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연회는 오랫동안 이어졌고, 초청 된 사람들은 다양한 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그렇게 꽤나 긴 시간이 지나, 이 화려한 연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이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열강급 국가 들의 군주들이었다.
"흑마법사의 세력이 전면에 나섰 고 그들의 세력이 그 어느 때보다 도 강대하니. 이제는 모든 지성체가 힘을 합쳐 적에게 맞서야 할 때가 도래했어요. 대륙과 국가, 종족과 민족을 가리지 않고 하나의 깃발 아래에 뭉쳐야 해요. 우리 엘프를 비롯한 중앙대륙의 지성체들은 연합에 가맹하겠어요."
"흑마법사 놈들은 위험하고 음험 하다. 놈들을 방치한다면 모든 인류 와 문명의 존망이 위태로울 터. 우리 슈베츠는 제국의 제안을 수락해 연합의 일익이 되겠다."
"한지훈 라이젠 공작은 전쟁의 영웅이자 위대한 대전사이다. 게다가 그는 흑마법사가 음모를 꾸밀 때마다 전면에 나서 놈들과 대적했 지. 그런 한지훈 라이젠이 이끄는 연합이라면 믿을 수 있다. 내가 이 끄는 트웨인과 유목연합은 연합에 참여할 것이다."
이에 연회에 참여 중이던 다른 군소국가의 군주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엘프와 슈베츠, 그리고 트웨인이 제국의 제안에 모두 웅하다니?!"
"맙소사. 적어도 한 곳은 거절할 줄 알았는데 ."
"제국에게 은혜를 입은 슈베츠나, 제후국 트웨인은 그렇다고 쳐도… 엘프가 제국의 제안에 응한 것은 정말 의외로군요. 자존심 높은 그들은 분명 거절하리라 예상했었습니다만."
"설마 모든 열강이 연합에 가맹 할 줄이야…."
그들이 놀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슈베츠, 트웨인, 그리고 엘프.
제국 정도는 아니지만 주변국에 패권을 떨칠 정도의 강국이거나, 그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는 곳들이다.
사실상 '국가'라고 자칭하기에 차 고 넘치는 것이 바로 이 열강국들.
그리고 지금, 이모든 열강국들 이하나의 깃발 아래에 모여 뜻을 합친 상황.
그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군소 군주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상황을 주시하던 군소 군주 들이 하나둘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백작. 어떤 것 같소?'
'어떤 것 같냐니. 무엇이 말이외까?'
'모든 열강국가들이 제국의 아래에 뭉쳤소. 그대 백국과 우리 자유 도시 또한 연합에 합류해야 하지 않겠소?'
'허나, 우리마저 순순히 합류하다 간 제국에게 끌려갈 수도….'
'그렇다고 거절할 수는 없지 않 소? 이미 모든 열강국들이 연합에 가맹한 상황이요. 이자리에서 가맹 하지 않다는 것은 저들 모두를 거 스르게 된다는 것인데.'
'으음….'
사실 그들로서는 선택권이 없었다. 무언가를 선택하기에 그들은 힘 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국가의 주인이라 여겨 '군주'라는 칭호를 쓰긴 하지만, 그 들이다스리는 국가의 규모는 다른 열강국들에 비해 너무도 하찮았다.
후국이나 백국, 자유도시, 도시국 가 등.
인구수, 영토의 면적, 군사력, 자 금력, 기술력, 역사와 전통, 심지어 식량사정까지.
그 어떤 면에서도 저들 열강국가 들을 대적할 수 없는 수준이다.
스스로 주권을 지닌 하나의 국가라 주장하지만, 실상 국가라 부르기 에는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저들은 오직 눈치를 볼 뿐이었다.
헌데 조금 전, 이 세상의 모든 열강국들이 동시에 연합 가입 의사 를 밝혔으니 .
'…가입하지 않으면 보복이 있겠지. 보복이 없다 한들 결국 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죄로 외교적 고립에 처할 것이고.'
'저들은 어떤 국가가 연합을 도 왔고, 어떤 국가가 외면했는지 분명히 파악해 둘 터.'
'전쟁에 동원되어 힘든 시기를 보내느냐. 혹은 전쟁에서 물러나 말 라 죽어가냐의 문제로군.'
군소 군주들은 죽을 맛이었다.
소국인 그들이 연합에 가맹하는 것으로는 국력이 약해 큰 부담이었고, 그렇다고 연합에 가맹하지 않다 니 추후 있을 열강의 보복과 외교 조치가 두려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세.
