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329화 (329/390)

329화.

"위대한 우리의 주인, 크라함이시 여."

깊숙한 동굴 속. 음침한 기운이 흐르는 공간.

볼라바아 흑마법 학파의 비밀공 간 중 하나.

"연방에서 저희 볼라바아의 축출 작업을 시작했나이다."

그곳에서 최상급 흑마법사 테르 본이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런 테르본의 보고에 나직이 대답하는 하나의 인영.

- 그래.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연방 통령,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었 다는 사실을 드디어 눈치 챘군.

다름 아닌 크라함이었다.

그는 보고하는 테르본의 말에도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무언가를 노 려보고 있었다.

그가 주시하는 것은 하나의 작은 수정구였다. 아무런 빛조차 반사하지 못하는 칠흑색의 빛깔을 지닌.

클클. 크라함의 입가에서 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온다.

- 하지만 그래봤자다. 테르본, 현재 학파의 상태는?

"이미 모든 기반과 인원을 비밀 장소로 빼돌린 상태입니다. 대법의 실행과 연구의 완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 좋군.

크라함이 고개를 끄덕인다.

중앙대륙 정벌이 실패하면 분노 한 연방 통령의 칼끝이 흑마법사 세력에게 향하는 일. 미리 예상하지 못할 크라함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중앙대륙 원정 와 중 동부대륙에 남아있던 흑마법사 에게 지시를 내려둔 상태였다.

연방에서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 밀히, 세력의 은둔 작업을 준비하라 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크라함의 명령은 충 실히 이행되었다.

연방 통령이 흑마법사의 축출명 령을 내린 그때. 이미 볼라바아의 모든 것은 온갖 비밀장소로 이전되 어있는 것이다.

그런 흑마법사들은 연방측이 찾아낼 수 있을 리는 만무.

- 허접한 연방놈들의 마법능력 따위, 하찮다.

크라함과 연방의 마법수준 격차 가 너무나도 극심하기 때문이었다.

엘프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마법으로서 능가할 자가 없는 것이 바로 크라함의 경지였다.

그들을 추격하기 위해서는 엘프 의 고위 마법사들이 장기간에 걸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리라.

하물며 연방의 마법사들이라면, 흑마법사를 추적하기는커녕 그들의 흔적조차 발견하기 힘들 터.

그렇기에 손쉽게 연방의 눈길을 피해 은둔할 수 있었던 크라함과 볼라바아 세력이었다.

크라함이 작게 중얼거린다.

- 어차피 연방은 대법의 재료가 되어 사라질 터. 진정한 문제는 엘프와 한지훈이다.

크라함이 푸른색 안광을 일렁이 며 수정구를 노려본다.

그의 손아귀에 들려있는 칠흑색 수정구. 그것의 표면에는 이전과는 달리 아무런 표시조차 일렁이지 않 고 있다.

비로소 크라함은 확신할 수 있었다.

- 내 예상대로, 드디어 '시나리오'가 파훼되었군.

그가 쥐고 있는 검은 수정구는 세상의 각본을 읽는 아티팩트였다.

고격에 이른 자신의 힘을 전력으로 활용해 가까스로 만들어낸, 일종 의 신기.

평소 크라함은 저 검은색 수정구 를 통해 별을 읽고 미래를 예지해 왔다.

본래라면 저 수정구 표면에 무수 히 많은 수의 빛들이 점멸하며 운명과 각본을 알려줬을 터.

하지만 최근, 아무리 많은 양의 흑마나를 밀어 넣어도 수정구의 반응은 전무했다. 마치 전장의 안개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인 즉, 이전과 달리 '확정된 미래'가사라졌다는 것. 한지훈의 각성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마침내 크라함이 자리에서 일어 서 테르본을 바라본다. 시선을 마주 한 테르본은 황송하다는 듯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 마지막이 머지않았다.

나직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강대한 기운을 품에 크게 울려 지하공간을 진동시켰다.

쿠르르르릉….

어둑한 지하공간 전체를 울리는 막대한 혹마나의 파동. 바로 앞에서 마주한 테르본은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강대한 힘.

그저 나직한 목소리에 불과했음 에도, 크라함의 음성에는 거대한 존재감이 어려 있다.

- 대법의 마지막 절차를 서둘러 라. 대적자의 부활과 환상종의 현현을 성공시켜라. 세계검을 완성시켜라.

