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연합 본부가 혼란에 휩싸였다.
"동부해안에 흑마법사 군대가 상 륙했습니다!"
"흑마법사 놈들, 루벤으로 진격해 올 심산이다. 녀석들이 노릴 만한 곳은 이곳밖에 없어."
"제기랄, 흑마법사 놈들…. 연합 이 만들어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대규모 침공이라니!"
몇 시간 전 흑마법사가 동부해안에 상륙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그리 좋게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두개의 해안 도시가 파괴되었고, 다섯 개 마을이 불태워졌습니다. 몇몇 영지군과 방위군이 저항했으나 결국 버틸 수 없었습니다."
"적의 수와 병력구성은?"
"불명! 정찰에 나섰던 정찰병들 이모두 죽었습니다. 적의 수도, 병력비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놈 들은 서쪽으로 진격 중이라는 것 밖에는…."
"놈들의 예상 진격로 상에 있는 모든 도시와 마을의 주민들을 대피 시켜야 한다. 거주민 소거조치를 실 행하도록."
"거주민 소거조치를 실행하는 동안 시간을 벌어야 한다. 동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북부군과 기사단을 급파하라! 마을 하나라도 더 구해 내!"
"명령을 따릅니다!"
흑마법사의 군대는 강력했다.
동부해안에 상륙한 놈들은 일차 적으로 동부연안 지대의 모든 군부 대와 등대초소 등을 급습, 병사들을 싸그리 쓸어버렸고.
이후 해안지대를 장악해 교두보 를 확보한 놈들은 본대를 불러 대량의 군세를 형성했다.
이후에는 오직 진격만이 있었다.
동부 연안지대를 파괴한 놈들은 기수를 서쪽으로 향한 채, 가로막는 모든 도시와 마을들을 불살라가며 전진해가고 있는 것이다.
"염병."
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작게 욕지 거리를 뇌까렸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남부대륙의 군사지도.
그것도 엘프와 요정족의 힘을 빌려 만든 정밀한 군사지도였다.
중앙대륙에서 사용했던 예의 지도와 같이, 실시간으로 적아의 위치 를 파악할 수 있는 물건.
지도에 표기되어있는 전황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동쪽을 까맣게 물들인 무수의 검은색 점들. 그것들이 서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다.
단 한순간조차 지체하지 말이다.
"제대로 된 휴식 한번 없이, 다수의 도시와 마을을 불태우며 진군 하는 군대라니."
이 세상의 어떤 정예병이나 엘리 트 기사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병사나 기사가 아무리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들은 결국 인간이었고, 인간인 이상 쌓인 피로와 체력손실을 회복 하기 위해 휴식 및 식사를 제대로 챙겨야 하니까.
하지만 저 흑마법사의 군세는 인간이 아니었다.
'키메라. 그리고 노예 병사들.'
흑마법사가 만든 변종생명체 키메라. 그리고 혹마나에 침식되어 정신과 신체가 오염되어 부려지는 노예 병사.
둘 모두 지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키메라와 노예병사의 신체는 이미 흑마나에 침식되었기 때문에 생명력이 아닌 흑마나로 움직이며, 놈들은 흑마나가 공급되는 한은 무한히 움직인다.
그리고 지금 놈들의 군세는 다수 의도시와 마을을 파괴한 상황. 키메라와 노예병사를 움직일 수 있는 혹마나는 인간들을 죽여 없애며 취 할 수 있다.
평범한 인간의 군대와 달리 먹지도, 자지도 않고. 심지어 보급마저 필요없는.
말 그대로 오직 전쟁과 파괴만을 위하여 설계되도 탄생한 생체 전쟁 기계들.
그것이 바로 흑마법사가 부리는 키메라와 노예병사들이다.
"최악의 적이지."
악몽이나 다름없다.
식량의 보급이 필요없으니 병참 선이란 존재치 않아 후방차단이 의미가 없으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움직이니 그 기동력은 인간의 군대 를 아득히 초월한다.
그러나 키메라와 노예병사가 최소수만, 많다면 수십만에 달하는 수가 이곳 루벤을 노리고 진격해오는 것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놈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
흑마법사의 군세.
지금 생에서는 내적이지만, 이전 시나리오에서는 내가 직접 지휘 했던 것이 바로 키메라와 노예병사 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것들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화력. 화력이 필요해."
키메라와 노예병사들. 확실히 위협적이지만, 놈들에게는 지성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교한 방진과 진형구축도, 신속 한 전투기동 따위도 없다.
그저 우르르 몰려들어가 눈앞에 보이는 모든 생명과 물체를 파괴하 며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
그런 놈들에게는 화력, 그것도 대규모 화력이 특효약이다.