하지만 결국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 우리 슈블란타 백국은 연합에 가맹하겠소. 백국에는 영토를 지키는 것으로는 과분한 수의 병력들이 있으니 . 그들을 지원하리다."
"포마닐 자유도시도 마찬가지오. 우리도 연합에 가맹하고 싶군. 비록 많은 군사력은 없지만, 나름의 금력을 지원하겠소."
"렁그흐 후국은 식량을 맡겠소. 우리가 가진 것은 식량밖에 없으 니…."
"그럼 내 리엔츠는 광물을 공급 하면 되겠군. 무기를 만들 철광석을 공급하리다."
군소국가 군주들이 하나둘 자신 이 할 수 있는 일을 말하며 가맹의사를 밝힌다.
사실, 앞으로 있을 전쟁을 생각 하면 연합에 가맹하는 것이 저들에게도 최선의 선택이다.
흑마법사. 동부대륙 전체를 차지 한 거대한 악의 세력.
놈들과의 전쟁은 절대 만만하지 않을 터.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물자와 자원이 소모될 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워질 정도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많은 국가들의 연합이다.
승산은 결코 적지 않다.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산업 활성 화와 금의 이동으로 국가가 부흥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연합을 등지고 각자도생하 고자 한다면?
철저한 보복. 혹은 외교적 고립.
소국은 자급자족의 힘이 없고, 때문에 외부와의 교류가 중요하다.
그런 그들에게 열강의 보복과 외교적 고립이란 결국 멸망과 직결된다.
비록 불확실한 승리를 선택하는 한이 있더라도, 확실한 멸망만은 피해야 하니.
소국의 군주들이 연합에 가맹하 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었다.
연회장의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군. 아주 좋아."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진다.
군소국가들. 비록 저들 하나하나 의 국력은 제국에 비해 티끌과도 같다.
허나 그런 티끌 같은 국가들의 수가 많다.
왜,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비록 하나하나는 작디작은 소국에 불과하지만.
그런 그들이 무수히 많은 수가 모인다면 전쟁에서 나름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리라.
제국 황제가 만족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르테니아 황제가 밝게 웃으며 말한다.
"자, 그럼 이제 연회는 얼추 끝 난 것 같군. 이만 자리를 정리하고, 원탁을 놔주게. 이제 연합 창설을 위한 회의를 해야겠군."
방금 전 모든 국가가 연합의 가 맹 의사를 밝혔지만, 그것은 그저 수락의 의사를 표출했을 뿐.
저 군주들의 여러 의사들을 총합 해 하나로 엮어, 제대로 된 서류로 완성해내는 길고 지루한 작업이 남 아있다.
이제 앞으로 저들은 각국의 권한 과 의무 등을 정해가며 기나긴 조율과정을 거칠 터다.
본래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딴 것보다도,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할 사안이 있었으니 .
"연합의 의장으로서 한지훈 라이 젠 제국 공작을 추천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연합의 수장 임명에 대한 것이었다.
연합의 창설이 본격적으로 진행 된다.
그렇게 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 들이 연합의 창설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크라함은 계속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갔다.
- 나와라, 한스 요한바르첸. 죽음에서 부활해 내부름에 응답하라.
그가 하고 있는 일이란 다름 아닌 한스 요한바르첸의 부활이었고.
지금 곧 그 결실을 보려고 한다.
쩌저적. 으직.
날카로운 파쇄음을 울리며 깨어 져가는 커다란 수정구.
그 매끈한 표면에 무수히 많은 수의 실금이 아로새겨지더니, 이윽고.
쨍그랑!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균열이 터져나왔다. 마침내 한스 요한바르첸 의 부활이 완료된 것이다.
철퍼덕. 털썩.
힘없이 떨어져 낙하해 바닥을 뒹 구는 한스의 육신.
크라함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고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한 한스에 게 말했다.
- 일어나라.
- 일어나라했다. 한스 요한바르 첸.
허나 방금 전 죽음에서 돌아와 부활한 그의 육신이다.
의식이 없어 두 눈이 굳게 닫혀 있는 상태였으니 , 금세 정신을 되찾 아 대답할 수 있을 리 만무.
그에 크라함은 쯧 혀를 차고는, 나직이 어떤 이름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 한지훈에게 복수해야 하지 않 나. 네가 지닌 복수심이란 그 닫힌 눈조차 뜨게 하지 못할 정도로 미약했는가?
그가 한지훈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은 즉시.
