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루벤 도시 안쪽에 설치되어 있는 임시 사령부. 무수히 많은 장성급 군관들이 도열해 있는 공간.
그곳에서 마이사는 날카로운 눈 으로 전장지도를 살핀다.
그녀의 날선 지시가 이어졌다.
"병사들을 전진시켜라! 놈들의 양익을 보병으로 친다. 좌익을 슈베 츠 3개 군단이, 우익을 제국 5개 군단이 치는거다!"
"명령을 따릅니다! 총사령 각하!"
"기병대! 보병대를 보조하며 놈 들의 기동을 저지하고 포위망 밖으로 돌출되지 않도록 제어한다. 지금 내가 지휘할 수 있는 기사의 수는 몇 명이지?!"
"한지훈 의장합하께서 기사 3천을 데리고 가셨으니 , 총사령 각하께 서 지휘할 수 있는 기사의 수는 약 6천가량입니다."
"그 6천 모두를 적의 후방으로 우회시킨다. 한지훈이 돌진한 정면을 제외한 삼면을 감싸 포위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루고, 한지훈이 망치다."
마이사는 지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위섬멸전이다.'
지금 마이사 슈베츠는 포위섬멸 전을 노리고 있다.
이름 그대로 아군이 적을 포위해 섬멸하는 전투를 뜻한다.
그리 보기 쉬운 전투는 아니다. 실행하는데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 일점돌파 당하지 않기 위한 전방위적 방어능력, 돌파를 저지하기 위한 예비대, 높은 기동성, 복잡 세세한 기동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정예병력 등.
그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도 운 이 나쁘다면 대패하는 것이 바로 포위섬멸전이다.
압도적인 승기를 가진 상황에서 적을 완전히 물리적으로 섬멸하기 위해 시도하는 전술인 것이다.
그렇기에 마이사가 생각하기로, 포위섬멸전이란 쓰레기 같은 전술 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한 상태에서나 쓸 법한 전술이라니.
어차피 이길 전투에서, 적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쓸데없이 위험도를 높이는 꼴 아닌가.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쓰 지 않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전술이었다.
'포위섬멸에 필요한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 있다.'
지금 연합군 측은 수적으로 적을 압도하고 있다. 방금 전 전투마법사 들의 광역공격 덕분에 절반 이상의 적이 죽어나간 덕분이다.
더해 놈들은 충격에 의해 통솔된 움직임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니, 움직이긴 커녕 대다수 개 체가 폭격의 충격으로 인해 움직임 이 굼떠지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이자리에 모여있는 병력 은 하나같이 정예였다.
온갖 전쟁에 참전했던 제국 북부 군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고, 자신이 이끌고 온 슈베츠 왕국군 병력 또한 정예군만을 추리고 추린 이들이었다.
적아의 전력비도, 가진 병력의 정예도도 만족된 상황.
어디 그뿐인가?
지금 연합군을 지휘하고 있는 최고지휘관이 바로 다름 아닌 마이사,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이런 거대한 전투를 세세 하게 조율할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지휘능력에 큰 자부심이 있었고, 그 자부심에 걸맞을 정도의 능력도 갖추었기에.
모든 조건이 충족된 전장에서 그녀가 패배하는 일 따위는 없다.
마이사가 지도를 바라본다.
"순식간에 끝내버린다."
그녀는 바쁘게 병력을 지휘한다.
루벤의 동쪽 성벽 위. 방금 전 전투마법사들이 도열해 광역마법을 발현했던 공간.
"애송이. 열심히 하는군."
앉아서 연초연기를 내뱉고 있던 제피르.
그는 시선을 돌려 성벽 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초토화된 루벤 동쪽 평야지대가 보인다.
이글거리는 불길이 번져나가며, 무수히 많은 키메라와 노예병들의 시체가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공간.
그곳을 가로지르는 일단의 무리 가 보인다.
전투마에 탑승한 채 달려나가고 있는 수천의 기사들.
그런 기사들을 이끌며 가장 앞에서 선도하는 한명의 인영.
"한지훈."
그의 모습을 성벽 위에서 주시하는 것이다.
제피르가 기특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애송이 놈이 직접 전투에 앞장 서는 이유. 필시 사기를 높이기 위 함이겠지."
지금 한지훈 라이젠은 야전에 몸 소 출전했다.
가진 승기를 더더욱 드높이기 위해, 그리고 아군의 사기를 보다 고 취시키기 위해, 나설 필요가 없음에 도 기사들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다.
기사들이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의 사이를 누빈다.
콰앙! 콰직, 우지근!
여러 소음이 들려온다. 한지훈과 기사들이 제각기 기병창과 장검을 휘둘러, 가로막는 키메라와 노예병 사들을 쳐나가는 소리였다.
키메라와 노예병들은 마법공격의 충격에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
놈들의 움직임은 굼떴고, 신체 또한 성하지 못한 개체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키메라와 노예병들은 기사들의 돌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어 무력하게 당할 뿐이었다.
