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유목연합의 지휘부 천막. 카테르 를 비롯한 유목연합 간부들이 모여 있는 공간.
지금 그곳에서는 큰 소란이 일고 있는 와중이었다.
"놈들이 지휘부 앞까지 도달했습니다!"
"지휘부 호위대와 교전 개시!"
"막아라! 놈들이 이곳을 타격해 서는 안된다! 반드시 지켜!"
그들을 노리고 제국의 병력이 처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곳 지휘부 천막을 노리는 제국 군 병력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기사 500여 명에 불과한 수허나 그토록 적은 수의 기사들에게도 , 지휘부의 사람들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빌어먹을…. 황실 기사들이라 니."
"설마 황실 기사들 까지 전쟁에 투입할 줄이야. 제국 황제가 미친 것인가?!"
"견제할 만한 연방이 사라졌기 때문에 황제의 신변 경호에 운용할 기사들이 다소 적어도 된다 여겼겠지."
"호위대가 잘 막아주어야 할 터 인데."
이곳을 급습하려는 이들이 다름 아닌 황실 기사들. 그리고 제국 영웅 한지훈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엘리트 기사들이 모여 만든 최고의 기사단, 황실 기사단.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전장에서 대단한 전공들을 세워왔던 제국의 전쟁영웅 한지훈.
그 둘의 조합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보다시피, 트웨인의 대규모 공세 로 이루어진 전선 혼란을 틈 타, 본영 내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그들이 지휘 부의 코앞까지 도달해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허나 다른 간부들과 달리, 카테 르는 긴장치 않았다.
그가 다소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이곳 지휘부 천막을 지키는 호위군의 수는 무려 삼천. 그중 일천이 오러를 다루는 전사들이다."
이곳 지휘부 천막을 지키는 호위 대의 수와 무력을 믿기 때문에.
한지훈과 제국 황실기사단은 확실히 강력한 무력을 지닌 정예집단 이었으나.
정예인 것은 지휘부 호위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해 그들을 수로서 완전히 압도 하고 있으니 , 큰 문제없이 막아내리라 여기는 카테르였다.
허나 그의 생각은 너무나도 안일했다.
그는 좀 더 경계심을 가졌어야했다.
- 쾅! 콰직!
- 콰르르르릉!
지휘부 천막 지척에서 들려오는 파공음. 그리고 육편이 잘라지고, 철과 철이 부딪히며 바스러지는 소리들 까지.
전투의 소음이 점차 격해진다. 카테르는 표정을 굳혔다.
"… 설마."
그는 시선을 돌려 소음이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지휘부 천막의 한켠.
그곳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보다 선명하게 들려오며 적의 접근을 알려오고 있다.
제국 황실 기사들과 한지훈. 놈 들이 물경 삼천에 달하는 호위병력을 뚫고 이곳까지 접근중인 것이다.
그제야 카테르는 깨달을 수 있었다.
한지훈과 황실 기사단의 무력, 자신이 과소평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미리 도주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카테르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다.
"오오오오오오!"
함성을 내지르며 돌진한다. 노리는 것은 저기, 막 진형을 꾸리고 이쪽을 향해 창과 칼을 겨누는 유 목연합의 병사와 전사들.
저들은 꽤나 정예로 보였다.
유목연합의 병력 중에서도 꽤나 기세가 날카로웠다.
더해 순식간에 진형을 꾸리고, 나와 기사들의 돌진 앞에서조차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전투의지를 다 지는 저자세란.
제국에서도 흔치않은 정예군의 모습이었다.
아군이었다면 꽤나 대견한 이들 이었겠지만, 내적으로서 전장에서 마주한 이상 제거해야 할 이들에 불과했으니 .
나는 세계검에 대량의 마나를 밀 어 넣고 오러를 발현했다.
귀기어린 양 푸른색 불꽃이 커다란 검심을 따라 타오른다. 청색 광 휘가 선명히 빛났다.
나는 장검을 크게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룽!
터져나오는 웅혼한 파공성. 반월 모양의 푸른색 궤적이 크게 그려진다. 직후, 퍼버버버버벅!
피안개가 일었다.
내 두터운 세계검의 검날이, 막 대한 근력과 오러의 힘으로 가속되고 강화되어 십수 명의 적을 동시에 베어버린 것이다.
허공으로 비산하는 적병의 사지 와 육편조각, 그리고 무수히 많은 핏방울들.
반토막난 놈들의 시체가 우르르 쓰러진다.
훅 밀려오는 진한 혈향.
"대단하군, 한지훈!"
내 뒤에서 함께 돌진했던 갈람프 가 감탄 어린 탄성을 내지르고.
"무… 무슨!"
"괴물 같은 새끼!"
"심상치 않다! 긴장을 놓치 마 라!"
"저 새끼부터 죽여!"
그 뒤를 적의 경악성이 뒤따랐다.
놈들이 한껏 긴장을 끌어올린 채 나를 노려본다.
