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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349화 (349/390)

349화.

- 테르본. 결국 실패했는가.

구 연방 수도 터. 연방의 대의회 가 자리해있던 폐허.

그곳에서 검은색 수정구를 바라 보던 크라함이 작게 중얼거렸다.

크라함은 방금 전까지 한지훈과 테르본의 전투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가 과거 만들었던 아티팩트를 이용해 전투현장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하게도 테르 본의 패배.

자신이 하사했던 모든 병력을 동원하고, 심지어 혹마나의 정수마저 복용했음에도.

테르본은 한지훈을 이기지 못했다.

크라함이 쯧쯧 혀를 찬다.

- 역시. 광인과 포식자들이 있다 한들 한지훈을 처치할 수는 없었군. 보다 많은 병력이 있었다면 모르겠 지만… 놈을 상대하는데 있어 세계 검의 운용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자신의 측근이 죽었음에도 안타까운 기색 없이, 담담히 정보를 정리하는 크라함이었다.

본래 그에게 부하들이란 그런 존재였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 하는 장기말. 목적을 이루기 위해 쓰는 소모품.

그들에게 동료의식을 품은 적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힘과 사상에 감화되어 따르는 일개 병사들에 불과했다.

한동안 전투의 양상을 복기하던 크라함.

그는 시선을 들어올려, 자신의 바로 코앞에 있는 붉은색 구체를 바라본다.

- 역시.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한스의 부활이 시급하다.

그가 바라보는 붉은 구체에서는 한스의 부활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 이었다.

쿠르르르르…

사악한 기운이 몰려들어 진득한 검붉은 빛을 흘리고, 질척한 기운이 사방을 물들여간다.

너무나도 농밀한 마력이 모여 공간과 빛의 흐름마저 비틀려 시야가 왜곡될 정도였다.

크라함은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 로 바라본다.

- 기뻐하거라, 한지훈. 네놈이 기 뻬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 으니 .

그는 여전히 구 연방 수도 폐허 지역에서 머무르며 한스 요한바르 첸의 부활을 진행한다.

크라함의 볼라바아 학파는 여전히 건재하다.

며칠 뒤.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신전 안이었다. 고개를 들어올려 주변을 살펴보니 신전 내부에 크고작은 병상들이 즐비한 채 부상자들이 누워있다.

신전 내부를 야전병원으로 개조 한 모양.

내가 깨어난 것을 확인한 것일 까. 제피르가 이쪽으로 다가와 말한다.

"한지훈, 네놈은 정신을 잃고 삼 일이나 누워있었다."

"삼일이나 ?"

"그래. 참 잘도 자더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전보다 신체능력치가 강화되고 세계검을 보유했다 한들, 유물 사용의 여파는 꽤나 치명적이었다.

비록 엘릭서를 복용해 목숨을 간신히 건졌다 하나 삼일 동안 의식을 잃었다니.

나는 속으로 생각해본다.

'이제 남아있는 엘릭서의 수는 단 두 개인가.'

나는 유물을 사용할 때마다 엘릭서를 복용해야만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즉, 이제 나는 유물을 두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소리.

'아껴 써야겠어.'

역시 유물은 정말 상대하기 힘든 적에게만 사용하는 것이 맞는 일이다. 엘릭서의 수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지훈. 네가 자고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생겼다."

제피르가 나에게 알려왔다.

나는 시선을 돌려 다시금 제피르를 바라봤고, 그가 이어 말한다.

"제국에서, 아니, 사실상 전 지성 체에 결처 흑마법사를 대적하기 위한 연합이 창설될 것 같다. 제국의 주도로 말이다."

"연합이라…."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해주지. 그나저나 네 몸, 생각보 다 괜찮아 보이는데 ?"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에 긍정했다.

세계검과 엘릭서의 힘이 중첩된 덕분일까?

이전과 달리 유물사용의 피로감은 몸에 그다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몸은 푹 자고 일어난 듯 개운했 으며, 정신은 또렷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

그런 내 상태를 파악한 것인지. 제피르가 턱 끝으로 신전의 중앙 제단, 갈색 구슬이 놓여있는 장소를 가리키며 말한다.