대적자를 이용해 이름 없는 별의 격을 취하고, 환상종을 현현시킨다 면.

세계의 법칙마저 개변시킬 수 있는 세계검까지 쥐게 된다면.

그리하여 강대한 힘과 격을 얻게 된다면.

- 그리 머지않아, 나는 이 세상 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전능한 존재가 되어 이 세계 그 자체를 완전히 지배하고, 흑마법사의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 흑마법사들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 지배하는 세상.

법도, 윤리도 없이. 오직 강함과 욕망만이 전부인 세상.

모든 흑마법사들이 바라마지 않는 세상이다.

- 준비에 만전을 다 하거라, 테 르본. 내가 차질 없이 세상의 주인 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아아."

경외어린 시선으로 크라함을 올려다 보던 테르본. 그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자신의 주인에게 고했다.

"그때까지 전력으로 보좌하겠나 이다. 우리의 주인이시여."

흑마법사들이 때를 기다린다.

"… 망할."

세계수에서의 대화를 뒤로하고 군영으로 복귀하는 길. 나는 작게 욕지거리를 뇌까렸다.

그만큼 기분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스. 그 지긋지긋한 놈이 되살아날거라니."

엘프여왕 니디아는 말했었다.

크라함이 이끄는 흑마법사들이 모종의 수단을 사용해 그를 부활시 킬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전조는 있었지.'

나는 중앙대륙에 상륙하기 전, 슈베츠 왕국에서 있었던 이변을 떠 올려 보았다.

'완전한 사자의 소생.'

이미 흑마법사들은 죽은 인물을 완전히 되살려내는 경지에 이르러 있는 상태였다.

과거 제피르의 동료였던 마법사를, 연방과 흑마법사들이 되살려내 전투에 투입시켰던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데 '완전한' 소생이었다. 좀비나 스켈레톤, 혹은 암흑 기사나 리치 같은 불완전한 소생이 아니다.

영혼을 가졌으며, 심장이 뛰고, 오염되지 않아 붉은색 피가 흐르는.

"벌써 그 정도의 능력을 지녔으니 한스를 되살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지."

완전한 사자소생의 사례를 본 적 이 없었다면 몰라도, 이미 한번 보았다. 그러니 니디아의 예언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가 어찌 대응하냐는 것인데…."

흑마법사들이 놈을 되살리고 음 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이쪽에서도 앞으로 어찌 대응 할지 미리 생각해놔야 하는 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했다.

'연방을 이용해 한스를 되살려낼 가능성이 높다고했다.'

니디아가 말하기를.

한번 죽은 존재에게 완벽한 생명을 다시 부여하는 것은 몹시 대단한 기적이라 한다.

아무리 낮은 격의 인간을 되살린 다 한들, 꽤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한스의 격은 낮지 않다.

놈은 별의 운명을 지녔다.

대적자의 별이라는, 유일하게 나와 비견될 정도의 격 말이다.

'별'을 지닌 존재는 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나도 거대하기에. 대가의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다던가.

때문에 놈을 되살리는 데는 어마 어마하게 커다란 대가가 필요할 것 이다.

물론 대가란 당연하게도 인간의 목숨이다.

놈들은 흑마법사. 무고한 인명을 제물로 바쳐 이능을 발하는 존재들 이니까.

나는 니디아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본다.

- 연방의 대도시 몇 개가 사라질 거예요. 아니, 어쩌면 모든 대도시 가 소멸할지도 모르죠.

곧 연방은 멸망하거나 그에 준하는 타격을 입을 것이고, 흑마법사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될 것 이다.

그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앞 으로의 계획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한스의 부활을 막거나.

혹은 놈이 부활한 이후를 대비하 거나.

나는 먼저, 놈의 부활을 막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연방과의 전쟁. 그리고 흑마법사 의 추적과 섬멸."

한스의 부활을 막는 방법.

그것은 바로 전쟁이었다.

지금 연방은 중앙대륙 원정 실패 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백만에 달하는 대군이 소멸했으 며, 무지막지한 재화와 인력, 물자 를 손실했다.

분명 연방이란 국가 그 자체가 휘청이고 있을 터. 아무리 초강대국 이라도 백만 병력을 투입한 원정실 패는 치명적인 일이다.