방금 전 나는 십수 명의 적을 단 한번의 검격으로 죽여 없애버렸다. 그 십수 명이 평범한 병사도 아니었다. 오러를 다루는 유목연합의 전사들이었다.
평범한 기사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패도적인 힘.
그에 적들의 긴장이 한껏 내게 쏠렸고, 나는 쏟아지는 시선에 피식 입 끝을 말아올렸다.
"할 만할 것 같은데."
흘깃 주변을 둘러본다.
많은 수의 적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접전에 돌입했다.
그 수가 당장 시야에 보이는 것 만 천여 명 가량. 미니맵을 살펴보니 적어도 이천 내지 삼천에 달하는 수가 지휘부 천막을 지키고 있다.
아마도 놈들 중 오러를 다루는 이들은 적어도 일천을 넘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기사 오백에 불과한 상황.
확실히 수적으로는 압도적 열세다.
제아무리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황실 기사들이라 한들, 저들 삼천의 병력과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은 꽤 나 어려운 일.
평범한 야전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퇴각을 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이곳은 평범한 야전이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지휘부 천막이 있으며, 놈들은 지휘부 천막을 노리는 우리를 막아 지켜야 하는 입장 이다.
때문에 녀석들은 일반적인 야전 전투처럼 유기적인 기동 따위 할 수 없다.
반면 이쪽은 놈들을 돌파하기만 한다면 목적을 이룰 수 있으니 .
그래, 돌파다.
저 삼천에 달하는 병력을 모조리 전멸시킬 필요도 없이, 놈들의 방진 일부를 일점사해 돌파해내기만 한 다면.
적장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전투 를 끝낼 수 있는 것이다.
"갈람프!"
나는 황실 기사단장을 호출했다.
"그래! 한지훈."
"내가 적의 진형을 돌파하겠다. 보조해줘."
돌진한 황실 기사들은 그 강력한 무력을 발휘해 적을 몰아치고 있다.
그들의 앞에서 창칼을 꼬나 쥔 유목연합 전사와 병사들이 우르르 죽어나간다.
하지만 수는 놈들이 많다.
곧 좌우에서 녀석들이 몰려들어 이쪽을 칠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삼면의 공격을 받아 힘없이 무너지 게 될 터.
그렇게 놔둘 수는 없으니 .
일점돌파를 시도해야한다.
물론 그 선두에서는 것은 나와 갈람프. 이자리에서 가장 강대한 무력을 지닌 두 명이다.
갈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앞장서라, 내가 보조하 마!"
나는 한껏 오러를 끌어올렸다.
화르르르륵!
거세게 불타오르는 세계검의 오 러광.
오러가 부여된 것은 검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전신갑주에서도 막대한 오러가 강화되어 그 방호성능이 끝없이 상승하고 있다.
공격력도, 방어력도 극도로 강화 시키고 있으니 .
내 앞에서있는 적들의 눈빛에 경악이 어리는 것이 보인다.
나는 양손으로 세계검을 꽉 부여 잡고, 크게 외쳤다.
"간다!"
직후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돌진.
콰르르르르르릉!
장검을 휘둘렀다.
횡 베기. 다시금 번쩍이는 커다란 반월모양 궤적.
이번에도 수십의 적 병사와 전사 들이 우수수 잘려나가 핏물을 쏟으 며 지면을 구른다.
"아아아아악!"
"괴물! 괴물자식!"
"막아! 막으란 말이야! 오러를 끌어올려!"
"우오오오오오!"
적들은 내 무력에 경악하는 한편 그럼에도 덤벼들었다.
놈들의 오러 서린 칼날들이 이쪽 으로 쏟아진다.
굳이 피하지는 않았다.
오러로 강화된 드워프제 전신갑 주의 방호력을 믿었기 때문에.
- 캉! 콰앙! 채앵!
역시나. 적의 공격은 내 전신갑 주를 꿰뚫지 못하고 힘없이 튕겨나 갔다.
공격이 맞닿을 때마다 갑주를 강화시켰던 오러가 뭉텅이로 소모되 었지만, 그럼에도 치명적이지 않다.
내 마나 능력치는 234에 도달해 있는 상황.
갑주와 세계검을 강화시켰음에도 마나는 아직도 여유롭다.
지금 상황은 압도적이었다.
내 공격은 적 수십을 순식간에 도륙한다.
반면 적의 공격은 갑주에 가로막 혀 내게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으니 .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공격.'
오직 공격에만 집중하면 된다.
나는 계속해 장검을 휘두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콰아아아아앙!
검을 휘두를 때마다 청색 궤적이 번뜩였고, 날카로운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으며, 적이 흩뿌린 핏물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놈들이 절규하며 쓰러진다.
지금의 나는 전차였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돌파력!
아무리 많은 수의 적이 내 앞에 자리해있다 한들, 어지간한 무력으로는 티끌만도 못한 위협도 될 수 없다.
물론 갈람프와 그 휘하 황실기사 단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각은 내가 보조하겠네! 한지훈! 자네는 앞으로만 가게!"
"한지훈 라이젠 공작각하께서 길을 뚫으신다! 기사단은 뒤를 따르 라!"
