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과거 환상종의 시대. 세상을 지배하던 세 개체의 환상종이 있었다.
드넓은 하늘 전체를 지배했던 거대한 시L 지즈.
이 세상의 모든 대륙을 아울러 통치했던 커다란 짐승. 베히모스.
온 대양을 장악해, 물이 있는 곳 이라면 모두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 던 수룡 리바이어던까지.
각각 세상의 삼분지 일씩 지배해 반신이라 불리우던 위대한 존재들.
한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 위대 했던 환상종들은 모조리 죽고, 그 핵만이 남아 곳곳에 봉인되어 있는 상태였다.
동부대륙에는 지즈의 핵.
서부대륙에는 베히모스의 핵.
남부대륙에는 리바이어던의 핵.
이것이 바로 유물의 정체였다.
이유물을 정제해 사용한다면, 지성체로서는 감당이 불가능한 거대한 힘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환상종의 핵 중 하나인 유물을 찾아 움직이 고 있었다.
"베히모스의 핵이라…."
그리고 이번에 찾는 것은 다름 아닌 베히모스의 핵이었다.
그것이 서부대륙 칸타라콜 대평 원서쪽,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
나는 품속에서 푸른색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이전에 내가 얻었던 유물, 리바이어던의 핵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음 유물, 베히모스의 핵을 얻 으면 어떤 힘을 가지게 될까."
이전에 중앙대륙에서 엘프와 함께 싸울 당시, 나는 리바이어던의 핵을 사용해 한순간이나마 지성체 를 초월한 무력을 지니게 되었다.
비록 과거 반신이라 불리웠던 환 상종의 힘, 그 일부를 유용하는 것에 불과했다만.
환상종의 힘. 그 편린이라 한들 너무나도 강대했다.
지성체의 격을 초월했던 내가 , 그것을 다루다 한번 죽었을 정도로.
그 힘 덕분에 나는 포식자를 처 치하고 중앙대륙을 구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베히모스의 힘까지 얻게 된다.
나는 기대해본다.
'베히모스의 핵까지 손에 쥐게 된다면, 이후 있을 흑마법사와의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거야.'
이미 크라함은 지즈의 핵을 가지 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리바이어 던의 핵을 가지고 있다.
즉, 서로가 유물 한 개씩을 보유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 베히모스의 핵을 취하게 된다면?
나는 유물을 두 개나 보유하게 된다. 보유 유물의 수가 크라함의 두 배에 달하니 절로 기대될 수밖 에.
하지만 나는 다음 유물을 차질없 이 획득하리라 쉬이 확신할 수 없었다.
"크라함. 분명 놈이 방해하겠지."
시선을 돌려 동쪽을 바라보았다.
크라함은 지금 동부대륙에 있다.
이곳 서부대륙과는 한참이나 떨 어진 곳.
너무나도 광활한 거리가 나와 크 라함 사이에 놓여있다.
하지만 전생에 흑마법사를 아군으로 부렸던 나였기에, 단언할 수 있다.
'흑마법사 놈들에게 있어 거리의 제약이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크라함이 이끄는 볼라바아는 유 일하게 엘프의 마법을 따라잡은 이 들.
비록 계통은 다르지만, 놈의 흑 마법이 강력하고 유용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분명 유물의 위치를 확인하자마 자 이쪽으로 병력을 보내오거나, 혹은 자신이 직접 움직일 것이다.
흑마법을 운용한다면 머나먼 거리를 순식간에 도약해 올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옆에서 함께 행군하던 제피르에게 물었다.
"제피르. 탐지마법에 이상은 없나?"
"이상 없다. 적대적인 존재는 발견되지 않았어. 우리의 행군에 마물 들도 모조리 물러나고 있고 말이 야."
"그래…."
나는 행군하는 와중 제피르에게 상시 광역 탐지마법 발동을 요청했다.
흑마법사의 출현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그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함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별다른 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더해 유물이 있으 리라 생각되는 장소에 거의 도착한 상황이다.
살짝 소망해본다.
'흑마법사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 으면 좋겠는데 .'
놈들이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나는 무사히 유물을 챙기고 본토로 귀환할 수 있을 터.
허나 소망은 소망으로 남겨야 할 뿐이다.