나는 연합의 행정관들에게 지시했다.
"당장 전투마법사들을 수배해라.
모든 국가에서 차출할 수 있는 모든 전투마법사들을 모아 이곳 루벤 으로 호출한다. 대량의 화력으로 놈 들을 처부순다."
이번에는 화력전으로 간다.
- 흑마법사의 군세를 막기 위해 서는 전투마법사들이 필요하다. 가 용할 수 있는 모든 전투마법사를 루벤으로 급파해주길 바란다.
전투마법사를 파견해달라는 한지훈의 요청은 순식간에 연합의 통신망을 타고 다양한 국가에 퍼져나갔다.
전투마법사.
이곳 블랙 오케스트라 세계관에서 화력을 담당하는 병종들이다.
그들 하나하나는 일개 백인대를 지워버릴 만큼 강력했으며.
백여 명의 전투마법사들이 모인 전투마법단은 약 이만 내지 삼만에 달하는 하나의 군단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전력이었다.
그런 고급전력이 바로 전투마법사들.
그 어떤 국가에서도 중요전력으로 취급되는 이들이다.
그리고 한지훈은 그런 전투마법사들을 있는 대로 모조리 지원해달 라고 요청했다.
다른 국가들이었으면 충분히 난 색을 표할 일.
허나 그동안 한지훈이 쌓아온 인 덕이 빛을 보는 것일까.
"마법사의 지원이라. 확실히 필요 한 일이군요."
"흑마법사를 막기 위함이다. 연합 의 요청에 기꺼이 응하지."
"루벤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각국의 군주들이 선뜻 전투마법사의 파견을 결정했다.
가장 먼저 파병을 시작한 것은 한지훈의 모국이자, 그의 가장 강력 한우방. 오르페우스 제국이었다.
"한지훈 라이젠은 우리 제국의 공작이자, 제국을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해낸 대영웅이다. 그런 그의 영지가 사악한 흑마법사에게 위협 받고 있으니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지. 나, 아르테니아 가이나스 비 오르페우스 황제의 이름으로 파병을 결정한다. 10개의 전투마법단을 급파하겠다."
제국은 한지훈의 영지로 10개 전투마법단, 도합 1,000여 명의 전투 마법사들을 추가로 파견했다.
제국 전체 전투마법단의 과반에 달하는 수니, 실로 막대한 지원이라 할 만했다.
물론 마법사를 지원해준 것은 제국뿐만이 아니었다.
"루벤 영지는 우리 슈베츠와 국 경을 맞대고 있는 최인접국. 루벤이 무너진다면 그다음은 우리 슈베츠 겠지. 돕지 아니할 수는 없지. 한지훈, 그대의 영지에 4개 전투마법단을 추가로 급파하겠네."
마이사 슈베츠가 이끄는 슈베츠 왕국은 전투마법단 4개, 도합 400여 명의 전투마법사들을 추가로 파 병 했으며.
"저희 엘프 또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엘프 마법사 1천을 보낼 게요. 마음 같아서는 더 보내드리고 싶지만, 저희도 정보수집업무에 투 입한 인원이 많아서 당장 이 정도가 한계이네요.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엘프여왕 니디아가 이끄는 중앙 대륙에서는 도합 천에 달하는 마법사전력을 지원해줬다.
그리하여 루벤 영지로 향하는 전투마법사의 수는 수천에 달하게 되었다.
기존 파병군으로서 미리 와있던 전투마법사 3백, 그에 더해 제국에서 1천, 엘프에서도 1천, 슈베츠에서 4백.
도합 2천하고도 7백에 달하는 전투마법사들이 루벤에 모인 것이다.
전투마법사들이 속속들이 초장거 리 도약 마법진을 타고 루벤에 도착한다.
* * *
- 포병은 현대전의 신이다.
현대전에서 포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문구.
과거 소련을 지배하던 독재자 이 오시프 스탈린이 한 말이다.
그만큼 현대전에서 포병의 위력 이란 실로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155mm 고폭탄 하나의 살상반경 이 약 50m다.
155mm 자주포 대대 18문이 일제효력사를 가한다면 141,300m2의 살상반경이 펼쳐지며, 여기서 동시에 다수의 포탄을 동시에 탄착시키는 TOT(Time On Target) 사격까지 활용한다면 살상반경은 단순계 산으로도 423,900m2에 달하게 된다.
자주포 한 개 대대가 어지간한 동내 야산 전체를 갈아엎을 수 있는 것이다.
경악스러운 화력. 괜히 포병이 현대전의 신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곳, 블랙 오케스트라 세계관에서 현대의 '포병'의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마법사들이다.
후방에서 장거리 광역 화력 투사 를 담당하는 이들.
