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동부대륙. 크루거 연방의 수도.
그곳은 지금 폐허로 화해있었다.
지평선을 그득 메웠던 무수히 많은 건물들이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다.
지면에는 온갖 파편무더기와 불 타고 남은 잔해들이 어지러이 흩어 져있었으며, 곳곳에는 뿌연 연기들 이 올라와 탄내를 풍겨댔다.
그중에서도 과거 수도의 중앙이 었던 대의사당 터.
그곳에서 한 인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 이로써 필요한 기반은 갖췄다.
입을 열어 중얼거린 인영의 정체는 다름 아닌 크라함이었다.
볼라바아 흑마법 학파의 종주이 자, 이제는 동부대륙을 완전히 정복 한지배자가 된 이.
그가 시선을 돌려 자신의 최측근 인 최상급 흑마법사, 테르본을 바라 보며 묻는다.
- 대전의 준비는 어느 정도까지 완성되었느냐.
"위대한 우리의 주인이시여. 대전 의 준비는 반절가량이 완료되었나 이다."
크라함의 물음에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하는 테르본.
그의 말이 이어졌다.
"포식자를 수십 개체 양산했으며, 광인 또한 수백 개체를 완성했나이다. 더해 키메라 군단의 준비 또한 차질 없이 완성되어 가고 있으 니…."
- 대적자의 부활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옵니다."
- 직접 보겠다. 안내하라.
"명령을 따릅니다."
테르본이 앞서 걷고, 크라함이 그의 안내를 따라 걷는다.
걸어가는 와중 크라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폐허뿐.
한때 찬란한 영광의 빛을 흩뿌렸 던 연방의 대의사당 건물은 온데간 데 없이 사라졌고, 주변에는 오직 매캐한 연기와 후각을 자극하는 탄 내만이 그득하다.
한때 수백만에 달하는 인구가 살아가던 연방의 수도.
허나 지금 그곳에 있는 인영이라 고는 크라함과 그의 수하 흑마법사 들. 그리고 그들이 부리는 키메라와 변종들밖에 없다.
저벅, 저벅, 저벅.
크라함과 테르본이 한동안 걸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연방 대의 사당 터 잔해의 중심부로 다가가자.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허공에 떠올라있는 커다란 붉은 색 구슬.
그것은 흉험한 빛을 발하며 기괴 한 기운을 사방 천지에 흩뿌리고 있다.
크라함은 그 붉은빛을 바라보고 는, 질척하게 웃었다.
- 크흐흐…. 그래, 순조롭군.
크라함이 붉은색 구슬로 다가간다. 자신의 덩치만한 구슬 속에는 어떤 인영이 갇혀있다.
크라함이 자신의 메마른 손을 뻗 어 구슬을 쓰다듬는다.
- 과연. 유물의 힘을 빌리니 '대 적자'의 완전부활조차 가능한 것인 가. 대단하구나.
지금 크라함은 한스를 소생시키 고 있었다.
한스 요한바르첸.
한지훈을 대적하는 운명을 타고 난 시나리오 속 존재.
본래 그를 되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스는 대적자의 별을 가지고 있으며, 별을 지닌 존재를 되살리는데는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많은 흑마나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크라함은 한스를 되살 리는 일에 거의 성공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유물.
환상종의 핵.
과거 반신이라 불리었던 환상종 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힘을 지니며 이 세상을 지배했었다.
그런 환상종의 힘 일부가 담겨있는 환상종의 핵, 유물을 사용한다면 막대한 힘을 운용할 수 있었고.
크라함은 그런 유물의 힘을 빌려 한스를 소생 중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스가 완전히 소생 할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
크라함이 웃는다.
- 한지훈. 네놈이 아무리 드높은 힘을 지니고 있다 한들, 그리고 시스템과 시나리오의 가호를 지니고 있다 한들.
철그럭.
검은색 장검을 꺼내드는 크라함.
- 마지막 승자는 내가 될 것이다.
그가 쥐어든 검은색 장검은 너무나도 새카맸으며, 그 윤곽조차 드러 나지 않았다.
극한의 검은색.
저 검은색 장검은 빛을 반사하기 는커녕, 빛조차 흡수해 그 윤곽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검은색 장검에서 붉은색 기운이 일렁인다.
- 한지훈. 이제 놈은 서부대륙에 있을 유물을 노릴 터.
철그럭. 크라함이 검은색 장검을 수납한다.
그가 지시한다.
- 한스의 부활이 완료되는 대로 서부대륙 원정을 준비하라. 놈이 유물을 취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명령을 따르나이다. 우리의 주인 이시여."
