남부대륙을 침공하리 라 생각하는 것이 합당 할 터인데.

그런 내 기색을 눈치 챈 것인지.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이구나. 나 또한 그랬다. 니디아에게 이 정보를 듣는 순간 얼마나 어이없던지."

그녀가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잠시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침묵하던 마이사.

그녀가 나에게 제안했다.

"잠시 자리를 옮길까? 그대에게 어째서 흑마법사가 북부대륙을 노 리는지 설명해야 하지만. 지금 이자리에는 듣는 이들이 많으니 말이 야."

나와 마이사는 사령부 막사를 나와 밖을 거닐었다.

꽤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것이 기에, 원래였다면 단 둘이 대화할 수있는 조용한 공간이 있어야 하겠 지만.

지금 이곳은 군영이다.

사방 천지에 병사들이 움직이고 들락거리고 있는데 그런 공간이 있을 리 만무.

결국 나와 마이사는 군영 외곽 한산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한 뒤. 나는 마이사에게 물었다.

"좋아, 마이사. 흑마법사 놈들이 북부대륙을 노리는 이유. 어서 설명 해줬으면 하는데 ."

나는 곧장 용건부터 꺼냈다.

흑마법사 놈들이 어째서 북부대륙을 노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그곳은 끝없는 설원만이 펼쳐져 있는 오지.

문명 따위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 또한 살지 않는다.있는 것이라고는 약간의 마물과, 곳곳에 방치되어있는 머나먼 과거 의 유적들뿐.

'과거 게임에서도 극후반을 제외 하고는 갈 일이 없었지.'

내가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를 플레이 했을 때에도, 시나리오의 극후 반부에서나 등장했던 전장이었다.

당시 그곳까지 가서 전투를 벌인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게임을 할 적, 내 목적은 모든 세력을 처부수고 내가 이끄는 제국 이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

그리고 당시 연합군은 전쟁에서 밀리고 밀려 잔당만이 남게 되었고, 그들은 다른 대륙 모두가 장악당한 것을 깨닫고 북부대륙으로 도주하고 만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숨어든 북부 대륙까지 쳐들어가 전멸시킴으로써 시나리오를 끝냈?고.

때문에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북부대륙에 가지 않으리라 여겼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북부대륙에는 무언가가 있는듯 하다.

내가 곰곰히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마이사가 나직이 묻는다.

"한지훈. 너는 '시스템'이란 것의 수혜를 받고있다 들었다. 그게 사실 인가?"

순간 내 눈이 크게 떠졌다.

"…시스템이라니."

"다 들었어. 한지훈, 네가 다른 세상에서 온 인물이라는 것. 그리고 네게 시스템이란 가호가 있고, 언젠가는 이 세상을 지배할 신적인 존재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 도."

어떻게 마이사는 저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여지껏 마이사에게 내 능력과 출신을 밝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내가 다른 세상의 태생이었 으며, 어쩌다 이 세상에 떨어졌고, 포인트라는 것을 얻어 능력치를 강화한다는 이야기 따위.

어떻게 그녀에게 알려줄 수 있겠 는가.

지금 이 세상에 내 출신과 배경을 알고있는 것은 제국의 황제 아 르테니아, 그리고 엘프의 엘븐 가디언들밖에 없다.

헌데 마이사, 그녀는 시스템과 내 태생에 관한 내용을 알고있다.

과연 누가 그녀에게 내 정보를 넘겼는가?

나는 잠시 추측해보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니디아가 알려줬군."

"맞아."

순순히 긍정하는 마이사.

역시나라고 할까.

마이사의 말이 이어진다.

"니디아가 그러더군. 너는 '시스템'의 수혜를 받고 있는 이계의 존재라고. 이 세상의 신 엘로힘이 다른 차원에서 데려온 자신의 후계자. 그것이 바로 너라고 하던데."

"뭐… 대충 맞는 소리야."

"니디아의 설명을 들으면 납득이 가. 그대가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 말도 안 되는 무력을 어찌하여 손에 넣 은 것인지. 시스템의 보정, 정해진 운명."

"그런데 그 말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였나? 차마 믿기 힘들었을텐 데."

문득 나는 궁금해져 그리 물었다.

신이 어떻고, 시스템이 어쩌고.

너무나 허황된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마이사는 용케도 니디아 의 말을 거짓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만큼 니디아의 언변이 뛰어났 던가?

마이사가 한숨쉬었다.

"엘프의 여왕이 몹시나 진지한 얼굴로 그리 말하는데, 믿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리고 니디아가 말한 대로라면 모든 것이 설명되더구나. 그대의 비정상적인 강함도. 흑마법사의 움직임도. 그리고 여태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말이야."

"그런가."

"하여튼,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그대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지가 아니다. 흑마법사 놈들이 북부대륙으로 향하는 이유이지."

맞는 소리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고, 마이사는 표정을 가다듬은 뒤 내게 알려줘야 할 것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북부대륙에는 '시스템'의 중추가 있다고 한다."

"시스템의 중추라면?"

"한지훈, 그대를 보조하는 그 힘 말이다. 그 힘의 중추가 북부대륙, 그중에서도 최북단 끝자락에 있는 유적도시, 윈터아르비엔에 있어."

"윈터아르비엔……"

순간, 나는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정복했던 도시.'

과거의 플레이에서, 연합의 잔당 들이 그곳에 숨어들어갔던 곳.

나는 그 오지로 병력을 이끌고 가 마지막 남아있는 적을 철저히 분쇄했었다.

'윈터아르비엔을 점령한 뒤 엔딩 이었지.'

윈터아르비엔을 점령하고, 모든 세력을 쳐부순 뒤 엔딩이었다. 게임 클리어 창이 떠오르고, 정산이 시작되었었다.

하지만 그 도시가 다시금 나오다 니.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러고 보니 1등급 기밀 정보에서도 윈터아르비엔으로 가라 했었 지.'

나는 과거, 검은색 공간에서 받았던 1등급 기밀 정보 안내창을 떠 올렸다.

[1등급 비밀 정보]

[모든 유물을 모은 후, 북부대륙 의 요새도시 윈터아르비엔으로 가 야만 합니다.]

당시에는 그저 허탈해했다.

명색이 1등급 기밀 정보였는데, 기껏 나온 정보가 생뚱맞은 지시문 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언젠가 가리라 생각만 해두었을 뿐, 당장 그리로 가 보지는 않았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에 미처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북부대륙으로 향하는 흑마법사의 군세.

그리고 그곳에 있다는 시스템의 중추.

더해 시스템의 조언까지.

무시할 수 없다.

"한지훈. 이미 우리 연합은 북부 대륙 원정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마이사 가 말을 잇는다.

"각국에서 병력을 차출했고, 수송 함대를 준비했으며, 대량의 전쟁자 금을 쏟아붓고 있지."

내가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동안 꽤나 많은 일이 진행된듯 하다.

"윈터 아르비엔을 흑마법사 놈들에게서 지켜내고, 유물을 사수해야 해. 만약 모든 유물을 빼앗기고, 윈 터아르비엔마저 놈들의 손에 넘어 간다면…."

잠시 말끝을 흐리는 마이사.

그녀가 나직이, 내게 고한다.

"이 세상은. 흑마법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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