전투마법사 하나는 보병 백여 명을 전멸시킬 수 있다.
전투마법사 열은 하나의 천인대 를 분쇄해버릴 수 있으며, 일백의 전투마법사들은 하나의 군단을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전투마법사가 무려 2,700여명이 있다면?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완전히 갈아버릴 수 있는거지."
나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은 루벤 도시를 지키고 있는 성벽 위였다. 그곳에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꽤나 많은 수의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들의 소속은 제각각이었다.
등짝에 제국기 문양이 그려져 있는 제국의 전투마법사들.
복장은 저마다 다양했지만 모두 가 뾰족하고 기다란 귀를 지니고 있는 엘프 마법사들.
그리고 국가의 문양 대신 팔뚝에 노란색 완장을 차고 있는 슈베츠 왕국의 마법사들까지.
그들이 소속을 표하는 방법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럼에도 마법사들 이다.
마법사들이 으레 그러하듯, 저 마법사들은 모두가 두터운 로브로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2,700명의 마법사들이라. 정말 미친 화력이야."
현생에서도, 그리고 이전 시나리오에서도 저토록 많은 수의 마법사 들이 한자리에 모인 예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마법사, 그중에서도 전장에서 활 약하는 전투마법사란 귀하디귀한 고급 전력.
그 수가 적어 희귀하며, 전장에서 극강의 화력을 발하는 이들.
아무리 대규모 회전이라 한들 투 입되는 전투마법사들의 수는 보통 500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장소에는 무려 2700여명의 전투마법사들이 모여 있다.
유래 없이 많은 수의 전투마법사 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렇게 내가 마법사들을 둘러보 고 있을 때, 몇몇 익숙한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마법사놈들이 더럽게 많군. 그것 도 다 하나같이 정예로 이름 높은 전투마법단 소속이야. 용케도 이렇게 많은 전력을 모았어."
먼저 들려온 목소리는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단장, 제피르의 것.
"그 말대로 입니다. 전투마법사만 2,700이라…. 이 정도의 화력이라면 흑마법사의 군세도 순식간에 소멸 할 수 있겠군요. 한지훈 씨의 인망 이 대단하군요. 타국에서 이렇게 많은 마법사들의 파견을 받아낼 수 있을 줄이야…."
이후에 들려온 것은 엘븐 가디언 마법사인 마게브의 목소리다.
나는 씩 웃었다.
"이래서 연합이 필요한 거지. 다수의 힘을 한자리에 뭉칠 수 있으 니까."
흑마법사의 힘은 한군데에 집중 될 수 있는 반면에, 인류와 지성체 의 힘은 한데 뭉치기 힘들다.
하지만 그건 연합이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비로소 연합이 창설되고, 내가 연함의 의장으로서 구심점이 된 이상.
모든 지성체의 힘을 뭉쳐 흑마법사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 시나리오처럼 여러 국가와 종족들이 차례차례 흑마법사 놈에 게 멸망당 할 일은 없을 터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제피르. 그리고 마게브. 이전에 말했다시피 마법사들의 지휘는 그쪽에 맡긴다. 잘 해줄거라 믿어."
"맡겨만 둬라. 한지훈. 이렇게 많은 전투마법사들을 통제해본 적은 없다만, 뭐, 평소랑 똑같겠지.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군."
"걱정 마십시오, 한지훈 씨. 엘프 마법사들은 이미 예전부터 제가 지휘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통제에는 차질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 전투에 투입된 2,700에 달 하는 마법사들. 그들 모두를 효율적 으로 통제하기 위해 나는 나름의 상급자들을 임명했다.
저기 제피르와 마게브가 바로 그 상급자들이었다.
인간 전투마법사들 중 가장 명망 높은 제피르가 1,700의 인간 전투 마법사들을 지휘하며, 엘븐 가디언 마게브는 나머지 천여 명의 엘프 마법사들을 지휘한다.
저 둘이라면 마법전력을 효율적 으로 다루어 적에게 최대한의 화력을 투사할 수 있을 것이리라.
역사상 유래 없을 정도의 막강한 화력을 쥐고 흔들 수 있게 되었다.
더해 그 화력을 효율적으로 다룰 유능한 인물들까지 내 곁에 있었으니 .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놈들은 이곳 루벤에서 모조리 소멸하게 될 거다. 개미새끼 한 마리 남김없이 말이야."
흑마법사의 군세가 아무리 강인 하고 재빠르다 한들, 광활한 대지를 뒤엎는 막강한 화력 속에서 감히 버틸 수 없을 터.
흑마법사 놈들. 이곳 남부대륙을 침공해온 대가를 절절히 치르게 해 줄 것이리라.
나는 곧 있을 전투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