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도시가 불타오른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검은색 불 길.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뿌연 연기가 커다란 도시 전체에 자욱하게 메꿔갔다. 수백, 수천 줄기의 연기가 하늘높이 치솟는다.
파괴되어가는 도시의 모습.
- 키아아아아!
- 키이이익!
그리고 그런 도시 곳곳을 누비며 인간들을 사냥하는 키메라와 노예 병사들.
다급히 도망치던 사람들이 키메라의 등장에 경악해 소리질렀다.
"키메라! 키메라다!"
"어서 도망…."
그들은 도망칠 수 없었다.
콰악! 서걱. 콰드드득.
다수의 키메라들이 달려들어 칼 날처럼 변한 기다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람들은 우수수 절삭되어 털썩 쓰러졌다. 쓰러진 그들의 시체를 키메라들이 달려들어 파먹는다.
흑마법사에게 함락당한 도시의 흔한 풍경이었다.
이곳은 과거 람셀왕국의 수도였 던 알폴리스. 지금은 제국령 람셀 총독성이 설치되어 있는 대도시였다.
하지만 오늘부로 더 이상 대도시 라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흑마법사의 군세에게 함락되어 대다수 거 주민들이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이 일며 도시 중앙에 자리해있는 고층건물이 파괴되었다.
구 람셀왕국의 왕성이자, 현재는 제국의 총독성이었던 건물이었다.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총독성. 건물 위에서 나부끼던 제국기가 검은색 불길에 타올라 사라진다. 검은색 연기가 더욱 진하게 일어난다.
"위대한 종주의 대리자이시여. 다 량의 흑마나를 보충해 소모된 전력을 충당했으니… 이곳 알폴리스 또한 저희 불라바아의 통치 아래에 들어왔나이다."
한 흑마법사가 자신의 상관에게 그리 보고한다. 그의 상관이란 다른 인물이 아니었다.
검은색 갑주를 입고, 눈에는 붉은색 안광을 일렁이고 있는 인물.
대적자의 별을 타고난 인간이며, 한때는 요한바르첸 공국의 후계자 였으나.
지금은 흑마법에 귀의해 크라함 의 대리자가 되어있는 인물.
"수고했다. 이로써 루벤까지 향하는 길목 중 남아있는 도시는 더 이상 없게 되었군."
한스 요한바르첸.
그는 무너지는 총독성을 바라보 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훈, 곧 놈이 이끄는 군대와 맞붙게 된다."
그는 시선을 돌려 도시 내의 경 관을 살핀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건물이 파괴되어 울리는 커다란 소음. 피안개. 도시 곳곳을 빠르게 누 비는 키메라와 노예병사들.
과거 인간일적 자신이라면 끔찍 하게 느껴졌을 경관이다.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에게 학살당하는 광경이란 그리 유 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신체는 아직까지는 인간의 형상이었으나, 그의 심 신과 영혼은 완전히 흑마나에 타락 해버렸으니 .
오히려 많은 인간들이 죽어나가는 광경에 희열과 쾌감을 느끼는 한스였다.
그가 주먹을 꽉 쥐며 읊조린다.
"기다려라, 한지훈. 네놈의 도시 루벤 또한 저렇게 만들어 줄 것이 니."
한스는 한지훈의 모든 것을 빼앗 고 파괴할 심산이었다.
자신의 고국이 멸망당하고, 신분을 부정당했으며, 결국은 심상과 영혼마저 타락해버린 자신처럼 말이다.
"흑마나의 수급이 끝나는 대로 곧장 기동한다. 이제부터는 라이젠 령이다."
흑마법사의 군세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 전진한다. 곧 그들은 한지훈 이 있는 라이젠령, 루벤 도시에 도 달할 터.
한스는 한지훈의 목을 자를 미래 를 상상하며, 군을 몰아간다.
"그동안 열두 개의 도시와 쉰넷 의 마을이 파괴되었습니다."
"가능한 많은 수의 도시와 마을에 주민 소거 작업을 개시했습니다 만… 그럼에도 민간인 피해가 너무 많습니다."
"놈들이 코앞까지 몰려왔습니다!"
연합의 군 간부들이 하나둘 내게 보고해온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흑마법사의 군세는 강력했다.
놈들은 동부연안에 상륙한 직후, 단 한번의 멈춤도 없이 루벤을 향해 곧장 진격해왔다. 진로상 자리해 있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파괴하고, 무수히 많은 인명을 학살해가며 말이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려 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어.'
