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백열하는 검날이 대기를 가른다.
그러자 터져 나오는 섬광.
하얗게 물든 검광은 곧 검기로 화하고, 순백색으로 타오르는 검기 가 앞으로 주욱 뻗어 나가며 그 크기를 한없이 늘려갔다.
그렇게 검기가 포식자들의 지척에 도달했을 때는 어느덧 그 크기 가 무시무시하게 커져있었고.
그 커다란 검기가 달려오던 포식 자들의 하반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 났다.
- 크아아아아아아!
- 키이이이이!
고통에 비명 지르는 포식자들. 퍼억, 하는 파열음과 함께 안개처럼 터져 나오는 검은색 핏물.
쿠우웅! 쿵! 우지근!
포식자 세 개체가 단숨에 다리가 잘려 쓰러진다.
거구가 지면으로 무너지는 충격에 흙먼지가 치솟아 시야를 가렸다.
단 한번의 검격.
그로 인해 뻗어 나온 검기.
한지훈이 검기를 날려 보내 포식 자 셋을 단번에 무력화시킨 것이다.
"뭣..!"
지켜보던 테르본의 입에서 경악 성이 터져나왔다.
그의 눈동자에 혼란이 어린다.
'단 일격으로 포식자 셋의 다리 를 잘라냈다고?!'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포식자는 단 한 개체만으로도 성 과 지역을 초토화시킨다.
그런 놈의 신체 강도가 대단한 것은 당연한 일.
기사단장급의 고위 기사라 한들, 기껏해야 피부에 생체기를 내는 것 이 고작이며, 마법단장이라 한들 피부를 살짝 그을리게 하는 것이 한계.
포식자의 신체 강도란 그토록 대 단한 것이다.
헌데 방금 전, 한지훈은 포식자 세 개체를 단번에 무력화시켰다.
그것도 단 한번의 검격에, 고작 하나의 검기를 쏘아내서 말이다.
테르본의 입가에 어렸던 여유로운 미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것이 바로 유물의 힘인가…!'
사실, 테르본은 크라함의 결정에 미약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미 연방을 멸망시키고, 그 연 방의 수많은 인명을 흑마나로 전환 해 대량의 군세를 만들고 있는 것 이 바로 그들의 흑마법 학파, 볼라 바아였다.
그러한 볼라바아의 저력을 활용 한다면, 세계를 정복해 흑마법사들 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
헌데 크라함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 유물이 필요하다며, 오직 한지훈의 견제와 유물의 수집, 그리고 한스의 부활에만 힘을 집중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테르본이 내심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 그의 의문은 막 해소되어 버렸다.
방금 전 한지훈의 무력을 보고 는, 유물과 세계검의 위험성을 마침내 인지해낸 것이다.
테르본의 눈가에 사명감이 깃든다.
'한지훈을 제압하고, 유물과 세계 검을 탈환해야 한다. 저 힘은 우리 의 대계에 지장을 줄 것이니!'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목적을 이루리 라 결심한 테르본.
품속에서 검은색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포식자! 놈을 노려라! 녀석을 붙 잡아 시간을 끌란 말이다!"
- 크아아아아!
테르본의 명령을 들은 포식자들 이 재차 한지훈을 노리고 달려든다.
그리 미덥지 않은 것일까.
"쯧."
테르본은 그 광경에 작게 혀를 차고는, 시선을 내려 자신이 꺼내든 검은색 수정구를 바라본다.
빛조차 반사하지 않을 정도로 진 한 검은 수정구.
그것의 표면에는 기분 나쁜 암흑색 기운이 일렁이고 있다.
테르본이 으득, 이를 갈았다.
'설마 이것마저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만.'
그가 꺼내든 검은색 수정구.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흑마나 의 정수였다.
광인이나 포식자들에게 사용하는 평범한 정수는 아니었다.
이것은 크라함이 자신의 측근인 테라본에게 직접 만들어 하사한 특별한 물건이었다.
사용한다면 일시적으로 지성체의 격을 넘어설 수 있을 정도로 막대 한 가능성과 힘을 품은 물건.
