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 크아아아악!
테르본이 비명질렀다.
물론 이미 놈의 몸은 완전히 절반으로 잘려져 있는 상태.
비명을 내지를 발성기관은 완전히 망가져 있다. 성대를 움직여 소음을 낼 수는 없을 터다.
헌데 그럼에도 놈이 비명을 내지를 수 있는 이유.
녀석의 몸뚱이가 지금 이순간에 도 회복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드드득.
절반으로 잘린 단면에서 끈적한 검은색 점액질이 흘러나온다. 그 검은색 액체는 서로가 끈끈히 점합되 더니, 갈라진 육신을 잡아당겨 회복 해갔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먹은 재생력이냐.' 유물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렸고, 모든 것을 절삭하는 세계검의 권능까지 더해 가한 일격이었다.
평범한 적이었으면 재생은커녕, 당한 그 순간 소멸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헌데 저토록 급격히 재생이라니.
'저것이 바로 초월자의 경지라는 건가.'
흑마나로 이룬 초월의 경지.
그 점을 생각해본다면, 놈이 세계검에 베였음에도 재생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진 않은 일.
뭐, 괜찮다.
'이미 승기는 잡았다.'
이제 놈은 더 이상 마법을 운용 하지 못하는 상태. 이 기세를 계속 유지하기만 한다면 놈을 완전히 죽 여 없앨 수 있다.
부우우웅.
반으로 잘려진 테르본의 육신이 추락하고, 나 또한 상승의 기세를 잃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면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다.
먼저 지면에 닿은 것은 테르본이었다.
퍼억!
놈의 몸뚱이가 땅바닥과 키스하고, 핏물이 터져 주변으로 비산한다. 그 와중에도 놈은 재생해가고 있는 상태.
그리고 나는 놈의 조금 더위에서 아직도 하강 중인 상태였다.
철그럭.
세계검의 그립을 고쳐잡는다.
검날의 첨단을 아래 수직으로. 손잡이는 역수로 쥔다. 다량의 기운을 검신으로 밀어넣어 다시금 백색 오러를 발현한다.
'모처럼 얻은 가속이다. 안 써먹을 수 없지.'
꽤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느 라 내 몸은 몹시 빠른 속도로 낙하 하고 있다.
더해 가진 장비들 덕분에 실린 중량 또한 묵직하니.
나름대로 괜찮은 일격을 먹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빠르게 하강하며, 온 체중과 가속도를 검신 끝으로 모았고.
내 검끝은 지면을 기고 있는 테 르본의 육신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터져나오는 웅활한 충격파. 흙먼지가 푹 일며 시야가 온통 갈색으로 물든다.
강렬한 일격!
- 끄아아아아아아아!
그럼에도 테르본은 아직도 죽지 않았다.
머리, 몸통, 팔다리 할 것 없이 신체의 온 부위가 터져나가 비산했 음에도.
또다시 예의 검은색 점액질을 뿜 어내며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염병.'
더럽게 질기다.
이대로 놈이 죽어 사라질 때까지 난도질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내가 고심하고 있을 때, 품속에 갈무리해놨던 리바이어던의 핵이 조언한다.
- 심장을 노려라.
"심장?"
- 녀석의 심장이 심상치 않군. 그곳에 놈에게 힘을 부여해주는 핵 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을 파괴하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휘둘렀다.
후웅!
이전의 검격처럼 커다랗고 화려한 굉음은 없었다.
그저 검광이 번뜩이고, 내 검신 이 빛살처럼 빠르게 놈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파고들 뿐.
위력보다는 속도를 중시한 일격. 극한의 쾌검이다.
역시나 테르본은 내 검격을 막아 낼 수 없었다.
퍼억!
그러자 우뚝, 움직임을 멈추는 놈.
어느덧 거의 완전하게 회복했던 놈이, 붉은색 눈동자를 또르륵 굴려 이쪽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친다.
- 쿨럭.
각혈하는 테르본.
놈이 검은 피를 입가에서 줄줄 흘려대며 말한다.
- 이, 이대로… 나는, 죽는건 가…
화르륵.