만약 전쟁을 벌인다면 지금이 적 기이겠지.

군을 몰고 처들어가 연방을 무너 뜨리고, 엘프와 협력해 흑마법사를 추적한다면.

그리하여 크라함을 찾아 제거하 거나, 제거하지 못하더라도 놈들을 세력을 타격해 전력을 줄여놓는다 면.

한스의 부활을 막을 수 있다.

녀석과 악연으로 얽혀있는 나에 게 있어, 놈의 부활 그 자체를 막 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일.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 밖에 없었다.

"… 전쟁을 할 여력이 없어."

확실히 연방은 약해졌다. 하지만 약해진 것은 놈들뿐만이 아니다.

우리 제국과 엘프 또한 많은 소모를 겪어 전력이 약화된 상태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세계수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제국군 군영. 이곳저곳에서 철군을 준비하는 제국군 장병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인들이 붕대 를 감고, 목발을 짚고 있다.

중앙대륙 원정기간동안 부상당한 제국군 장병들.

더해 그 수 또한 많이 줄어들었출발할 때만 해도 35만에 달했던 거대 전력이 그 반절가량으로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애당초 이번 중앙대륙 원정조차 꽤나 무리해서 추진했던 일이었다. 지금의 제국에게 또 다른 타 대륙 원정을 준비할 여력은 없다.

하물며 그 상대가 연방. 그것도 놈들이 제대로 된 전력을 투사할 수 있는 동부대륙 본토다. 성공할 가능성은 한없이 희미하다.

때문에 나는 한스의 부활 그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 다음으로 놈이 부활한 이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놈이 부활한 이후를 대비해 어찌 행동해야 할까.

그해답은 니디아가 알려줬다.

"유물의 수집. 그리고 세계검의 완성인가."

한스의 부활을 막지 못한다면, 이후 놈과 맞서 싸울 힘을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유물과 세계검이다.

상위차원의 존재로서 대량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그릇'.

그 그릇을 가득 채워줄 유물에 담긴 힘.

그리고 그릇에 담긴 힘을 완전히 다룰 수 있는 고격의 아티팩트 '세계검'.

이 세 가지 요소가 모인다면 나는 말 그대로 신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한다.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했나."

말 그대로 전지전능.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유물과 세계검을 취한다면 신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니디아가 했 던 말이다.

하지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신?

비록 내가 시스템 덕분에 일개 인간을 아득히 넘어서, 초월자의 격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 그래봤자 반푼이에 불과하다.

환상종의 힘을 잠시 빌려쓴 것만 으로도 죽어버린 반푼이 초월자 말이다.

그런 내가 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일단 유물과 세계검의 완성은 서두를 필요가 있어보여."

신이니 초월자니 하는 소리는 제 쳐두고, 이미 유물의 효용은 확인했다.

나는 품속에서 푸른색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이번 포식자와의 전투에서 유용하게 써먹었던 유물, 리바 이어던의 핵.

완전히 휴면기에 들어선 것일까.

수정구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은 여전히 거대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으나, 예의 그 오만한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잠시 수정구를 바라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유물 하나만으로도 그토록 강대 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는데 . 다른 유물들까지 모은다면 훨씬 더 강해 지겠지."

더해 세계검마저 완성시킨다면 그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모든 것이 준비된다면. 제아무리 대적자의 운명을 지닌 한스라 한들 나를 이길 수 없겠지.

"문제는… 나머지 유물이 어디에 있느냐는 건데."

세계검의 경우, 전생의 원작자인 니디아가 제작 방법을 알려준다 한다. 더해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세계수의 가지까지 보상으로 받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머지 유물의 위치는 전혀 모른다.

내가 지닌 남부대륙의 유물을 제 외한 동부대륙과 서부대륙의 유물 이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확실하진 않지만, 유물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1등급 비밀정보 활성화."

- 띠링!

[1등급 비밀 정보]

[유저가 모르는 정보를 랜덤 해 금합니다.]

[1등급 정보에 한해 개방됩니다.]

[정보를 수령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시스템 관리자에게서 받아냈던 보상. 1등급 비밀정보.

이것이 내가 가야할 길을 인도해 주리란 직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비밀정보는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는 했으니까.

이번에도 의지해보일 심산이다.

나는 화면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수락."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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