다만 억지로 격을 넘어서게 해주 다보니, 피흡수자의 그릇을 깨버릴 수 있다.
다시 말해, 섣불리 사용한다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물건이라는 소리다.
테르본의 눈가에 약간의 망설임이 스친다.
허나 망설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혹마나의 세상이 도래하기 위해 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
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어 수정구 를 부쉈다.
쨍그랑!
직후 균열 사이사이로 흘러나오는 검은색 기운.
기운은 테르본의 온 피부에 질척 이듯 들러붙고는, 순식간의 그의 심장 속으로 흡수되어갔다.
쿠구구구구….
위협적인 기운이 몰아친다.
나는 검을 휘두른다.
콰아아아아앙!
크게 검을 휘두를 때마다 뻗어 나가는 백색 검기.
검기는 공기를 절삭하고 공간을 가로질러, 이쪽으로 달려오는 포식 자 놈들의 사지를 갈랐다.
파열음과 함께 터져나가는 포식 자의 팔다리들.
쿠궁! 쿠구구구궁!
집체만한 그것들이 지면을 구르고, 검은색 핏물이 비처럼 지면에 쏟아진다.
후욱.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식은 땀을 훔쳐냈다.
"열 마리."
방금 전 나는 열 번째 포식자놈을 해치웠다.
물론 놈의 목숨을 끊은 것은 아니다.
비록 내가 유물을 활성화시키고, 세계검의 힘을 빌려 막대한 능력을 손에 넣었다 하나, 아직 단 일격에 포식자를 죽이는 건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놈들을 무력화시킬 수는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전방을 바라 본다.
- 크아아아아아!
- 우우! 우오오오!
그곳에는 사지가 잘려 바닥을 기는 열 개체의 포식자들이 징그럽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분한 것인지.
놈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그나마 아직 달려 있는 팔다리를 뻗어 지면을 긁어댔다.
흙먼지가 푹푹 일어나 시야를 가 린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걸로 끝인가."
이 장소에 있던 포식자들 모두를 제압해냈다.
더해 세계검에 어린 정화의 기운 덕분에, 놈들은 재생조차 하지 못하고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을 뿐이 었으니 .
나는 다음 적을 노린다.
'테르본.'
아까 전,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던 놈의 이름. 최상급 흑마법사이자 크 라함의 수하.
지금 이곳의 흑마법사 세력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격 인물.
놈을 처치할 심산이었다.
철그럭.
나는 세계검의 손잡이를 고쳐잡고, 고개를 들어올려 위를 바라보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흑마법사가 떠올라있던 방향의 하늘을 살펴본 곧 놈을 발견할 수 있었고.
"… 뭐야?"
나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쪽을 살펴보고 있던 테르본.
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허공에는 커다란 검은색 구체가 떠올라있다.
쿠르르르르….
너무나도 농밀한 흑마나의 기운.
공기를 진동시키며 웅혼한 파동을 주변에 흩뿌리고 있다.
저 심상치 않은 기운에, 절로 손 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역시 뭔가 숨겨놓은 수가 있었 던 것인가.'
하긴. 저래 봬도 명색이 크라함 의 측근이다. 부하들뿐만이 아닌, 개인의 한 수정도는 있을 것이리라.
내가 그렇게 검은색 구체를 바라보고 있을 때.
- 위험하군.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내게 힘들 빌려주고 있는 이의 음성. 리바이어던의 핵에서 흘 러나온 목소리였다.
그가 내게 알린다.
- 저자는 대량의 흑마나를 흡수 해 일시적으로 격을 초월했군.
"격을 초월했다면?"
- 초월자가 된 거다. 네놈처럼 말이다.
내 눈가가 찌푸려진다.
설마 저놈은 유물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그런 내 추측을 짐작한 것인지. 리바이어던이 단숨에 부정한다.
- 아니. 유물은 아니군. 놈에게서는 환상종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으니 .
"유물이 아니라…. 그 말은?"