헛된 기대를 품고 경계를 약화시 킬 수는 없으니 . 나는 계속해 광역 탐지마법을 발현한 채 행군을 지속했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한지훈 라이젠 공작 각하!"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전방으로 정찰나갔던 황실 기사단원 몇몇이 귀환했다.
그가 내게 보고한다.
"말씀하셨던 신전, 찾은 것 같습니다만."
"확실한가?"
"내부까진 확인하지 않았기에, 제대로 확신할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설명과는 일치했습니다. 서쪽에는 큰 강이 흘렀고, 북쪽에는 드높 은 산맥이 보였습니다. 더해 동쪽과 남쪽으로는 평야지대였고요. 맞지 않겠습니까?"
"그래. 맞는 것 같네. 제피르의 설명 그대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시했다.
"좋아. 그럼 속도를 높이지. 신전으로 바로 달려가자고."
나는 말의 배를 찼다.
히히히힝!
목청을 돋우며 달려나가는 전투 마. 그런 내 뒤를 황실 기사단원과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이 전마에 탑 승한 채 뒤따라온다.
자욱한 흙먼지구름이 일렁였다.
나는 서쪽에 있을 신전으로 달려 나간다.
"여기인가."
30분 정도 말을 타고 달려간 뒤.
나는 황실 기사들이 보고했던 신 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말에서 내려 천천히 신전의 모습을 살폈다.
생각보다 많이 아담한 크기의 신 전이었다.
비록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고급 스러운 건축물이었으나, 그 크기는 고작해야 건물 삼층 크기 정도에 불과했고, 관리 없이 오랫동안 방치 되었기에 다 쓰러져가고 있는 상태였다.
실상 신전이라기보단 폐허에 가까운 모습.
허나 지어진 지 최소 몇천 년, 혹은 일만 년 이전의 물건이었을 터니, 어찌 보면 양호한 상태라고 여겨야 하리라.
저벅, 저벅.
나는 신전을 향해 걸어갔다.
똑같이 말에서 내려 걸어가던 제피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염병. 고약하군."
"… 고약하다니?"
나는 제피르의 말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고약하다니? 무슨 의미일까.
제피르의 말이 이어진다.
"겉보기에는 그저 관리 안 돼 방 치된 허름한 신전에 불과하지만. 본래는 고위의 마법술식이 떡칠된 장소였다. 인식저해 마법, 그리고 탐 지불가의 마법 정도가 느껴지는 군…"
"그런가…."
"저 신전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이렇게 보거나 인식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나나 다른 마법사들이 있다 한들 말이야. 게다가 더 지랄맞은 건… 염병! 나조차 해석 불가능한 술식들이 이곳저곳에 널려있다는 거다. 그나마 추측할 수 있는 건 인식저해와 탐지불가뿐 이야."
즉, 저 신전이 저렇게 반파된 상태였기에 이렇듯 발견이나마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제기랄… 나름대로 마법에는 수준을 이루었다고 자신했는데 . 저토록 우월한 마법 수준이라니. 짜증나 는군. 빌어처먹을."
자신이 해석할 수 없는 마법이 존재한다는 것에 자존심을 구긴 것 인지.
제피르가 욕설을 있는 대로 내뱉 으며 지면을 발로 차댔다.
하여튼 나와 제피르, 그리고 황 실 기사단의 단원들은 신전으로 접근했고.
그 와중 무언가 발견한 것일까.
제피르가 더더욱 표정을 찌푸렸다.
"이 신전을 만든 놈. 정말 또라 이로군."
"… 또라이?"
이 장소에서 가장 또라이이자 전쟁광인 제피르가 입에 담을 욕설은 아닌 듯싶다.
하여튼 그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신전의 기둥들을 가리켰다.
"저 신전. 보기에 대리석으로 만든 것 같지 않나?"
"그런 것 같은데."
이곳저곳이 마모되었지만, 저 새 하얗고 매끄러운 질감은 분명 대리 석의 그것이었다.
허나 제피르의 의견은 좀 다른 듯하다.
"전혀 아니다. 저건 동물의 뼈다. 그것도 더럽게 거대한 뼈. 이 신전 의 기둥 하나하나가 동물의 뼈를 깎아 가공해서 만든거다."
"그게 정말인가?"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신전을 바라보았다.
그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던 신 전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사실은 대리석이 아니었 으며, 저 하얀색 기둥 하나하나가 동물의 뼈였다니?
과연 무슨 동물의 뼈로 만든 것 일까.