나와 제국황제는 서로 힘을 합쳐 주민 소거 작업을 시작했다. 당장 흑마법사의 군대를 막을 수 없으니 , 일단 주민들을 대피시켜 목숨을 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주민 소거 작업은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주민들이 대피하는 것보다, 흑마법사의 군세의 기 동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온종일 기동할 수 있는 놈들에게서 대피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 많은 인명의 손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놈들을 죽여 복수하는 것만이 희생당한 주민들의 넋을 풀 방법이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
시선을 돌려 이곳 회의실 안에 있는 인원들을 살핀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연합 본부의 회의실. 이곳에 연합의 간부라 할 수 있는 이 들이 모두 모여있다.
나는 아티팩트 개발을 맡은 연구소의 책임자, 바네사를 불렀다.
"바네사."
"네. 의장님."
회의실 한켠에 앉아있던 그녀가 대답한다. 그녀의 얼굴은 꺼멓게 죽 어있었다. 피로가 그득한 모습.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
물론 나 때문이다. 나는 흑마법사의 방어를 위해 그녀에게 여러 과중한 임무를 맡겼고, 그녀는 하염 없이 갈려나갔다. 잠잘 시간마저 아 껴가며 일에 매진한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를 한계까지 쥐어짜내야 묘책을 마련할 수 있다.
'이번 일이 마무리 된 뒤. 휴가라 도 넉넉히 챙겨줘야겠어.'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 만.
아무튼 나는 잠시 그리 생각하고 는, 그녀에게 물었다.
"대 흑마법사용 아티팩트의 개발. 어찌되었지?"
"네. 아티팩트 개발은 기한 내에 마칠 수 있었어요. 아주 아슬아슬했 지만요. 도와줬던 마법사들 덕분이 지요."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피로한 얼굴로 턱짓했다. 그러자 그녀의 배후에 시립해있던 병사가 어떤 물건을 꺼내 원탁 위에 올린다.
화살… 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화살. 실상 철제 말뚝이라 불러야 할 물건. 발리스타 투사체였다.
다만 저 발리스타 투사체의 첨단 에는 번들거리는 금색 도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바네사가 이어 말한다.
"항마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발리 스타 투사체에요. 이 발리스타에 적중된다면, 아무리 강한 흑마법사 의 피조물이라 한들 최소한 경직, 최대 즉사까지 노릴 수 있어요."
"이 정도라면 포식자나 광인도 상대할 수 있다는건가?"
"이론상으로는요. 다만 꽤 많은 물량을 퍼부어야 하겠죠?"
"그게 어디야. 수고했다 바네사. 양산에는 문제없겠지?"
"다행히 시간 안에는 충분한 물 량을 뽑아낼 수 있을거예요. 드워프 들이 좀 고생한다면 말이지요."
그녀가 흘깃 시선을 돌려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회색망치 드워프 족 장, 드루바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 드루바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네사의 시선에서, 자신만 갈려 나갈 수 없다는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차 물었다.
"그럼 유물은?"
"유물도 완성되었어요. 이걸 받아 주세요."
내 이어진 물음에, 그녀가 품속에서 하나의 수정구를 꺼내 원탁 위로 굴렸다. 갈색 수정구였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바네사 의 말이 이어진다.
"서부대륙의 유물, 베히모스의 핵 이에요. 그걸 정제해서 의장님께서 원활히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했지 요."
"벌써 성공할 줄이야. 대단한데."
"이전에 리바이어던의 핵을 가공했던 경험 덕분에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지요. 걱정 마세요. 기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허투로 하지 않았으니까요. 정제는 완벽해 요."
과거 유물 정제작업은 연 단위의 시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한번 경험이 있는 터라, 그보다도 훨씬 단시간 만에 정제에 성공해냈다.
덕분에 흑마법사와의 전투를 앞 둔 지금 든든한 보험이 하나 더 생 겼다.
'물론, 일단 사용한다면 엘릭서를 소모하게 되겠지만.'
하지만 일단 써야할 일이 생긴다 면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유물을 받아 품속에 잘 갈무리했다.
시선을 돌려 그녀의 옆자리에 앉 아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그럼, 드루바."
"응."
"맡은 일들은 어찌 되었지?"
내 말에 드루바가 고개를 주억이 며 대답한다.
"그대가 시킨 일은 모두 다 끝내 놓았다. 루벤의 성벽을 강화했으며, 서쪽 평야지대에 다수의 성형식 요새 또한 축성해놨지. 더해 바네사가 개발한 아티팩트들의 양산작업 또한 개시되었다. 우리가 조금… 노력 한다면, 놈들이 도착할 나흘 뒤까지 모든 준비가 끝날 것이다."