크라함과 볼라바아 학파가 서부 대륙 원정을 준비한다.
나는 영지에서 한 달 내내 처박 혀 있었다.
물론 그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영지상태를 살피며 내정을 보았고, 북부군을 관리했으며, 그동안 소홀히 했던 귀족계 사교 또한 진행했다.
더해 매일 하는 단련 또한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진행했다. 상향된 능력치를 내 신체에 체화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되었군."
나는 기다렸던 세계검의 완성을 마침내 목도하게 되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장검의 모습을 살펴본다.
정말 무지막지한 크기의 장검이었다.
전체적인 길이는 무려 180cm 가 량.
손잡이는 양손으로 잡고도 한참 남을 정도로 넉넉하며, 날면은 한 뼘이 넘을 정도로 두텁다.
그야말로 거검(巨劍)이라 부르기에 차고 넘칠 정도로 커다란 크기 와 질량을 지닌 검이다.
헌데 이상하다.
내가 세계검으로 만들라 지시했 던 건 일반적인 장검이다.
헌데 왜 드워프와 마탑주들은 이 토록 거대한 검으로 만들어낸 것인 가.
내 의아한 기색을 눈치 챈 것일까?
주변에서있던 드워프 족장들과 마탑주들이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한지훈. 저 검의 크기를 보면 알겠지만 평범한 인간이라면 결코 사용할 수 없는 크기다."
"너무 거대한 크기이지만 세계수가지의 힘을 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저 크기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비록 거검을 다뤄본 적은 없지만, 내게는 검술 스킬과 시스템으로 인한 막대한 육체능력이 있다.
일반적인 장검이 아닌 이토록 커다란 거검이라 한들, 나라면 잘 다 룰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검신을 손으로 슥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꽤나 고급스럽게 생겼는데 ."
검은 크고 아름다웠다.
검신에서 반짝이는 은색 빛깔이, 이거검의 절삭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면에는 기기괴괴한 마나회로가 복잡하게 아로새겨져 있으며, 검면을 가로지르는 혈조에는 라이젠 가문의 문양이 음각으로 아름답게 새 겨져 있다.
철그럭.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립감도 괜찮고."
장검의 그립을 무엇으로 만든 것 일까. 촉감이 나쁘지 않다. 더해 적 당한 정도의 마찰력 덕분에 전투 중 그립을 놓칠 일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시선을 돌려 드워프와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내 가르강인 가? 크기도, 생김새도. 가르강이랑 완전히 다른 것 같은데."
"… 세계수의 가지는 가르강에 이 식하지 않았다네. 잘 살펴보니 차라리 처음부터 만드는 게 훨씬 나아 보이더군. 크기부터 완전히 다르니 말이네."
"음…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는 것인가. 그럼 내 가르강은 어디 있지?"
"가르강은 여기 있네."
드워프들이 내가 본래 쓰던 장검, 가르강을 가져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이식해가며 만들 필요는 없지.'
내가 세계수의 가지를 가르강에 이식하려 했던 이유는, 단순히 오랫동안 썼기에 내 손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크기를 지닌 가르 강을 굳이 해체하고 이식할 필요는 없으니 , 그냥 처음부터 만든 듯싶다.
그렇게 해서 내가 주력으로 사용 하는 검은 두 개가 되었다.
하나는 가르강.
회색망치 드워프 족장인 드루바 가 내게 만들어줬던 장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계검.
엘프의 지원과, 드워족장들과 마 탑주를 혹사시켜 만들어낸 거검.
나는 저 두개를 모두 지니고 다닐 심산이다.
장검과 거검은 각자의 장단점이 있으니 말이다.
'세계검은 등에 지고 다니고. 가르강은 옆구리에 차고 다니면 되겠 어.'
저 세계검의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하다. 평소처럼 옆구리에 차고 다 니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저건 줄을 메달아 등짝에 차고다 니고, 가르강은 평소처럼 옆구리에 패용한다면 될 것이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세계검의 그립을 잡고 들어올렸다.
두변에서있던 드워프와 마탑주 들이 경악한다.
"세상에…! 저 무거운 거검을 한 손으로 다루다니…."
"어떻게 저리 가볍게 들어올리는 거야?!"
"괜히 세계수의 가지를 변형시킬 수 있던 것이 아니었어. 완력이 정말 대단하군."
저들은 내가 한손으로 이거검을 들어 올린 것이 몹시나 놀라운 듯했다.
하긴 놀랄 만도 하다.
이 장검은 겉보기에도 커다랗지만, 그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
근력이 200에 달한 나도 썩 묵직 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말이다.