…공룡뼈?
한 가지 추측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베히모스의 뼈를 사용해 만든 신전이지 않을까.'
그럴 듯한 추측이었다.
신화에서 내려오는 세 환상종.
지즈, 베히모스, 리바이어던.
그 셋 모두 굉장한 크기를 자랑 했다고 한다.
지즈는 그날개가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했고, 베히모스는 그 육 신이 산맥과도 같았으며, 리바이어 던은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에 있다한들 그 지느러미가 수면 밖으로 빠져나올 정도라했다.
어느 정도 과장된 크기였을 테지 만… 하여튼. 그토록 거대하게 묘사되었다면 무지막지한 크기를 가졌 단 것은 확실하겠지.
그중 하나인 베히모스라면, 뼈로 저 신전을 짓는 것도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신전 안 으로 발을 디뎠다.
"뭐. 일단 확인해보자고."
이 신전이 뼈로 만들었던, 수준 급의 마법술식들로 떡칠이 되어있 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유물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 지, 이 신전을 연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제기랄… 연구 마렵군. 이 신전을 조사해 연구한다면 내 수준을 더 드높일 수 있을 터인데…."
물론 제피르는 모처럼 마법사의 연구본능이 되살아난 듯 싶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연구보다는 유물 부터 취해야 할 때.
연구는 나중에 여유있을 때 해도 늦지 않다.
나는 그의 머뭇거리는 발걸음을 지나쳐 신전 안쪽으로 들어섰다.
들어선 신전 안쪽은 생각보다 양 호했다.
바닥에 깔려있는 대리석-사실은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타일.
곳곳에는 흰색 기둥이 천장을 떠 받치고 있었으며, 천장에 난 여러 균열과 구멍 사이사이로 햇빛이 들 이쳐 내부를 비추었다.
폐허 상태로 보이는 외부와 다르 게, 내부는 약간의 결손을 제외하고는 거의 멀쩡한 상태다.
그리고 신전 중앙에 자리해있는 하나의 제단.
화려한 은빛 광휘가 반짝이는 거대한 제단 위에, 새어들어온 햇빛을 반사하는 커다란 수정구가 올려져 있다.
수정구의 색은 갈색이었다.
마치 짐승의 털 색깔처럼 짙은 갈색.
나는 수정구의 모습을 살피고는 확신할 수 있었다.
'베히모스의 핵이다.'
범상치 않은 빛깔.
이자리를 휘어잡는 거대한 존재 감.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는 상태임에도, 진하게 새어나오는 저 강대한 기운까지.
그 어디를 보아도 완전한 환상종 의 핵이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수정구 앞에 섰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 봉인을 풀고 유물을 취하려했다.
그때.
- 이게 누구인가…. 네놈은 붕어 새끼 아닌가.
"… 어?"
갑자기 어떤 웅혼한 목소리가 크 게 정신을 울렸다.
마치 음성을 머릿속으로 곧장 박아넣는 듯, 내 골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나는 놀라 뻗었던 손을 멈추었고, 시선을 돌려 주변에 도열해있는 제피르와 황실 기사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들이 의아한 듯 하나둘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한지훈 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저들은 이 갑작스러운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하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뒤이어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보자마자 붕어새끼라는 모욕을 지껄이는 것인가. 여전히 품위라고는 없는 놈이다. 말 그대로 생각 없이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짐승이 로고.
- 옛 지배자의 위엄을 잃고 일개 초월자에게 종속되어있는 네놈이다. 뿌린 먹이에 아가리를 뻐끔거리는 붕어와 다른 점이 무엇이 있단 말이냐. 붕어새끼.
- 네놈이야말로 제 뼈로 만든 건축물 안에 있다니. 지성 없고 야만 적인 짐승 아닌가. 역겹고 추잡하 군. 짐승새끼.
새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했다. 과거 중앙대륙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옛 환상종, 리바이 어던의 목소리였다.
나는 품속에 지니고 있는 유물을 꺼내 살폈다.
푸른색 수정구는 환한 빛을 흩뿌 리며 목소리에 맞춰 반짝이고 있다.
그제야 나는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 두 환상 체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 붕어.
- 짐승.
물론 그 두 환상체의 대화는, 한때 반신이라 불리웠던 위대한 모습이 조금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 새끼들 뭐야?'
나는 어이없어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