테르본의 가슴속에서 하얀색 불 길이 일기 시작한다. 세계검에 실려 있던 정화의 기운이 놈의 심장까지 침투해 일으킨 발화현상이었다.
녀석의 심장 속 핵이 완전히 소멸해 사라진다.
- 안된다. 나는 살아야만 한다. 살아서 우리 볼라바아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보아야 만 한단 말이다…!
놈이 부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올 려, 자신의 가슴팍에 박힌 세계검의 검신으로 손을 뻗었다.
치덕.
내 세계검 검신에 검은색 손자국 이 찍힌다.
허나 그 손자국은 곧 순식간에 사라져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화르륵!
세계검에서 정화의 기운을 담은 백색 화염이 일어 흑마법사의 피를 날려보낸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볼라바아의 세상이라니. 그딴 건 영원히 없어."
- 크라함께서 곧 만드실 세상이다. 마나가 사라지고 오직 흑마나만 이 존재하는 세상! 온 존재가 수명 과 시나리오의 속박에서 벗어나, 무 한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세상!
놈이 각혈하며 격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한다.
검신을 비틀어 당장 놈의 목숨을 끝내버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녀석이 지껄이고 있는 것은 볼라바아 학파와 크라함의 궁극적인 목표.
들어둘 가치가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놈이 핏발선 눈으로 이쪽을 쏘아 본다.
- 그 세상이 도래할 때가 머지 않았었다. 한지훈, 네놈, 네놈만 없었다면. 진작에 예정된 멸망을 회피 하고, 사라진 옛 신을 대신해 우리 볼라바아가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었단 말이다!
"…예정된 멸망의 회피. 그리고 진정한 주인이라. 그게 뭐지? 예정 된 멸망이란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거야?"
나는 녀석에게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말을 걸었지만.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답하지 못했다.
- 쿨럭.
놈이 재차 각혈하는 동시, 고개 가 줄 끊긴 인형처럼 축 처졌다.
크라함의 절명.
놈은 죽었다. 때문에 더 이상 정보를 뽑아낼 수 없게 되었으니 .
나는 쯧, 혀를 찼다.
"모두 다 말하고 죽을 것이지. 하필 애매할 때 끊네."
그래도 놈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 고 움직이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
'마나 없이 흑마나만 존재하는 세상. 모든 생명이 영생을 누리며, 세계를 지배하는 그 어떠한 법칙도 없는 세상. 놈들은 그런 세상을 구 현할 생각이다.'
참으로 허황된 세상이다.
그딴 세상이 실현될 리 없지 않 나.
나는 고개를 가로젖고는, 놈의 가슴팍에 꽂혀있던 세계검의 검신을 비틀어 빼냈다.
우지직.
놈의 심장장에서 내 검날이 빠져 나옴과 동시.
쿠르르르르르….
녀석이 펼쳐놨던 대규모 마법진 이 파훼되기 시작한다.
허공에 떠올라있던 거대한 암흑색 마법진이 사라지고, 공기에서 느껴지던 질척한 기운이 가라앉아간다. 지면에서 올라오던 썩은 내 또한 그 자취를 감추어갔다.
이후 어두웠던 주변 공간이 다시 금 빛을 머금어 환하게 빛난다.
놈의 완벽한 죽음. 그리고 녀석 이 펼쳐놨던 마법의 소멸.
작게 중얼거렸다.
"이겼다."
이번에도 어찌어찌 이겨냈다.
나는 고개를 내려 내 몸상태를 살폈다. 그러자 미간이 절로 찌푸려 진다.
"거의 아슬아슬하네."
지금 내 신체는 한계에 닿은 상태였다.
온몸에는 크고작은 혈관이 돋아 나 있었으며,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 팔다리조차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심장부터 이어진 전신의 혈관이 모두 불에 그을려가는 듯 날카로운 고통이 올라오고 있다.
유물의 힘을 더이상 신체가 버티 지 못한다.