드루바는 그리 말하며 힐끔힐끔 바네사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평소에 바네사에게 쪼인 모양이다.
하긴, 아티팩트를 양산하는 드루 바와, 그 아티팩트를 설계하고 개발하는 바네사다. 그리고 언제나 생산 보다는 개발이 갑이니. 평소에 바네 사가 드루바를 많이 갈궜을 것이다.
보나마나 수율이 맞지 않는다니, 시제품이 자신의 설계와 다른 부분 이 있다니, 많이 따졌겠지. 그런 경험이 쌓여 지금 드루바는 바네사 앞에서 기를 못 펴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생산이나 연구개발은 저들이 제일 믿음직한 이들이니 알아서 처리했겠지.
나는 바네사와 드루바의 보고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투 전 물질적인 준비는 모두 끝난 것 같은데."
흑마법사의 군세가 이곳에 도착 할 때가 바로 나흘 뒤. 그때까지 모든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한다.
물질적인 것으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
이제 남은 것은-.
"마이사."
"그래. 한지훈."
나는 시선을 돌려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인물, 마이사 슈베츠를 바라봤다.
그녀는 이전에 연회에서 보았던 화려한 드레스 차림이 아니었다. 슈 베츠 왕국군의 장성 제복을 입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슈베츠의 국왕으로 서가 아닌 연합의 총사령관으로서 이자리에 있는 것이니, 군 제복차 림을 갖춰 입은 채 회의에 참석해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물었다.
"군의 배치 현황은?"
마이사는 현재 이곳, 루벤에 모 여 있는 모든 전력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28만의 병사와, 1만이 조금 안되는 기사, 그리고 2,700여명의 마법사.
이들 모두를 지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준비는 완벽하다. 이미 군의 배치는 끝내놨어. 한지훈, 이 지도를 봐라."
마이사의 얼굴에는 의욕이 가득했다.
하긴, 원래부터 군을 지휘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던 그녀였으니 . 저 토록 거대한 병력을 자신이 맡는 것에 의욕이 안 생길 수가 없겠지.
나는 시선을 내려 그녀가 내민 지도를 바라봤다. 마이사의 말이 이어진다.
"화력을 투사하는 마법사들은 성 벽 위에, 그리고 병사들은 성벽 외부에서 방진을 치고 요새와 연계해 방어진형을 꾸릴 것이다. 기사들은 병사들의 사이사이에서 대기하다 전장의 상황에 맞게 방진을 지원할 것이고."
"그런가."
"전투계획에 대해서는…."
마이사의 설명이 길게 이어지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시나리오에서 대단한 지략을 보여줬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라 면 이번 전투에서도 충분한 활약을 보여줄 터.
나는 모든 보고를 들은 뒤 회의를 파했다.
"자. 놈들이 오기까지 며칠 안 남았다. 그동안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놓자고."
전투준비는 순조롭다.
한스가 이끄는 흑마법사의 군세는 계속해 진군했다. 밤에도, 낯에 도. 식사와 휴식 따위 없이 줄곧 말이다.
그들이 이끄는 키메라와 노예병 사의 군세는 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고작 나흘만에 한스는 목표했던 장소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으니 .
"저곳이 루벤인가."
루벤. 한지훈이 다스리는 영지이 자, 놈의 세력 거점. 연합의 중심지.
한스와 흑마법사의 군세는 루벤 동쪽 평야지대에 도달한 것이다.
한스는 루벤의 모습을 살폈다. 그의 눈가가 가늘어진다.
'…역시. 준비를 철저히 해놨군.'
한스는 한지훈이 자신과 전투하 기 전 도시를 요새화시켰으리라 예상했었고, 그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루벤은 완전 요새화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이토록 머나먼 곳에서도 웅장함 이 느껴지는 크고 두터운 성벽. 성 벽 밖 이곳저곳에 축성되어 있는 성형요새들. 그리고 그 요새와 성벽 위를 빼곡히 채운 병사들의 인영까 지.
무수한 깃발이 바람에 휘날린다. 한스는 깃발의 문양을 하나하나 읽 어나간다.
"오르페우스 제국군. 슈베츠 왕국 군. 그리고 중앙대륙의 엘프…."
으득.
그는 이를 갈았다.
단순히 적의 수가 많았기에 못마 땅한 마음에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는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한지훈.'
놈은 자신의 적이었다.
자신의 고국인 요한바르첸 공국을 멸망시켰으며, 본래 공국의 후계 자로서 예정되어있던 자신의 운명을 이토록 타락하게 만들었다. 결국 몇 번이나 죽음을 거듭하며 그의 영혼과 정신력은 마모되어 갔다.
