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자정에 이르러 야심한 밤.
크루거 연방의 중심지. 연방 대 의사당 최상층 회의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콰앙!
연방 통령 러셀이 회의실로 난입 하며 그리 외쳤다.
방금 전까지 잠을 자다 달려나온 것일까.
통령은 잠옷차림이었다. 제대로 된 의복을 갖춰 입지 못할 정도로 다급히 달려온 것이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수도 전체를 아우르는 마법진이 라니!"
난데없이, 연방 수도 상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떠오른 것이다.
통령은 시선을 돌려 회의실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시야에 보였다.
만월에 이르러 검붉게 빛나는 달을 배경으로, 거대한 크기의 암흑색 마법진이 상공에 떠올라 있는 모습.
마법진의 크기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수도의 상공 전체를 감쌀 정도로 무지막지한 크기.
쿠구구구구구….
장중한 파동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공기를 진동시키고 있다.
러셀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회의 실내부에 자리해있는 군관과 마법사들을 향해 물었다.
"저 마법의 정체는 파악했나?"
그가 묻는 것은 저거대한 마법 진의 정체.
저것의 정체를 알아야 이 갑작스 러운 사태에 대응할 수 있을 터다.
마법사들이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흑마법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저희가 다루는 백마법과 완전히 다른 계통의 마법이기 때문에, 해석엔 실패했습니다."
"흑마법이라… 그렇다면 파훼도 불가능하겠군."
"송구하옵니다."
저거무죽죽한 마법진의 모습을 보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만.
역시나 떠오른 마법진의 정체는 흑마법이었다.
혹마법이란 그 지식을 얻는 것만 으로도 인간을 타락시키는 사악한 마법.
일반적인 마법사가 혹마법의 지식을 지니고 있을 리 만무.
때문에 연방의 그 어떤 마법사들 도 흑마법의 해석과 파훼는 불가능하다.
통령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혹마법이라… 크라함. 놈이 무언 가 꾸몄군."
러셀은 범인이 크라함이라 짐작했다.
당연한 추측이었다.
지금 이 시기 연방을 건드릴 흑마법사라면 크라함과 그가 이끄는 볼라바아 학파밖에 없을 터이니.
"쯧"
통령은 혀를 찼다.
'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쪽을 적대할 세력을 키워준 꼴이로군.'
뒤늦게 후회하는 러셀이었다.
주변의 마법사와 군관들이 하나 둘 입을 열었다.
"통령 각하. 연방의 영토 각지에서도 저 마법진처럼 거대한 규모의 흑마법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 이곳, 수도 말고도 혹마법들이 발현되고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사옵니다. 각하."
이어진 군관들의 보고는 충격적 이었다.
"안데트, 카빌리시안, 발라운트, 호칸, 데이던을 비롯. 대부분의 주요 대도시에서 흑마법이 발현되었 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혹마법이 발현된 대도시의 수만 해도 스무 곳이 넘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러셀의 표정이 굳는다.
방금 전 군관이 읊었던 다수의 도시들. 그곳들은 최소 백만 이상의 인구수를 갖추고 있는 연방의 대도시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대도시 상공에, 저거대한 혹마법진이 떠올라 존재 감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허."
통령이 웃었다. 상황이 믿기지 않아 흘러나온 헛웃음이었다.
그제야 통령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마법진들, 분명 하루 이틀 준비한 일은 아닐 터.
마법에 조예가 없는 통령일지라 도, 간단한 마법에도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헌데 대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마법 수십 개의 동시발현이라.
최소 연단위의 준비 작업이 필요 한 일이다.
그 말인 즉, 크라함은 최소 몇 년 전부터 연방에 대한 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소리.
으득. 통령이 이를 간다.
"크라함…! 개자식! 놈은 처음 부터 우리를 이용하고 배신할 생각이 었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물든다.
하지만 자리에서 분노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통령 각하! 긴급대피 마법진이 준비되었습니다."
"일단 대피하십시오! 수도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제기랄! 알았다. 일단 대피한다."