이전에 중앙대륙에서 그러했던 것 처럼,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이 반쪽짜리 초월자의 육신에 받아들 였기에, 내 신체가 조금씩 붕괴해가 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곧, 나는 정신을 잃고 쓰 러지겠지.
하지만 문제없다.
나는 시선을 돌려 서쪽 방향을 보았다.
제피르와 갈람프,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라브리에 전투마법단과 황 실 기사단이 있는 장소.
그곳을 바라보자 보인다.
"한지훈! 괜찮나!"
오러마저 일으켜가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갈람프.
그리고 그런 그보다도 앞에서 서, 도약마법을 반복해 내게 향해오는 제피르.
그들의 뒤를 따르는 마법사와 기사들까지.
전투가 완전히 끝났고. 그들이 내게 다가오고있다.
내가 이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한들, 제피르가 엘릭서를 먹여 살려주겠지.
"어휴."
나는 신음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니, 앉는 것을 넘어 아예 등을 바닥에 붙여줘버렸다.
신체가 한계여서 서있는 것조차 힘들다.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 니 푸른색 창공이 시야를 가득 채 운다.
지면에 널려있는 전장의 참상과는 전혀 다른, 깨끗한 시야.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 니, 전투에 지친 심신이 조금은 회복되는 것만 같다.
작게 중얼거렸다.
"잠깐 자야겠어."
그 잠깐이 아마도 며칠은 되겠지 만.
나는 눈을 감았고, 곧 내 의식이 끊어졌다.
"한지훈의 상태는 어떤가?"
"한지훈 라이젠 공작의 상태는 양호합니다, 황제 폐하. 지금은 엘릭서를 섭취한 뒤 현지 트웨인군의 협조 아래 보호 중이라 하옵니다. 그곳에서 유물을 회수한 뒤, 제국으로 귀환하겠다는군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인 일이다!"
제국의 황제, 아르테니아 가이나 스 비 오르페우스. 그는 보좌관의 말에 안심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황제는 서부대륙에서의 전투결과 를 막 보고받은 참이었다.
서부대륙 정벌전쟁의 승리. 그리고 유물의 탐색과 뒤이어 벌어진 흑마법사들과의 전투.
그전투에서 한지훈은 유물활성 화의 여파로 빈사상태에 빠졌으나, 엘릭서를 복용해 목숨을 건지고 무 사히 회복 중이라 한다.
황제는 환하게 웃으며 지시했다.
"한지훈의 귀환에 맞춰 연회를 준비하라. 이번에야말로 저번에 못다한 연회를 제대로 해야겠지."
"명을 따릅니다. 폐하."
이전에 중앙대륙 전쟁 후 준비했 던 연회는 결국 즐기지 못했다. 그때 동부대륙 크루거 연방이 소멸하는 이상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그때 못한 연회를 지금이 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잠시 황좌에 앉아 곰곰히 생각하 던 황제.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 제국을 적 대하는 국가는 더 이상 없게 되었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제국은 무수 히 많은 전쟁을 겪었고, 그때마다 승리해왔다.
그리하여 지금은 제국을 적대하는 그 어떤 국가도 남지 않게 된 상황.
처음, 전쟁을 걸어왔던 요한바르 첸 공국.
뒤이어 전쟁을 걸어왔던 협상동 맹-람셀, 트웨인, 코르자카, 카렌-국가들.
요한바르첸 공국은 소멸했고, 람셀과 코르자카, 카렌은 멸망해 제국 령으로 편입되었으며, 트웨인은 제국의 제후국으로 편입되어 우방이 되었다.
더해 연방의 식민지였던 연방 자치령은 한지훈의 손에 의해 해방, 슈베츠 왕국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며.
동부대륙 크루거 연방은 흑마법사들이 소멸시켜 그 역사가 사라졌 고.
서부대륙 유목연합 또한 제국의 제후국인 트웨인이 서부대륙 정벌 전쟁의 승전으로 완전한 지배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앙대륙의 엘프와 드워프야, 한지훈 덕분에 원래부터 혈맹이라 불 릴 정도로 몹시 우호적인 관계였고 말이다.
그리하여 지금 남아있는 국가들 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어찌하다 보니 절반쯤 세계를 통일한 것이나 다름없군."