"적을 죽여라!"
내가 앞으로 파고들어 적을 죽여 빈틈을 만들면, 황실 기사들이 달려 들어 그 주변을 제압해 균열을 확장시켰다.
적병 우르르 쓰러지고 밀려난다.
나와 황실 기사단의 단원들이 적의 두터운 방어진형을 돌파해갔다.
압도적인 돌파 능력.
적은 수가 많으나 개개인의 기량 이 떨어졌고, 반면 이쪽은 적은 수 임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전투능력을 지녔으니 .
"개 같은 새끼들아! 도망치지 마 라! 적을 앞에 두고 물러날 생각이 냐!"
"저딴 걸 어떻게 막으라고! 저놈 들은 괴물이란 말이다!"
"제기랄! 제기랄…!"
하나둘 내 앞에 자리해있던 전사 와 병사들이 모랄빵이나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기야. 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제초기에 갈려나가는 잡풀마냥 우르르 죽어 쓰러지니.
사기가 바닥을 넘어 저지하까지 처박힐 수밖에.
여태까지 버틴 것만 해도 놈들은 정말 출중한 정예였다. 마땅히 칭찬 해야 하리라.
퍼억!
물론 그 칭찬은 내 검으로서 이 루어 졌다.
나, 제국영웅 한지훈 라이젠이 오러까지 사용해 가한 검격에 목숨을 잃는 것. 내적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영광일 터다.
"전진을 돌파했다!"
마침내 놈들의 방어진형을 돌파했다.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내 뒤에 자리해있는 기사들의 모습을 살폈다.
화려한 전신갑주를 입고 있던 황 실 기사단의 단원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전신갑주는 그 번쩍번쩍했던 표면 위에 질척한 핏물로 뒤덮여있는 상태였다.
너무나 많은 수의 적을 죽이고 베며 튄 피에 오염된 것이다.
지금 내 꼴도 저들과 다르지 않겠지.
아니, 오히려 최선두에 섰으니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거다.
피식. 나는 웃었다.
"잘했다. 황실 기사단."
내 뒤를 따라온 저들이 썩 마음에 들었다.
나 혼자였다면 적진을 돌파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강대한 무력을 가졌다 한 들, 그럼에도 오러를 다루는 적 병력 수백 수천을 혼자서 맞상대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만약 나 혼자서 이런 무모한 돌진을 감행했다면, 순식간에 포위당 해 마나가 고갈되어 죽었겠지.
허나 황실 기사단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저들이 내 좌우와 후면을 제대로 보조해준 덕분에.
그리하여 내가 온전히 전방에만 힘을 쓸 수 있었기에.
저 많은 수의 병력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황실 기사단이었기에 가능했던 무모한 돌격.
저들은 황제와 황가에 대한 맹목 적인 충성심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에 황제가 신임하는 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제국 최강의 기사단이야."
"… 아."
저들의 얼굴 위로 감격 어린 감정이 올라온다.
이제국에서 가장 강대한 무력을 지닌 인물이 바로 나, 한지훈 라이 젠이다. 그런 내게서 칭찬을 들었으니 감격한 것이다.
내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 해진다.
'황실 기사단 녀석들. 은근히 순진한 구석이 있다니까.'
고위귀족의 혈통을 타고난 엘리 트 도련님들이지만, 평생 황궁에 처 박혀 항상 수련에만 매진해왔던 녀석들이다.
어찌 보면 순진할 수밖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려 전방을 바라봤다. 커다란 천막 이 보인다.
"어쨌든. 이제 남은 건 적 지휘 부의 제압뿐이다."
철그럭, 철컥, 철컥.
나는 여유롭게 걸어가 지휘부 천 막 앞에 섰다. 입구는 아니었다. 천막의 벽면이었다.
하지만 굳이 입구를 찾을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천막이었으니까.
부우우우욱-.
장검으로 베어 찢어버린다면 새로운 입구를 만들 수도 있으니 .
나는 천막 안으로 들어섰고, 그러자 내부의 광경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왔다.
커다란 크기의 원탁을 중심으로 앉거나 도열해있는 유목연합의 간부들.
놈들이 경악어린 표정, 혹은 공포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는 천천히 그런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리고 곧 확인할 수 있었다.
- 띠링!
[카테르][유목연합 연합장]
적 최고지휘관의 얼굴을 말이다.
나는 씩 웃었다.
"거기 숨어 있었구만."
연합장, 카테르는 일개 병졸로 변장한 채 긴장한 얼굴로 천막 한 켠에 우뚝 서있었다.
썩 영리한 처사였다.
아마도 저기 상석에는 다른 녀석을 세워두고, 자신은 틈을 봐 도망 치거나 숨어서 목숨을 부지하려 했을 터.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내 앞에서 정체를 숨기는 일 따 위는 불가능하다.
나에게는 홀로그램이 있으니까.
아무리 변장하고 정체를 숨긴다 한들, 고스란히 들켜버리는거다.
저벅 저벅.
나는 세계검을 쥐어들고 카테르 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