"유물. 획득해야 하지 않겠나? 네 목표였으니 말이다."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적당히 신발을 신고 신전의 중앙으로 다가갔다.

커다랗게 보이는 갈색 수정구. 그곳에서는 여전히 농밀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다.

그곳으로 다가가자.

- 네놈의 싸움. 인상 깊게 보았다. 인간종의 초월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리바이어던의 그것처럼 꽤나 웅 흔하고도 장중한 기운이 담겨있는 목소리. 허나 그보다는 더욱 무거운 목소리.

베히모스의 음성이었다.

그가 나에게 말한다.

- 내 봉인을 해제하라. 네게 힘을 빌려주지.

나에게 힘을 빌려준다는 베히모 스의 말. 뻗대던 이전과 달리, 보다 고분고분해진 태도다.

픽 웃었다.

'강제력. 이라고 했나.'

나와 접촉한 유물이 나를 돕게 하는 힘. 세계의 강제력. 보다 상위 존재인 무언가가 유물들이 나를 돕 기를 강요하고 있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

힘을 빌려야 할 유물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곤란하다.

하지만 세계의 강제력 덕분에 저 들은 내게 순순히 협력하고 있으니 .

썩 만족스럽다.

나는 흡족한 느낌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 한지훈. 세계검으로 저 갈색 수정구를 내려쳐라. 세계검은 모든 것을 절삭하고 파훼할 수 있으니 . 네 의지에 따라 저 봉인을 파훼할 수 있을 것이다.

품속의 리바이어던 핵이 봉인의 파훼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나는 리바이어던의 조언대로 세계검을 높이 들어올린 뒤, 망설임 없이 내려쳤다.

카아아아아앙!

날카로운 격돌음이 크게 울린다. 직후 쩌저적, 하고 깨어져나가는 갈색 수정구.

수정구 내부에는 그 크기가 고작 주먹만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색 과 품고 있는 기운이 더욱 농밀한 수정구가 자리해 있다.

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집었다.

띠링!

떠오르는 홀로그램.

[아이템 : 베히모스의 핵'을 획 득했습니다!]

유물 획득 홀로그램이었다.

내 손아귀에 올려진 베히모스의 핵이 말한다.

- 앞으로 잘 부탁한다. 초월자.

"나도 잘 부탁하지. 두 번째 유물, 베히모스. 리바이어던과 함께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 그리하지.

나는 베히모스의 핵을 집어 내 품속에 갈무리했다.

이로서 유물을 두 개 수집하게 되었다.

"이제 서부대륙에서의 볼일은 끝 났다. 제피르,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준비해줘. 갈람프는 철군준비를 서둘러주고. 슬슬 제국 수도로 귀환 하자."

"알았다, 한지훈. 마법을 준비하 지."

"철군을 준비하겠다."

"샘플을 채취하라! 이 신전의 마법술식과 구조물을 연구해야 한다. 마탑으로 가져가서 살펴보지."

"천막 철거하고 병장기들 챙겨.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다."

지시받은 마법사와 기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곳, 서부대륙과 칸타라콜 대평 원에서 볼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

나는 병력을 이끌고 제국으로 귀 환했다.

황실에서는 연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지금 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연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일은 커다란 경사였다.

다름 아닌 모든 전쟁의 승리.

제국은 이제 전세계 패권을 가지게 되어 명실상부 유일한 초강대 국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남아있는 모든 국가는 제국과 우 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거나, 혹은 제후국이었으며. 제국의 국력은 그 어떠한 국가보다도 강대했다.

사실상 제국은 전세계를 자신과 휘하 우호세력으로 일통한 것이다.

기나긴 제국의 역사에서도 이토록 대단한 일은 없었으니 . 이를 축하하기 위해 커다란 연회를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

"황실 악단을 불러라!"

"요리사들. 음식의 준비는 어떻게 되었지?"

"네! 집사장님. 요리는 아슬아슬 하게 시간에 맞추어 내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둘러라. 결코 늦어서는 안된다. 연회장의 준비는 끝났나?"

"지금은 내부 장식을 바꾸고 테이블과 카펙을 교체 중에 있습니다. 그리 머지않아 모든 작업을 끝낼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초대인원을 안내할 사람은…."