한스는 한지훈이라는 존재를 진심으로 저주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자에게 복수하고 싶을 만큼.
헌데 저 깃발들, 저 대량의 군세 란 무엇이란 말인가?
다수의 나라가 그를 지원해 조력 하고 있다.
아니, 어디 다른 나라뿐만인가.
아예 종족이 다른 엘프들마저 그 를 지원하고 있다. 저기 있는 모든 군세가 한지훈을 위해 협력하고 있는 이들이다.
반면 자신은 어떤가.
한스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배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가 이끌 고 온 흑마법사의 군세가 자리해있다.
- 키아아아아아!
- 끼이이익!
흉악한 괴성을 내지르는 키메라 와 노예병사들. 더해 광인들까지. 수십만에 달하는 흑마법의 군세가 자리해있다.
그들의 외양은 흉측했고, 내지르는 괴성은 기괴했다. 전설 속에서나 묘사되던 악의 군세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이 얼마나 상반된 결과란 말인가.
인류의 힘을 하나로 모은 한지훈 과 그를 따르는 연합군.
반면 저 추악한 괴물의 군세를 이끌고 찾아온 한스와 그의 혹마법 으로 만들어진 키메라와 노예병사 들.
마치 선과 악의 대치와도 같다.
그리고 악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그가 눈을 내리깐다.
본디 한스가 악인이었는가?
아니다. 그는 그저 한지훈에게 복수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자신을 몇 번이나 죽이고, 자신이 가졌어야 할 모든 것을 파멸시킨 한지훈에게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허나 그는 지금에 와서 완벽한 악인이 되어있다. 정신과 영혼은 혹 마나에 오염되었으며, 혹마법의 군 세를 이끌고 대량의 인명을 살상했다. 인류를 멸망시키고 이 세상을 흑마법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그가 원했던 것은 한지훈에 대한 복수. 그저 그뿐이었는데 .
"… 잡생각은 그만두지."
한스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가 고개를 들어올려, 한지훈이 있을 저 성벽 위를 노려봤다.
"명백한 악이 되어도 좋다. 한지훈, 네놈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만약, 한지훈이 없었더라면. 그리하여 그가 한지훈을 대적하지 않게 되었더라면.
그렇다면 자신 또한 흑마법사에 게 저항하기 위한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저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한스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만약, 이라는 말처럼 허무한 것도 없기 때문에.
그는 심상을 깨끗이 비우고. 수 행해야 할 목표만을 상기한다.
"루벤을 파괴하고, 한지훈을 죽여 없앤다."
그가 장검을 꺼내들었다. 사악한 검은색 기운이 일렁이는 장검이다.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세계검. 그것 이 이형의 기운을 발한다.
한스가 크게 소리친다.
"돌진하라! 놈들의 요새를 파괴하고, 성벽을 부수어, 도시를 유린 하라! 성벽 너머 도시 안에 있을 인간 모두를 참살하라!"
- 키아아아아!
- 끼이이이이이이!
그의 외침과 함께 키메라와 노예 병사들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들 이 이 드넓은 루벤 동부평원을 가로질러 달려나간다.
그리고 그때였다.
번쩍!
허공에 떠오르는 환한 섬광.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떠오르는 섬광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스무 개가 넘어가는 수의 광 역 마법진. 그것들이 저마다 다양한 속성빛을 발하며 밝게 빛나고 있다.
허공의 광역마법진들을 목도한 한스의 붉은색 눈동자가 크게 커진다.
"…광역 마법진이, 27개?!"
이런 대규모 회전에 쓰이는 광역 마법은 보통 전투마법사 100명을 동원, 100중첩 발현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화력은 배가시키면서, 드넓은 영역에 효율적으로 가진 화력을 흩뿌리기에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떠오른 광역마법진 의 수는 무려 27개.
그 말인 즉,
"놈들이 동원한 전투마법사의 수 가 최소 2,700명이라고?!"
한스의 이글거리던 분노를 단숨에 진정시킬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숫자였다.
전투마법사 2,700명이 단 하나의 전장에 등장하다니. 역사상 유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마법 화력이다.
쿠구구구구구구….
허공에 떠오른 마법진들이 중첩에 중첩을 거듭해가며, 발현에 도달 해간다. 대기가 요동치고 마나의 울음이 드넓은 평원 전체를 쩌렁쩌렁울려 댄다.
광역마법 27개가 동시발현이라 니. 너무나도 거대한 화력이다.
대량의 군세를 이끌고 왔기에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한스 요한바르 첸.
지금 그의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