듣기로는. 드워프들조차 다섯이 힘을 합쳐야 간신히 이거검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하던가.
그만큼 무거운 검이었다.
물론 무거운 것은 기동력을 해치 기 때문에 단점이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단점이라 하기에는 어려웠다.
무거운 만큼 보다 강한 충격력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약간의 마나를 세계검에 흘 려 넣었다. 푸른색 오러가 은은하게 일렁이고, 그와 동시에.
- 띠링!
[세계검 (비활성화)]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나는 떠오른 홀로그램을 주시하 며 생각했다.
'비활성화라. 유물을 사용해야 비로소 모든 성능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건가?' 지금 나는 유물을 활성화하지 않은 상태다. 그렇기에 비활성화 되었 다는 주석이 달려있으리라.
만약 내가 유물을 활성화하고, 환상종의 힘 일부를 끌어다 쓰면.
저 세계검 또한 유물에 호응해 비로소 진정한 힘을 보여주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세계검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워프 족장들과 마탑주들이 다음 물건을 소개한다.
"자네의 지시대로 전신갑주 또한 준비해놨다네."
"저 세계검처럼 대단한 물건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손꼽힐 정도로 좋은 무구야."
"분명 만족할걸세."
드워프들이 전신갑주를 가져와 보여준다.
영지에 처박혀있는 이 한 달 동안 내가 만들라 지시했던 장비는 세계검뿐만이 아니었다. 전신갑주 또한 제작을 지시했다.
'이제는 민첩에만 목멜 필요가 없으니 말이야.'
그동안 나는 전투를 벌일 때 굳이전신갑주를 챙겨 입지 않았다.
내가 가진 능력치중 민첩이 가장 높았으니 , 내 장점인 민첩을 최대한 살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나는 근력 200을 달성했고, 마나 또한 234를 찍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상황에 따 라 전신갑주까지 제대로 챙겨 입을 심산이었다.
높은 근력과 대량의 마나를 십분 활용한다면, 전장의 전차처럼 무지 막지한 돌파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드워프들 이 가져온 전신갑주를 살폈다.
이것 또한 온갖 레어메탈을 아낌 없이 쏟아 부어 만든 명작이었다.
온갖 마나회로가 새겨져 은은한 빛을 일렁였으며, 곳곳에는 양각과 음각으로 화려하게 조형되어 있어 위엄 있는 분위기를 풍겨댔다.
드워프들이 뿌듯한 얼굴로 입을 열어 말한다.
"아다만티움과 미스릴, 오리할콘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만든 전신 갑주다."
"더해 마나중폭회로와 방호회로, 그리고 경량화 술식까지 적용되어 있지."
"최강의 방호능력과 사용성을 지닌 우리의 걸작이다. 부디 만족했으 면 하는군."
보아하니 세계검을 만들어낸 것 보다 저 전신갑주를 만든 것이 더 뿌듯한 기색이다.
하긴. 세계검은 저들 또한 처음 만든 아티팩트이기에, 그리고 엘프 의 조력과 그들이 알려준 기술 덕 으로 만든 것이기에. 반쯤 남의 것 처럼 느껴지는 반면.
저 전신갑주는 순수 자신들의 기술로만 만들어진 물건이니까.
자신들의 힘으로만 만든 물건에 더욱 큰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피식 웃고는 그들을 치하했다.
"잘했다. 드워프 족장, 그리고 각 마탑의 탑주들. 한동안 지원을 늘려 주지."
"고맙네. 한동안은 예산을 넉넉히 책정할 수 있겠어."
"중지했던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겠군."
족장들과 탑주들의 얼굴에서 홉 족한 기색이 올라온다.
그야 세계수의 가지를 사용한 역사적인 물건을 만들어본 데다, 내 추가적인 지원을 약속받았으니 기 쁠 수밖에.
하여튼. 지금의 나는 모든 준비 를 마친 상황이다.
영지를 관리했고, 북부군을 정비 했으며, 새로운 동료인 황실 기사단을 영입했다. 세계검과 전신갑주 또한 수령했다.
이제 제국에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쳤으니 .
나는 통신수정구를 집어들어 새로운 통신을 연결했다.
"니디아. 마침내 세계검을 완성했다."
내가 통신을 연결한 곳은 다름 아닌 니디아.
나는 세계검의 완성을 그녀에게 알리고, 요청했다.
"서부대륙에 유물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고,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지원해줘. 곧장 서부대륙으로 가겠다."
이젠 다시 전장에서 구를 때다.
나는 서부대륙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