지금은 일단 몸을 피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비해야 할 때.
철그럭. 철컥.
기사들이 등장해 통령을 호위하 기 시작했다.
통령을 비롯한 연방의 수뇌부는 미리 준비된 안전한 대피공간으로 피신하려했다.
하지만 통령은 대피할 수 없었다.
- 번쩍!
수도 상공에 떠올라있던 거대한 마법진이, 때맞춰 발동되었기 때문에.
콰콰콰콰콰콰콰!
수도 전체가 검은색 불길에 집어 삼켜진다. 불길은 장소를 가리지 않 고 수도 전체를 유린해갔다.
빈민들이 기거하던 뒷골목도, 평민이 살아가는 주택가도. 귀족과 고위층이 있던 대의사당까지.
수백만에 달하는 많은 수의 인명 이 비명 지를 새 없이 찰나에 소멸했다.
이러한 광경은 연방이 자리한 동부대륙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동부대륙 극동 대도시인 안데트에서, 서부 해안 대도시 데이던까 지.
일정 인구 수 이상을 지닌 대도시 모두가 검은색 불길에 휩싸여 소멸해버린 것이다.
연방이 하룻밤만에 멸망했다.
"미안하네, 한지훈. 그리고 북부 군의 군관들이여. 본래라면 승리한 자네를 치하하기 위해서 연회를 하고 있었을 터이다만…."
아르테니아 황제가 그리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회의실 창밖을 바라봤다.
야심한 밤. 제국 수도.
창밖에는 밤늦게까지 축제를 즐기는 떠들썩한 소리가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결국 연회는 하지 못하고 회의를 하게 되었군."
나는 시선을 돌려 다시금 회의실 내부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제국 황 궁 중앙에 자리해있는 대회의실이었다.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하기 위해 고위 인사들이 토론하는 장소.
현재 이곳에는 제국의 거의 모든 고위 대신들이 자리해 있었다.
회의실의 커다란 원탁에 앉아있는 인영들의 얼굴을 훑어본다.
국방성, 내무성, 국무성, 재무성, 마법성, 법무성 등 제국의 각 부처 장관과, 그를 보좌하는 차관들.
그리고 가장 상석에 자리해있는 아르테니아 황제.
나 또한 원탁의 한켠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아르테니아 황제가 입을 열었다.
"방금 전 들어온 급보다. 연방이 소멸했다."
그가 손짓하자, 군관들이 커다란 지도를 가져왔다. 동부대륙 지도였다.
황제가 지도를 바라보며 설명한다.
"연방의 주도 대도시 모두가 순식간에 소멸했다. 검은색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암흑의 불길에 휩싸여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소각되었다 는군. 그것도 동부대륙 곳곳에 있는 연방의 대도시 모두가, 거의 동시에 말이다."
"미친…/"
"말도 안 되는 일이로군요."
회의실에 자리해있는 이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경악, 혹은 믿기지 않다는 표정이 올라온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그토록 강력한 국력을 지닌 초강 대국, 크루거 연방이 하룻밤만에 소멸했다는데 .
쉬이 믿기 힘든 일이니까.
그런 기색을 읽은 황제가 단언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동부대륙에 침투시켰던 다수의 정보원들이 모두 동일한 소식을 알 려왔다. 연방의 소멸은 진실이며, 지금 동부대륙에서는 무언가 이변 이 일어나고 있다."
황제의 말에 회의실의 인물들이 고개를 끄덕여 억지로 수긍했다.
확실히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제국의 정보부는 유능하다.
황제가 저리 단언할 정도면 분명 검증작업이 끝나 확실한 사실일 터다.
잠시 회의실을 둘러보던 황제가 우르겔에게 물었다.
"마법성 장관 우르겔. 연방의 도시들을 소멸시켰던 마법진의 색은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검은색 마법 진은 흑마법의 증거라는데 . 그 말이 사실인가?"
황제의 질문에, 우르겔이 대답했다.