빠르게 파고드는 한지훈과 기사 들. 그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가는 흑마법사의 군세.
제피르는 그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슬슬 마나가 차가는군. 수석 전투마법사?"
"네. 단장님."
제피르는 자신의 직속 휘하인 라 브리에 수석 마법사를 불렀다. 그의 옆에서있던 수석마법사가 대답한다.
제피르가 지시한다.
"다른 전투마법사들에게 연락해. 마나량이 회복되는 즉시 알려달라 고. 다음 마법을 준비해야겠지."
"알겠습니다. 그리 연락하겠습니다."
"모처럼 유래없는 규모의 전투마법사들이 한자리에 뭉쳐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전투마법사들의 힘을 과시해보자고."
제피르의 라브리에 전투마법단도, 그리고 다른 마법단의 전투마법사 들도 아직 전장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마나가 다시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다음 마법을 준비할 뿐.
그들이 휴식하며 전장 상황을 주 시한다.
* * *
콰직!
나는 전투마 위에 탄 채, 오른손 으로 단단히 쥐어든 기병창을 앞으로 내찔렀다.
키메라 하나를 꿰뚫었다.
후드드득.
놈의 검은색 핏물이 튀어 전신갑 주를 더럽힌다. 그에 아랑곳 않고 나는 크게 외쳤다.
"놈들은 마법의 충격에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수월하 게 수를 줄여놓을 수 있다! 마나를 아끼지 마라! 지금 최대한 많은 적을 죽여 없애는거다!"
내외침에, 뒤따르던 전대장급기사들이 하나 된 목소리로 대답한다.
"명령을 따릅니다! 의장 합하!"
꽤나 절도있는 목소리였다.
두두두두두.
기사들이 대열을 이룬 채 달려간다. 전투마들의 거센 말발굽에 의해 뿌연 흙먼지가 크게 일어나고, 기사 들이 비척거리는 키메라와 노예병 들을 제압해갔다.
나는 그들의 최선두에서 기병창을 휘두른다.
콰지지직! 서걱!
단 한번의 창격. 그에 우수수 쓰러지는 키메라와 노예병들.
역한 혈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시야에는 산산조각 난 적의 사체들 이 그득하다.
더럽고, 징그러우며, 불쾌한 시야 와 후각.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토록 수월할 줄이야.'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던 전투가 예상을 크게 벗어나 꽤나 쉽게 풀 리고 있다. 상쾌하게 느껴질 수밖 에.
'전투마법사 2,700명의 화력. 예상 이상이었어.'
모두 가공할 만한 화력 덕분이었다.
본래는 적의 삼분지 일정도를 무력화시키기만 해도 다행이라 여 겼었다.
하지만 전투마법사들의 일치된 광역공격의 위력은 내 이상이었다.
당초의 예상을 훨씬 벗어나 적의 절반가량을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 라, 나머지 적 대다수가 충격에 반 쯤 무력화된 상태였다.
때문에 지금 내 앞을 가로막는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은 거의 다 죽어가거나는 놈들이 대다수.
쉽다. 정말 쉽다.
너무 쉬워서 기분이 좋다.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린다.
게다가 좋은 소식도 있었다.
- 한지훈! 적의 수뇌부들을 찾은 것 같다!
통신수정구에서 들려오는 마이사 의 목소리.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아군 좌익이 적의 수뇌부로 보이는 집단을 찾았다! 흑마법사 수백여 명과 검은색 갑주를 입은 기사 하나다.
"수뇌부라."
내 입가에 더더욱 진한 미소가 그려진다.
"마이사. 그 검은색 갑주를 입은 기사. 머리색이 어땠지?"
- 머리색은… 잠시만 기다려봐 라.
수정구에서 들려오는 웅성이는 소리. 아무래도 마이사가 통신수정 구를 들고 직접 알아보는듯 싶다.
잠시 후 그녀가 대답한다.
- 알아보니 기사의 머리색은 갈색이라는군. 더해 남자이지만 긴 생머리였다. 눈동자 색은 붉은색이었고.
"빙고."
기다란 갈색 머리칼을 기른 기사 라. 한스 요한바르첸, 그놈밖에 없다.
남자 주제에 긴머리하는 놈 따 위. 녀석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전투마의 고삐를 좌로 크게 당기며 지시했다.
"기사단! 좌로 선회! 적 수뇌부의 위치를 찾았다. 수뇌부의 위치는 적 들의 좌익! 그리로 돌진하겠다!"
"오오오오오!"
수뇌부를 찾았다는 내 말에 기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따라온다.
두두두두두두두!
기사들의 말발굽이 거세졌다. 시야가 확확 바뀌고, 나는 들고 있는 기병창에 마나까지 밀어넣어가며 정면의 장애물들을 치워나갔다.
물론 여기서 장애물이라 함은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이다.
콰직! 콰르르르릉!
- 키아아아아아!