남아있는 국가 전부가 제국의 제 후국이거나, 혹은 동맹국이다. 이제 '국가'를 이룬 집단 중 제국의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제국의 영향력이 어느새 전 대륙에 뻗어있다는 소리.
"모두 한지훈 덕분이로군."
한지훈 라이젠. 그가 없었으면 제국은 훨씬 이전에 멸망했으리라.
하지만 그가 있어 제국은 승전과 확장을 거듭해 그 영향력을 늘려가 며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
황제의 입가에 자애로운 미소가 걸린다.
"요즘 신시아가 한지훈의 안부를 묻는 꼴이 심상치 않은데. 다시 한번 국혼을 추진해봐야겠어."
과거 황제는 신시아와 한지훈의 결혼을 추진했던 적이 있었으나, 결국 한지훈의 거절로 무산되었었다.
하지만 고작 한번의 거절로 포기할 황제가 아니다. 그는 다시 한번 한지훈에게 제 누이와의 결혼을 제의해볼 심산이었다.
한지훈 같은 대영웅이 황가에 속 한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 이니 말이다.
그렇게 황제는 한동안 평화로운 시기에 벌일 일들을 생각하며 흐뭇 해했으나.
곧,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평화의 시기까지는 멀었다."
벌써부터 긴장을 풀 수는 없기에.
"흑마법사 놈들."
그 강대한 연방마저, 고작 단 하루 만에 완전히 소멸시켜버린 것이 바로 크라함과 그가 이끄는 혹마법 학파 볼라바아다.
경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
황제는 알현실 한켠에 걸려있는 거대한 지도를 주시했다. 그의 명령 으로 만들어진 세계지도였다.
사실상 북부대륙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의 대륙 모두가 그려져 있는 커다란 지도.
제국과 엘프의 정보력이 합쳐져 만들어졌기에 굉장히 자세하고도 정확한 지도였다.
그가 지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흑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겠군."
흑마법사는 인류의 적.
놈들은 사악하고, 악랄하며, 음흉 한데다, 위험하다.
헌데 그런 흑마법사 놈들의 세력 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강성해진 상태다.
다름 아닌 크루거 연방을 소멸시키고, 그들의 영역이었던 동부대륙전체를 놈들이 모두 장악해버린 상태였으니 .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류와 지성체가 힘을 모을 필요가 있으리라.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던 황제.
그는 결심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는, 통신수정구를 통해 누군가를 호 출해 지시했다.
"외무성 장관. 자네에게 임무를 내린다."
- 맡겨만 주십시오. 폐하.
제국의 모든 외교와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행정조직의 수장.
황제는 그에게 지시했다.
"한지훈의 귀환에 맞춰 여는 연 회. 그 자리에 모든 국가 지도자를 초대해라. 제국의 제후국인 슈베츠 와 트웨인은 물론. 엘프까지. 더해 평소 국가로 취급되지 않는 소국의 군주들까지 모두 불러줬으면 좋겠 군. 해야 할 일이 있으니 ."
- 실례지만, 폐하…. 해야 할 일 이라 하신다면?
수정구 너머 국무성 장광이 숨을 삼킨다. 그만큼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든 우호국과 군소군주들을 초대해가며 과연 무얼 하려는 것일까.
내무부 장관은 의문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고.
그런 그에게 황제는 대답했다.
"연합을 만들거다. 흑마법사에 대 항하기 위해 모든 지성체의 힘을 합칠 거란 말이다."
황제는 흑마법사에 대항하기 위한 연합세력을 구축하고자 한다.
남아있는 국가들은 모두 흑마법사에 의한 피해를 입은 이들.
더해 제국과의 관계도 극도로 우 호적이다. 결코 거절하지 않으리라.
황제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읊조린다.
"사악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우리는 가진 힘을 하나로 뭉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터전을 놈들에게서 지켜낼 것이다."
황제는 대 흑마법사 연합을 만들 고자 한다.
그리고 그날.
황가의 초청장이 모든 국가 지도자들에게 전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