연회장에 집사들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감독했고, 시녀와 시종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일을 처리했다.

그들이 연회장을 꾸미고 음식을 준비하고 날랐다.

술과 음료, 음식을 배치했으며. 악단이 서서 연주할 단상을 설치했다.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기 전에 리허설을 벌이기도했다.

꽤나 많은 이들이 연회 준비에 투입되었음에도 퍽 바쁜 모습.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연회규모가 너무 큽니다!"

"우는소리 하지 말고 빠릿빠릿하 게 움직여!"

"이번 연회는 제국뿐만이 아닌 전세계의 모든 지도자가 모이는 자리다. 제국의 위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이번 연회에서 그 어떠 한 차질도 있어서는 안된다. 알겠 나!"

"네! 알겠습니다!"

이번 연회의 규모와 화려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출중했으니 말이다.

제국 내부 귀족과 관료들을 불러 벌이는 연회가 아니다. 전세계 여러 국가들의 지도자와 고위귀족들 이 참석하는 연회자리다.

제국으로선 힘을 주지 않을 수 없었으니 .

연회를 준비하는 시녀와 시종들 이 우는소리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제국 황궁에서의 연회준 비는 순조롭게 되어갔고.

나는 그 연회장 건물 바로 밖에서 제국의 황제, 아르테니아와 면담했다.

"어서 오게, 한지훈. 몸은 좀 괜 찮나?"

"3일간 푹 쉬어서 괜찮습니다. 황제 폐하."

"하하. 다행인 일이야. 자네를 잃 어서는 안 되지. 우리 제국의 대 영웅인데 말일세. 몸이 상해서는 안 되지. 안 그러나?"

나는 황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황제의 얼굴표정은 썩 기뻐보였다. 이전에도 전혀 본적이 없었던 몹시나 환한 얼굴.

그가 저토록 기뻐하는 이유.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제국이 남부대륙을 넘어, 사실상 전 대륙에 영향력을 뻗치게 되었으니 .'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이토록 부강해졌는데, 기뻐하지 않을 순 없지 않은가.

한참동안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 이던 아르테니아 황제. 그가 나에게 말했다.

"한지훈.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자네를 먼저 부른 이유. 뭐일 것 같나?"

"글세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황제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말대로, 아직 연회는 시작되지 않았다. 약속된 연회시간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다.

하지만 황제는 아직 연회가 시작되기도 전임에도 나를 따로 호출했다.

연회 전 나눠야 할 대화가 있다 며 그가 나를 불러냈던 것이다.

내 대답에 황제가 싱긋 웃는다.

"자네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 지만. 나는 연합을 만들고자 한다. 흑마법사를 대적하기 위한 지성체 국가들의 연합이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제 전세계에 남아있는 적대세력이라고는 흑마법사들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이란 극도로 위험한 이들.

아무리 거대한 국력과 강건한 군대를 갖춘 제국이라 한들, 제국 혼자서 놈들을 상대한다면 버거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황제는 흑마법사에 대 한 공동전선을 펼치기로 결심했고. 그에 연합의 창설을 이번 연회에서 밝히려는 것이다.

'연합의 창설이라.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이지.'

나는 전생에 게임으로 겪었던 이전 시나리오의 후반부를 떠올려 보았다.

내가 이끄는 제국군과 흑마법사 동맹군으로 인해 결성된 연합군.

들은 모든 지성체의 힘을 합쳐 나를 대적했고, 꽤나 거슬렸다.

종족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하나 로 일치단결한 전세계의 힘이다.

아무리 그 강력한 흑마법사의 세력이라 한들 결코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반대로 이쪽이 흑마법사를 대적하게 되었으니 .

연합을 꾸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원래는 내가 연합창설을 시도하 려 했지만 말이야.'

사실 나는 내가 직접 연합을 창설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흑마법사를 대적하는데 분산된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는 나보다도 한발 빠르게 움직였고. 그 덕분에 나름의 수고를 덜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흡족해 하고 있을 때.

문득 황제가 나에게 제안한다.

"한지훈. 이번에 창설된 국가 연합. 그 초대 의장으로 자네를 추천 하고자 하는데,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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