놈들의 신체파편이 이곳저곳으로 튀어 댄다.
오른손으로는 기병창을 휘두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투마의 고삐와 통신수정구를 꽉 쥐어들었다.
적을 베며 수정구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 한지훈! 진로가 다소 틀어졌다. 거기서 10도가량 더 좌측이다!
마이사가 나에게 길을 안내한다.
적 수뇌부, 한스에게 향하는 길 을.
- 망할! 네 접근을 파악한 건지,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키메라들을 그쪽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기사들 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어!
"그럼 어떻게 하지?"
- 우로 선회해! 크게 우회해서 쳐야 해!
그녀의 지시는 꽤나 정확했다.
그리고 그녀의 지휘능력 또한 예 사롭지 않았다.
- 정면에 태세를 정비한 노예병 사들이 있다. 지나가는데 방해가 되 겠군. 아군 좌익 보병대를 전진시켜 서 노예병사 놈들을 치겠다. 그동안 빠르게 지나가!
- 적 수뇌부 이동 중! 놈들의 동선을 보면… 보다 중앙 쪽으로 가 고 있군. 도망치려 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는 안 되지. 한지훈, 기사 100명을 떼어내 우측으로 보내라.
너와 주력은 계속 진로를 유지하고.
- 이쪽 기병대 2천으로 놈들을 교란시켜 보겠다. 큰 역할은 하지 못하지만. 녀석들의 진로를 막아설 수는 있을거다.
- 우측면 조심해! 키메라 100여 개체가 돌진해올거다!
콰아아아앙!
나는 그녀의 조언에 따라 오른쪽을 기병창으로 크게 휘둘렀고, 그에 내게 달려들었던 키메라 열 개체가 동시에 베여 쓰러진다.
나는 감탄했다.
'확실히, 마이사의 지휘능력은 대단해.'
마치 전장 전체를 훤히 들여다보 고 있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마이사는 전장을 보고 있지 못한다. 그녀는 루벤 안쪽에 있는 어느 지휘천막 안에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 그녀는 오직 지도와 현장에서 들어온 정보들만을 조합해 가며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처럼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내게는 전투지휘술 스킬이 있다. 전장 전역의 모든 상황을 그대로 알 수 있는, 굉장한 유용성을 자랑하는 스킬이다.
그 스킬 덕에 나는 몇몇 전장에서 신들린 듯한 지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런 스킬의 도움조차 받지 않고, 오직 개인의 능력과 막대한 정보만으로 현장의 상황을 세세하게 예측하고,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 곧 놈들의 모습이 보일거다. 오러 끌어올려! 적의 수뇌부가 코 앞이야!
그것도 마치 자동차 네비게이션 처럼. 이토록 세세하게 말이다.
나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오러를 끌어올렸다.
화르르르륵!
청색 불길이 일어난다. 직후 대기를 울리는 마나의 파동.
내 전신에 퍼져있는 신경망부터 온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각성상태에 이른다.
오러를 발현한 나는 기사들에게 지시한다.
"곧 적 수뇌부와 조우한다! 랜스 차징 준비!"
"랜스 차징!"
내 뒤를 따르는 수천의 기사 또한 기세를 끌어올린다.
그들이 오러를 최대한의 출력으로 발현하고, 곧 우리는 청색 불길 이 되어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나는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보인다."
마침내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간을 가로막는 무수히 많은 키메라들 너머, 옹기종기 뭉쳐있는 흑마법사 놈들.
나는 놈들의 모습을 살핀다.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칙칙한 놈들. 그들의 수는 대략 300내지 400정도.
그 흑마법사 놈들의 한가운데에는 어떤 이질적인 존재가 서 있었다.
저자리에서 유일하게 전신갑주 를 입고 있는 놈.
놈의 전신갑주의 색은 시커먼 암흑색이었으며, 전신에는 검은색 기운이 질척이듯 일어나고 있다.
눈동자에 마나를 담아 놈의 안면 부를 바라본다.
녀석은 투구를 쓰고 있지 않기 때문에 놈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길게 기른 갈색 생머리. 붉은색 눈동자. 몹시 익숙한 얼굴.
나는 씩 웃는다.
"한스."
한스 요한바르첸. 나의 대적자.
놈이 저곳에 있다. 녀석을 죽인 다면 커다란 장애물 하나를 치워버 릴 수 있다.
나는 마나 담은 음성으로 크게 외친다.
"돌진! 목표는 저기, 검은색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다! 놈을 향해 랜스를 박아넣어!"
"우오오오오!"
기사들이 마나광이 시퍼렇게 일어난 기병창을 앞으로 겨누었다.
극한의 흥분에 기사들이 함성을 내지르고, 나 또한 기세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며 선두에서 달려든다. 나와 기사들이 한 몸이 되어 돌진한다.
곧 우리는 흑마법사들의 진형에 격돌했고.
콰콰콰콰쾅!
커다란 소음이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