- 대신. 대량의 영혼과 육신을 사용해 만든 흑마나의 정수를 섭취 했군.
대량의 영혼과 육신을 사용해 만든 흑마나의 정수라.
아마도 연방을 소멸시키며 얻은 부산물일 터다.
방금 전까지 내가 상대했던 광인 과 포식자들처럼 말이다.
리바이어던의 말이 이어진다.
- 한지훈. 저자는 어차피 죽을거다. 놈은 네 녀석처럼 상위차원의 존재가 아니기에 격이 부족하니. 저 대량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릇 이 깨져버리겠지.
"그렇다면 저놈을 가만히 지켜보 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놈은 어차 피자멸할 테니까 말이야."
-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리바이어던이 다음 말을 이으려 던 그때.
콰아아아앙!
하늘에 떠올라있던 검은색 구체 가 갑작스레 폭발했다.
하늘 전체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직후 질척질척 불쾌해지는 주변 의 공기.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근방 지역 모든 것이 흑마나에 침식되고 있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지면도, 그리고 호흡할 때마다 폐부로 스며드는 공기도.
그 모든 것에 미량의 혹마나가 실려있다.
리바이어던이 조언한다.
- 놈은 죽겠지만,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은 제대로 된 초월자의 힘을 발하게 될 것이다.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설명해!"
- 놈이 자멸하기까지 남은 시간 은 약 3분. 그 3분 동안 놈은 너와 동급의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때까지 버텨라.
우연인 것인지.
내 신체가 제 수명을 다할 때까지 남은 시간도 3분 정도였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제피르와 갈람프 는?!'
나는 시선을 돌려 내 뒤를 바라 봤다.
그곳에는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콰르르릉!
제피르가 이끄는 전투마법사들이 적의 흑마법사들을 제압하고, 갈람 프가 이끄는 황실 기사단은 오러를 돋워 적의 암흑기사들을 몰아치고 있다.
전투는 격렬하고도 치열했다.
그때문일까. 그들은 저 테르본 의 갑작스러운 강화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나는 깨달았다.
'3분간 놈을 묶어두지 않는다면, 모두가 죽는다.'
강화된 테르본의 무력은 지금 나 조차 긴장할 정도로 강대하다.
그런 테르본이라면, 고작 3분만에 라브리에 전투마법단과 황실 기사들을 모조리 전멸시켜버리는 것 도 가능할 터.
그런 내 추측을 마치 긍정하듯.
- 하하하하하!
허공에서 광오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강렬한 음성에 온 피부가 저릿거린다.
마침내 강화가 끝난 것인지.
테르본이 허공에 떠오른 그대로, 오연히 지상을 내려다보며 외친다.
- 대단하군! 정말 대단하군! 이것이 바로 초월자의 힘인가!
테르본이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는 방금 전의 충격으로 완전히 넝 마쪼가리로 화해 있기에, 내부의 속 살이 그대로 다 비쳤다.
덕분에 나는 놈의 모습을 비교적 적나라하게 살필 수 있었다.
강회된 테르본의 모습은 너무나 도 기괴했다.
전신의 피부를 뒤덮듯 울긋불긋 하게 도드라진 검은색 혈관들.
눈깔은 완전히 검은색으로 물들 어 있었으며.
본래 눈동자가 자리해있을 장소 에는 광기에 물든 붉은색 안광이 격렬하게 타오른다.
더해 그가 휘감고 있는 검은색 운무.
이전에 내가 마주쳤던 그 어떤 흑마법사들보다도 훨씬 진한 색을 띠고 있다.
'초월의 영역에 달한 흑마법사란. 저런 것인가.'
본능적인 혐오감이 치솟는다.
추악한 몰골로 변해버린 테르본.
그가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 죽어버려라! 한지훈! 네놈도, 네놈의 저 하찮은 부하놈들도. 이 일격에 모조리 지워버려주마!
그의 지팡이를 중심으로, 기이한 검은색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직후 하늘 전체를 뒤덮듯 펼쳐지는 거대한 마법진.
- 이 평원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어주지.
놈이 대마법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