"검은색 마법진, 검은색 불길이라 면 혹마법임이 분명합니다. 검은 마법진은 오직 혹마법만이 낼 수 있는 마법색입니다."
"…그렇다면. 연방은 흑마법사 놈 들이 소멸시켰다는 소리로군. 하지만… 이상하군 그래."
턱을 궤고 고민하는 황제.
"내가 듣기로, 흑마법사는 강하고 패도적이라 하나 특유의 광기와 다 량의 마력 소모 때문에 그 수가 극히 적다고 한다만."
"그렇습니다. 흑마법사의 수는 극히 적습니다. 그들은 육성하기 곤란 한 이들이니까요."
"헌데 그 흑마법사가 연방이라는 초거대 국가를 순식간에 소멸시켜 버렸다. 놈들의 세력이 그만한 짓거 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세했었 나?"
황제의 말에 회의실에 자리해있 던 이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황제의 지적대로 흑마법사의 세력은 작다.
그들은 음지에서 살아가는 이들. 그 세력이 결코 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몇 년 전까지는 말이야.'
하지만 어리석은 연방의 통령은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고, 그들에게 대규모의 지원을 퍼부었다.
덕분에 크라함이 이끄는 볼라바 아는 그 세력이 빠르게 커졌다.
초강대국 연방의 전폭적인 지원 이다. 흑마법사의 세력이 순식간에 팽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놈들의 세력은 필시 거대할 터.
"… 아무래도 흑마법사의 세력이 예상보다도 훨씬 큰 것 같군. 그거대한 연방조차 하루만에 멸망시 킬 정도라…."
후우. 한숨을 쉰 황제.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 말한다.
"어쨌든. 예정되어 있던 승전 기념 연회마저 취소하고 그대들을 이자리에 모은 이유가 이것이다. 연방 이 방금 소멸했다. 그리고 동부대륙 은 흑마법사의 영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르테니아 황제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 회의실 내부의 인영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연방이 소멸시킨 흑마법사들이 어찌나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예상이다만… 놈들은 동부대륙 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타 대륙들도 노리기 시작할 터."
황제의 판단력은 예리했다.
크라함은 동부대륙을 차지한 것 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목적은 신이 되는 것.
나를 죽이고, 내 격을 빼앗아 나 대신 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
그러니 흑마법사는 멈추지 많을 것이다.
"그대들의 조언을 받겠다. 앞으로 우리 제국이 어찌 움직여야 하는지, 각자 의견을 말해보도록."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이는 회의 실.
하긴. 갑자기 연방이 소멸하고, 흑마법사의 세력이 준동하는 초유 의사태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무어라 말 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들은 어째서 흑마법사가 움직이는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놈들의 목적, 세력, 그리고 달성한 경지까지도.
나는 작게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모이는 시선. 사람들의 눈동자가 하나같이 내 얼굴을 주시한다.
나는 이어 말했다.
"드릴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라니, 흑마법사에 관한 것인 가?"
"그이상의 중요한 정보들입니다. 폐하께서는 꼭 아셔야 하는 일입니다."
나는 정보를, 그것도 시나리오와 세계의 운명에 관한 정보를 풀 심산이다.
흑마법사를 막기 위해서는 놈들 이어째서 저리 행동하는지, 크라함 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니까.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세계 의 진실에 대한 정보까지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자리에서는 차마 밝 히기 힘들군요."
물론 모두에게 밝히지는 않는다.
오직 황제에게만 모든 것을 밝힐 생각이다.
세계의 운명에 관한 건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까.
내가 다른 차원 태생이란 것 부터, 크라함이 신이 되기 위해 나를 노리는 것, 시스템, 전생의 시나리오와 현생 시나리오의 괴리, 그리고 유물과 세계검에 대한 내용까지.
내가 아는 모든 정보들.
황제와 공유할 심산이다.
그는 믿음직한 아군이니까.
"잠시 독대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
내가 본래 이 세상 태생이 아니 란 걸 알게 된다면, 과연 그는 어떤 표정을 내비칠까?
나는 황제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