"…엿 같군. 깨어나자마자 듣는 것이 그 개자식의 이름이라니."
- 클클클. 그래서, 유감인가?
"아니. 아주 좋군. 그 증오스러운 놈의 이름만큼 내 정신을 날카롭게 다듬어주는 것은 없지."
한스는 고개를 좌우로 저어 부활에 의한 혼란을 단숨에 털어버리고 는, 다시금 시선을 들어올려 방금 전자신을 깨운 흑마법사의 모습을 살핀다.
한 흑마법사의 모습이 보인다.
짙은 검정색 로브의 안쪽으로는 붉은색 안광이 흔들거리고 있었으 며, 언뜻언뜻 보이는 피부는 극한으로 메말라있다. 전신에는 암흑색 기운이 시이하게 일렁이며 기분 나쁜 기운을 더더욱 증폭시켜간다.
크라함.
볼라바아 학파의 종주.
전생에는 이 세상 그 자체를 정 복한 흑마법의 정복자였으며, 현생에서는 자신을 여러 번이나 부활시 켜준 은인이자 동료.
기분 나쁜 외양과 기운을 두르고 있지만 자신에게는 믿음직한 동료였다.
그런 크라함이 한스에게 물었다.
- 기억과 신체는 멀쩡하나? 기억 의 연속성과 신체의 완전성이 제대로 되어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기억은… 멀쩡하군. 모든 기억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선명하다. 육체는 말할 것도 없군."
한스는 자신의 주먹을 꽉 쥐어보였다.
쿠드득, 울리는 골성과 함께 팔 뚝을 따라 울긋불긋한 힘줄과 혈관 이 올라온다.
강대하게 느껴지는 힘. 한스 요 한바르첸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육체인가…. 모든 것이 우월하다. 힘도, 민첩도, 신체의 강도도. 마치 인간을 초월한 다른 존재가 된 것만 같군."
그렇게 감탄하던 한스는 곧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 육신의 강화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이 신체를 한지훈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놈은 내가 죽어있는 동안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군."
한스는 대적자의 별을 지닌 인물 이다.
그가 죽음에서 돌아와 이전보다 강화된 신체를 얻은 것은, 그와 대 칭을 이루던 한지훈이 강화되었기 때문.
그 말인즉, 한지훈 또한 지금 한스와 거의 같은 수준의 육체를 지 니고 있다는 소리다.
그것도 오랜 시간 적응되어 완벽 하게 다룰 수 있는 육체를.
반면 한스는 갑작스레 큰 힘을 얻어, 가진 힘을 아직 완벽히 다룰 수는 없으니 .
한지훈에 비해 실전에서 다소 불 리한 것이 사실.
그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한스의 분노 섞인 걱정에, 크라함이 클클 웃으며 대답한다.
- 한스. 어리석은 대적자의 별. 네놈을 죽음에서 되살려준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질척한 웃음을 흘리는 크라함.
그는 단언했다.
- 한지훈을 상대하는 것은 걱정 하지 마라. 나에게는 흑마법의 지식 과 유물이 있음이라. 네놈은 한지훈 보다도 훨씬 우월한 강함을 얻게 될 것이다.
크라함이 지팡이를 들어올린다.
- 나에게는 유물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동부대륙에 잠들어있던 지 즈의 핵, 다른 하나는 동부대륙 연방의 모든 인명을 갈아넣어 만든 새로운 유물, 흑마의 핵이니. 네 신체에 흑마의 핵을 이식해주지.
쿠르르르르….
웅혼하게 일렁이는 검은색 파동. 지팡이 끝에서 번들거리는 핏빛 광 채.
이형의 기운이 들끓기 시작한다.
- 대적자인 네놈의 신체는 한지훈과 동급의 그릇과 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 너라면, 이유물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
너무나 거대한 힘이 대기 중으로 방사된다.
한스는 경악에 눈을 크게 떴고, 크라함은 더더욱 질척한 웃음을 흘 려가며 기운을 운용한다.
- 힘을 받아들여 적을 압도하라. 한스 요한바르첸. 놈을 죽이고 녀석 의 존재를 취해, 비로소 격과 그릇을 완성시켜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 는거다.
'나를 위해서.'
크라함이 뒷말을 삼키고는 계속 해 기운을 운용했다.
피처럼 붉은 기운이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장엄하고도 불길한 대량의 기운이 한스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그의 신체가 이형의 기운을 받아 들여 점차 변이해간다.
한스가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 러내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